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음악·애청곡

[희귀가요] "월야의 강변" (1933) - 왕수복 노래

잠용(潛蓉) 2023. 8. 21. 19:39

 

"月夜의 江邊" (1933)
박용수 작사 작곡/ 노래 왕수복(16세 취입)
(앨범/ 1933년 8월 콜럼비아레코드 발매 Columbia 40449 平壤券番)

< 1 >
달 야래 맑은 江물 
잔잔히 흘러가고


여울에 물결 소래 
凄凉히 들려오네~

< 2 >
모래 밭 풀 언덕은 
달 아래 잠자는데 


구슬푼 몰새 소래 
이 밤을 밝히려네~

< 3 >
물 소래 들으면서 
녯 님을 生覺하니


님 노래 귀에 익어 
물 소래 애를 끊네~

 

---------------------------------------------------------------------------------------------------------------

가수 王壽福/ 본명은 王誠實이며 1917년 4월 23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출생하여 편모 슬하에서 자랐스며, 명륜여자공립보통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하여 다양한 기예를 배워 기생이 되었습니다. 왕수복은 10대 중반이던 1933년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울지 말아요"와 "한탄"을 취입 하여 최초의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가 되었으며, 이듬해 데뷔한鮮于一鮮과 함께 기생 출신 신민요 가수로 쌍벽을 이루었는데, 1935년에 잡지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 전옥에 앞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리며 인기 정상에 있던 193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 음악을 공부 하였고, 이후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변신하여 주로 조선 민요를 서양 성악 창법으로 불렀으며, 인터뷰를 통해 "최승희씨가 조선무용을 살린 것처럼 나는 조선의 민요를 많이 노래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소설가 李孝石과 경제학자 김광진의 연인으로,1942년 이효석이 사망할 때 임종을 지켰고, 이후 시인 盧天命의 연인이었던 김광진과 결혼하여 그가 월북했을 때 함께 평양에 남아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했습니다. 1953년에 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가수로 가수 활동을 재개한 뒤, 1955년에는 국립교향악단 성악가수가 되었으며,1959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훈배우 칭호를 수여받았고, 말년까지 최고의 대우 속에 활동하여 死後에는 애국 열사릉에 묻혔다 전합니다. (위키백과)

 

왕수복-월야의 강변 (영상출연 가수김수진 박채영) 스타365

 

왕수복 - 월야의 강변 (1933년작) 가사 첨부

 

월하의 강변/ 최명주

 

1930년대 유행가의 여왕 왕수복

 

왕수복 고도의 정한 일제감점기 가수왕

 

[유행가 앨범] 평양 기성권번이 배출한 스타의 출세작, 고도의 정한 (왕수복)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기생가수 왕수복, 이효석 사랑 실화 영화 '해어화'

 

공훈배우 왕수복 민요독창회(1997)

 

[유행가 앨범] 지금도 남북이 함께 부르는 신민요, 조선팔경가 (선우일선)

 

선우일선- 망향의 가을밤 (영상출연 가수 박채영) 스타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