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20전 8승 5패
경향신문ㅣ2011.10.05 21:03
▲ 20전 8승 5패
고구려와 백제는 동족(부여계)이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상잔(相殘)을 벌였다. 369년부터 시작된 전쟁은 한 편
의 대하드라마 같다. 배신과 복수, 간계와 반간계가 난무한….
전적은 고구려 기준으로 20전8승5패(7전은 승패불명). 초반 승자는 백제였다. 승리의 주역은 ‘배신의 아이콘’
사기(斯紀)였다. 사기는 백제 시절, 왕의 말발굽을 다치게 한 뒤 고구려로 망명했다. 371년 고구려의 남침 소
식에 백제는 불안에 떨었다. 그때 사기가 백제 진영으로 잠입한다.
“고구려 군사의 수가 많다지만 새빨간 거짓입니다.”(<삼국사기> ‘근구수왕조’)
사기의 말을 듣고 백제는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마침내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인다. 하지
만 눈에는 눈. 396년 이번에는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쳐 58성 700촌을 빼앗는다. 백제 아신왕은 광개토대왕 앞
에 무릎을 꿇고 맹세한다. “영원한 노객(奴客)이 되겠노라”고….(‘광개토대왕 비문’)
고구려는 끝장을 보려 한다. 장수왕이 간첩을 모집한다. 승려 도림(道林)이 “내가 가겠다”고 자청한다. 백제로
잠입한 도림은 바둑을 좋아하는 개로왕을 만났다.
“한 수 가르쳐드리겠나이다.”
도림은 국수(國手)였다. 개로왕이 바둑에 넋을 잃었다. 도림이 세 치 혀를 놀렸다.
“백제는 천혜의 요새입니다. 한데 성곽과 궁실이 엉망입니다. 선왕의 해골이 흩어져 있고, 민가는 강물에 자주
허물어집니다.”
개로왕은 백성들을 징발했다. 대대적인 궁실 및 성벽 수축에 나섰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게(華而不侈) 하라”는 창업주(온조)의 유지를 깬 것이었다. 창고는 텅 비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도림의 계책이 통하자 장수왕은 백제 공략에 나선다. 원정군은 걸루(桀婁)와 만년(萬年)이 맡
았다. 둘다 백제에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망명한 배신자들이었다. 개로왕은 이들의 손에 최후를 맞는다.
“걸루·만년이 개로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한 뒤 세 번 침을 뱉었다(下馬拜已 向王面三唾之). 그런 뒤 아차
산(사진) 아래에서 죽였다.”(<삼국사기> ‘개로왕조’)
백제·고구려의 106년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마무리된다(475년). 그러나 동족 간 반목과 갈등은 1500년이 훨
씬 지난 지금 재연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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