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시·문학·설화

[架上七言] "It Is Finished" (ΤΕΤΕΛΕΣΤΑΙ, 다 이루었다)

잠용(潛蓉) 2020. 4. 20. 12:14

[架上七言] "It Is Finished" (다 이루었다) 


▲ Jesus on The Cross

▲ 'What Our Lord Saw from the Cross' (Ceque voyait Notre Seigneur sur la Croix)
-James Tissot c.1890 (Brooklyn Museum)


십자가 위애서 하신 7가지 말씀 (架上七言)
십자가 위의 예수님 말씀(때로는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가지 마지막 말씀)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동안 성경상에 귀속되는 일곱가지 표현이다. 전통적으로, 짧은 말은 "단어"라고 불려왔다. 그들은 4개의 시교 복음서 (Canonical Gospels)에서 모아졌다. 3개의 말씀은 누가복음서에만, 2개는 요한복음서에만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모두 나타나며, 다른 하나는 요한복음에게만 직접 인용될 뿐,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암시만 될 뿐이다. 마테와 마가에서 예수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누가에서는 자신의 살인자들을 용서하고, 참회하는 도둑을 안심시키며, 그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추천한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는 어머니에게 "이 아들을 보라"고 말을 하고, "갈증을 느낀다" 말한 뒤, 지상의 삶을 끝맺는다.


일반적으로 죽기 전이나 죽음이 임박할 때 마지막으로 표현된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수님의 일곱 가지 말씀은, "마지막 유언"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그 분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하나의 방법을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성서에 기록된 그의 말씀의 희박성(sparsity)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시간 동안 대체로 침묵을 지켰음을 암시한다.


16세기 이래 이 말씀은 Good Friday 설교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말씀에 대한 신학적 분석서가 쓰여졌다.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가지 마지막 말씀은 성공회, 가톨릭, 개신교, 그 밖의 전통 기독교에서 각각 기도서(liturgy)에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되었다. 이 일곱가지 말씀의 전래는 서로 다른 복음서의 소재가 결합되어 각 복음서의 경계를 뛰어넘는 부분을 만들어 냄으로써 복음서의 화합에 있어서도 기독교가 접근한 하나의 사례이다. 몇몇 작곡가들은 이 말씀을 자신의 음악작품에 넣기도 하었다.


架上七言의 목록
일곱가지 말씀은 사순절, 성주간, 성금요일에 자주 쓰이는 기독교 명상의 일부를 이룬다. 이 멀씀의 전통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제 1언. (누가복음 23: 34) :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제 2언. (누가복음 23: 43) :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樂園에 있으리라."
제 3언. (요한복음 19: 26~27) : "여인이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제자에게) "보라, 너의 어머니니라."
제 4언. (마테복음 27: 46과 마가복음 15: 34)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제 5언. (요한복음 19: 28) : "내가 목마르다."
제 6언. (요한복음 19: 30) : "다 이루었다."
제 7언. (누가복음 23: 46) : "아버지, 아버지 손에 저의 靈魂을 맡깁니다."



전통적으로 이 일곱가지 말씀을 하나의 단어로 부른다. 1언. 容恕, 2언. 救援, 3언. 關係, 4언. 抛棄, 5언. 苦痛, 6언. 勝利 그리고 7언. 再會 등이 그것이다. 위의 목록에서 지적했듯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Jesus' crucifixion)이라는 한 명제에서 7개의 모든 말씀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서는 4개의 표준 복음서의 각 본문과의 조화이다. 마태와 마가복음서에서 예수는 아람어(Aramaic)로 인용되어 네 번째 구절을 외친다. 누가복음서에서는 첫째, 둘째, 일곱 번째 말씀이 나온다. 세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말씀은 요한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말씀은 다음과 같다.

마테와 마가복음에서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누가복음에서 :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옆에 십자가에 못박힌 두 도둑 중 한 명에 대한 응답으로)
"아버지, 아버지 손에 저의 영혼을 맡깁니다." (마지막 말씀)

요한복음에서: " 여인이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제자에게) 보아라, 너희 어머니니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향한 말씀)는 자기 혈육에게, 또는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친분과 부탁으로)
"내가 목마르다" (모든 캐논어 복음서에서 언급된 젖은 수건이 제공되기 직전)
"다 이루었다" (마지막 말씀)



제 1言 : "아버지, 저들을 容恕하십시오, 저들은 自身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누가복음 23: 34)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容恕하십시오, 저들은 自身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이 첫 마디는 전통적으로 "容恕의 말씀"이라고 불린다.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가한 로마 병사들과 그의 십자가형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로 해석된다. 일부 초기 성서 초고에는 누가복음 23:34에 이 문장을 포함하지 않았다.


제 2言 : "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樂園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 43)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전통적으로 "救援의 말씀"이라고 불린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두 명의 도둑(전통적으로 Dismas and Gestas) 사이에 있는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그 중 한 명은 예수의 결백(無罪)을 支持하였고, 예수님이 그의 왕국에 들어가면 그를 記憶해 달라고 付託한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너에게 말하노니..." (ἀμήν λέγω σοί, amēn legō soi)라고 하시며, 그 뒤를 이어 전체 복음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Paradise' (παραδείσω, paradeisō, 페르시아어로 pairidaeza 즉 "paradise garden" 낙원)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구두점(punctuation)의 부족을 감안할 때, 이 말씀은 겉으로 보기는 간단해 보이는 문장 부호가 이후 기독교 단체 사이의 교리적 차이점의 主題가 되어 왔다. 가톨릭 신자들과 대부분의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보통 "오늘 당신은 나와 함께 파라다이스에 있을 것이다"(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라고 쓰여진 버전을 사용한다. 이런 읽기는 천국으로의 "直航 航海"를 가정하고 연옥(煉獄 purgatory)과의 관련은 없다. 한편, 영혼의 잠(soul sleep)을 믿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오늘은 너에게 말한다"(I say to you today)를 강조하는 읽기를 사용해 왔다. 즉, 예수님 말씀은 "오늘" 했을지라도, "천국에 도착"하는 것은 뒤로 늦어질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제 3言 : "여자여, 아들을 보소서. (제자에게) 보라 너의 어머니니라."
(요한복음 19: 26~27)



▲ 성모 마리아와 함께 슈타트 마테로 묘사된 십자가 - 19세기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작

그때, 예수님께서 자기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가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자기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이 아들을 보소서!' 하고 말씀하신 뒤에, 제자에게는 `제자여 보라, 네 어머니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그 제자는 그녀를 집으로 모시고 갔다. 이 말씀은 전통적으로 "關係의 말씀"이라고 불리우며, 그 말씀으로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그가 사랑했던 제자의 보살핌에 맡기게 된다.



2009년, 監理敎 校長 애덤 해밀턴(Adam Hamilton)은  "당시 예수님은 근처에 서 있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다 보셨다. 그리고 우리가 알기로 열두 司徒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 십자가 기둥에 서 있었다. 예수님이 사랑했던 그 제자는 바로 수제자 요한으로 認識되었다. 발가벗고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자신은 돌보지 않고, 오직 자신이 죽은 뒤 어머니의 安慰을 염려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가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긴 사랑의 깊이를 보여준다." 고 말했다.


제 4言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참고 : 예수님의 언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말리어: Ἠλί, Ἠλί, λιμὰ σαβαχθανί)


(마태복음 27: 46)
예수께서 제9시 (오후 3시) 쯤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곳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뜻이다,


(마가복음 15: 34)
제9시에 예수께서 큰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사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한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다.



(시편 22: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두 가지 이상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유일한 말씀이며 시편 22: 2에서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은 일부 사람들이 아버지에 의한 아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 다른 해석은 예수가 인륜의 죄를 스스로 떠맡는 순간,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잘못된 것을 볼 수 없다" (하박국 1장 13절)는 이유로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해야 했다는 것이다. 다른 신학자들은 그 외침을 진실로 인간적이고 버림받은 사람의 외침으로 이해한다.


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많은 친구들에 의해 버림받은 예수님으로서는 하나님에 의해 또한 버림받은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은 이것을 시편 22장 1절을 가리키며, 예수가 아마도 시편 전체에서 이 말을 암송하였음을 시사한다. 즉 "그 말씀이 가리키는 바 예수님이 바로 그 존재임을 스스로 보여 주고, 그래서 유대인 서기관들과 사람들이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 원인을 시험하고 볼 수 있도록 한다, 즉 바로 이 시편이 그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고 말했다.


신학자 프랭크 스태그 (Frank Stagg)는 그저 저술 "예수의 화신의 신비(a mystery of Jesus' incarnation)에서 "...골고다(갈보리)에서 죽은 자는 아버지와 하나이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동시에 아버지께 부르짖으셨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았다. 동시에 "손목에 박힌 못이 중추신경을 압박하고 있고, 심하게 손상된 신경은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반면, 신의 어린 양은 "지옥에서 영원한 비난의 핵심"인 신에 의한 영혼의 버림받음을 경험한다.


아람어에서 그 구절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אלי אלי למה שבקתני"


제 5言 : "내가 목마르다"
-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 (요한복음 19: 28)


"예수님은 '갈증이 난다'고 말했다."
이 진술은 전통적으로 "苦難의 말씀"이라고 불리며, 요한복음 4:4~26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마주친 것과 비교 대비된다. 다른 설명과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신 포도주 한 잔을 받았다고 전하며, 그 사람이 포도주에 담근 수건을 히솝 가지 위에 올려놓고 예수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고 덧붙였다. 히솝 가지는 구약성서와 히브리 성서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 예수님의 진술은 요한에 의해 시편 69: 21 -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사웠사오니- 에서 주어진 豫言을 이행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편 22장 15절) -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 그러므로 요한복음서 인용문에는 "경전을 완성하기 위해" 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제 6言 : "다 이루었다"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요한복음 19: 30)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외쳤다" (τετέλεσται 또는 그리스어로 "Tetelestai")
이 선언은 전통적으로 "勝利의 말씀"이라고 불리며, 신학적으로는 부활의 豫言에 대한 예수님의 地上의 終末을 알린 것으로서 해석된다.


아담 해밀턴 (Adam Hamilto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이 마지막 말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勝利의 외침으로 보여진다. 예수님은 이제 자기가 인간 세상에 와서 해야할 일을 끝마치셨다. 하나님과의 약속, 즉 豫言이 모두 성취되었고, 救援이 가능해졌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罪를 자신이 代身 갚아주었다. 결국 그는 人類의 깨우침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는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자신을 祭物로 바쳤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舊約에서 행한 豫言이 이로써 모두 完成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地上을 걸어본 사람 중에서 가장 고귀했던 인간, 육신의 하나님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이 구절은 또한 "남김없이 완성되었다"(consummated) 라고 번역되었다." 포도주를 마신 직후 죽음 직전에 하신 이 외침은 마가복음 15: 37과 마태복음 27: 50 (둘 다 큰 소리로 외치시고, 영혼이 떠났다)에서 언급되지만, 명백하게 그런 용어가 인용되지는 않는다. ( ※ 아래에 자세한 해설 추가)


▲ Crucifixion of Christ - Michelangelo, 1540


제 7言 : "아버지, 아버지 손에 저의 靈魂을 맡깁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23: 46)


시편 31장 5절 이래, 이 말씀은 전통적으로 '再會의 말씀'이라 불리며, 예수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합류한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아담 해밀턴은 다음과 같이 썼다. "삶에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신에게 불평하기 위해서라도 믿음은 필요하다. 십자가에서 하신 예수님의 이 마지막 말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信賴를 보여준다: "아버지, 나는 당신의 손에 나의 영혼을 맡깁니다:..." 이것은 두렵거나 아프거나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때 모든 인간을 위한 기도의 본보기라고 불려 왔다. 그것은 사실상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 저를 당신에게 맡깁니다. 제가 살아서나 죽을 때나,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제가 무엇이든지, 주의 손에 맡겨서, 주님의 보살핌을 기원합니다."


<출처/ Wikipedia, 번역 잠용>



TETELESTAI-YIORGOS BILALIS



ΤΕΤΕΛΕΣΤΑΙ - IT IS FINISHED - YIasoumis


--------------------------------------------------------------------------------------------


◆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말은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인가?
십자가에서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 중에서 "다 끝났다"는 말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가슴 아픈 말은 없다. 요한복음서에서만 발견되는 그리스어의  "끝났다"는 번역어는 '전액의 지급'을 뜻하는 회계용어인 "테텔레스타이"(tetelestai)이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 그는 아버지께 진 빚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라졌음을 선포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진 빚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인류가 하나님께 진 빚, 즉 죄의 빚을 대신 없앤 것이다. (贖罪를 말한다)


로마인에 의해 체포되기 직전,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내게 하라고 베풀어준 일을 다 끝마쳤다" (요한 17: 4)고 하여, 지상에서도 아버지를 미화하셨듯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달라고 부탁하며 마지막 공개기도를 드렸다. 예수께서 오신 일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구원하러..." (누가 19: 10), 그를 믿게 될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속죄 (로마서 3: 23~25), 죄 많은 사람들을 성스러운 영혼으로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 화해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사역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 자신으로 화해시키고 계시고, 그들에 대한 인간의 죄를 헤아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약속했다." (고린도 5: 18~19) 육신의 신 이외에는 아무도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다.


또한 메시아의 모든 구약성서의 예언, 상징, 예조의 충족도 완성되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기름 부은 자의 출현을 상세히 기술한 300개가 넘는 구체적인 예언들이 있는데, 그 모두를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다. 뱀의 머리를 짓뭉개버릴 '씨앗' (창세기 3: 15), 이사야 5: 3의 고통받는 하인 (세례자 요한)부터 메시아를 위해 '길을 예비하라'는 주님의 '메신저'(침례자 요한)의 예측까지, 예수님의 삶과 사역, 죽음에 대한 모든 예언이 충족되고 십자가 위에서 마무리되었다.


인류의 구원이 가장 중요한 마무리 작업이지만, 다른 많은 일들이 십자가 상에서 마무리되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무던히 참으셨다. 특히 그의 마지막 6시간에는, 그 고난이 마침내 끝이 났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버지께 대한 완벽한 복종에서 이루어졌다(요한복음 5: 30; 6: 38). 가장 중요한 것은 죄악과 사탄의 힘이 소멸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인류가 "악마의 화살을 쏘는 것"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에베소서 6: 16). 구원과 구원의 일을 완성한 자에게 '신앙의 방패'를 높임으로써 우리는 신앙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과업은 한때 '침입과 죄로 죽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됨'(에베소서 2: 1, 5)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었다. (출처/ Got Questions Ministries)


◆ "다 이루었다"는 말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❶ 첫째는, 구약에 예언한 모든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가 24: 25 이하).
❷ 둘째로는,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신 하나님의 영원하고 장대한 계획이 예수를 통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고 외치는 순간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막아두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져 내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예수의 피에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❸ 셋째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알리는 데 성공하셨다는 뜻입니다.
(출처/ ttp://cafe.daum.net/NEWSTART.G.C/VOi3/3273)



What did Jesus mean when He said, “It is finished”?- Got Questions Ministries   



[신천지 한기총 교리비교] 요한복음 19장30절 '다 이루었다'의 참 의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