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칼럼· 기념일

[오늘은] 제 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일

잠용(潛蓉) 2020. 6. 10. 07:53

제 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오전 10시 서울 용산 민주인권기냠관애서

33주년 '6·10 항쟁' 기념식 - 주제 '꽃이 피었다' (2020.06.10/ MBC 뉴스투데이)

 

 

◆ [KTV LIVE]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10일 오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꽃이 피었다'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민주화 운동 주역들에 대한 추모와 함께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경과 보고도 이뤄질 예정입니다.

일시: 2020. 6. 10(수) 10:00
장소: 민주인권기념관 (舊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제 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대통령 기념사
청와대ㅣ2020-06-10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6·10민주항쟁의 그날, 우리는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학생들은 앞장섰고, 회사원들은 손수건을 흔들고, 택시기사들은 경적을 울렸습니다.
어머니들은 전투경찰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나무를 광장에 심었습니다.

그로부터 서른세 해가 흘렀습니다.

노동자들이 평등과 단결이라는 햇빛을, 시민들은 공감과 참여라는 햇빛을
나무에 비춰주었습니다.
청년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되면서 우리의 가정에 민주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권을 돌아보게 되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때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모두와 함께 천천히,
그러나 결코 방향을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나무는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나눔과 상생의 민주주의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만큼 국민 모두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대와 협력의 민주주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만든 민주주의입니다.

6·10민주항쟁 서른세 돌을 맞아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간 열사들을 기립니다.
33년 전, 6·10민주항쟁에 함께했던 시민들과 그 이후에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크게 더 튼튼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성숙했습니다.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성장시킨
우리 국민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곳은 남영동입니다.
남영역 기차소리가 들리는 이곳은, 한때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악명 높았던 곳입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민들이 오가던 이곳에서 불법연행, 고문조작, 인권침해가 벌어졌습니다.
단지 민주화를 염원했다는 이유 하나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공포와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김근태 민청련 의장은 전기고문을 비롯한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이곳 509호 조사실에서 서울대 언어학과 스물두 살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에 숨졌습니다.

그러나 죽음 같은 고통과 치욕적인 고문을 견뎌낸 민주인사들이
‘독재와 폭력’의 공간을 ‘민주화 투쟁’의 공간으로 바꿔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신부님들의 용기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6·10민주항쟁은 남영동 국가폭력의 진실을 세상으로 끌어냈습니다.

이제 남영동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열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이 불행한 공간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마치 마술 같은 위대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고, 끝내 어둠의 공간을 희망과 미래의 공간으로 바꿔낸
우리 국민들과 민주 인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오기까지, 많은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께 훈포장을 수여했습니다.
한 분 한 분, 훈포장 하나로 결코 다 말할 수 없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시민사회와 유관단체의 광범위한 추천으로 선정되었고,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전태일 열사를 가슴에 담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평생을 다하신 고 이소선 여사님,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고 박형규 목사님,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님,
시대의 양심 고 지학순 주교님,
5·18민주화운동의 산증인 고 조비오(철현) 신부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신
고 박정기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언론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고 성유보 기자님,
시대와 함께 고뇌한 지식인 고 김진균 교수님,
유신독재에 항거한 고 김찬국 상지대 총장님,
농민의 친구 고 권종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님,
민주·인권 변호의 태동을 알린 고 황인철 변호사님,
그리고 아직도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님과
해외에서 우리를 지원해 주신
고 제임스 시노트 신부님, 조지 오글 목사님,

실로 이름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이며, 엄혹했던 독재시대 국민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들입니다.
저는 거리와 광장에서 이분들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기억합니다.

오늘의 훈포장은 정부가 드리는 것이지만,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와 감사하는 국민의 마음을 대신할 뿐입니다.
국민과 함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인고의 세월을 함께해 오신 유가족 여러분께도 위로의 마음을 보냅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예우를 다해 독립, 호국, 민주유공자들을 모실 것입니다.
애국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뜻이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정부는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념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8년부터 2․28대구민주운동과 3․8대전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3․15마산의거와 함께
4․19혁명까지 연결된 역사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4·3의 명예회복을 이루고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온전히 규명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정비되어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을 뽑고,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많은 곳에서 행사하지만,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위해 존재하고, 언제나 주권자의 명령에 부응해야 합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들이 늘 가슴에 새겨야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소수여도 존중받아야 하고, 소외된 곳을 끊임없이 돌아볼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함께 잘살아야 내 가게도 잘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느낄 때일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더 많이 질문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민주주의야말로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입니다.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반복될 때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전진할 것입니다.

조급해서도 안 됩니다.

갈등과 합의는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릅니다.
이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처해있는 현실이 다릅니다.
현재를 위한 선택과 미래를 위한 선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갈등 속에서 상생의 방법을 찾고, 불편함 속에서 편함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치입니다.

평화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민주주의로 평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렇게 이룬 평화만이 오래도록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민주주의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힘겨운 상황 속에서 국민들 모두 서로를 배려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유일한 나라입니다.

6·10민주항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적이 아닙니다.
3·1독립운동으로 시작된 민주공화국의 역사, 국민주권을 되찾고자 한
국민들의 오랜 열망이 만든 승리의 역사입니다.
16년 만에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게 되었고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기본체제를
헌법에 복원하게 되었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는 국민의 힘으로
역사를 전진시킨 경험과 집단 기억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결코 후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민주주의, 더 큰 민주주의,
더 다양한 민주주의를 향해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길은 중단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발전해가기 때문입니다.
지난날과 같이, 우리는 잘해낼 수 있습니다.

6·10민주항쟁 서른세 돌을 맞아,
정부도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나무가 광장에서 더 푸르러지도록
국민들께서도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6월 민주 항쟁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정권은 평화적 정권 교체란 명분을 앞세워 국민의 여망이던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4 · 13 호헌 조치를 선언하였다. 4 · 13 호헌 조치 뒤에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 대중의 결의는 더욱더 강해졌다. 각계각층에서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시국 성명을 내고, 각계와 각 지역을 대표한 2,200여 명의 발기인이 참가하여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 를 만들었다. 국민운동본부는 박종철 고문 살인을 규탄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 대회를 6월 10일 대규모로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6월 10일은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날이기도 하였다. 6월 5일 국민운동본부는 국민대회 행동 요강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오후 6시 국기 하강식을 기하여 전 국민은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제창한다. 애국가가 끝난 후 자동차는 경적을 울린다. 전국 사찰, 성당, 교회는 타종을 한다. 국민은 형편에 따라 만세 삼창(민주 헌법 쟁취 만세,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을 하거나 제자리에서 1분간 묵념을 하며 민주주의 쟁취의 결의를 다진다.
2. 경찰이 폭력으로 대회 진행을 막는 경우 전 국민은 비폭력으로 이에 저항한다. 연행을 거부한다. 연행되면 일체의 묵비권을 행사한다.
3. 전 국민은 오후 9시부터 10분간 소등하고 KBS, MBC 뉴스 시청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적 합의를 깬 민정당의 6 · 10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항의한다.
4. 6 · 10 국민 대회는 철저하게 평화적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며 폭력을 사용하거나 기물 파손 등을 자행하는 사람은 국민 대회를 오도하려는 외부 세력으로 규정한다.

 

이런 움직임에 당황한 정부는 6·10 국민 대회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이를 원천 봉쇄 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았다. 이에 따라 6월 7일부터 주요 대도시에서 검문 · 검색이 강화되었으며, 인쇄소 등에 대한 경찰의 경계와 수색도 심해졌다. 또한 전국 경찰에 갑호 비상을 발령하는 한편 버스 · 택시 회사에 경음기를 떼어내고 교대시간도 바꾸도록 종용하였다. 심지어 행인들의 애국가 합창을 막기 위해 오후 6시에 시행하던 애국가 옥외 방송도 금지하였다. 그리고 대회 전날인 9일부터는 민주 인사에 대한 가택 연금을 실시하였으며 전국 110개 대학을 전격 수색하여 시위 용품을 압수하기도 하였다.드디어 6월 10일이 밝았다. 오전 11시 15분 서울시 송파구 잠실 체육관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12시 30분 채문식 전당대회 의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한 뒤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후보와 손을 잡고 연단 앞쪽으로 걸어 나가 번쩍 치켜들었다. 그것은 신군부 내의 권력 승계를 위한 한판의 축제였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체육관 밖에서는 또 하나의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시청 건물에 걸린 대형 시계의 숫자가 12 : 00로 변하는 순간 도로 건너편 성공회 대성당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종탑 꼭대기에 잿빛 가사를 걸친 스님(지선스님)과 연한 보라색 블라우스에 쉬어링 치마를 입은 30대 중반의 여성(소설가 유시춘)이 나타났다.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성명서를 낭독하였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온 국민의 이름으로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이 무효임을 선언한다. ……" 그리고 그날 오후 6시, 약속된 시간이 되자 거대한 함성이 도심을 울렸다. 구호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였다. 학생들이 먼저 나서고 시민들이 속속 동참하였다. 연세대생 이한열이 전날인 9일의 시위 도중 최루탄 파편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로 인해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규모가 커지면서 급속히전개되어갔다. 차들은 일제히 경적을 울렸다. 시위대와 경찰은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계속하였다. 거리는 마치 포연에 휩싸인 전쟁터 같았다. 6 · 10 국민 대회는 서울, 부산, 대구, 공주, 인천, 대전 등 대도시를 비롯하여 전국 22개 지역에서 24만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가두시위로 발전하였다.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가 점차 격화되면서 시청 한 곳, 파출소 열다섯 곳, 민정당 지구당사 두 곳 등이 파손되었다. 경찰은 그날 전국에서 3,831명을 연행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명동 성당에서는 8백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농성 투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6월 10일 밤부터 시작되어 15일까지 5박 6일 동안 진행된 명동 성당 농성 투쟁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명동 성당을 중심으로 그 희망의 파문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시민들은 명동 성당에서 농성하던 사람들에게 성금은 물론 빵, 음료수, 의약품 등을 전달하였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던 회사원들은 그 자리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남대문 시장 상인들도 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옷을 보냈다. 이렇게 명동 성당에서의 농성 투쟁이 6월 민주화 운동의 불길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운동본부는 6월 18일 '최루탄 추방 대회를 개최' 한데 이어서 군대 동원의 가능성에 대한 정부의 경고에도 굽히지 않고 6월 26일 '국민 평화 대행진' 이라는 조직된 시위를 주도하여 1백만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런 국민들의 거대한 힘에 놀란 정권은 '직선제 개헌' 및 광범한 민주화 조치 등을 보장하는 '국민 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 선언(일명 6 · 29 선언)' 을 내놓았다. 우리 국민이 거둔 또 하나의 승리였다. <출처/ 천재학습백과>

 

▲ 6.10민주항쟁 영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3.06.01)


▲ 사랑과 혁명에 대하여 (2)

 

(2CELLOS - Theme from "Schindler's List" with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