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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중국] 신라고분 주인은 성덕왕 손자인 왕족 金日用

잠용(潛蓉) 2013. 4. 3. 17:30

중국서 발견된 신라 무덤 주인은…

성덕왕 손자인 왕족 김일용
매일경제 | 입력 2013.02.14 17:05 | 수정 2013.02.14 18:59

 

(김일용의 묘지명)

 

김일용(金日用)은 신라 36대 혜공왕의 사촌형으로 당(唐)에서 벼슬이 종3품까지 올랐으나 귀국도 못한 채 수도였던 장안(시안)에서 죽었다. 그의 존재는 묘지명(墓誌銘)이 발견되면서 처음 드러났다. 당에서 고위직을 지냈는데도 삼국사기 등 사서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김영관 제주대 사학과 교수는 16일 오후 서강대에서 열릴 신라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재당(在唐) 신라인 김일용(金日用) 묘지명의 초보적 검토'를 발표한다. 김 교수는 "대당서시박물관(大唐西市博物館)이 김일용의 묘지명을 2010년 시안의 한 골동상가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묘주 김일용은 신라왕의 종형(宗兄)으로 713년 신라에서 태어나 당에 들어와 황제를 숙위(宿衛)하다가 774년 향년 62세로 장안성 숭현방이라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용(日用)은 그의 자(字)며, 본명은 일성(日腥)이다. 김일용은 종3품인 은청광록대부 광록경(銀靑光祿大夫 光祿卿)이라는 벼슬에 올랐다. 김 교수는 "김일용이 죽을 당시 신라왕이 36대 혜공왕(재위 765~779)인 점으로 미뤄 그의 종형으로 볼 수 있다"면서 "그렇다면 김일용의 아버지는 혜공왕의 아버지인 35대 경덕왕(재위 742~764)의 형제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라 33대 성덕왕은 아들이 4명 있었다.

 

첫째 중경(重慶) 태자가 후사 없이 일찍 사망하면서 둘째인 승경(承慶) 태자가 34대 효성왕으로 즉위했고, 그 역시 후사가 없자 셋째인 헌영(憲英)태자가 재위를 물려받아 35대 경덕왕에 올랐다. 넷째는 이름은 전하지 않고 당에서 좌청도율부원외장사를 제수받고 돌아왔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김 교수는 넷째의 아들이 곧 김일용이라고 추정했다. 경덕왕은 즉위 17년(758년)에야 겨우 아들을 얻는다.

 

김 교수는 "경덕왕은 뒤늦게 얻은 어린 아들과 왕위계승권을 다툴 만한 김일용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배제시키기 위해 귀국을 막았고 경덕왕에 이어 즉위한 혜공왕 역시 정적이 될 수 있는 김일용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고 했다. [배한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