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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고려판 한류’ 열풍

잠용(潛蓉) 2019. 12. 18. 07:18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고려판 한류’ 열풍
경향신문ㅣ2011.08.10 21:51 수정 : 2011.08.25 11:06


▲'고려판 한류’ 열풍


“공녀로 끌려갈 때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목을 매 자살하는 어린 소녀들도 있습니다.”
원나라의 간섭이 극에 달했던 1335년. 고려 문신 이곡(李穀·1298~1351)이 상소문을 올린다. 원나라가 강제로 뽑아간 공녀(貢女)들의 비참한 신세를 대변한 것이다. 기자오(奇子傲)의 막내딸 기씨도 공녀로 끌려갔다(1333년). 한 떨기 꽃다운 14살 때였다. 소녀의 첫 직책은 황제인 순제(재위 1333~1372)의 차와 음료를 주관하는 궁녀였다. 예쁘고 영민했던 소녀는 첫눈에 황제의 넋을 빼앗는다. 


“기황후는 은행나무 빛 얼굴에 복숭아 같은 두 뺨, 버들가지처럼 한들한들한 허리로 궁중을 하늘하늘 걸었다.”(원궁사·元宮詞) 기씨가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황후의 질투가 하늘을 찔렀다. 채찍으로 때리고, 심지어는 인두로 지지기까지 했다. 기씨는 모든 수모를 견뎌내고, 마침내 대원제국의 정식 황후가 됐다(1365년). 이 드라마 같은 ‘출세기’는 대제국 원나라를 충격 속에 빠뜨렸다. 고려판 ‘한류’ 열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연경(燕京)의 고관대작이라면 고려 여인을 얻어야 명가(名家)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려 여인은 상냥하고 애교가 넘치며 남편을 잘 섬겼다.”(경신외사·庚申外史) “가장 유행하는 옷은 고려 여인이 황제 앞에서 입는 고려옷이라네. 궁중여인들이 다투어 고려 여인의 옷을 구경하러 가네.”(원궁사)


‘고려여악(高麗女樂)’도 인기를 끌었다. 기황후의 영향 아래 특출한 외모와 재주를 지닌 여성들을 뽑아 가무를 배우게 한 것이다. “보초 서는 병사들은 고려 언어를 배우네. 어깨동무하며 나지막이 노래 부르니 우물가에 배가 익어가네(衛兵學得高麗語 連臂低歌井즉梨).”(연하곡서·輦下曲序) 고려 대중가요가 원나라 군인들 사이에서까지 유행한 것이다. 마치 ‘소녀시대’가 전 세계에 K팝 열풍을 이끌 듯이…. 아닌 게 아니라 K팝의 K가 코리아, 즉 고려를 뜻하는 말이 아닌가. 경기 연천읍 상리에는 기황후의 것으로 알려진 무덤(황후총·皇后塚)이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등은 “연천현 동북쪽에 기황후 묘가 있고, 지금은 석물(石物)이 있다”고 기록했다. 1990년대 중반 이우형 국방문화재연구원 팀장이 다 쓰러져 가는 무덤가에서 석물 2기(사진)를 수습했다. 이곳에서 고려판 ‘한류’와 ‘K팝 열풍’의 선구자인 기황후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