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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물막이 실패… 보존대책 논의 '원점'

잠용(潛蓉) 2016. 5. 6. 08:16

반구대 암각화 물막이 실패.. 보존대책 논의 '원점'
세계일보 | 입력 2016.05.05. 23:10


'가변형 투명댐' 모의실험서 누수 발생 업체측 시설 철수..

최종 실험도 연기 울산시 '생태제방안' 다시 꺼내들어

문화재청 "사연댐 수위조절이 최선" 접점 못 찾고 예전 주장만 되풀이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의지가 없는 걸까.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보존 대책을 둘러싼 그간의 논란과 관계기관의 행보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드는 의문이다. 10년간 입씨름만 벌이다 겨우 대책이라고 만들어낸 ‘가변형 임시 물막이’가 사실상 실패로 결론이 나자 관리, 보존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재청, 울산시가 물막이 설치 합의 이전 각자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다시 힘겨루기에 접어드는 상황이다. 하루빨리 대책을 찾겠다고 다짐은 하고 있으나 지금대로라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진]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으로 추진됐던 ‘가변형 임시 물막이’의 개념도. 실현 가능성을 점검하던 실험에서 누수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실패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물막이 실패… 서로 ‘네 탓’
울산 울주군 대곡천변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년에 반 이상 물에 잠기는 일이 수십년간 반복되면서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선사시대 고래잡이 장면 등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바위 표면의 그림은 이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물막이는 반구대 암각화 앞에 투명댐을 만들어 침수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아이디어였다. 기술적 가능성, 보존대책으로서의 적절성 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으나 국무총리실이 나서 울산시, 문화재청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물막이 설치를 위한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막바지 단계에 이른 지난달 26일 모의실험에서 누수현상이 발생했다. 
 


[사진]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들. 노란색으로 표시된 고래 부분은 다른 사례가 없어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틀 뒤 기술검증평가단이 입회한 가운데 최종 실험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설계업체인 포스코A&C가 시설을 철수시키면서 연기된 상황이다. 문화재청, 울산시는 실험을 조속히 재개하라고 종용하고 있으나 포스코A&C는 “3주 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울산시는 “이렇게 진행되어서는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신뢰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약속대로 진행된 게 없다”며 발끈했다.

 

그러나 포스코A&C 함인석 수석기술고문은 “(문화재청, 울산시가) 재촉을 해서 실험을 하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며 “시설을 철수했다고 하는데 재실험을 위한 일상적인 보완, 점검 과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함 고문은 또 “실험의 본질적인 부분은 이미 100% 성공했고, 누수 부분은 지엽적인 문제다. 공학적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들이 실패니 뭐니 떠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보존대책 논의 원점으로… 각자 주장만 고집
함 고문은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아직 절차가 남아 있으나 울산시, 문화재청은 이미 실패로 판단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문제는 전혀 접점을 찾지 못했던 예전 각자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울산시는 ‘생태제방안’을 다시 꺼냈다. 반구대 암각화 전면에 친환경적인 제방을 만들어 침수를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안은 주변 환경을 해칠 수 있고 공사 중 소음, 진동으로 반구대 암각화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사연댐 수위 조절이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대곡천 하류에 있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침수를 근본적으로 막자는 것이다. 문화재계에서 선호하는 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위 조절은 울산시 물공급 문제와 직결된다. 울산시는 수위를 낮추면 하루 2만t가량의 물이 부족해져 맑은 물 공급이 가능한 대체수원을 보장받아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물러선 적이 없다.

 

울산시가 대체수원으로 지목한 곳이 경북 청도의 운문댐. 김기현 울산시장은 통화에서 “물막이가 안 된 마당에 (문화재청이 다시) 수위 조절을 하자고 나서는 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라며 “좀 더 건설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모색해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울산 대암댐을 용도전환하면 쉽게 풀릴 문제다. 운문댐에서 물을 끌어오려면 수로 건설 등에 막대한 예산이 든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