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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념

[노후빈곤] 늘어가는 노후 빈곤층… 의식변화와 국가적 대응 필요

잠용(潛蓉) 2014. 6. 17. 08:14

자식에게 퍼주고 노후에 버림받는 '상속 빈곤층' 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4.06.17 03:03 / 수정 2014.06.17 06:30

 

부양료 소송 11년 새 3배로
월 생활비 34만원, 연금 의존
"교육·결혼비 과다지원 말길"
 

서울 구로구에 사는 이모(74·여)씨가 1998년 숨진 남편에게서 받은 유일한 상속재산은 2층짜리 집 한 채였다. 3남매를 둔 이씨는 20대 초반에 미국으로 이민 가 고생하며 사는 장남 문모(54)씨가 눈에 밟혔다. 의류도매업을 하는 장남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돼 주려고 10여 년간 지하 골방에서 모자를 만들어 미국으로 보냈던 그였다. 다른 두 자녀를 설득해 집을 장남에게 줬다.

 

14년 뒤인 2012년 이씨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수술을 받았지만 신체 마비가 왔다. 6개월간 병원비만 3000만원이 들었다. 장남 문씨에게 연락했으나 “돈이 없다”는 야멸찬 답이 돌아왔다. 빈털터리였던 이씨는 장남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은 지난해 말 “문씨는 과거 부양료로 이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고 장래 부양료로 매달 2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씨는 ‘상속빈곤층 부모’로 분류된다. 배우자가 사망 시 남긴 전 재산을 자녀들에게 증여한 뒤 궁핍하게 산다는 의미다. 재산을 물려주고도 자녀로부터 버림받는 이른바 ‘신(新)고려장’의 피해자인 셈이다.본지가 전국 법원에서 2007~2013년 사이 선고된 부양료 청구사건 판결문 226건 중 부모·자식 간 소송 144건(원고 151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건 중 3건이 상속빈곤층 부모가 제기한 것이었다. 전체의 31.4%가 증여나 상속을 통해 재산을 미리 자식들에게 나눠 줬다. 또 부모들의 평균 나이는 77.1세였으나 월 생활비는 34만여원에 불과했다. 노령연금 등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이 94.4%로 절대 다수였고 이 중 36.1%는 단 한 명의 자녀에게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직계 혈족 간 부양의무를 규정한 민법 974조는 58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해 왔지만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혹여 못된 자식이 부양의무를 저버려도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며 참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화난 부모들이 법원을 찾기 시작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02년 68건이었던 부양료 소송은 지난해 250건으로 늘었다. 부모를 부양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묻는 통계청 설문조사 결과는 변화된 세태를 그대로 보여 준다. 2006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이 7.8%에서 2012년 13.9%로 배 가까이 늘어났다. “가족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답변은 2006년 63.4%로 과반을 넘었지만 2012년에는 33.2%로 줄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68) 소장은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대책 없이 늙어 버린 부모세대가 ‘같이 못 살겠으면 돈이라도 대라’며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며 “슬픈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자녀 교육이 노후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닌 이상 교육비나 결혼비용 등을 지원할 때 적당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다자녀 역설 … 부양 외면당한 부모들 평균 자녀 3.4명
[중앙일보] 입력 2014.06.17 02:57 / 수정 2014.06.17 06:31

 

소송 판결문 원고 151명 분석
형제 많을수록 책임감 적어
"왜 나만 모시나" 방관자 효과

평균 자녀 수 3.4명. 본지가 2007년부터 7년간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부모·자식 간 부양료 청구소송 판결문 144건의 원고 151명을 분석한 결과다. 많게는 9명까지 2명 이상의 다자녀를 키운 부모는 85.4%에 달했다. 자녀가 1명인 경우는 14.6%였다. ‘자식농사 잘 지으면 노후 걱정은 없다’는 통념과 달리 많은 자녀를 키웠어도 제대로 부양받지 못하는 이른바 ‘다자녀의 역설’이 나타나는 셈이다.

 

[그래프] 노후 부양소송 추이

 

◇ 자녀 많이 있지만=허모(83·여)씨는 2004년 남편과 사별했다. 1남4녀를 뒀지만 8000만원가량의 아파트를 포함한 남편의 재산은 모두 자신을 부양하기로 한 아들에게만 줬다. 막내 동생만 상속받은 걸 알게 된 딸들이 반발했지만 듣지 않았다. 딸들과는 연락마저 끊어졌다. 하지만 허씨가 2010년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병원비로 2년간 5000여만원이 넘게 들어가자 감당하기 힘들어진 아들이 허씨를 설득, 누나들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소송을 냈다.

 

대구가정법원은 2012년 9월 “자녀들은 각각 25만원씩 매월 부양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전문가들은 “형제가 많을수록 ‘부양하는 자녀’와 ‘부양하지 않는 자녀’ 간 편이 갈린다. 이게 다자녀의 역설을 초래하는 근본적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자녀가 많으면 일부 자녀에게 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이 편중되기 마련이고 이들이 “왜 나만 모셔야 되느냐”고 생각하는 순간 부양 중인 부모를 압박하거나 대리해 소송을 내게 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허씨 사례처럼 한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대신 재산을 몽땅 상속받았을 경우 다툼은 더 일어나기 쉽다.

 

지난해 가정법원에서 부양료 소송을 담당했던 법무법인 지우의 이현곤 변호사는 “부모와 함께 자식이 법정에 선 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직접 모시는 자녀가 부양비용까지 내게 되는 ‘독박’ 구조인 경우”라며 “재산은 공평하게 상속해 주는 추세가 일반화됐지만 부양의무는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 게 갈등의 씨앗이 된다”고 설명했다. 형제가 많으면 자녀 한 명 한 명이 느끼는 부양에 대한 책임감이 심리적으로 덜해진다는 점도 원인이다. 이 변호사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된다는 심리학의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가 부모 부양에도 나타난다”며 “자녀가 한 명인 경우는 오히려 나밖에 부양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강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경직된 ‘부양의무자 기준’도 소송 원인=부모는 자식들에게 부양의무를 지우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부양료 소송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울산에 사는 전모(89)씨는 2012년 자신의 딸과 사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래 기초생활수급자로서 45만원의 생계급여를 받고 있었는데 사위의 연금소득이 월 300만원이라는 사실이 관할 구청에 보고되면서 20만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딸과 사위가 함께 모자란 월 25만원을 내라고 판결했다. 전씨처럼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부양의무자 기준’의 경직 운영으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부모들이 제기한 소송은 전체 소송 중 6.9%를 차지했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는 “부모·자식 간 관계가 단절됐음에도 자녀에게 재산이 있거나 수입이 있으면 국가로부터 생활보호가 끊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양료 소송의 승소율은 83.3%(일부 승소 포함)로 높다. 일반 민사소송 승소율(59.8%)을 크게 웃돈다. 자녀들이 “소송을 낸 부모가 우리를 돌보지 않았다”고 주장(34.3%)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총 인정액수(44만여원)는 청구액수(113만여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녀 부양 책임을 소홀히 한 경우에는 부양료 산정 시 제 역할을 다한 부모와는 차등을 두는 게 일반적이라서다.

 

김성우 서울가정법원 공보관은 “부모가 다소 잘못이 있더라도 권리 남용에 해당될 정도로 크지 않다면 인정해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부양료 소송의 원인으로는 부모와 사이가 나빠진 경우(15.7%),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경우(11.8%) 등이 있었다. 기각된 경우는 부모가 자력이 있거나(48.1%) 자식이 이미 부양하고 있는데 더 부담하라고 한 경우(14.8%)가 많았다. [박민제 기자] 


아버지를 "○○씨"로 부르는 소송 법정
[중앙일보] 입력 2014.06.17 02:58 / 수정 2014.06.17 06:30


부모·자녀 극단적 싸움 막으려면
배우자 먼저 50% 상속도 방법
장기적으론 국가가 노후 책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양료 청구소송을 담당하는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부모·자식 간 소송이 벌어지는 법정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녀들이 부모를 무시하며 “○○씨”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단 법정에 서게 되면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소송 상대로서 증오의 감정만 남게 된다는 의미다. 간혹 부모 편을 드는 자녀와 아닌 자녀가 다툴 경우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진다. 재판에 앞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가사조사관을 보내면 욕설로 응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사 소송 전문가들은 “궁박한 처지에 내몰린 부모들이 막판에 내는 소송이라 그런지 이긴다 해도 큰 상처를 남긴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부모·자식 간 극단적인 싸움을 막기 위한 대책은 뭘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접근법을 제시한다. 일단 현재 경제력이 있는 부모들은 자식 부양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들의 노후 생계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자녀 교육비 등에 재산을 ‘올인’하거나 결혼비용 등으로 재산을 미리 증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요즘 서울 거주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 1인당 사교육비를 보통 100만원 이상 쓴다”며 “이러다 보니 자녀가 2명만 돼도 노후 준비를 전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작정 자식들에게 퍼줄 것이 아니라 노후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준다는 희생정신을 실천해 왔다”며 “하지만 이제는 ‘다 주지 마라’는 캠페인을 전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자녀들의 기본적인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현곤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는 “최소한의 도리조차 하지 않는 ‘먹튀’ 자식들이 상당수”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또 하나는 부양을 받지 못하는 부모를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노년을 자식들에게 맡기고 살 수 없는 시대가 된 만큼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며 “배우자 사망 시 상속분의 50%를 선취분으로 배우자에게 지급하는 쪽으로 민법 상속편 개정이 추진 중인데 이게 조속히 통과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센터장은 “재정 부담을 감안해야겠지만 당장 급한 부모들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넓게 보장하는 사회보장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