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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생태·건강

[산천어 축제] 산천어에게는 '죽음'의 축제… "나도 살고 싶어요"

잠용(潛蓉) 2020. 2. 2. 14:01

산천어 '죽음'의 축제
한겨레ㅣ2020.02.02. 10:18 댓글 3760개



▲ 물고기를 가장 잔인하게 죽이는 방식이 공기 중에 그냥 놔두는 것이다. 아가미의 새엽이 쪼그라들면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는다.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에서 잡힌 뒤 빙판 위에 놓인 산천어.


[한겨레21] 매년 80만 마리가 인간의 재미를 위해 희생
우리와 전혀 다른 감각기관을 가진 동물의 정신세계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침팬지라면 얼추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지만, 물고기의 무표정한 표정을 봐서는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안 된다. 그래서 태곳적부터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동물에 한해서만 유대를 쌓아왔다. 그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반려자로 삼았으며, 때로는 도살장 앞 도로를 점거하고, 동물실험실에 쳐들어가 동물의 권리를 방어했다. 그러나 물고기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천에 쏟아붓기 전 닷새간 굶기고

그런데 꽁꽁 언 빙판에 금이 가듯 균열이 생겼다.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내려온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모여든다는 강원도 화천이다. 매년 이맘때 화천읍에서는 ‘산천어축제’가 열린다. 화천천은 얼음 구멍에 낚싯줄을 던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된다. 3주 동안 180만 명이 방문하고, 산천어 80만 마리가 걸려 나온다. 2003년 시작된 이 축제는 지방자치단체 관광산업의 모범이자, 국내 최대 축제로 성장했다. 사실 이 축제가 성공한 비결은 도심에 있는 ‘실내 낚시터’를 과감히 ‘실외 낚시터’로 이전한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산천어는 야생이 아니다. 야생 산천어라면, 영동 산간에서 살다 오호츠크해까지 긴 여행을 떠났다가 죽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산천어는 양식장 물고기다. 전국 양식장에서 인공수정해 만든 치어를 1년여 키워 축제장의 얼음 밑으로 쏟아붓는다. 그러다보니 양식장에서 일어나는 동물복지 문제를 고스란히 노출한다. 화천천에 투입되기 닷새 전부터 물고기를 굶긴다. 물고기를 낚았는데, 내장에서 지저분한 게 나오면 안 되니까. 수송은 물고기에게 큰 스트레스인데,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죽는다. 여기서 살아남은 산천어들이 양육장에서 대기했다가 미끼가 모빌처럼 흔들리는 빙판 밑 수중 세계로 들어간다. 역설적이지만, 시멘트 수조에서 커온 1년여의 삶 끝에 그들이 처음 맛보는 자유다.


5년 전, 처음 산천어축제에 갔을 때, 축제장은 컨베이어벨트가 깔린 공항처럼 움직였다. 사전에 돈을 내고 예약한다. 사람들은 입구 심사대에서 검색받고, 빙판 구멍 옆에 자리잡은 뒤 산천어를 잡는다. 최대 세 마리까지 잡을 수 있다. 잡은 산천어는 화로로 가져가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굽는다. 15분이면 생선구이가 되어 나오고, 이를 먹고 나간다. 물고기 처지에서도 경로가 정해져 있다. 매일 시간대별로 수송 트럭이 화천읍 인근 양육장에서 산천어를 가져와 빙판 밑으로 투입한다. 산천어는 헤엄치다가 미끼를 물고, 그날 안에 생선구이가 된다.


물고기를 가장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은 그냥 놔두는 것이다. 물고기의 아가미는 낮은 농도의 산소를 빨아들이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공기 중에 노출된 아가미의 새엽은 쪼그라들어 산소를 빨아들일 수 없다. 산천어는 표정이 없지만, 극심한 호흡곤란으로, 아주 천천히 죽어간다. 긴 고통의 시간이 문제의 핵심이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동선으로 봤을 때, 산천어 처지에선 ‘죽음의 과정’이 축제가 된 것이다. 죽음에 앞서 대기하고(양육장),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며(양육장 물고기가 빙판 아래서 맘껏 헤엄친다), 미끼에 걸려 육지로 나와 호흡곤란을 겪은 뒤(사망), 생선구이 화로에 들어간다(화장).


진통제 맞으면 잠잠, 물고기도 느끼는 고통

물고기도 고통을 느낄까? 표정이 없고 신음을 내지 않기에 우리는 물고기의 고통을 직관적으로 알 수는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물고기의 고통을 연구한다. 대표적 방법이 모르핀을 이용한 실험이다. 일반적으로 물고기에게 통각 수용체가 몰려 있는 곳은 미끼를 무는 안면 부위다. 무지개송어의 안면 부위에 벌독과 식초를 투여한다. 이렇게 하자 무지개송어의 아가미 개폐 횟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스트레스(고통)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으로는 고통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 있다. 과학자는 다시 무지개송어에 진통제인 모르핀을 투여한다. 그러니까 무지개송어가 잠잠해졌다. 진통제 효과를 본다는 건 물고기가 고통을 느낀다는 얘기다.


물고기도 고통을 느낀다는 견해가 학계에서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사회제도는 과학적 결과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나마 노르웨이와 영국이 양식장 물고기의 ‘인도적인 도살’에 관심이 있다. 인도적 도살이란, 확실히 기절시킨 뒤 최대한 빨리 도살하는 것이다. 노르웨이에선 의식 회복 가능성이 있는 이산화탄소 기절법을 금지하고, 전기충격법과 가격법으로 양식장 연어를 도살하도록 했다. 영국에서는 명문화된 법령은 없지만,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가 만든 물고기의 인도적 도살 지침이 현장에서 준용되고 있다.


5개 동물·환경단체가 모인 산천어살리기운동본부는 지난번 축제 때부터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산천어축제를 ‘재미로 하는 살상’을 테마로 내건 ‘가두리 학살’이라고 한다. 올해에는 이 축제가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조항에 저촉된다며, 행사 주체인 화천군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법은 공개 장소에서 동물을 죽이는 행위나, 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보아 처벌하고 있다. 동물보호법은 고통을 느끼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을 보호 대상으로 삼는다. 어류도 척추동물이어서 법 적용 대상이지만, 식용이 목적인 어류는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법적으로 논란이 될 것이다.


가난한 지자체가 손쉽게 돈 버는 길

5년 전 산천어축제를 취재하면서, 이 축제의 ‘창조자’인 정갑철 전 화천군수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군수에 당선된 그는 가난한 시골 지자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때 기획자가 가져온 것 중 하나가 산천어축제였다. “지역은 예산이 없고 자본은 부족하고… 그때 우리 같은 지자체가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게 축제예요. 적은 비용 들여서 많은 관광객이 오게 하는 것. 사실 저희도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지요.”


나는 산천어축제의 문제가 ‘동물의 고통’이라는 윤리적 스펙트럼 속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 시작된 근저에는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이 똬리를 튼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소와 돼지를 기를 수 없는 무산자들이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게 개농장이다. 법적 규제에 비켜서 있는 개농장은 세금도 내지 않고 환경기준도 건너뛰며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자립의 전망을 상실한 지자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동물을 팔아먹는 일’이다. 동물을 이용한 산업은 부가가치가 가장 많이 남는 장사다. 인공수정으로 ‘싸게’ 동물을 불릴 수 있고, 새끼를 낳으면 그대로 돈이 된다. 그래서 미국 시월드가 인공수정한 범고래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오락) 업체로 성장하지 않았겠는가?


산천어살리기운동본부가 축제의 즉각 폐지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당장에는 맨손잡기 프로그램처럼 동물에게 큰 고통을 주는 건 없애고, 장기적으로는 동물친화적 생태 축제로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최초 발상의 전환을 뒤집는 두 번째 발상의 전환에, 추가적인 연구와 콘텐츠·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중앙이 지방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만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물고기의 고통에 대한 과학적 증거와 바뀌는 사람들의 감성 속에서 혼란을 겪을 산천어축제가 지속할 수 있는 길이다. [글·사진 남종영 <한겨레>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