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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념

[종북몰이] '이거 하나면 만년 통치도 가능하다' [경향신문 연재]

잠용(潛蓉) 2013. 11. 29. 07:06

[신공안정국 실태와 폐해- 1]
“연성화된 유신체제” “민주정권의 공안통치”

[경향신문] 입력 : 2013-11-26 22:07:43ㅣ수정 : 2013-11-27 04:57:58

 

박근혜 정권, 어떻게 보나?

조국 서울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를 ‘연성화된 유신체제’라 평가했다. 그는 26일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상태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만 남겨 놓은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비판과 토론이 없는 ‘무덤 같은 질서’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현 상황을 “합법적으로 선출된 민주정권에 의한 공안통치”라고 봤다. 그는 “박근혜 정부를 독재정권이라 부르는 건 야권의 정치적 수사”라면서도 “9·11 테러 이후 부시 정권이 미국민들의 자유를 축소시켰던 것처럼 민주정권도 국면에 따라 얼마든지 공안통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안통치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다. “공안통치란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낮아서 상황을 타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강력한 반대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공안기구가 나서는 것”이라고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넘고 야권이 강하지 않은 현 상황을 공안통치로 설명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재교 세종대 교수도 “공안통치는 야당의 슬로건일 뿐”이라며 “통합진보당과 전교조에 대한 조치는 이전 정권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용인했던 것을 법에 따라 처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강경 통치’ 배경 두고도
“반대진영 소수화 전략” “보수 결집 수단” 시각차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왜 이렇게 ‘세게’ 나갈까. 먼저 “반대진영을 소수화시키려는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박상훈 대표는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종북·노동·친노처럼 시민적 연대가 일어나기 어려운 이슈를 의도적으로 전면에 등장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세력 결집 수단’으로 보기도 했다. 조국 교수는 “대선 때 국민들이 지지했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를 포기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종북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켜 지지층을 공고히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안정국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장은 엇갈렸지만, 박근혜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졌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보면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재교 교수는 “박 대통령이 권위적인데 청와대에는 바른말을 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조국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사람들이 권력에서 배제되고 군·검찰 출신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지금의 통치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평중 교수는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창조경제가 가능한 모든 공간을 닫아버리고 있다”며 “ ‘새마을 운동’과 ‘한강의 기적’만 외치는 비전의 한계로는 보수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조국 교수는 “반대세력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모두가 다음 정권을 바라보는 집권 3년차 이후엔 통치가 불가능할 것”으로 봤고, 박상훈 대표는 “자신이 말한 공약을 지키는 데서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

[신공안정국 실태와 폐해- 2]
안병욱 전 진실화해 위원장

“공안 의존 통치는 유신시대와 똑같아”
[경향신문] 입력 : 2013-11-26 22:08:17ㅣ수정 : 2013-11-27 05:04:51

 

“시대착오적 정권의 행태에 국민은 두렵기보다 어리둥절”

한국 현대사를 연구해온 원로 역사학자이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2대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65·사진)는 지난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국을 “공안몰이에 기댄 유신시즌 2”라고 말했다.

 

- 현 정국을 유신 부활, 유신 회귀 등으로 볼 수 있나?

“유신이 그대로 부활할 수는 없지만 공안정국에 의존하는 통치술은 유신시대의 방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 공안정국에 의존하는 통치술이란 무엇인가?

“사회를 공포 분위기로 만들어 공안정국으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이 과거와 완벽히 일치한다.”

- 공안정국에 의존한 통치가 부활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 집권세력의 성장 배경과 본능에서 찾아야 한다. 유신의 주체세력과 유신을 선망하던 이들이 집권세력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화로 인한 성과를 ‘적’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다른 의견은 뿌리 뽑아야 한다’는 맹목성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 시절 사학법에 극렬하게 반대했던 것도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 공안몰이 효과가 나타나고 있나?

“그렇지 않다. 공안정국의 목적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공안정국을 강행하려는 정권의 행태에 두려워한다기보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시대착오적이라는 의미다. 1970년대 유신도 시대착오적이었다. 한국 사회가 성장해 정상적 집권이 불가능하자 박정희 정권은 40년 전인 1930년대 군국주의 일본을 참고해 유신을 만들어냈다. 그래도 몇 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은 이전부터 권위주의 통치가 유지돼 왔던 ‘유신이 가능한 1970년대 한국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북한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민주주의를 경험한 세대가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긴급조치, 계엄령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또 40년 전을 참고해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이 같은 상황에서 공안정국을 무리하게 지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점점 국민과 유리되다가 더 이상 동원할 수단이 없어질 때 급격하게 무력해지는 정부가 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전후가 분기점이 될 것이라 본다.”

- 요즘 공안몰이는 일베 등 아래로부터의 공안몰이도 나타나는데...

“극단적 사고와 주장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지금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국정원 등 정부 기관이 이용하고 수구보수 세력의 공식 여론으로 불 지피는 것이 더 문제다.”

- 향후 시민사회의 대응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공안정국도 언론의 받아쓰기로 확대 재생산된다. 언론은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시민사회의 불만을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신공안정국 실태와 폐해- 3]
“정당성 없는 권력의 마지막 수단”… 되풀이되는 ‘공안통치

[경향신문] 입력 : 2013-11-26 22:08:45ㅣ수정 : 2013-11-27 05:05:11

 

1988년 2월 임기를 시작한 노태우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정국 주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국민적인 민주화 열풍에 힘입어 1988년 6월 여소야대의 국회가 구성됐다. ‘절친’인 전두환 정권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고, 16년 만에 재개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 등 5공화국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3월25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고문인 문익환 목사가 방북했다. 노태우 정부는 이를 빌미로 공안정국 조성에 나섰다. 4월 정부는 안전기획부와 검찰·경찰·보안사 등으로 구성된 공안합동수사본부(공안합수부)를 구성했다. 공안합수부는 전민련 간부들을 잇따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두 달여 동안 재야 진보인사 300여명이 구속됐다.

 

8월 공안합수부는 밀입북한 평화민주당 서경원 의원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아 1만달러를 제공했다는 평민당 김대중 총재를 소환조사했다. 공안합수부는 제1야당 총재를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으나, 실제 돈이 전달됐는지 입증하지 못했다.

 

3당 합당 반대시위가 일어나자 정권은 김근태 당시 전민련 집행위원장을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1991년 시민·대학생의 분신 투쟁이 잇따르자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내세워 정국의 흐름을 공세로 전환했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말기, 안기부는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북풍’을 일으켰다. 재미교포 윤홍준씨에게 공작금을 주고 기자회견을 열어 “김대중 후보가 김정일한테 돈을 받았다”는 발언을 하도록 한 것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신공안정국’ 실태와 폐해- 4]
정국 수세 몰리고, 반대 목소리 분출 땐 어김없이 ‘공안 카드’

[경향신문] 입력 : 2013-11-26 22:07:49ㅣ수정 : 2013-11-27 04:58:18

 

◇ (1) ‘신공안정국’, 휘둘리는 한국 사회

 

한국 사회가 ‘신공안정국’에 휘둘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건전한 비판 목소리를 권력으로 억누르고 반대 세력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정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말기 극에 달했으나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지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정부·여당은 물론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일이 빈발하면서 공안정국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 정부·여당
NLL사건 등 청와대 앞장, 여당서 증폭

 

박근혜 정부 9개월 동안 정치는 공안에 발이 묶였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공안몰이 불씨를 던지면, 새누리당은 부채를 부쳐 논란을 키웠다. 그 신공안정국의 중심엔 청와대가 있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국정원은 사실상 청와대 직속기관이다. 이번 사건도 내사 과정과 수사 내용, 공개수사 착수 시점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안에서도 핵심 인물은 ‘공안검사’ 출신의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국정원이 진보당 압수수색을 실시한 지난 8월28일은 김 비서실장이 취임한 지 23일 만이었다. 김 실장은 1970~1980년대 대형 공안정국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1974년 9월부터 1979년까지 중앙정보부 5국장(대공수사국장)을 지내며 숱한 공안수사를 이끌었고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과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때는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법률보좌관으로 있었다.

 

 

[사진] 26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규탄하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계속되자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공안 카드는 여권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국면전환용으로 등장했다. 지난 6월 국정원이 이른바 ‘서해 북방한계선(NLL) 카드’인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위기를 벗어난 데는 여당 역할이 컸다. 여당 소속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국정원에 정상회담 발췌본을 요청해 여당 정보위원들끼리 열람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의 전모가 속속 드러날 때는 여당이 나서 맞불 논리를 제공했다. 검찰에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대선개입도 적극 수사하라는 주문을 쏟아낸 것이다. 반면 전교조의 법외노조화에는 침묵했다. 사정당국이 진보당 사건을 터트리자 ‘종북’ 이슈가 정치권을 삼켰다. 여당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이석기 의원을 제명하자는 징계요구안이 여당 의원 전원 명의로 제출됐다. ‘진보당을 해산하라’는 압박도 여당이 먼저 시동을 걸었다. <홍진수·유정인 기자 soo43@kyunghyang.com>

 

(2) 검찰·국정원
‘대선개입’ 국면전환용 전방위 수사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사건’은 수사의 주체인 검찰과 수사 대상인 국정원을 모두 정국 전면에 부상시켰다. 사건이 의혹에서 확신으로, 대선개입 글의 수가 73건에서 121만여건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검찰은 법무부와 갈등했고, 국정원은 반격에 나섰다. 이어진 검찰 수장과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교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 됐다. ‘공안정국’을 직감한 검찰 내부는 동요했다.

 

일부는 발빠르게 ‘공안통치’에서의 제 역할에 적응해갔다. 국정원사건의 여파가 정권을 옥죌 때면 검찰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 수사로 활로를 열었다. 트위터를 이용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이 밝혀지고 수사팀을 둘러싼 검찰의 내홍이 채 가시기 전, 대선후보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으며 국면이 전환됐다. 그 무렵 검찰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여당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원론적인 입장을 가장해 “공무원 단체가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검찰이 움직였다.

 

‘공안정국’에 빌미를 제공했던 국정원도 반격에 나섰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법적 처벌 가능성을 떠나 22년 만의 내란음모 혐의 적용과 국회의원의 가담이라는 이유로 정국을 뒤흔들었다. 검찰에 송치되기도 전에 열린 여론재판은 ‘종북’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공안통치’의 필요성에 근거를 제공했다.

 

검찰과의 갈등 국면에서만 피상적으로 모습을 내비친 법무부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심판을 청구하며 전면에 등장했다. 경찰도 최근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불법 행위에 대해 ‘즉시 현장처리’하게 하고, 수갑과 경찰봉 등 장비사용 기록 보고서를 사후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했던 내부규칙을 폐지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3) 방 송
‘보수 편향’ 여론몰이… “기생 저널리즘”

 

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을 ‘시즌 2’로 지목하는 언론학자들이 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 놓은 ‘친정부·보수편향’의 방송 틀을 유지하면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은 주요한 사회적 갈림길마다 균형을 잃고, ‘종북몰이’ 보도도 쏟아내고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보도 제작 중에 KBS는 ‘청와대 브리핑룸 그림 사용 금지’ 안내문를 붙여 ‘신보도지침’ 논란을 자초했고, MBC 예능 프로인 <진짜사나이>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과거의 천안함 관련 발언을 문제삼은 이외수 작가의 출연분을 통편집했다. 종편인 TV조선의 메인뉴스 <뉴스쇼 판>은 9월1~5일 앞부분에 보도한 50개 보도에서 1개를 빼고 모두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공격으로 덮어버렸다.

 

‘휘어진’ 방송을 견제할 방송통신위원회의 잣대도 기울어 있다. 국가정보원 간첩사건 조작을 다룬 <추적 60분>에 대한 징계는 대표적인 월권 시비를 낳았다. 방정배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방송 저널리즘은 권력과의 유착 수준을 넘어 권력 품안에서 아양 떠는 기생 저널리즘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4) 역사교과서
정부, 이승만·박정희 독재 미화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직접 견인하고 방조하고 있다. 지난 6월 고교생 상당수가 6·25를 북침으로 응답했다는 언론보도에 박 대통령이 “묵과할 수 없는 문제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하자 교육당국은 신속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는 2017학년도 입시부터 한국사를 수능에 필수화하는 틀을 만들었다.

 

지난 8월 검정 과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는 역사교육의 역류에 기름을 끼얹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나오자마자 친일 관점의 서술과 수백건의 사실오류·표절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학사 구하기’라는 비판에도 서슴지 않고 8종 전체에 대한 수정·보완에 나서 초유의 ‘교과서 재검정’ 사태를 몰고왔다. ‘부실·왜곡’으로 압축되는 교학사 교과서 논란은 기존 교과서가 모두 좌편향됐다는 색깔론으로 덧칠되고 있다.

 

교육당국의 ‘역사교육 강화’ 목표가 어디를 겨냥하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박 대통령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고, 이승만·박정희 반공 독재체제를 긍정한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됐던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판기념회에서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고 축사한 바 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신공안정국 실태와 폐해- 5]
내란음모 사건·종북 매도.. 고비 때마다 '신공안' 이슈로 현안 덮어
[경향신문] 입력 : 2013-11-28 22:05:18ㅣ수정 : 2013-11-28 22:39:04

 

◇ (2) 모든 현안 삼키는 블랙홀
 
경향신문 | 김기범·박철응·송윤경·이재덕·정희완 기자 | 입력 2013.11.28 22:14 | 수정 2013.11.28 23:28

공안정국의 폐해는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을 '종북'의 틀에 가둬 집어삼킨다는 점이다. 국가정보원 대통령 선거 개입사건 수사가 정권을 위협하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논란을 꺼내는 식이다.

 

복지정책 확대 논의가 사회적으로 힘을 받자, 이를 주도한 세력을 '종북'으로 매도하는 일도 빚어졌다. 현안을 다른 현안으로 뒤집고 덮어, 공안정국의 블랙홀로 빠뜨려 매몰시키는 모습이다. 의혹은 증폭되고, 공약은 후퇴하거나 폐기되지만 제대로 된 소통은 없다. 기초연금 등 공약의 후퇴에 대한 정당한 이의제기는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대통령은 유리하면 말하고, 불리하면 침묵하는 '외방향' 소통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국 사회는 '정당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후진적 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1) 복 지
연금 공약 파기 논란 땐 '회의록' 수사 발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등 복지부문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의 핵심 축이었다. 1년이 지난 현재, 이 같은 공약들은 대폭 후퇴하거나 전혀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음에도 이슈 자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본격적으로 갑론을박이 시작되려 할 때마다 묘하게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국정원 정치·선거개입, 통합진보당에 대한 검찰과 정부의 '특별발표'가 불쑥불쑥 튀어나온 탓이다.

 

정부가 기초연금 공약의 이행계획을 발표한 것은 9월25일이다. '월소득 83만원 이상'의 노인은 제외하는 하위 70%로 좁혀졌을뿐더러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지급액을 깎는 방식이었다. 여러 소득 중 유독 국민연금액만을 골라 차등을 두는 방식에 국민연금 장기가입자들의 불만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 이행계획에 반대한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은 '양심의 문제'라면서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에서 "어르신께 죄송하다"면서 "공약포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기초연금안에 대한 갑론을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가 복지공약 논쟁을 비춘 건 '반짝'이었다. 10월2일 검찰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을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삭제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시기는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어서, 공약 파기로 수세에 몰린 정권을 도와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같은 달 15일 국감이 시작되면서 복지공약 이슈가 다시 주목을 받을 기회가 돌아왔다. 국감에서는 기초연금 공약의 '사회적 합의기구'로 설치, 운영했던 국민행복연금위원회(행복연금위)에서는 아무도 '국민연금 연계'안을 제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처음엔 모두 반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진영 장관을 배제하고 청와대에서 기초연금 법안 설계를 지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같은 달 18일 '국정원 정치·선거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의 팀장인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수사팀에서 배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까지도 기초연금 이슈의 맥이 완전히 끊어진 건 아니었다. 임의가입자 중 자발적 탈퇴자 숫자가 정부안 발표 뒤 한 달 만에 배 이상 치솟은 사실이 드러났고 나아가 정부안이 기초연금액을 현행 기초노령연금처럼 국민소득과 연동하지 않고 물가에 연동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20년 후엔 '반값'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11월6일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이후부터 주요 이슈는 정상회담 회의록·국정원 대선개입·통합진보당에만 맞춰졌다. 심지어 문형표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12, 13일 진행됐지만 기초연금에 대한 논쟁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잊혀진 복지공약은 기초연금뿐만이 아니다.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의 경우, 정부는 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간병비 등 3대 비급여 개선방안의 최종 발표는 연말로 미뤄놨다. 다만 이에 앞서 2~4인실도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폐지 혹은 대폭 축소 등의 '개선방향'을 일부 내놓았지만 이를 두고 이해관계자인 병원들의 반발만 커지고 있다. <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

 

(2) 노동·환경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 '좌파'로 덧칠

 

지난 7월 울산으로 향했던 현대차 희망버스는 엔진이 식기도 전에 십자포화를 맞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좌파 단체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죽봉과 쇠파이프를 휘둘렀다"고 하자, 경찰은 "배후 조종 세력을 찾겠다"며 즉각 수사에 나섰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불법 폭력 행위자는 끝까지 추적해 엄단"할 것을 지시했다. 현대차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지 않고 있다. 희망버스가 갔을 때는 최병승·천의봉씨가 278일째 철탑 농성을 벌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였다. 현대차 희망버스가 시동을 걸 수밖에 없었던 본질이다. 하지만 정부와 재계는 '좌파'와 '배후 조종 세력'이라는 포장을 씌워 본질을 가리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에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사업장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과, 쌍용차 문제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약속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총회에 보낸 인사말에서는 "공무원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 14만 조합원께 격려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후 특별 근로감독과 국정조사는 물거품이 됐고 전공노의 합법화 요구는 거부당했다. '격려'는커녕 대선 때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전공노 홈페이지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국정원만 댓글을 단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기 위한 '물타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는 법상 '노조 아님'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했으나 법원이 전교조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일단 유보된 상태다.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매일 부상을 입으면서 인권침해 논란까지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이 2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전력은 계속해서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위협하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검증 및 조사작업은 국무조정실 산하에 조사평가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사실상 한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조사평가위는 지난 9월 중립성 논란으로 장승필 전 위원장의 사퇴와 야당 및 환경단체의 참여 거부로 실질적인 활동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현장 조사를 수행할 조사작업단을 법인으로 설립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지만 환경단체들이 동참할 가능성이 없는 탓에 무의미한 조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박철응·김기범 기자 hero@kyunghyang.com >

 

(3) 국가기관 선거개입
이석기 사건 등 돌출 '물타기'

 

올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달군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국가정보원과 경찰,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정치·대선개입 의혹이다. 국가 정보기관 등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정부·여당에는 막대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 등 각종 '공안' 이슈들이 터지면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가 '물타기'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14일 검찰은 불법으로 정치·선거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 등에 정치·선거 관련 글을 게재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검찰 수사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비판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러나 같은 달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정원이 보관하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열람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국의 관심은 온통 'NLL' 논란으로 쏠리고 말았다. 이후 군 사이버사 소속 군인과 군무원들이 지난해 총선과 대선 당시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선거 관련 글을 올렸다는 의혹도 제기되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지난 8월 국정원이 터뜨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은 국정원과 사이버사의 대선개입 진상규명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한몫했다.

 

검찰은 또 지난달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상에 121만여건의 대선·정치 관련 글을 올리거나 리트윗(퍼나르기)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대선 때 야당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 사이버 '삐라'가 무차별 살포된 것이 확인되면서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가 연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원로신부가 한 '연평도 포격' 관련 발언에 대한 '종북 공세'가 벌어지면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는 다시 묻히고 있다. <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

 

(4) 경제민주화
정책 실종·관련 법안 처리도 못해

 

대선 전부터 불기 시작한 경제민주화 바람은 올해 하반기부터 잦아들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와 갑의 횡포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던 시민사회단체들은 "현장에서는 예전과 다른 신공안정국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토로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함께 '피해 대리점주 보상' '경제민주화 이행 촉구' 등을 주장하던 참여연대에서는 최근 1인 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생 인턴 4명이 시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1인 시위 참가자에게 경찰이 시비를 거는 등 활동 자체를 방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며 "경찰도 최근 공안정국 분위기에 압박감을 느끼는지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인 시위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도 일부 생겼다"고 말했다.

 

정·관계에서는 "올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은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온다. 순환출자금지(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 및 의결권 3% 제한(상법) 등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경제민주화 법안이 산적해 있지만 올해 안 통과는 고사하고 논의조차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결산, 예산안 등을 처리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국정원 관련 이슈, 국가보훈처 대선개입 의혹,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건 등으로 국회가 마비된 상태에서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는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가 답보상태에 빠지면서 재계는 안도하고 있다. 지난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대응방안을 협의했다. 당시 재계는 "순환출자금지법 등 경제민주화 법안이 경영권에 위협을 줄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재계의 우려는 9월 이후 사라졌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신공안정국 실태와 폐해- 6]
종북은 '만능키'.. 정권 불리하면 '딱지' 붙이기

경향신문 | 박홍두 기자 | 입력 2013.11.28 22:14 | 수정 2013.11.28 23:28

 

박근혜 정부의 '신공안정국'은 '종북몰이'로 대표된다. 사회 현안을 종북(從北)이라는 '틀'에 가둬 매몰시켜버리는 구조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이든, 복지정책 확대든 정권에 불리한 현안은 대부분 '종북 딱지'를 붙여 사라지게 한다. 그야말로 종북몰이가 정권의 정국 통제를 위한 '만능키'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종북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시사상식사전 정도에 '주체사상과 같은 북한의 체제를 흠모하고 그에 따름. 또는 그러한 태도'로 풀이된다. 친북(親北)과 구별하기 위해 1990년대 말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종북이 박근혜 정권 들어 맹위를 떨친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수사는 종북을 이용한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정권의 '골칫거리'였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잠재우는 데 이 사건이 이용됐다는 분석이 있다. 국정원 사건을 정면으로 맞서며 반박하는 게 아니라 종북몰이를 이용한 사건으로 국면 자체를 새롭게 전환하는 '측면돌파' 방식이다.

 

시민단체 주최로 계속된 국정원 사건 관련 촛불집회도 종북세력으로 내몰렸다. 시민들은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종북이라는 낙인뿐이었다. 프랑스 파리 교민의 촛불집회를 놓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보여준 발언들도 같은 맥락이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 비판시위 모습) 그걸 보고 피가 끓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닐 것"이라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비판 세력을 종북으로 몰아붙이고 종북·반북의 양대 구도로 갈라세우는 방식이다.

 

종북몰이는 박 대통령의 공약 파기에 대한 비판 여론마저 휩쓸어버렸다. 지난 7월부터 재정난을 이유로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기초노인연금' 공약이 후퇴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도 박 대통령의 무상교육 공약, 공공부문 민영화, 쌍용자동차 사태 관련 국회 국정조사, 민생공약 등의 뒷걸음질에 연일 쓴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역시 종북 틀에 갇혀 퇴색됐다. 보수단체와 새누리당은 복지정책 확대를 주장하던 시민사회에 오히려 종북의 굴레를 덧씌웠다. 특히 전교조와 전공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난달부터 속전속결식으로 시작돼 논란은 더해졌다. 보수단체의 고발부터 압수수색까지 단 3일가량이 걸릴 정도로 이례적으로 빠른 수사라는 평을 받았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종북이라고 칭하고 검찰 수사로 압박하면서 논란을 잠재우는 시나리오로 볼 만하다. 이 과정에서 보수언론의 역할도 컸다. 일부 종합편성채널(종편)들의 보도는 종북 비판 보도로 점철됐다.

 

각종 의혹은 증폭되고 공약은 후퇴했지만 제대로 된 소통도 없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국정원 사건과 공약 후퇴와 관련해 국민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대부분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준비된 발언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사회의 갖가지 산적한 현안은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종북몰이와 외방향 소통으로 현안들을 빨아들이는 '박근혜식 신공안통치'에 대해 우려가 높은 이유는 바로 이런 구조 때문이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종북몰이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인 사상의 자유까지 종북의 틀로 몰아넣는 것"이라며 "정권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무능함과 불리한 사회 현안들을 철저히 회피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신공안정국 실태와 폐해- 7]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현장의 목소리

[경향신문] 입력 : 2013-11-28 22:04:44ㅣ수정 : 2013-11-28 23:21:33

 

(1) 밀양 송전탑
“밀양, 추위 속 매일 대치… 정치권 중재 급해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의 싸움이 8년째 계속되고 있다. 70~80대 노인 등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공사 현장 인근에 움막을 쳐놓고 24시간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력 측은 내년 여름 전까지는 송전선로 공사를 마치겠다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밀양시 상동면에 사는 백영민씨(61)는 “밀양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최근 많이 줄어들었다”며 “여기에서는 매일 경찰들과 승강이를 벌이는 일만 반복되는데 지금 정치권에서는 ‘내란음모’니 뭐니 해서 매일 새로운 이슈들이 벌어지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단장면 주민 고준길씨(70)도 “예전보다 밀양에 대한 국민 관심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3000여명이나 되는 경찰 등 공권력이 투입된 현장이 밀양 말고 또 어디 있나”라며 “밀양 송전탑 문제야말로 정치권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이 지난달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공사 중단과 합의기구 구성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부북면 주민 이남우씨(71)도 “현재 국내 정치는 민주주의를 현실이 아닌 관념으로 이해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데 지금 밀양은 바로 그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현장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야당의 대응 방식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씨는 “야당은 주요 민생현안을 챙기는 데 앞장서서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야당들이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정쟁에 묻혀, 제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은 “본격적인 추위에도 공사는 계속되고 현장에서는 매일 대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치권의 중재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2) 쌍용자동차
“연일 큰 사건들 일어나 국정조사 약속 묻혀… 잊혀지는 게 두렵다”

 

김득중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지부장은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서 큰 사건들이 연일 터지면서 쌍용차 문제는 결국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에서 대선 후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솔직히 기대감이 컸다”며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 선대본부장은 종교계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대선 후 첫번째 열리는 국회에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막내 조합원인 유제선씨는 “쌍용차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묵묵부답이니 답답하다”며 “요즘 경찰이 우리 농성장을 기동대 버스로 가려 시민들이 못 보게끔 막는 등 과잉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현 정부에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측이 경찰에 요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평택공장 앞 농성장을 경찰이 24시간 감시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2009년 파업 이후 자살한 노동자와 그 가족 24명을 위한 분향소를 서울 대한문 앞에 차려놓고 지난해 4월부터 1년7개월간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농성을 해왔다. 이들은 최근 대한문 앞에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 분향소를 옮겨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의 ‘과잉대응’에 김 지부장은 “상반기부터 불거진 국정원 대선개입 실체가 시간이 갈수록 양파껍질 벗겨지듯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며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공권력을 무리하게 행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많은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요즘 ‘공안정국’에 대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말한다”며 “민주주의에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도 빠질 수 없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3) 아모레퍼시픽
“사측, 상생하겠다더니 국감 후 태도 돌변… 갑을 논란 해결 시급”

 

‘영업사원 막말’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사생활 뒷조사 의혹’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대리점과 상생협의체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피해대리점주협의회는 아모레퍼시픽 측과 5번의 협상과정을 거쳤지만 입장 차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질 않자 지난 15일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류인학 아모레퍼시픽 피해대리점협의회 총무(55)는 “사측의 태도가 국감 전후로 180도 달라졌다”면서 “터무니없는 위자료로 넘어가려 하는 것을 보면 ‘상생’ 약속은 국감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피해 대리점주들은 여전히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류 총무는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고 집도 경매에 넘어갈 처지다.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말했다. 류 총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최근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남양유업 사태로 제기된 ‘갑을(甲乙)논란’은 한동안 이슈의 중심에 있었지만 최근 공안정국에 들어서며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류 총무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우린 모두 끝난 것처럼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동주 전국 을 살리기 비상대책위 정책실장(42)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논란, 통진당 해산청구 등이 불거지면서 정쟁 속에 민생 문제는 가려져 있다.

 

정치권은 물론 여론에서도 갑을 관계 문제는 실종됐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대리점 법,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법, 변종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에 관한 유통법 개정안 등 법안을 마련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소모적 정쟁 속에 이 같은 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말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사진]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9월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산가족 상봉 연기 대북 규탄대회를 열고 행진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4) 이산가족
남북은 왜 그렇게 서로 헐뜯는 소리만 하는지…“죽기 전엔 만날는지요”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는 이경주씨(81)는 지난 9월 장롱 위에 올려둔 여행용 가방을 아직 풀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합의하고 지난 9월16일 최종명단을 교환할 때까지만 해도 이씨는 이번엔 꼭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씨는 모친과 삼촌들, 동생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는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왔고 어떻게 죽었는지 꼭 만나서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지난 9월21일 북한이 돌연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했을 때 이씨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씨는 “텔레비전에서 합의가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며 “하지만 너무나 간절하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선물가방을 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63년째 북에 있는 언니와의 만남을 기다린 김순연씨(79)는 지난 상봉을 앞두고 조카 둘이 살아 있다고 연락이 왔다. 그 역시 들뜬 마음에 며칠을 분주하게 보냈다. 상봉이 갑작스럽게 취소된 이후 김씨는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졌다. 한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씨는 한 달 전 병원에 입원해 아직 누워 있다. 경향신문과의 통화 내내 김씨는 한숨만 내쉬며 “죽기 전엔 만날는지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산가족 얘기는 이젠 쑥 들어가 버렸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남북 정상회담 녹취록 공개 등 공안정국으로 회귀하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이산가족 상봉은 요원한 일이 됐다. 이씨는 “왜 그렇게 서로 헐뜯는 소리만 하는지 모르겠다. 쓸데없는 데 치우쳐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이산가족에겐 시간이 없다. 죽기 전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회장(79)은 “남북관계가 심하게 경색되면서 화해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산가족 문제는 촉각을 다투는 일인데 다른 정치적인 문제로 완전히 실종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민생 현안 삼키는 '신공안' 블랙홀.. 갈등만 키운다
경향신문 | 정제혁·정희완·이효상 기자 | 입력 2013.11.27 00:01 | 수정 2013.11.27 05:10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파리 방문 때 교민·유학생이 '국정원 대선개입 항의집회'를 열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페이스북에 "과연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지난 20일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등을 상대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추궁하자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은 "종북하지 말고 월북하지"라고 외쳤다.

 

신공안시대다. 정치와 합리적 토론이 실종된 자리에 '종북이냐, 아니냐' '적이냐, 동지냐'라는 딱지붙이기가 횡행하고 있다. '유신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하부구조(경제)에서 산업사회 패러다임으로 후퇴했다면, 박 대통령은 상부구조(정치·사회·문화)마저 3·4공 때로 후퇴하려 한다"고 했다.

 

신공안통치는 과거의 공안통치에 비해 한결 세련된 형태를 띠고 있다. 정보기관과 검찰, 경찰이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극우화된 보수단체, 종합편성채널 획득으로 세력을 더욱 확장한 보수언론이 주역으로 가세했다. 청와대나 여당이 '화두'를 던지면 보수언론이 여론공세를 펼치고, 보수단체의 고발이 이뤄진 뒤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신공안 패턴'이 형성됐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국교직원노조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대표적인 예다.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민주화 이후 과거 공안정국 때 권력기관이 했던 방식을 적용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정부, 여당, 검찰,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 보수적 그물망이 총동원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공안통치에 야권과 진보적 시민사회가 반발하면서 사회는 극단적 대립과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사회는 둘로 쪼개진 형국이다. 상대방을 공존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놓는 공안통치는 공동체의 토대에 커다란 균열을 내고 있다.

 

신공안정국은 사회의 현안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올 상반기에 주목받았던 복지 문제, 갑을관계, 비정규직 문제, 대기업·중소기업 문제 등의 이슈는 공론의 장에서 실종됐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 대통령을 지지한 '서민층'의 삶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공안정국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서민층'인 셈이다. 신공안정국에서 비롯된 정치·사회적 파행은 위험수위에 차올랐다.

 

이대로 가면 사회가 깨질지 모른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이제라도 통치 대신 정치로, 냉전식 피아 구분과 배제의 정치 대신 공존의 정신에 터를 둔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선회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에 감당하기 힘든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과 교수는 "집권 초여서 문제점이 도드라지지 않을 뿐 공안통치를 허용할 만큼 국민의 의식이 퇴행한 게 아니다"라며 "이런 방식이 지속되면 박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제혁·정희완·이효상 기자 jhjung@kyunghyang.com>

 

[한국만평] 11월 29일 '종북몰이- 傳家의 寶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