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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미라] 2400년 전 제물로 바쳐진 한 남자의 마지막 식단

잠용(潛蓉) 2021. 7. 24. 10:58

2400년 전 제물로 바쳐진 한 남자의 마지막 식단
한겨레ㅣ곽노필 입력 2021. 07. 24. 09:16 댓글 18개

초기 철기시대 30~40세 덴마크 남성
70년전 늪지에서 완벽한 미라로 발견
사망 12시간 전 보리죽과 생선 식사
오늘날 권장섭취량과 비슷한 영양식
기원전 4세기 덴마크 늪지에서 제물로 바쳐진 한 남자. 2400년이 지나 미라로 발견된 그의 대장 속 음식물을 분석한 결과, 그에게 제공된 마지막 식사는 오늘날에도 손색이 없는 균형이 잘 맞춰진 영양식이었다. 식단의 주인공은 1950년 5월6일 덴마크 실케보르 서쪽 10km 떨어진 곳에서 토탄을 캐던 톨룬드 마을의 한 가족이 늪지에서 발견한 미라다. ‘톨룬드맨’(Tollund Man)으로 불리는 이 미라는 당시 발견자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시신이라는 생각에 박물관이 아닌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상태가 멀쩡했다. 손발톱은 물론 피부 주름, 턱수염, 지문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산소가 들어갈 틈이 없는 늪지가 완벽한 보존 환경을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미라는 목에 올가미가 둘러쳐진 채 웅크리고 자는 자세였으며, 죽은 뒤 누군가 처리를 해준 듯 눈은 감고 입은 다문 상태였다. 동물가죽을 꼬아 만든 1미터 길이의 올가미 끝부분은 잘려 있었다.

▲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2400년 전의 미라 ‘톨룬드맨’ . 올가미가 선명하게 보인다. /Photo by A. Mikkelsen; Nielsen, NH et al (2021); Antiquity Publications Ltd.

 

▲ 초기 철기시대 덴마크인들의 생활 상상도. /실케보르박물관 제공


토탄에 대한 감사 또는 풍년 기원 의식에 바쳐진 듯
너무나도 생생한 미라의 발견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미라의 실체를 분석했다. 의사들은 치아 상태, 두개골의 상태, 관절염 흔적 등 시신 상태를 분석해 이 사람은 키 160cm의 30~40세 남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목뼈가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교수형으로 사망한 것이 아닌 제물로 바쳐지면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물관은 웹사이트를 통해 “신에게 토탄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거나 새 봄의 풍년을 기원해 겨울에 제물로 바쳐졌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사람이 숨진 때는 기원전 405~380년 사이다. 애초 고고학자들의 추정 연대 범위는 2200년~2400년 전이었으나 연대 측정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후 사망 연대 범위가 25년으로 좁혀졌다. 이 시기는 초기 철기시대다. 철기시대 유럽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장작더미에 화장하고 유골을 항아리에 넣어 묻었다. 톨룬드맨은 이런 일반적인 죽음과는 달랐다.

 

▲ 톨룬드맨의 마지막 식단에 쓰인 식재료. 1은 보리, 2는 명아자여뀌 씨앗, 3은 아마. /실케보르박물관 제공


지금도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어
톨룬드맨을 보관하고 있는 실케보르박물관 연구진이 70년만에 현대 분석 기술을 이용해 톨룬드맨의 대장 속 내용물을 다시 상세하게 분석했다. 최근 고고학분야 국제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남자는 제물로 바쳐지기 12~24시간 전에 마지막 식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메뉴는 보리, 아마, 명아자여뀌 씨앗을 주재료로 만든 죽이었다. 식재료의 85%는 보리였으며 아마가 5%, 명아자아뀌 씨앗이 9%였다. 나머지 20종의 식물 성분은 1% 미만으로, 정식 식재료는 아닐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명아자여뀌 씨앗은 제물로 바쳐지는 대가로 특별히 추가된 것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명아자여뀌 씨앗은 보리 작물 사이에서 자라는 잡초로, 평소엔 먹지 않는 것이다. 죽음의 고통을 완화해주기 위한 진통제나 환각제로 쓰일 수 있는 식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톨룬드맨은 또 장어 같은 지방이 많은 생선도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덴마크 사람들은 생선을 그다지 많이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생선을 따로 요리했는지, 죽과 함께 요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연구를 이끈 박물관 수석연구원 니나 닐슨은 “지금도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식재료들이 잘 보존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 실케보르박물관에 전시 중인 톨룬드맨. /실케보르박물관


열량 1350칼로리… 하루 권장량의 절반
놀라운 건 식단의 영양 구성이었다. 분석 결과 영양소 비율이 단백질 13%, 탄수화물 77%, 지방 10%였다. 연구진은 “오늘날 권장 섭취량인 단백질 10~20%, 탄수화물 55~60%, 지방 25~30%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열량도 하루 필요량의 절반인 1350칼로리나 됐다. 연구진은 식단의 구성은 덴마크 초기 철기시대의 일반적인 형태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끼나 조류 잔해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을 끓이는 데 사용한 물은 늪지에서 떠온 것으로 보인다. 내용물 중에는 까맣게 탄 음식 껍질도 있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진흙그릇에서 죽을 끓이다 조금 타버린 상태로 톨룬드맨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위생은 좋지 않았다. 톨룬드맨의 장은 편충, 촌충, 회충 세 가지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 편충과 회충은 주로 인간의 대변에 있는 기생충 알을 통해 , 촌충은 날고기나 덜 익힌 고기를 통해 감염된다. 연구를 이끈 책임연구원 니나 닐슨은 “죽기 훨씬 전에 제대로 익히지 않은 고기를 먹거나 오염된 물을 마시면서 기생충에 감염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400년 동안 장 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식사의 재료들이 현대 과학의 힘을 빌어 당시 유럽인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