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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한시감상] '태어남과 죽음' - 서산대사(西山大師) 입적시

잠용(潛蓉) 2014. 6. 30. 08:47

 

'내가 걷는 발자취' (我行跡)


눈 밟고 밤길을 걸을 때도
구태여 어지럽게 걷지를 마라,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취는
마침내 뒷 사람의 길이 되리니...

 

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 서산대사 유시(遺詩) =

 

'태어남과 죽음' (生死)


태어남은 뜬구름 한 조각 이는 것이요
죽음 또한 뜬구름 한 조각 없어짐이라,
뜬구름 자체가 본시 실체가 없으니
태어남과 죽음, 오고 감도 그와 같은 것.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
= 서산대사 입적시(入寂詩) =
(한시 번역/ 잠용)

 

(김영동 명상음악 ‘마음이 허공 같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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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西山大師) 약력

 


서산대사 (西山大師 1520~1604)는 조선 중기의 승려요 승병장으로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최씨(完山崔氏), 이름은 여신(汝信).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이고, 별호를 백화도인(白華道人)·서산대사(西山大師)·풍악산인(楓岳山人)이라 하였다. 법명은 휴정(休政)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양부(養父) 이사증(李思贈)에게서 자랐는데, 과거에 낙방하자 지리산에 입산 숭인(崇仁)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뒤에 영관(靈觀)의 법을 이어 받았으며 1549년(명종 4) 승과에 급제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고 봉은사(奉恩寺) 주지를 지냈으나, 1556년 승직을 그만두고 금강산과·묘향산 등지를 편력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명에 따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전국에 격문을 돌리고 승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惟政)은 금강산에서,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승군을 모았고 자신은 문도 1,500명을 모아 이들을 지휘하여 명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성 싸움에 참가해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俊敎普濟登階尊者)라는 최고의 존칭과 함께 정2품 직위에 올랐다. 1594년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유정에게 승군 일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604년 입적하였다. 그는 교(敎)를 선(禪)의 과정으로 보아 선종에 교종을 포섭함으로써 선·교를 하나로 일원화하였으며, 유(儒)·불(佛)·도(道)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는 삼교통합론의 기원을 이룩하였다. 그의 제자는 1,000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 가운데 유정·언기(彦機)·태능(太能)·일선(一禪)의 4대 제자가 조선 후기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사후 해남 표충사(表忠祠) 등지와 여러 사찰에 배향되었다.

(서산대사 영정, 중앙박물관소장, 출처: 야후 백과사전)
(추가 자료 ☞ http://seosan.buddhism.org/sslife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