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蝙蝠" (편복, 박쥐) 독립운동가 이육사 (李陸史) 지음 (2018년 문화재 둥록) <해남 박쥐동굴 ⓒ 양종운> 光明을 背反한 아득한 洞窟에서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자집 庫間으로 도망했고 가엾은 박쥐여 ! 孤獨한 幽靈이여 ! 鸚鵡와 함께 종알대여 보지도 못하고 서러운 呪文일사 못 외일 苦悶의 이빨을 갈며 제 情熱에 못 이겨 타서 죽은 不死鳥는 아닐 망정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肝을 노려도 봤을 運命의 祭壇에 가늘게 타는 香불마자 꺼졌거든 (본문 중 漢字는 이해를 돕기 위해 陸史의 肉筆原稿와 대조해서 潛蓉이 옮겼음) (2018년 문화재로 등록된 李陸史의 '편복' 육필원고) * 편복 (蝙蝠) : 박쥐의 한자 말, 일제 강점기 대명천지에 햇빛을 보지 못하고 동굴 속에 숨어서 서식하는 우리 민족의 불쌍한 처지를 저 편복에 비유하여 울분을 토한 시다.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 문화재 등록 예고 ▲ 이육사 선생의 시 중 가장 중량감 있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편복'.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3·1절 앞 6건 예고… 식민지 현실 절망감 노래해 "가엾은 박쥐여! 멸망하는 겨레여!" 일제강점기 해방을 위해 시를 쓴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의 친필원고 '편복'(蝙蝠)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편복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댄 작품이다. 이육사 선생이 편복을 쓴 시기는 1939~194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에는 일제의 사전 검열에 걸려 발표되지 못했다. 편복이 대중에 발표되고 알려진 것은 해방 후인 1956년 '육사시집'에 실린 뒤였다. 편복은 반어적 현실과 당위적 가치 사이의 대조를 통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영탄조로 노래하고 있다. 어두운 동굴, 썩은 들보, 무너진 성채, 어둠의 왕자, 고독한 유령 박쥐 등의 표현은 일제 식민지 통치로 국권과 터전을 상실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우리 민족의 비탄함을 전하고 있다. 이육사 선생의 시 중 가장 중량감 있고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편복의 육필 원고는 유족들이 소장해오다 안동 이육사문학관에 기증했다.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 선생은 일제에 의해 17번 체포'감금'투옥을 당하고 이름조차 그의 수감번호 264인 육사로 바꾸며 온몸으로 투쟁한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다. 이육사 선생이 쓴 '광야' '절정' '청포도' 등의 시는 한국 현대 시 문학사에 높은 문학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조영일 이육사문학관 관장은 "이육사 선생은 40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가셨지만, 조국과 민족을 향한 빛나는 정신을 시와 독립운동으로 이 땅에 심으셨다"며 "우리는 위대한 선인을 앞으로도 기리며 그 뜻을 받들어야 한다. 선생의 육필 원고가 문화재로 등록되는 것도 그 과정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27일 3'1절을 앞두고 이육사 시인 친필 원고 편복을 포함해 윤동주 시인의 친필 원고, 장효근 일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국제연맹 제출 조일관계사료집과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등 6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등록 예고된 문화재들은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안동 김영진 기자 solive@msnet.co.kr]
[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3월 23일(金)
공산(空山)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새 흘리는 피는 그래도 사람의 심금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 중국 베이징에서 옥사(獄死)한 시인 이육사(1904∼1944)의 시 ‘편복(편복)’ 일부다. ‘편복’은 ‘박쥐’를 일컫는 한자어다. 앞·뒷다리 사이에 비막(飛膜)이 생겨, 포유류 중에 유일하게 새처럼 날 수 있는 박쥐는 동·서양의 상징이 서로 정반대다. 동양에선 복(福)·경사·행운 등을, 서양에선 마녀·악마·액운 등을 나타낸다. 이육사는 그런 의미와는 달리, 일제강점기의 조국을 어두운 동굴에 사는 박쥐에 빗댄 것이다. ‘편복’은 검열에 걸려 그의 생전에 발표되지 못했고, 1946년 간행된 유고(遺稿)시집에 담겼다. 본명 원록을 활로 개명했던 그는 국내와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17차례나 투옥됐다. 육사(陸史)를 아호(雅號)로, 이육사를 필명으로 내세운 것도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때의 수인(囚人)번호 264를 차용(借用)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세계적 작가 루쉰(魯迅) 등과 교유하며 문학적 자극을 받은 그가 처음 발표한 시는 ‘말’(1930년)이지만, 시단에 정식 데뷔한 작품은 ‘황혼’(1935년)이다.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 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하고 시작한다. 그 후 그의 시는 상징과 은유를 통해 담아낸 고난 속의 민족 현실, 미래지향적 독립 의지, 웅혼(雄渾)한 기개 등이 두드러진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하여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하는 ‘광야’,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하는 ‘절정’도,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하는 ‘청포도’ 등 대표작 모두 마찬가지다. 문화재청은 그의 고향인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에 유족이 기증했던 ‘편복’ 친필 원고의 문화재 지정을 지난 2월 27일 예고했다. 오는 26일로 예고 기간이 끝나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로 확정된다. 그 원고를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문화계 안팎에서 맑고 올곧은 그의 정신을 본받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도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Bavarian State Orchestra 연주 (Syowa Women's Univ. HITOMI Memorial Hall, Toky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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