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주목 살던 산에 전기톱 소리 가득
한겨레ㅣ2017.12.29. 10:48 댓글 1239개
[한겨레21] 두릅도 못 캐던 가리왕산에 축구장 110개 크기 개발…
특별법 앞세운 1회용 스키장에 어그러진 ‘환경올림픽
↑ 2014년 9월25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강원 정선읍 가리왕산 하봉 밑에서 평창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단단한 나무들이 빼곡하다. 한여름 정오를 넘어선 태양조차 쉬이 숲을 관통하지 못한다. 쇠파리, 벌, 모기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벌레가 쉴 새 없이 달려든다. 여느 숲과 다르다는 걸 누구라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민간인 출입이 철저히 금지되어온 곳. 등산로가 없는 이곳에서 사람은 침입자다. 2014년 벌목이 시작되기 직전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터다.
단단한 나무들의 보금자리
흔히 상봉이라 칭하는 주봉우리와 중봉, 하봉 세 봉우리가 가리왕산을 이룬다. 가리왕산 남사면은 자연휴양림과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어 출입이 자유로운 편이다. 반면 북사면은 상봉에 이르는 장구목이 쪽 등산로가 산꾼들의 길이다. 애초 중봉과 하봉 쪽으로 오르더라도 임도를 경계로 장구목이 쪽 등산로로 틀어서 상봉으로 향해야 한다. 가리왕산 북사면에서 중봉과 하봉으로 오를 수 있는 사람의 길은 없다. 2013년 6월까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철저히 보호해왔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가리왕산(해발 1561m)은 봉산(封山)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세종 때부터 가리왕산은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한 봉산이었다. 잠시 쉬는 것도 고역인 이곳을 500년 보호림이라고 하는 이유다. 하지만 2017년 12월 현재 이곳은 더는 보호구역이 아니다. 10만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흔적 없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스키 슬로프가 대신하고 있다. 500년 보호림은 하릴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이 모든 비극은 강원도가 평창겨울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육상 종목이 여름올림픽의 메인 이벤트고 그중 마라톤이 꽃이라면, 겨울올림픽의 메인 이벤트는 설상 종목이고 그중 꽃은 단연 활강경기다. 스키어들은 지면과 공중을 넘나들며 시속 140km 이상의 속도로 내리꽂듯 질주한다. 모든 스포츠 경기를 통틀어 인간이 무동력으로 내는 가장 빠른 속도다. 이 박진감을 위해 국제스키연맹(FIS)은 ‘표고차(출발점과 결승점의 고도차) 800m 이상,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슬로프 연장길이 3km 이상’을 경기장 조건으로 제시한다. 2000m, 3000m 넘는 산들이 즐비한 동계스포츠 종주국들의 기준답다.
가장 최근 열린 2014년 소치겨울올림픽 때는 ‘로사 쿠토르 스키경기센터(해발 2320m)’에서 활강경기를 치렀다. 2010년 밴쿠버겨울올림픽 활강경기는 해발 2181m 휘슬러산에서였다. 2003년 체코, 2007년 과테말라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강원도 평창을 제치고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도시들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삿포로와 나가노에서 두 번이나 겨울올림픽을 유치한 일본의 예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98년 겨울올림픽이 열린 나가노에는 3000m 넘는 봉우리들 사이로 수십 개의 스키장이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소치, 밴쿠버, 나가노 모두 기존 스키장에서 활강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장 높은 한라산이 1947m다. 전국에 스키장은 15개에 불과하다. 자연조건, 문화 조건 모든 면에서 올림픽 활강경기 자체가 가당치 않다.
그런데도 강원도는 “모든 경기장을 평창 알펜시아에서 30분 이내에 위치시키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활강경기장 부지로 가리왕산을 제시했다. 평창겨울올림픽이 내세운 유일한 장점인 ‘모든 경기장이 알펜시아에서 30분 이내에 위치한다’는 조건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인구 4000명 남짓인 평창군 횡계리를 중심으로 모든 올림픽 시설물이 새로 들어서면, 이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지만 불행히도 그 장점이 먹혔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외친 ‘2018 평창’은 그대로 가리왕산을 향한 화살로 돌아왔다.
법이 법을 지키지 못하다
↑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2014년 9월19일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위치한 평창겨울올림픽 홍보관 앞에서 가리왕산 파괴 중단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김봉규 기자
강원도가 제시한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부지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개발 자체가 엄격히 금지된 곳이다. 산지관리법에 규정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법정 보호구역 중 규제 강도가 가장 센 곳 중 하나다. 두릅이나 곰취 같은 사소한 산나물이라도 캐다 적발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무단으로 산에 들어갔다 붙들리기라도 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10만원의 과태료가 징수된다. 그리고 이곳은 환경부가 정한 생태자연도 1등급과 2등급 지역이기도 했다. 이런 지역에선 원칙대로 하자면, 그 어떤 개발사업도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현행법상 보호구역으로 겹겹이 정해진 가리왕산은 절대로 스키장을 만들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법은 가리왕산을 보호하지 못했다. 부지런한 누구누구 정치인들께서 일찌감치 특별법을 만들어 법으로 법을 이겼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용한 도구는 ‘평창동계올림픽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2012년 6월 산림청은 평창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부지로 가리왕산을 확정했다. 이곳이 법상 산림청 땅이라 그렇다. 산림청은 이 지역이 엄정한 보호구역인 만큼 계획을 세워 일부를 해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올림픽이 끝나면 산림을 복원해 다시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단서조항도 달았다. 해제 대상 면적은 78㏊로 국제 규격 축구장 110개 정도 넓이다. 당시 스키장 건설을 위해 보호지역을 해제한다고 발표한 사람은 산림청 산림보호국장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1년이 지나 예정대로 일부가 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고, 공은 산림청에서 환경부로 넘어갔다. 법에 따라 환경영향평가가 시작된 것이다. 환경단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개발과 싸우는 방식은 사실 간단하다.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 예산집행은 합당한지, 근거들은 제대로 만든 것인지, 혹여 거짓은 없는지 등을 검증하고 확인받고 지적한다. 언론에 비치는 농성이나 집회 같은 방식은 백 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부분 법과 제도 안에서 옳고 그름을 다툰다.
하지만 가리왕산 문제는 법과 제도 안에서 다툴 여지가 거의 없었다. 앞서 말했듯 ‘특별법’이라는 무소불위의 법을 만들어 기존 법과 제도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싸움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사업자인 강원도가 너무 엉망이었던 탓이다. 애초 약속이었던 복원 계획은 함흥차사였고, 들이대는 조사 자료들은 누가 봐도 부실했다. 그 와중에 불법 벌목까지 이뤄져 일시적으로 공사 중단 명령까지 받았으니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다. 특별법이 아니라면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활강경기장 계획은 뒤집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전능한 누군가의 디자인인지 2014년 추석 즈음 늦지 않게 모든 행정 절차가 마무리됐다. 그리고 가리왕산은 전기톱 소리로 가득 차게 된다.
가리왕산에 드리운 최순실의 그림자
변곡점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2014년 12월8일, IOC는 ‘어젠다 2020’을 발표한다. 지금껏 올림픽 개최 최우선 원칙이었던 1국가 1도시 개최 원칙을 철회한 것이다. 복수 국가 복수 도시 개최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올림픽의 광범위한 분산 개최를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의 겨울스포츠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겨울올림픽 유치 포기나 철회 선언을 이어가고 있고, 여름올림픽 유치 경쟁도 예전 같지 않아진 지 오래다. 올림픽 유지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IOC가 내놓은 자구책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IOC는 한국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썰매 경기는 일본 나가노에서 치르자고 제안한다.
환경단체들은 IOC의 제안이 가리왕산을 위해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알펜시아에서 30분이라는 족쇄를 걷어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분산 개최는 억지로 끼워맞춰 생긴 여러 오류를 정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분산 개최는 없다”는 단 한마디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가리왕산에 1회용짜리 스키장이 만들어졌다. 이후에 밝혀졌지만 대통령은 허수아비였고, ‘조정자’로 의심되는 인물은 평창 일대에 수많은 부동산이 있었다.
가리왕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풍혈지역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땅속에서 불어온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로 씨앗을 품고 있는 풍혈지역은 그 자체로 종자은행이다. 더욱이 산 전체에 광범위한 풍혈지역이 흩어져 있어 생태적 가치가 그 어느 곳보다 높다. 가리왕산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의 유일한 자생지다. 설악산에도 덕유산에도 주목이 살지만 더 이상 남한 내륙에서는 어린 주목이 자연 발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린 주목부터 늙은 주목까지 어울려 살고 있는 가리왕산 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나라에서 주목은 멸종한다.
그동안 강원도는 처음 약속을 무시하고,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을 사후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흘려왔다. 하지만 올림픽 활강경기장은 결코 일반인들이 스키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슬로프가 아니다. 일반인들은 목숨을 내놓고 타야 할 만큼 고난도다. 그리고 한국의 스키장 사업은 이제 호황이 아니다. 바로 인근의 태백 오투리조트가 부도 사태를 겪은 뒤 힘겹게 다시 문을 연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강원도, 중앙부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리왕산 생태복원추진단’이 곤돌라를 폐쇄하고 슬로프 전 지역을 복원하는 내용의 복원안을 확정했다. 물론 앞으로가 더 고민이다. 두 달 후면 올림픽인데, 강원도와 중앙부처 그 어디도 복원 예산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폭탄 돌리기 하듯 눈치만 보고 있다.
비극으로 남을 평창 활강경기장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은 올림픽 역사에도 비극으로 남을 것이다. IOC가 주장하는 환경 어젠다에도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의 보호지역 위상에도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누군가 원하면 그게 어떤 법으로 보장된 보호지역이라 하더라도 쉽게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망치기는 쉬우나 다시 세우긴 어렵다. 이 사소한 진리를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반복해서 깨달아야 하나. 환경올림픽, 경제올림픽을 표방한다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은 가리왕산에 스키장을 만드는 순간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정규석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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