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실패인가, 대통령제 실패인가?
한겨레ㅣ성한용 기자 등록 :2022-07-31 07:30 수정 :2022-07-31 14:40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39
개헌 제안에 귀막는 정부·여당
불공정·몰상식과 20%대 지지율
‘내부 총질’ 문자 뒤 “고생했다” 위로
‘정신 승리, 유체 이탈’ 비판받을 만
검사 대통령 정체성 혼란 빠진듯
‘개헌 제의’ 받아 돌파구 찾아야
▲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대체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까요? 제대로 된 대통령 뽑기는 우리 국민의 염원입니다. 풀리지 않는 갈증입니다.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가 어쩌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1945년 광복이 됐지만, 민주주의 경험이 별로 없던 우리 국민에게 대통령 선택권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초대 대통령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전주 이씨 양녕대군 후손 이승만 박사였습니다. 국회에서 선출했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독재자였습니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공화당을 창당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독재자였습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민정당을 창당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독재자였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그 이후 35년이 지났고 여덟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우리 국민의 제대로 된 대통령 뽑기는 성공했을까요?
실패한 것 같습니다. 반독재 투쟁을 하던 대중 정치인들이 잇따라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건설회사 회장 출신도, 독재자의 딸도 실패했습니다. 국정농단 탄핵의 반사이익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이 기대를 모았습니다. 국민을 통합하지 못했습니다. 정권을 넘겨줬습니다. 실망한 국민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평생 검사’를 대통령 자리로 밀어 올렸습니다. 그가 공정과 상식을 회복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불공정과 몰상식의 길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반감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았습니다.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내부 총질’ 문자 덕분에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며칠 동안 언론에 나오고 하느라 고생했다”고 권성동 대행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사고를 친 당사자가 슬쩍 빠져나가려는 모양새입니다. 정신 승리일까요, 유체 이탈일까요?
▲ 지난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질문 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문자를 주고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직계’ 장관들에게 전화로, 문자로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동훈·이상민 장관이 하는 강경 일변도의 말과 행동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인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정체성 혼란에 빠진 것 같습니다. 자신이 검사인지 정치인인지, 검찰총장인지 대통령인지 혼동하는 것 같습니다. 검사는 피의자 생살여탈권을 갖습니다. 잘못된 법이 부여한 권한입니다. 검사 옷을 너무 오래 입으면 자신을 절대자로 착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갑질이 몸에 배고, 말을 함부로 하게 됩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 딱 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찍은 사람들 사이에서 “대통령 잘못 뽑은 것 같다”거나 “홍준표로 할 걸 그랬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평생 검사’를 대통령 자리에 앉히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체험하는 집단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0%대 초반에서 20%대 후반으로 낮아졌습니다. 더 떨어질까요? 아닐 겁니다. 출근길 회견에서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이거나 통합형 인사를 하면 하락세를 멈추고 어느 정도 반등할 것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본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5년을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순간의 선택이 5년을 좌우하는 도박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그러게 이재명을 찍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이라면 어떨까요?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다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니 일단 정치 보복 논란은 없을 것입니다. 서해 공무원 월북 논란, 북한 어민 북송 논란 등 불필요한 사건이 불거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만든다고 난리를 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 국정 지지율이 과연 높이 올라갔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불복입니다.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불복 운동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선거 조작 의혹도 제기됐을 것입니다.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사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라면 과연 인사를 잘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첫 내각을 구성하면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여러 사람이 낙마하는 진통을 겪었습니다. 이재명 의원은 국정이나 의정 경험이 없습니다. 인재 창고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첫 내각 구성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셋째, 경제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됐다고 물가가 오르지 않았을까요?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을까요?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됐을까요? 그럴 리가요.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경제 위기의 원인은 국내 정치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난은 대통령이 다 뒤집어쓸 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에는 ‘윤석열의 실패’와 ‘대통령의 실패’ ‘대통령제의 실패’가 뒤섞여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만약 우리가 지금 대통령제가 아니라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권력구조였다면 대통령의 실패로 인한 부담이 좀 적지 않았을까요?
▲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오전 울산시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 진수식에 참석해 축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장 제안 바로 걷어찬 여당 대표
김진표 국회의장이 7월17일 제헌절에 개헌을 제의했다는 뉴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김진표 의장의 개헌 제의는 그냥 의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위 관료로 일하고 5선 국회의원의 관록까지 쌓은 정치인의 영혼이 담긴 호소였습니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습니다. 35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우리 사회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쳤습니다. 저출생·고령화, 불평등, 그리고 기후변화와 지역 분권, 새로운 시대 과제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눈높이도 높아졌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높아진 국민의 기대와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낼 더 큰 그릇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5년 임기인 한 정권, 한 정당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여야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대로는 누가 여당이 되고, 누가 야당이 돼도 갈등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 분산과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뛰어난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협력의 힘으로 운영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김진표 의장의 말에 하나도 틀린 내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진표 의장은 국회의장 직속기구로 개헌 자문회의를 구성하겠다고 했습니다. 여야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김진표 의장의 절박한 제안은 전혀 힘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개헌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제헌절 오후에 권성동 대행이 원내대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했습니다.
“저는 지금 단계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서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집권 초기라서 정부가 집권해서 새로운 정책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시기다. 그런데 개헌특위가 구성되면 모든 초점이 거기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있어서 도움이 안 된다. 특위를 구성한다고 해도 여야의 견해차가 워낙 커 합의하기 어렵다.” 국회의장의 개헌 제의를 여당 대표가 반나절도 안 돼서 걷어찬 것입니다. 정치 도의상 너무한 것 같지 않습니까? 권성동 대행이 왜 이렇게 거칠게 반응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말고 임기 말에나 생각해보자”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역대 대통령이 개헌을 대하던 태도와 판박이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임기 초 개헌에 반대했습니다. 자신의 힘이 빠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힘없는 임기 말에는 개헌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차기 대선 주자들의 반대로 개헌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김진표 국회의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최소한의 개헌이라도 하자”
이런 역사를 잘 아는 김진표 의장은 지난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여소야대 정국이기 때문에 정부 여당이 블랙홀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정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모멘텀으로 만들 수 있다”며 “4년 중임제 도입이나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좀 국회로 옮기는 등 최소한의 것이라도 먼저 개헌을 하자”고 추가로 제안했습니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김진표 의장의 조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여소야대의 꽉 막힌 상황을 헤쳐나갈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제도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개헌해야 합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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