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2012 대선

[대자보]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대학생들 즉각 응답

잠용(潛蓉) 2013. 12. 16. 14:42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대학생들 함성
연합뉴스 | 입력 2013.12.14 16:25 | 수정 2013.12.14 16:50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호응 200여명 고대에서 현안 발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해 화제를 모은 자보 '안녕들하십니까'에 호응하는 대학생 200여명이 14일 자보가 붙은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10일 자보가 페이스북을 타고 대학가에 큰 반향을 일으킨 지 나흘 만이다.

 

 

↑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앞 학생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고려대생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학교 게시판에 올린 자보가 학교 안팎으로 반향을 일으킨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이와 뜻을 같이 학생들이 자보 앞에 모여 있다. 이 학교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주현우 씨는 지난 10일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 노동자가 대거 직위해제된 일련의 사태 등과 관련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자보를 작성해 게시판에 붙였다. 이에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화답성 자보가 수십장이 붙었고 서울대, 연세대 등 다른 학교에도 퍼지고 있다. /2013.12.14 kane@yna.co.kr

 

 

↑ '잊혀진 희망으로 인해 안녕하지 못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고려대생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학교 게시판에 올린 자보가 학교 안팎으로 반향을 일으킨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이와 뜻을 같이 학생들이 자보 앞에 모여 있다. 이 학교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주현우 씨는 지난 10일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 노동자가 대거 직위해제된 일련의 사태 등과 관련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자보를 작성해 게시판에 붙였다. 이에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화답성 자보가 수십장이 붙었고 서울대, 연세대 등 다른 학교에도 퍼지고 있다. /2013.12.14 kane@yna.co.kr


학생들은 이날 오후 3시 "안녕하십니까?"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함성으로 집회를 시작했다. 집회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이들은 근처를 지나던 학생들까지 합세하면서 금세 그 수가 2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안녕들하십니까' 자보가 시작된 고대 학생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성균관대, 중앙대, 서강대 등에서 참가한 학생들이 각각 '내가 안녕하지 못한 이유'가 적힌 피켓을 들고 코레일 파업, 경제 민주화,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 등 다양한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높였다.

 

'안녕들하십니까' 자보 이후로 고대 정경대 후문에는 이에 동조하는 자보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14일 현재 60개가 넘었다. 선배들은 집회에 앞서 '후배들의 고민, 용기, 행동을 지지한다'는 등의 메시지와 함께 과자, 음료수, 핫팩 등을 익명으로 현장에 놓고 갔으며, 한 교수는 지갑에서 후원금을 꺼내 전달하기까지 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파업 중인 전국철도노조의 김명환 위원장은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 학생 여러분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자필 자보를 게재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전국 18개 대학의 한국사 전공 대학원생들은 "우리는 역사 교과서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성명을 붙였다.

'안녕들하십니까' 자보를 맨 처음 붙인 고대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27)씨는 연합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많이 올 줄 몰랐다. 그만큼 현재 사회 상황에 대해 고민이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이처럼 '안녕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기에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1호선 시청역으로 이동해 밀양지역 송전탑 경과지 마을 주민 고 유한숙씨의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뒤 서울역에 열리는 철도 민영화 반대 촛불 집회에 합류할 예정이다. 이 행사를 함께 이끈 철학과 4학년 강태경(25)씨는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고백'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며 "몸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용기를 보여주려 행사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tsl@yna.co.kr]

 

숨죽인 20대 일깨운 그 한마디…

"안녕들하십니까" 열풍 왜?
머니투데이 | 신희은 기자 | 입력 2013.12.15 16:04 | 수정 2013.12.16 08:17

 

'촛불세대' '88만원 세대' 이어 '안녕세대'가 뜨는 이유
한 고려대 재학생이 작성한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가 전국 대학생과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숨겨져 있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맞았지만 여전한 경기침체와 취업난 등 경제적 여건에 '철도 민영화''국가정보원 선거개입''밀양 송전탑'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만나며 젊은 층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계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부착되고 며칠 뒤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대학교 캠퍼스의 모습. 수많은 대자보가 게시판과 벽에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안녕들하십니까' 한마디에 잠자던 20대가 깨어났다
지난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2008학번 주현우씨(27)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직접 쓴 대자보를 학내 정경대 후문에 내걸었다. 주씨는 대자보에서 "하루 만의 파업으로 수 천 명의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4000여 명이 직위해제됐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징계라니 '법'에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88만원 세대라는 우리는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해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았다. 저는 다만 묻고 싶다. 안녕들 하십니까,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라고 반문했다. 주씨의 대자보는 학내 재학생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학생들의 답글이 주씨의 대자보 주변에 줄줄이 내걸리기 시작했고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전국 주요 대학과 고등학교 학생들도 대자보 행렬에 동참하고 나섰다.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cantbeokay)에는 주씨에 공감하는 15만50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했다. 페이스북 회원 300여 명은 전날 오후 시청 '밀양 고 유한숙 어르신 추모제'에 이어 서울역 '철도 민영화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 취업난·소통부재·불안이 낳은 현상
대자보 한 장이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낸 데는 젊은 세대가 갖고 있던 '불안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가중된 취업난에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스펙쌓기 등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젊은 세대의 불안이 투영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청년고용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젊은층이 느끼는 취업난은 여전히 심각하다. 여기에 금융위기 이후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과정을 가정에서 직접 목격해 왔다는 점도 세대적 특징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이슈에 대해 '강경 대응' 일변도인 정부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나 밀양 송전탑 논란도 '소통'보다는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존 학생단체가 아닌 학생 개인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감성적인 반문으로 무겁지 않게 관심을 이끌어낸 부분도 눈에 띄는 점이다.

 

오프라인에서 촉발된 현상이 온라인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사회현상'의 하나로 자리 잡는 양상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에 반대하기 위한 광우병 촛불집회나 18대 대선 투표참여 독려운동 등과도 닮아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얼마나 지속될지,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이끌어낼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 철도노조·코레일 "우리도 안녕 못해"
'안녕들하십니까'가 단시간에 이슈로 부각되면서 철도파업 현장에서도 이를 서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김명환 전국철도노조위원장은 지난 14일 고려대를 직접 찾아 '학생여러분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김 위원장은 대자보를 통해 "여러분과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다"며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철도노조와 대립 중인 코레일 최연혜 사장도 15일 서울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은 (철도노조) 불법파업으로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높은 청년실업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코레일 직원들이 파업하는 것을 젊은이들이 어떻게 보겠느냐"며 "대학교 벽보 등 일부에서 직위해제가 엄청난 수의 직원을 해고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직위해제는 해고가 아니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신희은기자 gorgon@]

 

'안녕들 하십니까'에 왜 열광할까?
오마이뉴스 | 입력 2013.12.15 15:05 | 수정 2013.12.15 21:31

 

[오마이뉴스 금준경 기자] 가슴이 먹먹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고려대 대자보를 읽었기에. 고민이 이어졌다. 일명 나들이라 불리는 집회(14일)에 참여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주저도 했고 이 과정에서 합리화도 해 봤다. 지금은 시험기간이고. 4학년이고. 알바도 해야하고, 당장 참가해야 할 공모전도 있으니까. 그러던 중 후배가 페이스북에 집회참여를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 철도민영화에 반대 학내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를 지지한 '서울역나들이'참가자들의 깃발. /ⓒ  이희훈

 
"간다. 시험 공부 빠이."

고민하고 주저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왕년에 학생회 활동하며 집회 좀 다녔고, 사회 고민좀 해봤다고, '신문 커뮤니케이션'이나 '여론과 사회' 수업 때 후배들 앞에서 힘주어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니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그 후배만이 아니다. 주저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 이들이 많았다. 내가 변명거리를 만드는 동안 집회 현장에 일찌감치 참여한 후배들이 있었다. < 안녕들 하십니까 > 페이스북 페이지는 개설 이틀 만에 '좋아요'수 가 무려 11만에 달했고, 현장에는 300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지금도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응답하는 대자보가 게시됐고 확산되는 추세다.

 

왜일까. 겨우 대자보 한 장이, 기획되지도 동원되지도 않은 일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전국에 수 백개 대학이 있다. 매일같이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대자보를 써서 게시한다. 사회를 비판하고 학생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은 차고 넘친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일이다. 그런데 단 하나의 대자보가 화제가 됐다. '비결'이 있음이 분명하다. 전국에 음식점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추운 날 줄 서가며 찾는 '맛집'은 흔하지 않듯 말이다.

 

 
▲ 철도노조 집회에 합류한 '안녕들 하십니까' 시위대.고려대와 시청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후 서울역 철도노조 집회에 참여한 '안녕들 하십니까' 시위대의 모습. /ⓒ 금준경

 
운동권이 아닌 대학생들, 거리로 나선 까닭은?

시청에서 이른바 '안녕들 하십니까' 시위대와 합류했다. 300여 명이 참여한 대학생 집회면 수 많은 깃발이 나부껴야 정상이다. 과거 < 21세기 한국 대학생연합 > (이하 한대련) 집회의 경우 지역대련 깃발과 학교별, 또 학교 내에선 단과대 및 학과 단위별 깃발이 나부끼곤 했다. 그런데, 깃발이라고는 달랑하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문구의 손글씨가 적힌 투박한 깃발이다.

 

그 뒤로 줄지어 걷는 300여 명의 학생들에게선 비장함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학교별로 뭉쳤다기보단 두 세명씩 끼리끼리 다니거나 혼자 다니곤 했다. 이른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 주최한 집회와는 다른 풍경이다. 기억을 더듬어 비슷한 광경을 찾자니 2008년 촛불집회 때였다.

 

 
▲ 시청광장으로 향하는 '안녕들 하십니까'시위대이른바 고려대 대자보를 계기로 모인 이날 시위대는 기존 운동권 단체의 집방식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300여명의 인원이 참여했지만 깃발은 단 하나 뿐이었다는 점과 각자 자신만의 피켓을 만들어온 점이 운동권 집회와 다르다. /ⓒ 금준경
 


▲ 현장에서 피켓문구를 적는 시위참여 대학생이른바 고려대 대자보를 계기로 모인 이날 시위대는 기존 운동권 단체의 집방식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기획되지 않고 동원되지도 않은 집회인 까닭에 자신이 준비해온 종이에 자신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현장에서 적는 모습이 보인다. /ⓒ 금준경

 
물론 집회 참여자 중에는 운동권 단체 소속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참여자 중 일부일 뿐이었다. 깔끔하게 출력된 운동권의 피켓은 많은 집회참여자의 손글씨 피켓과 대조됐다. 대부분이 도화지나 노트에 손으로 글씨를 쓴 터라 운동권 단체의 피켓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시위대가 시청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집회에 참여하는 동안 '민중가요'를 부르거나 율동에 맞춰 춤을 추거나, 8박자 구호를 외치는 일도 없었다.

 

사실 노동 분야와 민영화 문제는 < 한대련 > 과 < 노동자연대 다함께 > 와 같은 운동권 단체가 이미 오랜 기간 다뤄 온 담론이다. 하지만 그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청년들이다. 그렇다면 운동권 단체의 주장과 달리 '안녕들 하십니까'가 큰 반향을 일으킨 힘의 근원은 담론 소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같은 담론일지라도 어떤 맥락으로 다루느냐와 어떻게 확산시킬 것이냐의 문제, 즉 소통방법의 차이가 있음이 분명했다.

학생을 이야기하지만 학생과 소통 않는 운동권과 달라

 

'지지한다'가 아니면 '규탄한다', '물러가라', '사죄하라'는 표현으로 끝나는 제목. 시작부터 복잡한 사회현안. 어려운 법률용어며 복잡한 시사용어가 잔뜩 담겼다. 결론은 특정세력이 절대적으로 잘못이라는 것. 올바른 지향점은 악에 맞서 정의로운 행동을 하라는 것이거나 이를 지지하라는 내용이다. 강경하면서도 어렵고 엄숙한 투로 이와 같은 메시지를 담는다. 대학생들이 흔히들 접하는 운동권식 대자보의 유형이다. 고려대 대자보는 이러한 전형과 달랐다. 그랬기에 읽힐 수 있었고 사람들 기억에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같은 소재를 다룬 운동권 단체들의 성명과 고려대 대자보의 내용을 비교해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 운동권 단체의 철도노조 지지성명과 고려대 대자보의 텍스트 비교- 고려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와 같은 소재를 다룬 <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 , < 노동자연대 다함께 > , < 전국학생행진 > 의 성명을 비교했다. 운동권 단체들은 엄숙주의, 투쟁주의, 집단주의로 소통의 주체여야 할 학생들을 소외시킬 우려가 컸다.  ⓒ 금준경

 
글에 핵심과도 같은 결론부를 비교해 보자. 현안에 대해 침묵하지 말자는 내용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이를 전개하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 서울대련 > , < 노동자연대다함께 > , < 전국학생행진 > 의 가치판단은 절대적이다. 불의가 있고, 이에 맞서는 일이 옳고, 이에 맞서는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대자보는 현 상황이 문제고 묵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언급하지만 직접적인 행동이나 의사표현을 강요하는 듯한 내용은 없다. 침묵이 문제라는 표현을 쓸 때는 '혹', '만일' 등 조심스런 표현을 함께 쓴다.

 

표현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 서울대련 > 은 박근혜 정부를 향해 '관권부정선거', '유신시대', '반민주일방통행'과 같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어휘를 쓴다. 철도민영화 지지에 대한 여론을 '절대적 국민여론'이라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진보적 학생들에게는 공감을 얻을지언정 '리버럴'을 포함한 일반 청년들에게 어필하기에 효과적인 표현은 아니다. < 노동자연대 다함께 > 는 한발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시도를 "모두의 목숨과 공공서비스를 볼모로 미친 질주를 시작하려는 것"이라는 격정적 어투로 표현한다. < 전국학생행진 > 또한 "시민들의 미래를 볼모로 삼는 철도민영화 시도"나 "강고한 투쟁을 만들자!"와 같은 노골적인 표현 일색이다.

 

 
▲ '안녕들 하십니까' 시위대이른바 고려대 대자보를 계기로 모인 이날 시위대는 기존 운동권 단체의 집방식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자신이 준비해온 종이에 자신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적는 것은 이번 집회가 집단이 아닌 개개인이 주체임을 드러낸다. /ⓒ 금준경

 
가장 큰 문제는 청년을 이야기하지만 청년과는 이야기하지 않는 운동권식 소통의 한계에 있다. 운동권 대자보는 이미 답이 정해진 일을 당사자들에게 통보할 뿐이다. 이는 대자보를 읽는 당사자로 하여금 대학생들의 사회참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게 한다는 불만과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반면 고려대 대자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글이다. 이는 청년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소통이다.

 

정파성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동시에 피드백이 가능한 꽉 막히지 않은 소통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폭발적인 반향을 이끈 원동력이 있다. 이는 대자보를 쓴 당사자가 청년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으며 특정 정파나 단체에 무조건적인 동조를 하지 않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달리말해, 고려대 대자보가 운동권에 국한되지 않고 큰 반향을 만들어낸 비결은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용자 중심'의 사고로 글을 담은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실제 대자보를 쓴 주현우씨는 인터넷 언론 < ㅍㅍㅅㅅ > 와 했던 인터뷰에서 "요즘 청년들이 패기 없고 실천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놀기 바쁘고 고생 안 하려 한단다. 이건 좌도, 우도 없다. 어느 쪽에서든 청년이 쓸모없고 무능력하고 방탕하다고 본다"며 청년과 진보를 동일시하는 운동권식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년진보 혁신의 계기로 삼길

이석기 사태 후 진보정당 재구성 논의가 쟁점화된 적 있다. 낡은 진보를 혁파하고 보다 대중적인 진보로 혁신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대학생 운동권 단체인 < 한대련 > 은 통합진보당 당원들로 구성됐고 당과 운명을 같이 해왔다. 기성 진보의 시각을 청년으로 옮기면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진보 역시 재구성해야 할 대상이다. 그 재구성의 중심에 고대 대자보와 같은 대중적 사고가 필요하다.

 

물론, 운동권의 공을 폄하하거나 반운동권 정서에 기대려는 취지가 아니다. < 조선일보 > 처럼 정당이나 단체에 소속된 학생들이 순수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NL이라는 단일정파로 구성된 < 한대련 > 의 한계가 분명하다. 특정 PD세력 역시 무장혁명론이나 지나친 계급투쟁에 매몰되기도 했다. 실제 이번 대자보가 게시되고 SNS를 비롯한 뉴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운동권 단체들은 아무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운동권의 중추를 자임하는 < 한대련 > 또한 다르지 않았다. 대자보를 퍼 나르고, 자신만의 대자보를 써서 고대 대자보에 응답하고, 서울시청과 서울역에서 뭉쳐 행동한 이들은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다. 이는 운동권 단체가 대표성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드러내는 반증이다.

 

사실 오늘날 고려대 대자보가 일으킨 반향처럼 운동권 단체와 평범한 대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행동한 적이 있었다. < 한대련 > 이 지금과 달리 비운동권 학생회와의 가입과 연대가 이뤄졌던 2008년 촛불집회 직후다. 당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필자는 단과대 학생회 일을 했는데, 이때 < 한대련 > 과 연대한 적 있다. 그러나 그 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학생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 보다는 집회에 '동원'하는 수단이자 숫자로 여긴다는 생각이 든 이유에서다.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며 다양성을 보장하기 보다는 일방적 집단주의가 지나쳤다. 특정 정당에 종속된 사고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21세기 대학생연합이 아닌 20세기 자주파연합이었다.

 

지금, 운동권이 아닌 청년들이 고려대 대자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이 힘과 함께하고 싶은 운동권 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특정 정파에 함몰된 단체가 '안녕들 하십니까' 대학생들을 함부로 이끌려했다간 과거처럼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운동권 단체들이 대중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다시금 고민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