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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불교·죽음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잠용(潛蓉) 2023. 7. 9. 09:39

[우리말 백과사전]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에 대한 전통적 정의에 따르면 '심장 및 호흡 기능과 뇌 반사의 영구적인 소실'을 죽음이라 한다. 호흡운동과 심장박동이 멈추고 뇌반사가 소실된 것이 불가역적일 때 죽음을 판단하고 다시 24시간을 기다려야 법적으로 죽었다고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24시간'의 기점이 되는 시각은 입원 환자의 경우 담당 의사의 사망진단 시각이지만, 퇴원 후 48시간이 지났거나 그 밖의 경우는 의사의 시체 검안이 이루어진 시각부터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사망진단 후 24시간이 지나야 사망이 확정되어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망진단 후 24 시간 이내에는 매장이나 화장도 할 수 없다. 사산한 유아도 마찬가지다. 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7개월이 되기 전에 출산한 아기나 법정전염병으로 사망했다면 24시간 전이라도 매장이나 화장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고대 중국의 상나라 때 개념과 비슷한 면이있다. 상나라 사람들은 누군가 죽더라도 그가 태어난 날(십간 기준으로)이 아니면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즉 갑일에 태어난 사람이 을일에 죽으면 9일간은 사(死) 상태로 있고, 갑일이 되어야만 망(亡)이 되어 비로소 죽은 것으로 여겼다.

티베트에서는 죽음을 확인한 뒤라도 12시간을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둔다. 혼이 빠져나오는 시간을 12시간 정도로 보기 때문이다. 사후 12시간까지는 영혼이 빠져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러한 관례에 따라 일정 시간 동안 시신을 건드리지 않는 풍습이있다.

한편 현대의학은 장기 기증 요건을 마련해두고 있다. 즉 호흡이 끊어져도 두뇌 기능이 살아 있는 시간은 90분까지만 인정된다. 즉, 장기 기증 요건은 심장사 후 90분 이내만 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한 윤리적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심장사 이후에도 환자가 메스에 반응한다는 보고가 있어 마취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처럼 죽음의 현대적 정의에서도 사망 진단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확정이 되는 것이다.

이러고도 죽음에 따른 매우 복잡한 문제가 있다. 심장, 호흡, 두뇌의 기능 정지를 죽음이라고 정의한다면 심장을 기증하여 그 심장이 다른 사람의 체내에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을 어떻게 판정해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윤리적, 과학적 문제가 남는다. 아직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문제가 된 예는 없지만 두뇌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그럴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 종교적 관점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을 죽음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또한 죽음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어서 생물 전반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면 매우 복잡해진다. 만일 개나리를 조각조각 내어 꺾꽂이로 증식했을 때 본 나무는 죽은 것인가 산 것인가, 아메바 등의 세포가 갈라져 2개체 이상으로 분열하는 것이 죽음인가 성장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정의는 인간에 국한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연 상태에서는 죽음이 곧 성장인 경우가 많고, 그 유형도 다양하여 죽음의 판별이 매우 복잡해진다.


글 이재운/ 1958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4학년 때 쓴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볼까』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에 첫 출간한 『소설 토정비결』은 3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토정 이지함 선생의 운명론적인 민족성과 예언적 인생관, 한국인만의 독특한 해학성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후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창작 활동을 펼쳤다.

[도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저자- Shelly Kagan, 옮긴이- 박 세연, 출판사- 엘도라도

 


​죽음이란 우리 모두에게 어둡고 단연코 유쾌하지 못한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는 무엇이고’ 과연 ‘누구 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숙명처럼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주제가 바로 죽음이다. 예일대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며 오랫동안 ‘죽음’ 강의를 진행해오고 있는 저자 Shelly Kagan은 이 책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영혼의 존재 여부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 대신 저자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 나름의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저자는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죽음이란 육체적 사망으로 인해 비 물질적인 정신과 육체가 영원히 분리되는 현상이라는 이원론자들의 입장대신, 인간을 다양한 기능과 여러가지 특별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육체로 설명하는 물리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인다.

​당연히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원론자들의 주장 일부에 대해 타당성 내지는 가능성의 여지를 남겼지만 부정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물론 사랑, 숫자, 정의 등 형상의 개념들은 물질주의 관점에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에 일부 동의하지만, 그것이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이는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이원론자들이 증명해야 할 과제라는 논리로 대신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이 책에서는 저자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달리하는 측의 주장과 논거를 친절이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열거하고 이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형태로 기술되어 있는데, 책을 읽는 동안 집중력과 어느 정도의 인내가 필요하다.

책은 죽음을 체험하거나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 그리고 종교에 대한 언급을 절제한 채, 제목 그대로 인간의 정체성을 포함, ‘인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가’와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의미, 삶의 가치를 기술한 것으로 자칫 매우 건조하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평소 관심만 있었지 너무 막연한 주제라 버거웠는데 책을 읽고 나름의 짧은 생각이나마 정리할 수 있어 괜찮았고 책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초반부 6장까지는 이원론과 물리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간과 죽음, 영혼의 존재 그리고 영혼, 육체, 인격 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저자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고 있는데 나 역시 저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나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동일한 인격을 유지하는 형태의 생존인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나인 것이다. 죽음은 나의 진정한 종말이고 나의 끝이며 내 인격의 끝이라는 저자의 주장과 견해에 나는 완벽히 동의한다. 7장부터 13장까지는 죽음의 의미와 본질 그리고 영생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마지막 장은 또다른 죽음의 형태인 자살에 대해 합리성과 도덕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성적 차원에서 자살이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도덕적으로도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자살은 분명 죽음의 한 형태이나 본 주제와 맞지 않고 내용도 워낙 다양해 여러 책도 읽고 별도로 다룰 생각이다.

‘살아 있는 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가’ 라는 의미와 이에 대한 세심한 살펴봄이 죽음의 본질에 제대로 다가가는 의미 있는 결론이자 출발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지(사고, 판단, 결정 등)기능과 (저자의 표현대로 P라고 하자) 육체기능 (B라고 하자)이 동시에 멈추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일부는 소화, 호흡, 순환 등 육체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사고하고 판단하는 고차원적인 인지기능 (P)을 수행하지 못하는데, 이 경우 (나는) 살아있으며 존재하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께서 3년 가까이 그런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전부가 아니며, 단지 ‘나’라는 존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두렵고 불행하며 끔찍한 것이 전부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 있지만 고대 그리스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을 곱씹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남아있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안기지만 죽음의 사실을 인지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상황을 제외한다면 정작 당사자인 본인에게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죽음은 말 그대로 종말이고 그 자체로 끝이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삶의 기준과 관점에서 고통과 슬픔이 가능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죽음을 인지하고 죽어가는 과정은 분명 본인에게도 고통일 수 있지만 그것은 죽음 그 자체와는 다른 문제이다.

죽음이 부정적이고 두렵고 나쁜 이유는 삶이 가져다 주는 행복과 축복, 삶 자체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는 박탈이론이 가장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답변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죽음이 나쁘고 두려운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와는 달리 인간세상의 부조리와 부정 그리고 모순은 다른 것으로 별도로 고민해 볼 문제이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영원히 사는 영생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우리 인류는 늘 영원한 삶을 갈망해 왔고, 나 역시 나는 물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영원히 같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결국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도 예를 들었지만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표현된 죽지 않는 인간들인 스트럴드브러그는 영생과 불멸이 결코 축복이 아니며 재앙과 불행임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죽지 않고 오래 사는 인간이 현명하고 지혜롭기는커녕 탐욕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걸리버 여행기의 부정적 묘사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설령 영생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영생을 버텨낼 그 무엇의 가치와 관심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켜지는 스위치를 통해 완전 기억을 잃고 다른 존재로 변형하여 영생을 영위한다는 것은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영생은 단호히 거부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이란 오래된 영화 속 매일 반복되는 2월2일은 주인공은 물론 모두를 질리고 질식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실제 영생의 상황이라면 정말 끔찍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늘 도처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애써 부정하거나 무시한다고 해서 가려질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치 시험시간에 시계 초침 소리에 압도당해 초조함 속에 아무 일도 못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지금을 옥죄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삶이란 쉽지는 않겠지만 죽음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삶이라는 주제로 우리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전환시킬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연구, 생각을 상세히 기술했지만 저자가 책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의도는 바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의 추구이자 영위인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예전 읽었던 ‘어떻게 살 것인가’ (유 시민 저)라는 책의 기억을 떠 올렸고 당시 생각을 기억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본성이 있고 이를 추구하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또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특별히 이득이나 손해와도 아무 관련이 없는 사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내어주는 이타적인 본성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이나 추구하는 바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거나 희생하기까지 한다. 이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삶, 바람직한 삶이란 이 두가지 본성을 적절히 실현시키며 무엇보다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데 이 책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Shelly Kagan역시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여기에다 두 가지 본성에 대한 단지 자신 나름의 가중치를 부여했을 뿐이다. 나 역시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언급된 내용처럼 열정이 있는 삶을 원하고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며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의 마지막 여정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마지막 작별인사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

여러 책과 자료에서 인용된 시편 90편 12절은 읽을수록 더 많은 생각과 울림이 온몸에 퍼진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맞이할 죽음에 앞서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자신을 아는 것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가 생애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만큼 현명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출처]  죽음이란 무엇인가/ 작성자 Wal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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