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낭떠러지 사회’
[충청타임즈] 2014년 03월 06일 (목)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 부장
독일 시인 프레드리히 휠덜린은 <파트모스>에서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함께 자라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번민하면서, 또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결코 버려서는 안될 희망과 가능성이라는 긍정의 힘은 그러나 이쯤되면 수정돼야 하는 것 아닌가? 넘어지면 곧 죽을 수 있다는 기막힌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한 복판. 가난에 찌들대로 찌들어 끝내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낫다는 이승의 삶을 마감한 세 모녀의 비극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오랜 암투병 끝에 모진 세상에 세 모녀만을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버지. 그리고 역시 병마와 씨름하던 큰 딸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작은 딸. 게다가 두 딸들은 모두 신용불량의 상태였고, 어머니는 힘겹고 각박한 식당 허드렛일로 연명하는 지독한 가난을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 사회는 차라리 비참하다. 참 기막힌 일이다.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하던 식당 일조차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다치는 바람에 끊어지고, 밀린 반 지하 방 월세와 공과금은 더 이상 구원의 희망마저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OECD회원국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절대 빈곤층이 어림잡아 41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는 빈부격차의 심각함을 따져 묻는 것이 오히려 사치스러울 만큼 극단의 모순을 품고 있다. 실직과 동시에 이어지는 끝없는 추락. 빈곤의 수렁으로 빠져버리고 마는데, 안전장치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사회는 낭떠러지나 다름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운운하는 말은 이쯤되면 무색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소외계층의 파수꾼인 사회복지사들 마저 격무에 시달리고 있음도 큰 일이려니와,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분업화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은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이들 사회복지사가 당연히 알아서 할 일이라는 책임전가와 공동체 의식의 실종이 더 위험하다. 이러니 까마득한 절벽은 갈수록 위태롭게 높아지고 있고, 낭떠러지는 더욱 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끔찍하다는 말 외에 더 이상 형언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없는 세상. 세 모녀의 죽음 이후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 선택은 돌파구를 마련할 길마저 실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줄줄이 열거하는 일조차 섬뜩한 일인데, 요 며칠 사이 밀린 임금때문에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남성의 죽음. 20대 딸을 홀로 남겨두고 동반 자살한 50대 부부, 70대 일용직 노동자의 자살 등이 잇따르고 있음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비정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연은 대부분 공통점이 있다. 우선 가난의 굴레에서 쉽사리 탈출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그리고 대부분 번듯한 직장없이 일용직, 즉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것이고, 정부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채우지 못해 사회 안전망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비극이 있다. 70만원의 피눈물 같은 밀린 월세와 공과금을 남겨 두고 사라져 간 세 모녀의 경우 경제적 능력 여부를 떠나 성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소위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해 끔찍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는 그들만의 처지는 아랑곳없다.
사실상 연락이 두절된 상태여도 자식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기초 수급 대상에서 탈락된다. 또 고혈압과 당뇨병 등 심각한 지병이 있다 해도 병원기록이 없거나, 세 모녀 어머니의 경우처럼 일시적 부상일 경우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돼 기초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물론 부정수급 등의 폐단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변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포기할 정도의 악순환이 게속된다면 좀더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노력이 절실하다.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로 죽음으로 몰리는 사회는 어떤 이유가 됐던 위험하다. 누구든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함께 자라는 사회에서 살고싶지 않겠는가? [글: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 부장]
송파구 세 모녀, 살 수 있었다?…
여자 대통령도 모르는 실상
['낭떠러지 사회'①] "도움 요청했다면 더 큰 절망에 빠졌을 것"
머니투데이 | 신희은 기자, 이원광 기자 |입력 : 2014.03.05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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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일본은 선진국임에도 복지체계가 미약해 실직하면 빈곤으로 전락하는 '미끄럼틀 사회'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한 '낭떠러지 사회'다. 페달을 굴리다 멈추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거처럼 한 순간의 사고로 소득원을 잃어버리면 빈곤을 넘어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게 된다. 최후의 보루라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올해 1월 기준으로 약 135만명. 하지만 여러가지 제약으로 여기에도 끼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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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줄어드는 수급자 추이
송파구 세 모녀는 집주인에 마지막 월세·공과금 70만원과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600원짜리 번개탄 2개, 1500원짜리 숯 1개, 20원짜리 편지지 한 개가 이들이 죽음을 위해 쓴 돈이었다.
30대 신용불량자 두 딸과 60대 어머니는 소득이 끊기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의 선택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이분들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제도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대통령의 말대로 실상이 그러할까. 어머니 박모씨(61)가 팔을 다쳐 일자리를 잃었을 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는 제도의 혜택을 요청했더라면 살아갈 희망의 끈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박씨 생전으로 돌아가 당시 상황과 현행 복지제도를 토대로 '도움을 청했을 때'를 가정해봤다.
◇ '삐끗'했다 내몰린 죽음의 나락
박씨 남편은 12년 전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긴 투병생활은 빚을 남겼다. 2005년 남은 세 식구는 강동구 성내동에서 송파구 석촌동으로 이사를 했다. 예전보다 더 열악한 2층 단독주택에 딸린 반지하방이었다. 2005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8만원으로 계약한 집의 월세는 지난해 1월 50만원으로 올랐다. 식당일을 하며 한 달에 120만~150만원 가량을 벌었던 박씨가 감당하기엔 벅찬 액수였다.
월세에 공과금까지 한 달에 60만~70만원을 주거비로 내고 나면 세 식구가 먹고 살 돈은 50만~80만원에 불과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 삶의 연속이어도 박씨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위기는 갑작스레 다가왔다. 박씨는 지난달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넘어져 팔을 다쳤고 식당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큰딸 김모씨(36)는 당뇨와 고혈압을 앓는 환자라 일하기가 어렵다. 작은딸 김모씨(33)는 편의점에서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두 딸 모두 신용불량자다.
◇ "4대보험·기초생활보장 있으면 뭐하나…" 비껴가는 사회안전망
박씨는 주민센터를 찾아 생계가 막막한데 기초수급 대상이 되는지 물었다. 그러나 국가는 박씨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현행 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가구에 생계와 의료, 주거, 교육 등을 통합 지원한다. 최저생계비의 120%(4인 가구 기준 196만원)까지에 해당되는 차상위 계층은 현금 이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했던 세 모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테두리 밖에 방치됐다.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이었다. 법은 두 딸이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매몰차게 지원을 거부했다.
퇴근하는 길에 다쳤으니 산재보험의 도움을 받을 길을 찾았다. 돌아온 답은 또 다시 '불가능'.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군인 같은 특수직역 종사자가 아닌데다 사업주가 출퇴근용으로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다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식당 종업원에게 출퇴근 교통수단을 제공할리 만무하다. 다쳐서 일을 못하니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실업급여는 다친 몸이 나아서 구직활동이 가능할 때 수급이 가능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박씨가 당장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막혀 있다.
◇ 마지막 가는 길에 쓴 돈은 단돈 2720원
박씨는 한 달에 50만원씩 들어가는 월세와 전기세 같은 공과금 부담이라도 덜 수 없을지 백방으로 찾아봤다. '긴급주거지원'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최저생계비, 재산 등 소득재산기준은 충족시켰지만 이번엔 가구특성기준이라는 장애물을 만났다. 기초수급과 마찬가지로 두 딸이 문제가 됐다. 차라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면 지원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박씨는 아픈 딸이 치료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번엔 최소 2달 이상의 의료기록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만성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했더니 의료기록이 없다고 아픈 것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박씨가 월세 50만원, 공과금 10만~20만원, 아픈 딸의 치료비를 지원받을 곳을 찾아다니는 순간에도 두 딸은 빚을 갚으라는 갖은 독촉과 협박에 시달렸다. 최소한의 존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세 식구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씨는 결국 두 딸과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세 식구가 죽음을 준비하는 데 쓴 돈은 2720원이었다. 지난달 26일 저녁 8시30분. 집주인이 전기요금 분담금을 알리려고 세 모녀를 찾았지만 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 여자 대통령도 모르는 실상… 내밀어도 누구 하나 잡아주지 않는 손
전문가들은 세 모녀가 도움을 요청했다 하더라도 우리사회의 사회안전망 시스템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더 큰 절망만 느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 모녀의 극단적 선택이 결코 제도를 몰라 신청을 못했다거나 홍보가 부족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공동대표는 "복지 선진국에선 이 사람들에게 월세 50만원을 내고 살라고 방치하지도 않았겠지만 우리나라에선 긴급주거지원 제도를 신청했더라도 될 가능성이 없다"며 "열심히 살아보려다 실수로 넘어져 다친 사람들에 대해 아무런 안전망도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 등 때문에 복지제도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거절당하는 이들이 100만명이 넘는다"며 "더 이상 예산이나 전달체계, 부정수급을 핑계로 죽어가는 이들을 방관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50대 아버지의 유서
"내가 죽어야 아들이 복지 혜택을..."
['낭떠러지 사회'②] 절대빈곤 400여만명 '사각지대' 방치
머니투데이 | 박소연 기자 | 입력 2014.03.06 04:49 | 수정 2014.03.06 05:33
[사진1]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한 주민이 폐휴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최근 생활고 등 신변을 비관해 자녀들과 함께 목숨을 끊는 가정이 잇따르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스1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 등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빈곤층들이 줄을 잇고 있다.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빈곤층을 구제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0년부터 시행됐다. 스스로 생활유지 능력이 없는 빈곤층에게 국가나 지자체가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공공부조 제도다.
◇ 국민 모두 보장한다? 기초수급자 선정 '하늘의 별따기'
전문가들은 그러나 빈곤층이 실제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난관이 '첩첩산중'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소득과 재산, 부양의무자 등 수급자격이 과도하게 까다롭게 돼 있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이 다수다. 2010년 10월 11살 장애인 아들을 둔 일용직 노동자 윤모씨(52)가 자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윤씨는 당시 유서에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것이 있다"며 "내가 죽으면 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사무소 분들께 잘 부탁한다"고 썼다. 아버지가 죽어서 아들이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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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법개정공동행동 회원들이 2012년 8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앞에서 '수급자 죽음으로 내몬 보건복지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참가자들은 같은 달 7일 거제에서 기초수급 탈락통보를 받은 70대 할머니의 음독 자살을 애도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와 빈곤해결을 요구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제도로, 폐지 요구가 끊임없이 있어왔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현재,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해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사진=뉴스1
자식들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도 자식이 있기만 하면 '간주 부양비'가 책정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한 50대 여성은 이혼 후 식당일로 모은 돈을 암 수술비로 소진한 후 수급을 신청했으나 아들과 최근 통화한 기록이 나타나 '부양관계 단절'로 볼 수 없다며 탈락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근로소득이 없더라도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추정 소득'이 책정돼 지원받는 금액이 삭감되거나 수급권을 박탈당한다. 전문가들은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 평가를 통해 결정되는 근로능력 평가 기준이 과도하게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김 사무국장은 "'송파 세 모녀' 중 첫째 딸이 고혈압과 당뇨를 앓았지만 병원기록이 없었고 어머니는 일시적 부상이라 기초수급을 신청했다면 모두 근로능력자로 간주됐을 것"이라며 "장애 1·2급 정도로 병이 발전하지 않는 한 근로무능력자로 판정받기 어렵다. 대단히 속 편한 기준"이라고 혀를 찼다. 수급신청과 증명 절차가 까다로운 것도 문제다. 노동계가 실시했던 '2009 기초생활수급가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급신청자의 47.4%가 서류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숙인은 주소가 없어서, 아파도 진료기록이 없어 수급을 포기하거나 거절당하는 식이다.
◇ '관리'되는 수급권
그간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복지공무원을 충원하는 등 시민사회가 사회보장제도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지난 10년 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수는 140만명 안팎으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됐다. 절대빈곤층 400여만명은 사각지대에 방치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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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난 10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인원은 140만명 안팎에서 유지됐으며, 그나마 최근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아래)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빈곤층 중 사각지대에 놓인 비수급 인원은 410만명으로 수급 인원의 2배가 넘는다. 소득과 재산이 모두 기준치보다 낮은데도 부양의무자기준을 초과했거나(A),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인데 재산기준이 기준치를 초과했거나(C), 소득이나 재산이 최저 기준을 극소하게 초과해 수급에서 탈락한 차상위계층(B)(D)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프에서 A+B+C+D를 제외한 흰색 부분만 수급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보호 범위와 지급액은 오히려 점점 줄어들게 '관리'됐다. 1999년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40% 수준이던 최저생계비는 현재 30% 초반으로 떨어져 최저생계비를 토대로 지급되는 금액의 실제가치가 줄었다. 또 사실상의 수급대상자가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돼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수급 '관리'가 우연의 일치나 제도의 한계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센터장은 "정부는 제도에 소요되는 재원이 크다는 이유로 수급자 확대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며 "지난 14년간 빈곤층 규모가 증가했음에도 수급자 규모가 140만명선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나라는 사회보장제도에서 유독 '가족부양'과 '근로강제원칙'이 강하다"며 "사회보험에 기여하지 않은 빈곤층에게 '퍼주는' 공공부조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불신이 정부뿐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다"고 말했다.
◇ 기초생활보장은 절체절명의 문제…현실화 절실
전문가들은 현 제도의 부양의무자기준과 최저생계비, 재산의 소득환산율, 근로능력평가는 부정수급자 '검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수급대상을 적극 '발굴'하고 빈곤 당사자 입장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촘촘히 구성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사무국장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운데 빈곤층 청년에게 고졸 즉시 직업훈련 시간도 주지 않고 부양의무를 지우는 현 제도는 빈곤을 고착화하고 대물림하는 결과밖에 낳지 못한다"며 "빈곤층에게 수급권은 삶의 존엄과 생명에 직결된, 양보하지 말아야 할 가치로 현실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노 센터장은 "최저생계비로 모든 급여의 수급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득 기준선을 넘는 빈곤층이라도 의료나 주거급여 등 시급한 지원을 우선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 soyunp@]
부정 수급만 잡는 정부...
"빈곤층 안에서도 양극화 생겼다"
['낭떠러지 사회'③] 그나마 유일한 서울형 기초보장도 예산 다 못써
머니투데이 | 신희은 기자 | 입력 2014.03.07 05:05
우리 국민의 46.7%는 스스로를 '하층민'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 결과'에서 자신이 하층민이라는 응답은 조사를 처음 실행한 1988년(36.9%)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201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소득불평등 지수는 여섯 번째로 높다. 소득 상위 20%의 가처분소득이 하위 20%의 5배가 넘는다.
빈부격차는 점차 심화되고 있는데 빈곤층을 보호해 줄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가 최저생계를 책임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불과 135만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은 '제도개선'을 기다리다 지쳐 하나 둘씩 죽음의 나락으로 내몰리고 있다.
◇ 기초생활보장법이 조장하는 '빈곤층의 양극화'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층은 35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를 받는 인구는 올해 1월 기준 약 135만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부양의무자 규정 등 갖가지 제약으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2000년 시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제도 정착 이후 최근 10년간 140만명 안팎에 묶여 있다. 2005년 수급자가 151만3352명이었던 데 비해 올해 1월 기준 수급자는 134만9007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초생활수급자에게 투입되는 예산은 3배 이상 급증했다. 수급자는 줄었는데 투입 예산이 급증했다는 점은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수급자들에게 국가의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센터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지원을 하나도 못 받는데 수급자들에겐 혜택이 집중되면서 빈곤층 내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며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을 결국엔 예산문제인데 법개정을 통해 보장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시 나섰지만 '걸음마' 수준..."그나마 유일"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대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던 서울시가 지난해 7월부터 시 재정을 투입해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운영에 나섰다. 이 제도로 기초수급자 선정에서 탈락한 서울시민 가운데 현재까지 6251명을 구제했다. 시민단체들은 그러나 지원인원이 극히 적을 뿐 아니라 이마저도 당초 서울시가 책정한 예산 대비 실제 집행률이 90% 가량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제도 시행 이후 6개월 간 책정 사업비는 171억원(서울시민 복지기준 관련 사업 포함)으로 이 중 118억원이 집행됐다. 집행액 가운데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수급자에게 직접 투입된 예산은 55억원 규모다. 올해 사업비는 전년보다 100억원 가량 늘어난 273억원이 책정돼 있다. 서울시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관계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제도지만 시행 초기라 정확한 예산 예측이 어렵고 홍보도 더 필요한 단계"라며 "그나마 이렇게 상시적, 체계적으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를 마련한 지자체는 서울시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 기초보장이 '바늘구멍'인데 '부정수급'만 잡는 정부
법 테두리 밖에 방치된 빈곤층이 연일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는데도 정부는 '복지확충'보다는 '부정수급자' 색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 정부는 국민권익위원회,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부처합동으로 '복지부정 신고센터'를 운영, 부정수급을 적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간 8조원대 예산이 투입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정수급 발급 액수는 7000만원 가량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말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410만명이 있는데 정부는 복지확대·사각지대 해소와 부정수급 색출 중 무엇을 자기역할로 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머니투데이 신희은기자 gorgon@]
[헛도는 복지예산 100조 시대-上 ]
"세상을 등지는 이웃들"
세계일보 | 입력 2014.03.06 21:09 | 수정 2014.03.07 08:09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우리나라 사회안전망 곳곳의 허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아버지가 방광암에 걸리면서 가세가 기울었다는 것은 건강보험 보장성의 한계를, 사망한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해온 어머니가 일을 하다 다쳤는데도 실업급여를 비롯한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것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가 부정수급자 선별에 초점을 맞추느라 까다로워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기준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이 언제 또 다른 비극을 부를지 모를 암초로 지목된다.
◆ 빈곤의 연대를 강요하는 나라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부양의무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혀왔다. 수급신청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일정수준의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가족의 부양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탈락시키는 제도로, 시민단체들은 줄곧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이 제도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연락이 두절됐는데도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의 경우도 어머니는 근로능력이 인정되는 두 딸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되기가 어려웠고, 지병이 있는 첫째 딸 역시 근로능력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의료급여 혜택을 못받을 가능성이 컸다. 서로가 서로의 족쇄가 된 것이다.
복지부는 "단정할 수 는 없지만 두 딸중 한명이라도 자활근로에 참여하면 수급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순천향대 허선 교수(사회복지학)는 "소득이 전혀 없는 노부모가 2억짜리 집 한 채만 있으면 자식들이 가난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더라도 모두 탈락시키는 것이 부양의무제"라고 지적했다.
2009년 157만 명에 이르던 기초생활수급자는 지난해 135만 명까지 감소한 반면 수급중지자, 즉 수급을 받다가 탈락한 사람은 2010년 17만3000명에서 2012년 21만4000명으로 늘다가 2013년 다시 17만명 선을 회복했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실현을 위해 부정수급자를 걸러냈다며 홍보했지만, 그 안에는 선의의 피해자 역시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허 교수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정부가 말하는 의도적인 부정수급자는 얼마 안된다"면서 "가족에게 도움을 못 받거나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시스템으로 부양의무자의 소득을 찾아내 수급자였던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은 '행정 실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이 도입되면서 수급자의 소득은 물론 부양의무자들의 파악이 쉬워졌고, 이로 인해 약 30%가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에 수급이 중지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일 못해 쫓겨난 사람에게 '근로능력자' 판정
'근로능력자의 추정소득'도 기초생활보장수급 신청의 문턱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만 18∼64세에 근로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최대 60만 원의 추정소득이 부과된다. 여기에 부양의무자의 소득까지 더해지면 최저생계비를 넘을 가능성이 높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 쉽지 않다. 추정소득을 적용받지 않으려면 의사에게서 진단서를 받아 국민연금공단에서 실시하는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평가를 거쳐 근로능력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기초생활보호수급자로 지정해 생계를 지원하는 것만큼 근로능력이 있다면 자활 의지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다.
그러나 장애나 심각한 질병이 아니고는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기 쉽지 않다. 일을 할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수급신청을 하러 왔는데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자활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아 막상 자활근로를 신청하면 일자리 없다고 난색을 표하거나, 막상 일하러 갔는데 본인이 하기에 너무 버겁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 1개월 정도 경험하는 직업탐색프로그램 시간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라고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미·오영탁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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