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津浦에서 맺은 사랑" (1967) < 1 >
랄랄랄 랄 랄 라~ 랄랄랄 랄 랄 라~
(봉봉4중찬단과 이시스터즈) ◆ 이시스터즈의 노래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은 1967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멤버들의 결혼과 더불어 리드보컬 이정자가 솔로가수로 팀을 탈퇴하고 새로운 멤버 김상미를 영입하는 침체기를 겪은 후, 봉봉사중창단과 함께 발표한 스필릿 음반을 발표했다. '울릉도 트위스트',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목석같은 사나이', '남성금지구역'을 연타석 히트시킨 1967년은 최대 전성기로 기억된다. '울릉도 트위스트'는 이들을 60년대의 슈퍼 걸 그룹으로 공인시킨 명곡이자 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대중가요의 고전이다. [바다따라 노래따라/ 34]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 해수욕객이 떠난 동해안 명승지 화진포 해안
1.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2. 은물결이 반짝이는 그리운 화진포 황우루 작사·작곡, 이시스터즈가 노래한 ‘화진포花津浦에서 맺은 사랑’은 1965년 발표된 대중가요로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방송전파를 탄다. 이 곡은 아름다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에서 사랑을 꽃피우고 영원을 약속한다는 정겨운 내용이다. 명사십리 해변과 드넓은 호수가 함께 있는 화진포의 빼어난 풍광이 세련된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로 흥겹게 표현 돼있다. 여성 듀엣 바니걸스도 리메이크해 부른 이 노래의 기념비가 화진포해수욕장 부근에 2개나 서있을 만큼 이 지역을 알리는 간판곡이다. 거진읍 화포리 화진포생태박물관 공원 안에 세워진 노래비는 2013년 8월 19일 착공, 그해 가을 세워졌다.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랫말에 나오는 조개모양이어서 눈길을 끈다. 자연석(10톤 규모)으로 된 노래비 본체는 너비 1.2m, 높이 2.5m며 비 아래쪽은 가로 1.5m, 세로 1.0m의 기단이 떠받치고 있다. 비 앞면엔 작사가, 작곡가, 가수이름과 가사 1~2절이 적혀있고 뒷면엔 건립취지문, 노래 유래, 건립자 이름이 새겨져있다. 국·내외관광객 누구나 들을 수 있게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된 음악시스템과 포토존이 있다. 또 다른 노래비는 2000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초도항 방파제에 세워졌다. 위엔 해녀상이, 아래엔 가사가 새겨져있다. 화진포해수욕장 북쪽 500m 떨어진 곳으로 비의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온다. ▲ 1964년 김천숙, 이정자, 김명자(왼쪽부터) 이시스터즈 결성 노래를 부른 이시스터즈는 스토리가 많은 여성노래그룹이다. 그 중심엔 김희선 씨(1941년생, 원래 본명 김천자, 옛 연예명 김명자)가 있다. 그는 1964년 언니 김천숙(76, 본명 김명숙)씨, 이정자(73)씨와 3인조 트리오 이시스터즈를 만들어 최고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1968년 펄시스터즈 등장 전까지 국내 걸그룹계 선두로 유명했다. 이시스터즈 전신은 듀엣 허니 김스다. 3살 터울의 자매 김천숙, 김천자(김희선으로 개명)는 학창시절부터 노래자랑대회를 휩쓸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이시스터즈가 결성된 건 충북 영동출신으로 수도여고를 졸업한 김 씨가 신문에 난 ‘미8군 전속가수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 1962년 가수로 데뷔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철도청에 다니던 언니 김천숙, 그의 직장후배 이정자 씨가 합류했다. 둘은 철도청에 일하면서 ‘철도의 날’ 등 교통부 행사 때마다 무대에 섰을 만큼 노래실력을 인정받았다. 함흥 태생의 이정자 씨 또한 6·25전쟁 중 경찰어린이합창단(단장 정세문)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미8군 쇼 연예인공급업체 화양에 전속되면서 쇼단 어라운드 더 월드를 거쳐 박선길씨가 ‘쇼 오브 쇼’ 단장으로 독립하자 전속가수로 들어가 미8군 장교클럽을 통해 무대에 섰다. 그러던 중 1962년 말 KBS 노래경연 때 예선을 통과한 여성그룹이 결선에 못나오게 됐다. 그 그룹이름도 이시스터즈였다. PD는 응급조치로 노래 잘하고 이름도 같은 이시스터즈를 출연시켜 2등으로 입상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구’ 가수가 되면서 신세기레코드사와 계약, 그해 12월 데뷔곡 ‘워싱톤광장’을 취입했다. 이어 ‘울릉도 트위스트’, ‘서울의 아가씨’, ‘목석같은 사내’, ‘별들에게 물어봐’ 등 많은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군가 ‘여군 미스리’, 197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과 함께 불렸던 ‘좋아졌네’ 등도 그들의 노래다. 이시스터즈는 발랄한 트위스트 곡 중심으로 1960년대의 칙칙함을 몰아냈던 최고인기가수로 꼽혔다. 그런 가운데 이시스터즈에게 고비가 왔다. 1967년 1월 발표한 ‘울릉도 트위스트’를 끝으로 이정자 씨가 솔로로 탈퇴한 것이다. 해체위기를 맞은 이시스터즈는 1965년 KBS 톱싱어대회 때 1등을 한 김상미(본명 김군자)씨를 영입, 제2의 이시스터즈로 거듭났다. 하지만 1971년 마지막 신곡 ‘병아리 데이트’ 취입 때 각자 1남1녀를 둔 이들은 1973년 ‘이시스터즈 10년 결산 독집음반’을 끝으로 활동을 접었다. 이후 맏언니 김천숙 씨는 새 멤버 정숙자 씨와 듀엣을 이뤄 워커힐무대 등에서 두엣 명맥을 잇다가 자녀교육을 위해 1981년 미국으로 떠났다. 또 김희선 씨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1966년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김씨는 1973년 3살 된 딸 유선이(1970년 4월 12일생)가 뇌성마비를 앓아 가수활동을 접고 치료에 전념했다. 그는 1989년 미국 버지니아로 이민 가있던 언니(김천숙씨)에게 딸을 부탁했다. 결과 딸은 2004년 조지메이슨대학에서 의사소통 보조기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결실을 맺었다. 언어장애가 있는 한국인이 미국서 처음 받은 재활공학분야 박사학위로 조지메이슨대 보조공학 교수가 됐고 1995년엔 유학 중 만난 장석화 씨와 결혼도 했다. 김 씨는 딸을 뒷바라지하면서 동화구연가로 변신했다. 1976년 색동회 주최 전국어머니동화구연대회에서 입상한 그는 이듬해 동화구연회 창립을 이끌었다. 색동회 이사로 활동 중인 그는 장애기관, 소아병동, 고아원을 찾아 동화 읽어주기 봉사를 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이시스터즈멤버들은 연예인집안이다. 인기그룹 히화이브(He5)의 드러머였던 김용호 씨가 김천숙-명자 자매의 남동생, 가수 현미 씨가 김상미 씨 올케다. 외국공연 위주로 활동하며 안젤라현이라고도 불리던 가수 현란(본명 이명자)은 이정자 씨 친동생이다. 김천숙 씨 남편 장준기 씨 외조도 한몫했다. KBS 전속악단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이들 노래에 대한 모니터는 물론 ‘워싱턴 광장’ 1절 가사를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화진포해수욕장, 너비 70여m 모래사장 1.7km ▲ 화진포의 성 6·25전쟁 전엔 북녘 땅이었으나 이후엔 남녘땅이 된 화진포는 고성8경 중 3경이다. 화진포는 수천 년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이뤄진 석호(바다 일부가 퇴적물에 의해 막히면서 생긴 호수)로 잉어 등 민물고기는 물론 도미, 전어와 같은 바닷고기들이 많아 낚시꾼들이 몰린다. 봄이면 고성군 꽃群花인 해당화가 호수주변 드라이브코스를 따라 군락을 이루며 붉게 피어 장관이다. 해수욕장 해변의 오른쪽 섬 금구도는 2000년 가을 KBS-TV의 인기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또 화진포 주변엔 건봉사, 왕곡민속마을, 통일전망대 등도 있어 길손들이 끊이지 않는다. [왕성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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