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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로 지정된다

잠용(潛蓉) 2020. 4. 17. 15:07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된다
서울신문 2020-04-17 11:16 ㅣ 수정 : 2020-04-17 11:17

 

▲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전경. 문화재청 제공


안동 봉황사 대웅전은 보물 지정예고
보물 제410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水瑪瑙塔)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국보로 지정 예고하고, 경북유형문화재인 ‘안동 봉황사 대웅전’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17일 밝혔다. 수마노탑은 석가모니 사리를 모셨다고 알려진 탑이다. 역사서 ‘삼국유사’에 따르면 정암사는 자장율사(590∼658)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들고 귀국해 643년 창건했다.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은과 함께 7보석 중 하나인 마노(瑪瑙)와 관련이 있다. 자장율사가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의 도력에 감화하여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 해서 물 ‘水(수)’ 자를 붙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정암사에는 수마노탑을 바라보는 자리에 적멸보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양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영월 법흥사, 인제 봉정암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알려져 있다.

 

수마노탑은 거대한 돌덩어리를 올리는 일반적 석탑과 달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차곡차곡 쌓은 모전(模塼)석탑이다. 모전석탑으로는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탑이 유명하다. 돌 재질은 석회암층 중에 산출되는 고회암이며, 회록색이 감도는 돌을 길이 30∼40㎝, 두께 5∼7㎝로 깎았다. 석탑 전체 높이는 9m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운 탑 1층에 작은 불상을 모셔두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상징하는 문이 있다. 그 위에 벽돌 모양 석재를 층층이 올렸다. 신라시대 이래 모전석탑이 구축한 조형적 안정감과 입체감, 균형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수마노탑은 1972년 해체 과정에서 탑 건립 이유와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인 탑지석 5매가 발견돼 조성 과정이 확인됐다. 불국사 삼층석탑, 다보탑과 함께 탑 이름이 전해지는 희귀한 사례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국내 유일하다는 점에서 국보로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 안동 봉황사 대웅전 전경. 문화재청 제공

 

보물로 지정 예고된 안동 봉황사 대웅전은 건립 시기가 명확하게 전하지는 않으나 여러 기록상 17세기 후반 무렵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불을 봉안한 정면 5칸의 대형 불전이며, 팔작지붕을 얹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3칸 맞배지붕 불전이 유행한 것을 고려하면 규모와 형식이 돋보인다. 전면 배흘림이 강한 기둥은 조선 후기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이다. 근래에 채색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17∼18세기 단청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 특히 정사각형 우물반자에 그린 용, 금박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연화당초문, 연꽃을 입에 물고 구름 사이를 노니는 봉황이 인상적이다. 문화재청은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두 유물의 문화재 승격 여부를 확정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산천 기운 북돋우는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 된다
아시아경제ㅣ2020.04.17 12:32 기사입력 2020.04.17 11:05

 

▲ 정선정암사수마노탑

 

문화재청,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 승격·안동 봉황사 대웅전 보물 지정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정선 정암사의 수마노탑(旌善 淨巖寺 水瑪瑙塔)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410호인 이 석탑을 국보로 지정 예고하고, 경북유형문화재인 안동 봉황사 대웅전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17일 밝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수마노탑이 있는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들고 귀국해 643년 창건했다. 명칭에 들어간 글자 ‘마노’는 금, 은과 함께 보석으로 꼽힌다. 자장율사가 서해 용왕이 감화해 준 마노석으로 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마노 앞에 붙은 글자 ‘수(水)’는 물길을 따라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정선정암사수마노탑


수마노탑은 1964년 보물로 지정됐다. 국보 승격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매번 독특한 성격과 위치, 재질, 형태 등이 근거로 거론됐다. 수마노탑은 전탑을 모방한 모전(模塼) 석탑이다. 경주 분황사와 경북 영양군 입암면에 있는 탑과 같이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 올렸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뒀다. 탑신(塔身)은 석회암층에서 산출되는 고회암으로 쌓았다. 회록색이 감도는 돌을 길이 30∼40㎝, 두께 5∼7㎝로 깎았다. 표면을 정교하게 정돈해 벽돌을 쓴 것처럼 보인다. 1층 몸돌의 남쪽 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했으며, 한 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었다.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문화재청 측은 “신라시대 이래 모전석탑이 구축한 조형적 안정감과 입체감, 균형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 끝에서 살짝 들려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는 1층이 7단이고, 한 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다. 지붕돌 윗면은 1층이 9단이다. 한 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청동 장식을 올렸다.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은 보통 법당에 불상을 두지 않는다. 정암사도 수마노탑에 오르는 길목에 있는 ‘적멸궁’에 불상이 있다. 이곳 적멸궁은 양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영월 법흥사, 인제 봉정암 소재 적멸보궁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불린다. 수마노탑은 적멸궁 뒤편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통상 탑은 본존불을 봉안한 건물인 금당(金堂) 앞에 배치한다. 그러나 수마노탑은 산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홀로 세워졌다. 쇠퇴한 산천 기운을 북돋우는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과 사리신앙 때문에 높은 암벽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1972년 출토 사리장치 재봉안


수마노탑은 1972년 해체 과정에서 탑 건립 이유와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인 탑지석 5매가 발견돼 조성 과정이 확인됐다. 문화재청 측은 “우리나라에 약 2000기의 석탑이 건립됐는데, 중수과정을 알 수 있는 사례로는 석가탑으로 알려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포항 법광사지 삼층석탑 등만 있다. 수마노탑은 탑지석과 석탑 옆에 있는 중수비를 통해 보수 시기와 범위, 기간, 참여 인원과 사찰 등이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국사 삼층석탑, 다보탑과 함께 탑 이름이 지금까지 전하는 희소한 문화재”라며 “국내에서 진신사리를 봉안한 유일한 모전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했다.

 

▲ 안동 봉황사 대웅전


보물로 지정 예고된 안동 봉황사 대웅전은 각종 편액과 불상 대좌 묵서·사적비·중수기 등으로 미루어 17세기 후반 무렵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다섯 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조선 후기에 세 칸 맞배지붕 불전이 유행한 점을 고려하면 남다른 규모와 형식이다. 전면에서 조선 후기에 드물었던 배흘림기둥도 확인할 수 있다. 외부는 근래에 채색됐으나 내부는 17~18세기 단청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 특히 정사각형 우물반자에 그린 용과 금박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연화당초문, 연꽃을 입에 물고 구름 사이를 노니는 봉황 등이 인상적이다. 앞쪽과 옆쪽, 뒤쪽은 공포(지붕 하중을 받치기 위해 만든 구조물)가 다르다. 문화재청 측은 “조선 후기 어려움을 겪은 안동 불교계 상황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예고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두 문화재의 승격 여부를 확정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