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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 회의록

[국정원] 무단으로 '대화록' 비밀해제… 공개까지 강행

잠용(潛蓉) 2013. 6. 25. 07:05

국정원, 무단으로 ‘대화록’ 비밀해제…공개 강행
[한겨레] 등록 : 2013.06.24 21:37 수정 : 2013.06.24 23:17

 

 
▲ 국정원 배포 회의록 24일 오후 국가정보원이 국회정보위원회 의원들에게 문서로 배포한 회의록.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배포
민주당 강력반발 수령 거부… “대선개입 불법 덮으려는 꼼수”
새누리 정보위원들, 당의 공개보류 결정전에 먼저 뿌려
국가정보원(원장 남재준)이 비밀문서인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속칭 대화록) 전문을 24일 일반문서로 무단 재분류한 뒤 전격 공개했다. 국정원이 보관중인 대화록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원본과 같이 1급 비밀문서인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봐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 다수의 견해여서 국정원의 비밀해제·일반공개는 불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정상회담 대화록이 대화 상대방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됨에 따라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적 파장도 예상된다.

 

한기범 국정원 1차장은 오후에 국회를 방문해 정보위원들에게 각각 회의록 1부와 발췌본 1부씩을 전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정원의 일방적인 공개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회의록 수령을 거부했다. 민주당 국정원선거개입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신경민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힌 이후에 국정원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법을 어긴 정도가 아니라 쿠데타적 항명”이라며 “배후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면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야 하며, 독자적 판단이라면 국정원 간판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회견에서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은 보관 장소가 어디든, 누가 보관하든 대통령기록물이다. 기밀문서를 재분류해 일반문서로 하겠다는 것은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에 대한 불법 열람을 사후에 덮으려는 꼼수이며 더 큰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남재준 국정원장과 한기범 1차장을 대통령기록물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최경환 원내대표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연 뒤 공개 보류 결정을 했지만, 앞서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103쪽짜리 회의록과 국정원이 만든 8쪽짜리 발췌본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남재준 원장의 고심 어린 결단”이라며 “저희는 (회의록을) 민주당과 함께 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동향과 추이를 보면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국정원은 기밀해제 관련 심의위원회를 열고 남재준 원장의 재가를 받아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전환·해제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국회 정보위가 20일 회의록 발췌본을 열람하였음에도, 엔엘엘(NLL·서해 북방한계선) 발언과 관련해 조작·왜곡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야 공히 전문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밀 생산·보관 규정에 따라 2급 비밀인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하여 공개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문제가 있었다면 여야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절차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논의해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국정원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은 또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야당 요구와 관련해 “야당이 그동안 국회 논의들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지 말라고 죽 이야기해오지 않았는가. 나는 관여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국정원 사건과 관련한 국정조사 실시를 27일 중국 방문 전에 결단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종철 석진환 기자 phillkim@hani.co.kr]

 

노, 대화록 공공기록물 분류 지시’ 진술 없었다
[한겨레] 등록 : 2013.06.24 21:40 수정 : 2013.06.24 22:45

 

▲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왼쪽)이 지난해 10월29일 국정감사를 하려고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에 도착해 목영만 국정원 기조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정 의원은 당시 국정감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하려 했으나, 국정원 쪽은 “열람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열람을 불허했다. 공동취재

 

‘NLL 발언’ 수사 지휘 검찰 밝혀
국정원 공개 근거 주장과 배치
국가정보원은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주요 근거로 “검찰 수사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원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보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판단에 기대어 공개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에 불거진 ‘엔엘엘(NLL·서해 북방한계선)’ 관련 여야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이 관리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파악했지만, 이를 ‘공공기록물’로 분류하도록 지시했다는 진술이나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의 주장과는 판이한 것이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검찰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결과물을 참고해 열람할 수 있도록 편의상 국정원에서 관리하도록 지시한 것은 국정원 관계자 등의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분류하라는 지시를 직접 들은 사람의 진술이나 문서상 남아 있는 증거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 당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배석해 모든 대화 내용을 받아적고 녹취했던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두 차례 불러 조사했으나 ‘공공기록물로 관리하라’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된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국정원 관계자의 관련 진술도 없었으며,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출석하지 않아 조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검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 관리 지시를 할 때 대화록이 대통령기록물인지 공공기록물인지 성격을 정한 상태에서 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려면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종합적으로 판단해 공공기록물이라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낸 것”이라며 “국정원 관리 지시는 팩트이지만, 공공기록물 분류 대목은 우리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이 공공기록물로 분류하도록 직접 지시한 근거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국정원에 관리를 지시한 전체적인 정황으로 미뤄 볼 때 대통령기록물로 해석하기 어려워 공공기록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검찰의 ‘추정’을 근거로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규정하고, 대화록을 자의적으로 공개했다는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2월 엔엘엘 관련 고소·고발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화록은 공공기록물(2급 비밀)에 해당한다”며, 이렇게 지정·분류된 이유는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라고 설명했었다.

 

국정원은 검찰의 이 설명을 끌어다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간주한 뒤 일반문서로 전환해도 된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대화록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다. 검찰 수사에서 그렇게(공공기록물로) 확인된 것 아니냐”며 일반문서로의 전환은 국정원장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정필 김남일 기자 fermat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