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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못 말리는 동이족의 술 사랑

잠용(潛蓉) 2019. 12. 18. 07:28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못 말리는 동이족의 술 사랑

경향신문ㅣ2011.08.24 21:22 수정 : 2011.08.25 11:06


▲ 못말리는 동이족의 술사랑


“이건 술이야.”
1974년 초겨울.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핑산(平山). 전국시대 중산국(中山國·기원전 414~296)의 왕릉터에서 흥미로운 유물이 쏟아졌다. 곡주(穀酒)가 담긴, 2300년 전의 술병(사진)이었다. 중산국의 술은 전설로 남을 만큼 유명하다. 중산국의 술인 ‘천일춘(千日春)’은 천하의 명주였다. 중산국에 적희(狄希)라는 술의 명인이 있었다. 어느 날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자가 찾아와 적희의 술을 마셨다. 적희가 “숙성이 덜 됐다”고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유현석은 술에 취해 그만 죽고 말았다. 3년 뒤 적희가 일러주었다.   

“이제 (유현석이) 깨어날 때가 됐네요.”
가족이 반신반의하며 무덤을 파서 관을 열었다. 적희의 말대로 유현석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그런데 여전히 3년 된 술냄새가 진동했다. 무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술냄새에 취해 쓰러져 3개월간 일어나지 못했다. 상나라(기원전 1600~1046)의 ‘술사랑’도 유난스럽다. 무덤을 발굴해보면 술병 등이 즐비하다. 생전에 얼마나 술을 사랑했으면, 죽어서도 그 좋아하는 술을 마시라고 무덤에 부장해 놓았을까. “술을 100잔이나 권했다”는 내용을 담은 갑골문도 있다. 상나라 사람들은 엄청난 ‘술고래’였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술 때문에’ 멸망했다고 했을까. <상서(尙書)> ‘주고(周誥)’는 “상나라 백성의 술냄새가 하늘에까지 진동해서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나라가 멸망했다”고 기록했다. <사기> ‘은본기’는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주지육림(酒池肉林)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혀를 찼다. 그런데 상나라나 중산국이나 모두 동이족의 나라다. 상나라의 시조인 설(楔)은 동이족의 일파이다. 중산국은 춘추시대 때 ‘선우(鮮于)’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여기서 선우의 ‘선(鮮)’은 조선의 ‘선(鮮)’을 딴 것이다.
     
상나라와 중산국의 ‘술사랑’은 부여(기원전 3세기~서기 494)와 마한으로 이어진다. 부여는 고구려와 백제의 선조다. 부여는 ‘상의 역법을 사용하고, 상의 정월에 제사를 지냈으며, 상의 색깔인 흰색을 숭상’했다(<삼국지> ‘위서·동이전’ 등). <삼국지>에 따르면 부여 사람들은 상나라 정월에 제사를 지낸 뒤 연일 음식과 가무를 즐겼다. 마한인들도 5월 파종 후에 굿을 올린 뒤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정말 못말리는 동이족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이족의 술사랑은 너무 지나친 것이었을까. 술 때문에 나라가 멸망할 정도로?


<이기환/ 문화·체육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