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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명시감상] "절명시" (絶命詩 1910) - 매천 황현 (黃玹)

잠용(潛蓉) 2019. 2. 26. 09:40


黃玹 (1856.1.18 ~ 1910.9.7)



"절명시" (絶命詩 1910)  

매천 황현 (梅泉 黃玹 1856.1.18 ~ 1910.9.7)


亂離湲到 白頭年 (난리원도 백두년)
幾合損生却未然 (기합연생 각미연)
今日眞成 無可奈 (금일진성 무가내)
輝輝風燭 照蒼天 (휘휘풍촉 조창천)

수많은 亂離 겪으며 흰머리가 되도록
몇 번이나 죽으려다 그러지 못하옜네
나라 잃은 오늘 나의 죽음 어쩔 수 없구나
밝고밝은 촛불만 저 푸른 하늘에 빛나리


妖氛晻翳 帝星移 (요분암예 제성이)
九闕沉沉 晝漏遲 (구궐침침 주루지)
詔勅從今 無復有 (조칙종금 무부유)
琳琅一紙 淚千絲 (임랑일지 누천사)

妖妄한 기운 피해서 임금자리 옮기니
沈沈해진 九重宮闕 낮 시간도 더디구나
이제는 임금님 詔勅도 다시 나오지 못하리니
玉 같은 종이 한 장에 千 갈래 눈물 흘리네


鳥獸哀鳴 海岳嚬 (조수애명 해악빈)
槿花世界 已沉淪 (근화세계 이침윤)
秋鐙掩卷 懷千古 (추등엄권 회천고)
難作人間 識字人 (난작인간 식자인)

새 짐승도 슬피 울고 海岳도 찡그리니
無窮花 피는 이 江山 진흙 속에 빠졌구나
鐙盞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일 되새기니
글 배운 선비로서 사람구실 어렵구나


曾無支廈 半椽功 (증무지하 반연공)
只是成仁 不是忠 (지시성인 불시충)
止竟僅能 追尹穀 (지경근능 추윤곡)
當時愧不 躡陳東 (당시괴불 섭진동)

일찍이 나라 위해 반 가지 功도 없었으니
내 죽음이 仁은 되어도 忠은 되지 못하네
末年에 겨우 尹穀을 따르려 했을 뿐
當時의 陳東을 쫓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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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도 (湲到) : 물이 흘러 ~~에 이르다

* 연생 (捐生) : 목숨을 버림
각미연 (却未然) :그러지 못하고 물리치다

* 요분 (妖氛) :요사한 기운

* 암예(唵翳) : 임금님의 일산 (日傘)을 덮다

제성 (帝星) : 황제의 별.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는 별로,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명(明)나라 남지(藍智)가

마애비(磨崖碑)라는 시를 지어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피해 몽진(蒙塵)하는 상황을 읊으면서,

“이때 요상한 기운이 당나라 기업(基業)에 침범하여,

황제의 별이 한낮에 서남쪽으로 옮겨 갔네.

[是時妖孼侵唐基 帝星白日西南移]”라고 하였다. 

* 해악 (海岳) : 바다와 산. 산천
 * 성인 (成仁) :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지사와 인인은 살기 위하여 인을 해친 경우는 없고,

목숨을 버려 인을 이룬 경우는 있다.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殺身以成仁]” 라고 하였다. 

* 지하 (支廈) : 행랑채 기둥, 대궐(大闕)의 서까래
 *  윤곡 (尹穀) : 송(宋)나라 담주(潭州)현 장사(長沙) 사람으로,

평소 강직하고 염정(廉正)한 것으로 명성이 있었다.

몽고(蒙古) 군대가 쳐들어와서 담성성(潭州城)을 포위하였을 때

막료로서 성을 방어하는 데 참여하여,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처자(妻子)에게

뒤따라 죽을 것을 명한 뒤,

집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 단정히 앉아 자결하였다.

<宋史 卷450尹穀列傳> 
 *  진동 (陳東) : 중국 북송(北宋) 흠종(欽宗) 연간의

태학생(太學生)으로, 자는 소양(少陽)이다.

당시 채경(蔡京) 등 6인이 사마광(司馬光) 등

구법당(舊法黨)을 철저하게 몰아내고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다시 시행하는 등 전횡을 일삼자,

육적(六賊)으로 지목하여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 금(金)나라 군대가 침입해 왔을 때

대항을 주장했던 이강(李綱)이 파직되자,

태학생들을 이끌고 상소를 올려 그의 복직을 청하기도 하였다.

<宋史 卷455 陳東列傳>

<출처: 광산김씨 종친회>



梅泉 黃玹 (양력 1856.1.18 ~ 1910.9.7)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운경(雲卿)이며 호가 매천(梅泉)이다. 일찌기 세종 때 명재상(宰相)을 지낸 황희(黃喜,1363~1452)의 후손이다. 사학자 황의돈(黃義敦)은 그의 7촌 재종질(再從姪)이다. 전라남도 광양(光陽) 출신으로 구례(求禮)에서 성장했다. 1892년 봄 운현궁(雲峴宮)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황현은 명성황후(明成皇后)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였다는 것이다. 29세 때 진사시에 이어 34세에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지내다가, 1910년 한일병합조약(韓日合倂條約) 체결을 통탄하며 조약 체결 16일 후 구례군 자택에서 음독 자살했다.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 絶命詩>는 장지연(張志淵)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실렸고, 이는 다시 경남일보 필화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위키백과> 


▲ 絶命詩 原文 (梅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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