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Edgar Allan Poe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에드거 앨런 포 작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애드거 앨런 포 지음
저자: 에드거 앨런 포 / 국가: 미국 / 언어: 영어 / 장르: 단편 탐정소설 / 출판: 그레이햄 잡지 /게시일: 1841년 4월/
A.e.Poe (1809~1849)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은 1841년 그레이햄 잡지에 게재된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최초의 현대 탐정소설로 인식되었다. 포는 그의 "tales of ratiocination 추리 이야기들" 중의 하나로서 그것을 발표했다. E.T.A. Hoffmann의 작품 "Das Fräulein von Scuderi" (1819)와 볼테르(Voltaire) 작 "Zadig" (1747)은 포의 이야기와 일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지은 소설로 탐정이 등장하는 최초의 소설로 여겨진다. 탐정의 존재와 1인칭 화자, 밀실 미스터리, 그리고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과 최후에 범인을 밝혀내는 모습은 추리소설의 원형을 제공했다. 몰락한 귀족 출신인 어거스트 뒤팽이라는 탐정이 등장하는데 분석력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묘사된다. 함께 산책하는 친구가 하는 생각을 대충은 알아맞출 정도다. 뒤팽의 친구인 화자는 뒤팽과 함께 모르그 가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을 풀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스토리다.
용의자로 보이는 두 명이 다투는 소리를 이웃사람 열 명이 모두 들었으나, 증언이 제각각 엇갈린다. 무언가 화를 내면서 당황해하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는 프랑스인이라는 것에는 모두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다른 한 명에 대한 증언이 매우 난처하게 달랐다. 일단 날카로운 목소리만 듣고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으며 그들은 이탈리아인, 영국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프랑스인 증인 등이 저마다 자신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를 쓰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그런 상황에 그 날 은행에서 돈을 찾은 모녀에게 돈을 건네주던 은행원 아돌프 르 봉이 용의자로 불구속 입건된다. 하지만 뒤팽은 여러 신문기사를 살펴보고 거기에서 발견된 모순점과 직접 사건현장에 가서 얻은 증거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진상을 알아내게 되는데... [위키 백과]
//What song the Syrens sang, or what name Achilles assumed when he bid himself among women, although puzzling questions, are not beyond all conjecture. -- Sir Thomas Browne// “여신 싸이렌이 부른 노래나 또는 아킬레스가 여성 중에서 가정해서 말한 이름은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지만, 모두다 추측을 넘어선 것은 아니다.” - 토마스 브라운 경 -
[PART 1] The mental features discoursed of as the analytical, are, in themselves, but little susceptible of analysis. We appreciate them only in their effects. We know of them, among other things, that they are always to their possessor, when inordinately possessed, a source of the liveliest enjoyment. As the strong man exults in his physical ability, delighting in such exercises as call his muscles into action, so glories the analyst in that moral activity which disentangles. 분석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정신작용은 그 자체는 분석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이 거둔 효과에서 그 정체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에 대해 확실한 것 중의 하나는 그런 자질을 충분히 타고난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언제나 더없이 생기발랄한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 육체적 능력을 자랑하면서 근육을 움직여 하는 일에서 기쁨을 맛보듯이 분석가는 '해명'이라는 정신활동에 종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He derives pleasure from even the most trivial occupations bringing his talent into play. He is fond of enigmas, of conundrums, hieroglyphics; exhibiting in his solutions of each a degree of acumen which appears to the ordinary apprehension praeternatural. His results, brought about by the very soul and essence of method, have, in truth, the whole air of intuition. 분석가는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거기에서 기쁨을 찾는다. 그는 수수께끼, 까다로운 문제, 암호 풀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해명하는 타고난 재질을 발휘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가 내리는 결론은 방법상 가장 정당한 길을 밟아서 얻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견 보기에는 단지 직관(直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The faculty of re-solution is possibly much invigorated by mathematical study, and especially by that highest branch of it which, unjustly, and merely on account of its retrograde operations, has been called, as if par excellence, analysis. Yet to calculate is not in itself to analyze. A chess-player, for example, does the one, without effort at the other. 문제를 다시 풀어내는 능력은 수학적인 연구에 의해 훨씬 활기차게 나타난다. 특히, 단지 그것의 역행 조작을 활용한다는 것만으로 똑같이 탁월한 것처럼 분석학으로 불려왔다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계산하는 것 그 자체가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체스를 두는 사람도 계산을 한다. 그러나 분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It follows that the game of chess, in its effects upon mental character, is greatly misunderstood. I am not now writing a treatise, but simply prefacing a some-what peculiar narrative by observations very much at random; I will, therefore, take occasion to assert that the higher powers of the reflective intellect are more decidedly and more usefully tasked by the unostentatious game of draughts than by all the elaborate frivolity of chess. 따라서 체스를 두는 것이 지능 향상에 유용하다는 것는 대단히 큰 오해이다. 나는 지금 논문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조금 기괴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생각나는 대로 보잘 것 없는 의견의 일단을 피력하려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자리를 빌어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최고의 분석적 지능을 유효하고 유익하게 이용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쓸데없이 노력만 드는 체스보다는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드레프트가 거만을 떨지 않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In this latter, where the pieces have different and bizarre motions, with various and variable values, what is only complex, is mistaken (a not unusual error) for what is profound. The attention is here called powerfully into play. If it flag for an instant, an oversight is committed, resulting in injury or defeat.
The possible moves being not only manifold, but involute, the chances of such oversights are multiplied; and in nine cases out of ten, it is the more concentrative rather than the more acute player who conquers. In draughts, on the contrary, where the moves are unique and have but little variation, the probabilities of inadvertence are diminished, and the mere attention being left comparatively unemployed, what advantages are obtained by either party are obtained by superior acumen. 말이 움직이는 가능성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복잡하다, 그래서 간과할 기회는 두 배가된다. 그러므로 십중 팔구, 이기는 것은 머리가 명석한 쪽보다는 대개 주의력이 깊은 쪽이다. 그러나 드래프트에서는 이와 반대로 말의 움직임이 단순하고 변칙적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수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단순한 주의력은 비교적 이용되지 않고 남겨진다. 그래서 두쪽 중 이익을 얻는 쪽은 머리가 아주 총명한 쪽이 얻게 되는 것이다.
To be less abstract, let us suppose a game of draughts where the pieces are reduced to four kings, and where, of course, no oversight is to be expected. It is obvious that here the victory can be decided (the players being at all equal) only by some recherche movement, the result of some strong exertion of the intellect.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드레프트 게임을 상상해 보자. 말은 킹 4개로 줄이고, 물론 이 경우 실수는 없다고 치자. 이렇게 되면 승리는 (플레이어의 실력도 완전히 똑같다고 하고) 무언가 뛰어난 한 수에 의해, 다시 말하면 지능의 강력한 노력의 결과에 달려있음은 분명하다.
Deprived of ordinary resources, the analyst throws himself into the spirit of his opponent, identifies himself therewith, and not unfrequently sees thus, at a glance, the sole methods (sometimes indeed absurdly simple ones) by which he may seduce into error or hurry into miscalculation. 일반적 수법을 빼앗긴 분석가는 상대방의 의중(意中)으로 직접 뛰어들어 자신을 그의 마음과 일치시킨다. 그리고 한눈에 유일무이한 방법을 찾는다 (때로는 참으로 불합리하고 단순한 수인데도) 그것으로 그는 상대방을 오류로 유혹하거나 계산 착오를 서두르도록 몰아넣을 수 있다.
Whist has long been known for its influence upon what is termed the calculating power; and men of the highest order of intellect have been known to take an apparently unaccountable delight in it, while eschewing chess as frivolous. Beyond doubt there is nothing of a similar nature so greatly tasking the faculty of analysis. 휘스트는 오래 전부터 소위 계산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지성의 소유자까지도 체스는 시시하다고 경멸하면서도 휘스트에 대해서는 납득이 안갈 정도로 정신 없이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심할 필요 없이 이와 같은 천성으로 휘스트만큼 과도하게 분석 능력이 요구되는 게임도 없다.
The best chess-player in Christendom may be little more than the best player of chess; but proficiency in whist implies a capacity for success in all these more important undertakings where mind struggles with mind. When I say proficiency, I mean that perfection in the game which includes a comprehension of all the sources whence legitimate advantage may be derived. 기독교 국가에서 최고의 체스 명인은 최고의 체스 명인보다 약간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휘스트에서의 숙달은 마음이 마음과 싸우는 이와같은 중요한 일에 있어서 성공을 위한 능력을 의미한다. 내가 숙달을 말할 때, 나는 합법적인 잇점이 유도될 수 있는 모든 소스의 이해를 포함하는 게임에서 완벽을 의미한다.
These are not only manifold, but multiform, and lie frequently among recesses of thought altogether inaccessible to the ordinary understanding. To observe attentively is to remember distinctly; and, so far, the concentrative chess-player will do very well at whist; while the rules of Hoyle (themselves based upon the mere mechanism of the game) are sufficiently and generally comprehensible. Thus to have a retentive memory, and proceed by "the book" are points commonly regarded as the sum total of good playing. 이러한 급소는 숫자도 많지만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종종 평법한 이해력을 가지고서는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사고의 깊은 바닥에 놓여 있다. 빈틈 없이 살핀다는 것은 명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중력 있는 체스 명인이라면 휘스트도 잘 해낼 것이며; 호일의 규칙(그들도 단순한 메카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도 충분히 일반적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좋은 기억력을 가지는 것과 '책'에 의해 발전하는 것은 좋은 플레이어의 전부로서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점이다.
But it is in matters beyond the limits of mere rule that the skill of the analyst is evinced. He makes, in silence, a host of observations and inferences. So, perhaps, do his companions; and the difference in the extent of the information obtained, lies not so much in the validity of the inference as in the quality of the observation. The necessary knowledge is that of what to observe. 그러나 분석가의 기술은 단순한 규칙의 한계를 넘는 문제인 것은 명백하다. 그는 침묵 속에서, 관찰과 추론의 숙주를 만든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친구(숙주)가 얻은 정보의 범위에 있어서 차이는 추론의 유효성에서 뿐만 아니라 관찰의 품질에도 달려 있다. 필요한 지식은 무엇을 관찰했는가이다.
우리의 선수는 조금도 스스로를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게임이 목적이라고 해서, 그 게임 외부의 일로부터 추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상대의 얼굴 표정을 주의깊게 비교하면서, 자기 파트너의 용모를 검사한다. 그는 각자가 손에 있는 카드를 분배하는 모드를 고려하고; 종종 한장한장 트럼프를 세어가면서 보유자가 보내는 시선을 통해 하나하나 최고의 점수를 계산한다.
He notes every variation of face as the play progresses, gathering a fund of thought from the differences in the expression of certainty, of surprise, of triumph, or chagrin. From the manner of gathering up a trick he judges whether the person taking it, can make another in the suit. He recognizes what is played through feint, by the manner with which it is thrown upon the table. 그는 플레이가 확신하거나 놀라거나, 승리감, 분한 표현 속에 들어있는 차이에서 사고의 자료를 수집한다. 게임의 진행에 따라 그는 표정의 모든 변화를 주목한다. 판단 계략을 수집하는 방식에서 그는 그 사람이 그 카드를 가질 지, 다른 짝을 맞출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는 이 테이블에 던지는 태도와 시늉을 통해 연출되는 모든 것을 인식한다.
A casual or inadvertent word; the accidental dropping or turning of a card, with the accompanying anxiety or carelessness in regard to its concealment; the counting of the tricks, with the order of their arrangement; embarrassment, hesitation, eagerness, or trepidation--all afford, to his apparently intuitive perception, indications of the true state of affairs. 무심결에 또는 부주의한 말; 우연히 카드 하나를 떨어뜨리거나 뒤집혔을 때; 그것의 은폐와 관련하여 수반되는 걱정이나 후회 속의 부주의; 배열의 순서와 더불어 트릭의 계산; 수용, 망설임, 열망, 혹은 당황-- 이러한 모든 것이 명백하게 그의 직관적 지각력에 사태의 진모를 알려주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The first two or three rounds having been played, he is in full possession of the contents of each hand, and thence forward puts down his cards with as absolute a precision of purpose as if the rest of the party had turned outward the faces of their own. The analytical power should not be confounded with simple ingenuity; for while the analyst is necessarily ingenious, the ingenious man is often remarkably incapable of analysis. 처음 두세 번 라운드를 해본 그는 양 손에 내용의 전체를 파악하고 그때부터 그는 카드를 자기 목적대로 완벽한 정확성으로 지배한다. 마치 파티의 나머지는 자기 쪽으로 방향을 돌려 놓았다는 듯이. 분석력은 간단한 독창성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분석가는 반드시 독창적이지만, 독창적인 사람은 종종 분석에서 매우 무능력하다
건설적이거나 또는 결합하는 힘은 그로인한 독창성이 있음은 일반적으로 명백하다. 그로인한 골상학은(내는 잘못이라고 믿지만) 그것을 원시적 능력으로 가정하여, 두뇌 이외의 별도의 기관에 할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지능은 백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작가들 사이에 도덕문제가 일반적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Between ingenuity and the analytic ability there exists a difference far greater, indeed, than that between the fancy and the imagination, but of a character very strictly analogous. It will be found, in fact, that the ingenious are always fanciful, and the truly imaginative never otherwise than analytic. 독창성과 분석 능력 사이에는 공상과 상상력 사이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매우 엄격한 성격에서는 유사하다. 그것은 실제로 독창적인 것은 결코 분석보다 항상 공상적이며 진정한 상상은 분석 이외의 것은 결코 아니란 사실이 발견될 것이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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