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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공예·조각

[발굴] '신라 귀족은 제사 때 생굴을 제사상에 올렸다'

잠용(潛蓉) 2016. 11. 11. 09:43

신라 귀족들은 제사 때 생굴을 한가득 제사상에 올렸다?
한겨레ㅣ2016.11.10 16:36 수정 2016.11.10 19:06 댓글 34개

 

[한겨레] 최근 경주 서봉총 남분서 생굴 껍데기 가득 든 대형 제례토기 나와
국내 전통 제사풍속에서도 전례 찾을 수 없어
또다른 제례 토기인 네모진 합도 잇따라 나와 용도 미스터리

1500여년 전 신라에서는 왕족, 귀족들의 무덤 제사 때 생굴을 한가득 제사상에 올리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4~11월 경북 경주 노서동의 5~6세기 신라고분 서봉총을 90년 만에 재발굴한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분 남분 봉토 언저리에서 출토된 9점의 대형 토기 항아리들 중 일부에서 다량의 생굴 껍데기들을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무덤 호석 바깥에서 열을 지어 출토된 이 토기 항아리들은 무덤을 쌓은 뒤 제사에 썼던 제수용기로 추정된다. 한 항아리 안에는 생굴 껍데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다른 서너개 항아리들 안에서도 생굴 껍데기와 조개류의 껍데기들이 나왔다고 한다. 조사단은 “굴이 쉽게 상하는 먹거리여서 근처의 감포나 울산, 김해 같은 해안 지역에서 채취해 말에 싣고 직송해 제사에 썼을 것”으로 추정했다. 생굴이나 조개류의 껍데기는 남해안 일대 고대인들의 쓰레기더미인 패총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하지만 무덤가의 대형 제례용기 안에서 대량으로 쏟아진 사례는 전례가 없다. 고대 신라의 무덤 제례와 제수 음식의 양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서가 확인된 셈이다.

 

 

서봉총 남분 봉분 언저리에서 출토된 큰 항아리(4호 대호)의 출토 모습. 아랫부분만 남은 항아리 안에 생굴 껍데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서봉총 남분 언저리에서 나온 5호 대호의 내부를 찍은 사진이다. 네모진 합, 주둥이가 좁은 병 등의 제례용 토기들이 굴 껍데기들과 뒤섞여 있다. 서봉총 남분 언저리에서 나온 5호 대호의 내부를 찍은 사진이다.

 

네모진 합, 주둥이가 좁은 병 등의 제례용 토기들이 굴 껍데기들과 뒤섞여 있다. 생굴을 제사상에 올리는 풍습은 기존 문헌에서는 확인된 바 없다. 조선시대 이래 유교풍의 국내 제례의식에서는 제수음식에 날것을 쓰지 않는다. 임금이 종묘에 바치는 제사 때 중국 주나라의 고대 의례(<주례>)에 근거해 날고기를 쓰는 경우는 있지만, 과일 외에는 조리된 것을 쓰는 것이 금도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봉총의 굴 껍데기는 고대 신라 귀족들이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제례의식을 치렀다는 것을 일러준다. 과거 천마총이나 황남대총 발굴 당시 무덤 중심부의 묘실 안에서 달걀이나 동물뼈 등을 담은 그릇 등이 출토된 적이 있지만, 이 유물들은 무덤 제사용이라기보다는 저승길의 망자에게 바치는 송별 음식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토기 항아리에서는 생굴 껍데기 말고도 네모진 모양으로 꼭지가 달린 뚜껑이 있는 토기합 여러 개와 아가리가 좁고 배는 볼록한 작은 토기병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 토기류들 역시 제례용기였다고 막연히 짐작할 뿐 구체적인 용도는 수수께끼다. 조사단원들이 육안으로 감식한 결과 이 토기류 안에서 별다른 내용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네모진 합에는 음식물을 넣고 토기병 안에는 술을 넣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윤온식 학예사는 “신라 고분 주변에서 굴을 포함해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제례용 유물이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고신라 무덤 제례의 실체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며 “출토된 토기 주변의 흙도 정밀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박물관 쪽은 내년에 서봉총 북분까지 조사를 마친 뒤 후속 보고서에 상세한 분석 결과를 실을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