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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눈물의 노리개" - 이화자 노래

잠용(潛蓉) 2019. 6. 4. 20:42




"눈물의 노리개" (1940)
작사 趙鳴岩/ 작곡 金海松/ 노래 李花子
(1940년 12월 오케 레코드사 발매)


< 1 >
아~ 그리운 님이여

모두가 誤解입니다


술잔에 넘친 술이

눈물이 아니라면
이불을 쓰고 누워

우는 나를 보고 가소


웃어야 살아가는

恨 많은 路柳春花를

님이여 님이여

 왜 몰라 주시옵니까?

 

< 2 >
아~ 그리운 님이여

모두가 눈물입니다


愁心歌 내 曲調에

가슴이 千斤萬斤
거문고 부여 안고

우는 날 보고 가소


값 없는 사람에게

사랑도 전하오리까?
님이여 님이여

恨 많아 못 살겠어요

 

< 3 >
아~그리운 님이여

모두가 春夢입니다


房門이 부서져라

밀치고 떠날바엔
노리개 장난이란

비웃지 말고라도


하룻밤 꿈일망정

사랑은 사랑이였소
님이여 님이여

모두가 웃음입니까?

 




이화자에 얽힌 야담 한가지
서서 이야기 하였지만, 이화자는 그녀 자신이 기생 (기생이라기 보다는 술집 작부가 더 정확하겠지.) 출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노래 중에는 유독 기생이라던지 뭐 그런 화류계 여인들의 애환이나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애절한 노래들이 많은데, 앞서서 틀었던 화류춘몽이나 화류애정, 화륜선아 가거라, 지금 트는 눈물의 노리개 등이 뭐 그런 노래 들이다. 그렇지만 그녀 자신은 정작 이런 노래들을 부르기 싫어했었다는데, 화류춘몽 같은 곡의 경우에도 사실 안 부른다 안 부른다 뻐튕기다가, 그녀를 키워준 은사인 김용환 선생이 권하고서야 겨우겨우 불렀었던 곡이지.


참고로 당시에 이화자에게 노래를 새로 한 곡 부르게 하려면 그 당시 음반업계 관련자 들이나 작곡가, 작사가 등은 애를 상당히 많이 먹었었다고 한다.  워낙에 콧대가 높은게 아니어서 ㅎㅎㅎ,  그런데 그럴만도 했던게, 그 당시 그녀의 인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었지.  당대에 제아무리 권력가이며 재벌이라도 이화자를 초청하여 술 한잔 마시려면 예약을 해놓고도 며칠씩 기다려야 하고, 거기다가 상상도 못할 엄청난 액수의 금액을 주고 나서야, 그녀와 술도 마시고 노래도 들을 수가 있었을 정도니 ㅎㅎㅎ,


어쨋건 뭐 한 번은 그녀가, "왜 나는 이러한 노래만 부르게 하느냐?"고 엄청 화를 내면서 작사가에게 따진 적이 있었다는데 그럴 때마다 작사가들은 "당신이 그런 노래를 잘 소화하기 때문에 그런 작품을 쓰게 됐다." 라고 했다는데, 그럴 때면 그녀는 또다시 "왜 하필이면 화류계 여인들이 모델이냐?" 면서 다시 따졌다는데, 사실 작사가들은 그녀의 과거사를 잘 알기 때문에 그녀의 지난 세월을 노래가사로서 은근히 살짝 비추어 그녀의 가슴에 맺힌 한을 간접적으로 살짝 건드려서 노래를 부르게 유도해서 노래 가사를 쓰지 않았나 싶다. 뭐, 어쨋건, 그렇게 이런 노래를 불러서, 부와 명성을 얻었으면 됬지. 뭘 더 바랬었는지 ㅎㅎㅎ,


내가 항상 하는 말이 노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화자라는 여가수는 그 감정을 가장 잘 살리는 가수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아쉬운게, 그렇게 좋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술,담배,아편,남자 등 난잡하고도 문란했던 사생활로 인해 오래 롱런하지 못했고, 35세의 꽃 다운 (?) 한참 활동해야 될 나이에 염라대왕 구경을 했다는 건데, 뭐 이화자 그녀 자신으로써도, 또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듣는 팬들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우리나라 가요 역사로써도 굉장히 아쉬운 일이지. <무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