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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전국시대 ‘풍자개그’

잠용(潛蓉) 2019. 12. 18. 09:36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전국시대 ‘풍자개그’

경향신문ㅣ2011.11.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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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대 ‘풍자개그’


전국시대 초나라에 우맹(優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골계가(滑稽家), 지금으로 치면 개그맨이었다.

어느 날 재상 손숙오(孫叔敖)가 죽은 뒤 집안이 풍비박산됐다. 우맹이 나섰다. 그는 손숙오의 행동과 말투를

흉내 냈다. 성대모사의 달인, ‘인간복사기’였다. 초 장왕도 “손숙오가 재림했다”며 당장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우맹은 ‘아내의 말’이라면서 거절했다.


“아내가 ‘초나라 재상은 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손숙오라는 분을 보라고…. 재상이 죽으니 그 자손들

은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도 없어지지 않냐고…. 그럴 바엔 자살하는 것이 났다고….”.
장왕은 무릎을 치고는 손숙오의 자식에게 400호의 봉지를 내려줬다. 제나라 위왕은 초나라 대군이 쳐들어오자

순우곤(淳于곤)을 불렀다. “황금 100근, 사두마차 10대를 줄 테니 조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라”면서…. 순우곤

이 하늘을 우러러 웃었다. 왕이 “왜 웃는 거냐”고 묻자 대답했다.


“어떤 농사꾼이 겨우 ‘돼지 발 하나와 술 한 잔’을 들고는 이렇게 기도하더군요. ‘광주리가 넘치고 수레가 가득

차게 오곡이 풍성하게 해주소서.’ 말이 됩니까. 하도 가소로워 웃는 겁니다.”

그의 말을 알아차린 왕은 황금 1000근, 사두마차 100대 등으로 예물을 늘렸다. 그러자 조나라는 10만 대군과

전차 1000대를 보냈다. 둘은 <사기> ‘골계열전’에 기록된 대표적인 골계가들이다. 키도, 외모가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해학과 반어법, 풍자가 뛰어났다. 폭군이라도 골계가의 세 치 혀에 껄껄 웃으면서 잘못을 뉘우쳤으니

까. ‘개그맨 열전’을 역사서에 담은 사마천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분명하게 까닭을 밝혔다.


“천도는 넓고 넓다. 은미한 말 속에 담긴 맞는 이치가 얽힌 걸 풀 수 있다(天道恢恢談言微中亦可以解紛).”

1974년 전국시대 중산국 왕릉에서 흥미로운 유물이 발견됐다. 창우(倡優·개그맨)의 공연모습을 담은 철제상(

사진)이다. 요즘 ‘사마귀 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풍자개그가 유행하고 있다. 2000년 전에는 군주의 면

전에서 풍자개그를 날렸는데 요즘엔 TV를 통한 풍자조차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한다. 그나저나 최효종이나

김원효 같은 개그맨은 ‘애정남’의 말처럼 참 ‘애매한 시대’에 타고났다.      
“애매합니다~이. 2000년 전 태어났다면 역사서에 이름 석자 올라갔을 텐데 말입니다~이.”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