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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생태·건강

[노화와 죽음] "부활 기다리는 냉동인간 150명"

잠용(潛蓉) 2017. 12. 25. 12:19

<인류 10대난제에 도전하다> ⑨ 노화와 죽음

부활 기다리는 냉동인간 150명,

늙지 않는 당신 불가능할까?
중앙일보ㅣ강기헌 입력 2017.12.25. 04:00 수정 2017.12.25. 07:28 댓글 847개


알코어생명유지재단 미국 애리조나서 냉동인간 실험
작년엔 노화 현상인 근육감소가 당연한 일 아닌 질병으로 분류돼
2009년에는 노화 관장하는 텔로미어 연구로 노벨상 받기도
하버드의대에선 유전자 조작한 늙은 쥐 '생체 시계' 되돌려
실리콘 밸리도 노화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 산업으로 육성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 공항 근처 알코어 생명연장재단. 조금 전 사망한 시신이 수술대에 올라왔다. 냉동인간 의료진이 얼음을 부어 신체 온도를 영하로 낮춘다. 동시에 피가 굳지 않도록 하는 특수 약물을 주입한다. 그런 다음 혈액을 빼내고 동시에 16가지 장기 보존액을 주입한다. 마지막으로 동결보존액을 주입하고 서서히 냉동시켜 영하 196도 액화 질소 탱크에 보존한다. 1982년 설립된 이 재단에는 현재 미국은 물론 일본·중국 등지에서 온 냉동인간 150여 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미래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이 중에는 2002년 83세로 숨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타격의 신' 테드 윌리엄스도 있다. 재단은 의학적으로 이미 숨진 이들을 '냉동 시신'이 아닌 환자(patients)로 부른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냉동인간 처리를 위한 수술대. [사진 알코어생명연장재단] 


막스 모어 알코어 CEO는 “재단의 임무는 회원들에게 수명 연장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머잖은 미래에 몸을 재활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알코어 생명재단의 냉동인간은 죽음마저 넘어서려는 21세기 인류의 몸부림이다. 생명 연장과 노화에 도전하는 인간의 꿈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근감소증에 ‘M62.84’란 질병분류 코드를 부여했다. 사람의 근육량은 20대 무렵 최대치에 이른 뒤 서서히 줄어 70대 이후에는 40% 이상이 감소한다. CDC의 이번 조치는 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 들면 당연한 일’에서 ‘질병’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근감소증에 대한 질병 코드 부여하는 걸 검토 중이다.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의사들이 갓 들어온 시신을 냉동인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알코어생명연장재단]
 
노화가 독자적인 연구 주제로 자리 잡은 건 2000년대 후반이다. 2009년, 노벨 의학상이 세포 속 생체시계 ‘텔로미어’의 역할을 확인한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 등 3명에게 돌아가면서 노화 연구는 혁명기를 맞았다. 세포 속 염색체 끝단을 말하는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 끝을 감싼 플라스틱처럼 세포 속 염색체 끝부분에 위치하는 유전자 조각이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일어날수록 짧아지는데 그 길이가 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는 노화 세포에 접어들고 결국 죽는다. 정인권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다세포 생물인 인간의 죽음은 노화 세포가 쌓여 몸속 장기가 기능을 상실하면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생체 시계를 되돌리는 회춘은 불가능한 걸까. 블랙번 교수는 “텔로메라아제 기능이 활발해져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들지 않으면 세포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텔로메라아제는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는 몸속 효소다. 암세포가 무한 증식할 수 있는 건 텔로메라아제 활성으로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노화 연구가 크게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노화 세포와 암세포다. 2008년 노화 연구단을 꾸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근육 노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노화에 따른 뇌 기능 저하를 설명하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근육에서 만들어지는 ‘카셉신 B’ 호르몬이 뇌의 인지기능을 좋게 만드는데, 노화로 인해 근육이 줄면서 이 호르몬 분비가 줄어 인지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권기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제어연구단장은 “근육도 몸속 장기처럼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나이가 들어도 적당한 근육량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근까지 진행된 연구를 종합하면 노화는 근육감소ㆍ암ㆍ심혈관질환ㆍ치매 등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꼽힌다. 텔로미어와 알츠하이머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는 고성호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텔로미어 길이가 일반인에 비해 짧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노화 관련 효소 hTERT를 통해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텔로메라아제의 특성을 활용해 암세포를 사멸하게 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정인권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교수는 “암세포 텔로미어와 텔로메라아제가 결합하지 못하게 만들어 암세포가 사멸하게 하는 새로운 항암제를 찾고 있다”며 “세포 노화와 암세포 연구는 동전의 서로 다른 면”이라고 말했다.


노화로 향하는 생체 시계를 되돌리는 실험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10년 하버드 의대 로널드 드피뇨 박사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나이 든 생쥐를 젊어지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텔로메라아제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를 실험쥐 세포에 장착했다. 유전자를 조작한 실험쥐가 털 색깔이 변화하는 등 노화 현상이 발견되자 연구팀은 텔로메라아제 효소 활성화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한 달이 지나자 회색 털이 검은색으로 변했고 줄어든 뇌의 크기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로널드 드피뇨 박사는 “인간으로 치면 80세 노인의 육체가 젊은이로 변한 격”이라며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는데 천천히 늙는 것을 넘어 젊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화 연구는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도 노화를 미래 먹거리로 꼽는다. 구글과 페이팔, 오라클 창업자들은 연구재단 지원이나 바이오 기업을 세워 불로장생의 약을 찾고 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2013년 세운 칼리코(Calico)가 대표적이다. 2015년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에 편입된 칼리코는 노화 원인을 찾아내 인간 수명을 500살 정도로 연장하는 게 목표다. 유전자 조합을 통해 수명이 10배 늘어난 회충을 만든 신시아 캐넌 박사가 칼리코 소속이다. 칼리코는 올해 글로벌 제약사 애비브와 노화 연구에 15억 달러(1조5100억원)를 공동 투자하는 계약을 맺었다. 오라클 공동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의학재단을 설립하고 노화 방지 연구에 3억3500만 달러(3640억원)를 지원했다. 엘리슨은 평소 “인간의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센스 연구재단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명 연장 연구를 지원하는 중이다. 실리콘 밸리의 노화 연구 바이오 기업은 속속 신설되는 중이다. 지난해 3월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인간 장수(Human Longevity)'라고 이름 붙인 바이오 기업을 설립했다.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냉동인간용 액화질소탱크. 여기에는 이미 150여명의 시신이 냉동된 채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알코어생명연장재단]
 
벤터는 “2020년까지 100세 이상 살아간 사람들을 포함해 100만 명의 유전자를 해독해 수명 연장 정보를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실리콘 밸리가 관련 연구에 적극적인 건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 등 사회 문제 해결책을 노화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만 해도 지난해 건강보험 진료비 64조5768억원 중 65세 이상 노인이 사용한 진료비는 25조9187억원으로 조사됐다. 전체 진료비의 38.7%를 차지한 것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노화 연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노화 원인 물질을 찾더라도 이를 임상 시험에서 검증하는 데는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30~5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생애 주기가 80년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생애 주기가 짧은 꼬마선충(3주)이나 생쥐(2년)가 노화 연구에 활용된다. 노화 연구가 단기간에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기에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에선 국가 주도로 노화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노화만을 다루는 국책 연구소는 없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