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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추억의 가요] "서울 간 삼돌이" (1960) - 황금심 노래

잠용(潛蓉) 2019. 7. 30. 15:40



"서울 간 삼돌이" (1960)

月見草 작사/ 韓福男 작곡/ 노래 黃琴心

(1960년 라라레코드사 발매)


< 1 >

삼돌이 삼돌이 서울 가서
돈 벌면은 날 다려 간다더니
서울 女子 앞세우고

體面 없이 돌아왔소


일 잘하는 동네 處女

왜 바람을 냈소?
삼돌이는 거짓말
삼돌이는 거짓말쟁이야요~


< 2 >

삼돌이 삼돌이 就職되면
貰房 얻어 정답게 살자더니
서울 女子 옷 사주고

구두 신겨 돌아왔소


어리석은 동네 處女

왜 바람을 냈소?
삼돌이는 거짓말
삼돌이는 거짓말쟁이야요



[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 ⑼]

황금심의 ‘서울 간 삼돌이’
농민신문ㅣ2016-09-02 00:00


가수 황금심


"1. 삼돌이 삼돌이 서울 가서
돈 벌면은 날 다려 간다더니
서울여자 앞세우고 체면 없이 돌아왔소
일 잘하는 동네처녀 왜 바람을 냈소?
삼돌이는 거짓말
삼돌이는 거짓말쟁이야요


2. 삼돌이 삼돌이 취직되면
셋방 얻어 정답게 살자더니
서울여자 옷 사주고 구두 신겨 돌아왔소
어리석은 동네처녀 왜 바람을 냈소?
삼돌이는 거짓말
삼돌이는 거짓말쟁이야요"


- 황금심의 ‘서울 간 삼돌이’ 전문


예로부터 우리 농촌마을에는 대개 성실하고 근면한 농민들이 평생 논밭을 일구며 묵묵히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삼강오륜(三綱五倫) 덕목에 기초한 삶을 살아가면서 항시 겸양과 상호존중을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단합이 잘 되고 강한 유대감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지요. 이런 미풍양속이 식민지와 분단시대를 통과해오면서 현저히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말이나 영어 나부랭이를 지껄일 줄 아는 부류는 도시로 나가서 화려한 직장을 얻고 입성(옷)과 스타일부터 달라진 모습으로 고향마을에 으스대며 돌아오곤 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그것이 항시 불안한 화젯거리였지요. 또한 술과 풍류에 남달리 빼어난 기질을 자랑삼던 사내들도 어김없이 있었는데, 그들은 마을 앞 주막거리의 술집여자와 바람이 나서 새살림을 차리느라 온통 난리법석을 피우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흔히 풍류랑의 선호영역은 술·여자·춤바람·화투 등의 주색잡기와 도박·투기 따위였을 것입니다. 한탕주의로 기회를 엿보다가 요행을 만나게 되면 온통 고급입성에 고급승용차, 여기다 도시의 빤지르르한 여자를 반드시 옆에 끼고 나타났습니다. 이런 얼빠진 잡놈의 출현에 마을은 온통 벌집을 쑤신 듯 각종 수상한 소문으로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은 급격히 늘어났고, 이는 농촌붕괴와 농민의 분해를 촉진시켰습니다.


도시 중심의 산업화와 수출우선정책은 오로지 농민과 농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서 추진되었지요. 농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살길을 찾아 도시로 모여든 농민은 거의 날품팔이 노동자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졸부(猝富)가 되어서 거드름 피우며 돌아오는 꼴불견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서울 간 삼돌이(월견초 작사, 한복남 작곡, 황금심 노래)’란 가요작품이 발표되어 세간의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는데요.


작사가 월견초(본명 서정권)가 이 노래의 가사를 실감나게 엮었습니다. 농촌총각 삼돌이는 같은 마을 처녀와 사랑을 속삭이다가 어느 날 온다간단 말도 없이 서울로 떠나버렸습니다. 상경 직후엔 ‘곧 돈을 벌어 너를 데려가마’라는 편지도 보내오곤 했었는데, 어느 날 턱을 치켜들고 마치 금의환향한 듯 서울여자랑 함께 뽐내며 돌아온 삼돌이의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에 모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는 내용이지요. 당시의 선명한 풍속도를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합니다.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