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고갈 점점 빨라지는데.. 정부-국회, 총선 다가오자 개혁 미뤄
동아일보ㅣ박성민 기자 입력 2019.11.27. 03:01 수정 2019.11.27. 09:51 댓글 911개
21대 국회로 넘긴 국민연금 개편
“국민연금 개편안을 보완해 줄 수 있습니까?”(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
“여야 의원들과 정부가 같이 심도 있는 토론을 해 보고 싶습니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부가 먼저 단일안을 제시해 주셔야지요.”(이 의원)
이달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간 이 의원과 박 장관의 질의문답은 최근 1년 동안 국회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 국민연금 개편 논의의 축소판이다. 정부와 국회 모두 개편 방향을 상대가 결정해주기만을 기대하며 시간만 허비한 것이다. 국민연금제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보험료율(월급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 인상이 불가피한데, 누구도 ‘더 내고 덜 받는’ 인기 없는 연금개편을 위해 총대를 메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27, 28일 이번 정기국회의 마지막 법안심사소위를 열지만 국민연금 개편안은 이번에도 심사 대상이 아니다.
○ 국회와 정부 서로 공 떠넘기기
국민연금 개편 과제 중 보험료율 인상은 어느 정부에서나 쉽지 않은 과제였다. 1998년 6%에서 9%로 오른 보험료율은 20년 넘게 그대로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5.9%로 올리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6년 보험료율 3.9% 인상안도 국회 반대에 막혔다. 이번 20대 국회도 국민연금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없었다. 지난해 12월 정부에서 4가지 개편안을 넘겨받았지만 단일안이 아니라며 논의를 거부했다. 올 8월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특위도 10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3가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놨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올리는 노후 소득 강화 방안이 다수안으로 제시됐다. 이는 그동안 보험료율 인상에 줄곧 반대했던 노동계가 처음으로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다. 국회가 다수안을 바탕으로 국민연금 개편을 논의할 수 있었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다.
국민연금 개편 지연의 원인을 정부의 미온적 자세에서 찾는 전문가도 많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국민연금제도 개선안을 다시 짜도록 지시했다. 보험료율을 12∼15%로 올리도록 한 개선안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은 높이되 보험료는 최대한 덜 올리라는 주문인데, 국민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안을 만들어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인기가 없는 정책이다 보니 경사노위와 국회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 개편 늦어지는 피해는 미래세대에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가 전체 국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42.9%에서 2060년 27.3%까지 떨어진다. 반면 수급자 비중은 9.4%에서 37.8%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가입자 100명이 부담할 연금수급자는 올해 18명에서 2060년 121.7명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올 8월말 현재 708조 원인 적립금의 고갈 시점도 정부 추산(2057년)보다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0.98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과 낮아진 기금운용 수익률을 고려할 때 2054년이면 재정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개혁이 미뤄지면 가입자들은 2057년 소득의 약 25%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할 것으로 본다.
결국 연금개편의 성공 여부는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지가 결정한다. 지난해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 의견(45.9%)은 찬성(23.6%)의 약 2배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회에서 연금개편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년 총선 이후 21대 국회가 구성되면 특별위원회를 꾸려 일정 시기 안에 연금 개편을 마무리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연금 개혁은 30년, 100년의 장기 계획을 갖고 국민을 끝없이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여야가 4년 임기 또는 일정 기간 안에 개편안을 만든다는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min@donga.com / 부산=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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