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한국인이었나, 정말 그런 생각했어요"
오마이뉴스ㅣ민병래 입력 2020.12.19. 17:27 댓글 1123개
광주 바수씨 시조 바수무쿨 원장과 유니버설 문화원 이야기
[글쓴이: 민병래(작가)]
바수무쿨(54)은 광주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표를 받았다. 하동 칠불사를 가려면 우선 그곳에 가야 한다. 어렵게 시간을 내었다. 다행히 어제 스리랑카 사람들 일이 잘 마무리돼 마음은 홀가분하다. 그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는 겨울인데도 쉰내가 풀풀 났다. 머리칼은 헝크러져 있고 외투는 때에 절어 반짝거렸다. 진도에서 고기잡이 일을 하던 그들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코로나로 횟감 주문이 줄자 사장은 밀린 월급도 주지 않고 숙소를 열쇠로 채우곤 이들을 내쫓았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진도버스터미널에서 여러 날을 버티다가 어찌어찌 광주에 있는 '유니버설 문화원'으로 찾아왔다.
바수무쿨은 경찰에 신고하고 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광주북구경찰은 진도경찰에 사건을 이첩하고 현장 조사를 요청했다. 결국 사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밀린 월급과 숙소에 있던 짐을 내줘 잘 해결되었다. 바수무쿨은 2007년 광주에 정착해 문화원을 만든 이래 이주 노동자나 유학생, 난민 들의 딱한 사례를 수없이 접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해고나 퇴직금, 임금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E9 비자(고용 허가)로 들어온 파키스탄 노동자 한 명은 수년 동안 일한 회사 사장이 "요즘 일이 없으니 월급을 백만 원으로 깎자"고 했다. 그는 일자리를 잃기 싫었지만 퇴직금이 줄어드는 것도 싫었다. 바수무쿨이 퇴직금 액수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중재했다.
▲ 바수무쿨 그가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만든 긴급 피난처 '쉼터'에서 만났다. ⓒ 민병래
전기장판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 28명은 3개월 이상 임금을 못 받았다. 사장은 도망갔고 전기도 끊긴 공장에서 이들은 살고 있었다. 대부분 불법 체류자나 난민 신세여서 어떠한 대처도 못하는 처지였다. 바수무쿨은 이 공장에 광주의 방송국 카메라와 함께 찾아가 실상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쉼터로 데려와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돌봐주었다.
"우리나라에 왜 왔어"하며 뺨을 때렸다.
바수무쿨은 목도리를 여미고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 그는 뒤쪽 자리로 가며 승객들을 쭉 훑어보았다.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1989년 그가 요가 선생으로 해인사 초청을 받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버스에서 봉변을 당했다. 얼굴이 불그레한 중년 남자가 다가오더니 "우리나라에 왜 왔어?"하며 다짜고짜 뺨을 때렸다. 바수무쿨이 놀라 버스 뒤쪽으로 몸을 피하는데도 계속 따라와 괴롭혔다. 다행히 버스기사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웠고 바수무쿨은 그를 고발했다. 다음 날 조사 결과를 확인하러 경찰서에 갔더니 "술 먹고 실수한 것으로 보여 풀어줬다"고 했다. 피해자에게 사과도 없이 처리해도 되는냐고 항의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인도 벵갈 출신인 바수무쿨은 어린 시절부터 요가를 알리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외삼촌의 인도로 요가 명상공동체 '아난다 마르가'에 입문했다. 이 단체는 당시 170개국 300여만 명의 회원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그는 아난다 마르가의 지도자 위치에 올랐다. 마르가는 전 세계를 9개 권역으로 나누는데 스리랑카, 네팔, 부탄,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델리 섹터가 그의 책임 구역이 되었다. 그는 이곳으로 첫 번째 해외 봉사를 나갔고 이후부터 회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줄잡아 70여 국, 그렇게 해서 7개 국어까지 익혔다. 그래도 아무 이유 없이 손찌검을 당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30년도 넘은 일이지만 그는 아직도 버스를 타면 슬그머니 승객들을 훑어보게 된다.
유니버설문화원과 쉼터를 만들다
광주터미널에서 구례까지는 한달음이었다. 여기서 하동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멀리 지리산 연봉은 이마를 수그리고 겨울 채비를 하고 있다. 구례는 바수무쿨에게 따뜻한 추억을 안긴 곳이다. 법륜 스님 행자들과 지리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일행을 놓쳤다. 산을 헤매다가 어찌 하산을 했는데 재워주고 먹여주고 서울 갈 차비까지 챙겨준 인정을 만났다. 그게 구례군 어드메였다. 바수무쿨은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인도 비비카난다 대학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았다. 그곳에서 요가 공부를 한 바수무쿨은 한국으로 돌아와 요가 선생들을 위해 강좌를 열었다. 또 울산 춘해대학의 요가학과, 원광디지털대학교의 요가명상학과 전임강사도 했다. 그러던 차에 광주광역시가 아시아문화전당을 짓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는 광주에 요가의 정신세계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2007년 광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광주에서 그는 요가의 근본 정신인 나눔과 봉사로 한발 더 나아갔다. 2만여 명이 넘는 광주의 이주 노동자들과 결혼 이주민, 난민에 대한 구호사업이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 유니버설문화원을 만들었고 긴급 피난처인 쉼터를 두 곳이나 만들었다.
▲ 유니버설 문화원에서 난민과 상담하는 바수무쿨 그는 2007년 광주에 정착, 바수무쿨 문화원을 만들었다가 이름을 유니버설 문화원으로 바꾸었다. ⓒ 바수무쿨 제공
그는 서울대 학부 시절부터 소품 가게에 인도의 은세공품이나 전통공예품을 공급했다. 실크 카페트나 호두나무 가구 같은 인도의 명품을 유명 백화점에 납품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재산은 문화원과 쉼터를 만들 때 보증금과 악기를 마련하느라 대부분 처분했다. 지금은 그 종잣돈이 거의 바닥났다.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의 자취를 찾아서
하동 범왕리 정거장에 내려 칠불사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평일이어선지 산길은 호젓했다. 마른 낙엽이 길섶에서 바스락거리며 무릎 께로 올라왔고 어디선가 산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나 길동무를 한다. 먼 발치에선 날다람쥐 두어 마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사라지곤 했다. 칠불사는 김해 김씨의 시조인 가야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들이 성불한 것을 기려 만들어졌다. 일곱 왕자는 외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했고 반야봉 아래 운상원에서 정진했다. 왕자들의 모친이며 김수로왕의 부인은, 인도(의 한 지방 국가로 여겨지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다. 바수무쿨은 한국말이 모국어인 벵골어 못지않게 편했다. 한복을 입으면 마음마저 포근해져 언제부터인가 일상복으로 입었다. 1993년에는 한국 여자와 결혼도 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95년, 말라리아에 감염된 유학생 한 명이 말이 통하지 않아 엉뚱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바수무쿨은 7개 국어 능력으로 통역에 나섰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도왔다. 이 일을 계기로 바수무쿨은 서울대유학생회를 만들었다. 학생회는 "이슬람권 학생들을 위해 돼지고기가 들어갔는지 채식주의자를 위해 샐러드에 달걀이 들어갔는지를 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외국인연수생이나 이주노동자를 위해 통역봉사를 했다. 그는 싸웠고 어디서든 시정을 요구했다. 주변에서는 "너 이러다 추방될 수 있어"하며 몸조심을 권했다. 바수무쿨은 한국에서 요가가 다이어트나 동작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못마땅했다. 그에게 요가는 수양의 길, 대우주와 소우주(개인)가 하나가 되는 길이다. 요가 수련에서 돈을 주고받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진정한 요가의 정신과 수행문화를 전파하고 싶었다.
그런데 장애가 있었다. 딸의 국적과 체류 문제였다. 아빠가 인도인이면 딸도 인도 국적을 갖게 된다. 따라서 출생신고를 하면 3개월마다 해외를 나갔다 들어와야 한다. 그렇다고 첫째 딸의 출생신고를 마냥 미룰 수도 없었다. 이런 요인들로 그는 귀화를 결심해 시험을 봤고, 1999년 마침내 한국인이 되었다. 성은 바수 이름은 무쿨, '바수'라는 성의 시조가 되었다. '광주 바수씨' 1대조인 셈이다. 이름은 '수행하는 동굴'이라는 뜻으로 한자의 음을 빌려 무굴(無窟)이라 했다. 그렇게 국적을 취득한 후 그는 "혹시 전생에 나는 한국 땅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아니면 허황옥의 후예가 아니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어 칠불사를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바수무쿨이 한발 한발 깊이 들어가니 맞은 바라기로 반야봉이 이마에 구름을 두르고 있었다. 그 품에 안겨있는 칠불사까지는 이제 200m 남짓, 바수무쿨은 잠시 다리쉼을 했다. 들머리부터 따라온 고양이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날다람쥐들은 여전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바수무쿨은 광주터미널에서 버스에 오를 때 '방역 3단계 격상검토' 뉴스를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코로나로 광주시 이주민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아르바이트마저 끊겨 하루하루 연명이 힘든 처지다. 비자가 만료된 친구들은 들킬까 봐 아예 코로나 검사를 기피하고 있다.
▲ 이주민 쉼터 인도네시아 이주민 모임을 위해 쉼터에서 같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바수무쿨이 만든 쉼터는 다양한 이주민 커뮤니티의 사랑방이다. ⓒ 바수무쿨 제공
요즘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하소연이 부쩍 많아졌지만 후원은 부족하고 재정은 바닥났다. 문화원 사무실과 쉼터 2곳, 세 군데 월세와 관리비만 해도 백오십만 원이 넘는다. 쉼터로 쓰는 주택 중에서 한 곳은 기름보일러다. 도시가스로 바꾸고 싶은데 목돈이 없다. 게다가 두세 명이 자원봉사로 돌아가며 운영하는 처지라 구호 요청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사무국장 한 명만이라도 상근으로 두는 게 큰 바람이다. 얼마 전에도 시청에서 제공한 마스크와 세정제를 바수무쿨 혼자서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일주일에 걸쳐 나눠줬을 정도다.
나이지리아 난민이 고열에 시달려요
바수무쿨은 땀을 식히고 일어났다. 헐벗은 나무 사이로 칠불사 법당이 언뜻 보였다. 한국에 산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맵찬 겨울은 늘 힘들다. 바수무쿨이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쉼터에서 걸려온 전화다. "원장님, 큰일 났어요. 나이지리아에서 온 애기 엄마 있잖아요. 어제 기름이 떨어져서 춥게 잤나 봐요. 지금 열이 나서 온몸이 불덩이에요. 두 살 아기도 펄펄 끓어요.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어떡하죠." 다급한 목소리였다. 바수무쿨은 칠불사를 쳐다보다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사라졌던 산고양이 두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같이 뛰기 시작했다. 산까마귀들은 놀라 후드득 날아올랐다. 칠불사에선 난데없이 법고가 둥둥둥 울렸다. 하늘로 올라간 북 소리는 반야봉에 부딪혔다가 메아리가 되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바람은 빠르게 달려와 젖은 낙엽을 밀어내고 돌부리를 치우며 바수무쿨의 발걸음을 도왔다. 다시 또 내달려 앞서가더니 범왕리 정거장에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붙잡았다. 산길을 뛰어 내려가는 바수무쿨에게 거푸 전화가 왔다 "원장님, 출발하셨나요?" 바수무쿨은 발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칠불사에선 법고 소리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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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⓵ 바수무쿨과 유니버설문화원, 쉼터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유니버설 문화원 홈페이지 (http://cafe.daum.net/basumukul)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유니버설 문화원은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난민에 대한 종합적인 구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 법률, 문화교류, 의료지원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⓶ 바수무쿨은 2020년 5월 '제13회 세계인의 날'을 맞아 국무총리상을 받았습니다. 외국이주민 지역사회 정착지원 및 사회통합유공자로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⓷ 바수무쿨의 활동 중 중요한 것이 다문화이해교육 프로그램인 '외국인과 함께하는 문화교실(CCAP:Cross-Cultural Awareness Programme)'입니다. 그는 "1986∼87년 요가 수행을 위해 호주에 갔어요. 당시 호주는 다문화가정 문제가 심각했는데 시청에서 CCAP를 운영하더라고요. 그 때 경험한 CCAP를 1997년 한국에 도입한 거죠"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1995년 서울대 재학시절 '유학생 학생회'를 만들어 문화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를 찾아가 CCAP에 대해 설명하고 1997년 첫 시범 수업을 했습니다. 광주·전남에는 2003년 9월 도입됐습니다. 인도·몽골·루마니아·방글라데시·네팔·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7개국 31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에만 33개 학교에서 97회 수업이 진행됐습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213699604304302028&search=ccap)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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