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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추억의 가요] '대전부르스' (1959) - 안정애 노래

잠용(潛蓉) 2014. 8. 5. 22:01

 


'대전부르스'
작사 최치수/ 작곡 김부해/ 노래 안정애 (1959)

< 1 >
잘 있거라 나는 간다 離別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大田發 영시 오십분.
世上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보슬비에 젖어우는 木浦행 완행열차.


< 2 >
汽笛소리 슬피우는 눈물의 프랫트홈.
無情하게 떠나가는 大田發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盟誓했건만
눈물로 헤여지는 쓰라린 心情.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木浦行 완행열차~

 

(완행열차 사진 Hispace04)


안정애 - 대전부르스 (1987)


(대전 블루스- 조용필(1986)

 

☞ 대전 블루스 탄생배경(상)
☞ 대전 블루스 탄생배경(하)




"대전역에 있는 미완성 노래비를 아시나요?"

오마이뉴스ㅣ2007.09.23 19:33l최종 업데이트 2008.04.07 16:11l
임윤수 기자(zzzohmy)



▲  대전역광장에 있는 <대전부르스> 노래비는 아직껏 가수의 이름을 새겨 넣지 못한 미완성 노래비다.

ⓒ 임윤수


감춰져 있어 더 아름다운 이름

'가수 안정애'

드러남으로 점점 빛나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림으로 점점 참혹해지거나 죽을 놈이 되는 이름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선행을 하다 우연히 그 실체가 드러난 주인공의 이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초개처럼 자신의 목숨을 던진 애국지사들의 이름이야말로 이야기할수록 드러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빛난다. 그러나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점점 부끄러워지는 이름도 없지 않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파렴치범들의 이름이 그렇고, 입신양명과 호의호식을 위해서라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로 불리는 시대적 역적들, 비록 그 정도의 반역자는 아닐지라도 출세를 위해서라면 시류에 따라 입장과 처신을 달리하는 철새 정치인들의 실체가 그렇다.


독재로 군립하고 군정으로 민주주의를 폭압하였던 한 때의 권력자들도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이름이 함께 드러나는 걸 곤혹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을 조작해 가면서라도 조상이나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빛나는 반열에 남기기 위해 안달을 하지 않던가?


이름을 남기려 하는 건 어쩜 인간의 본능

그러나 어쩌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들이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건 어쩜 원초적 본능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개의 사람들은 그 원초적 본능,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하다.

 


▲  가수의 이름을 새겨 넣으려 붙였던 흰색 글씨 ‘가수 안정애’중 ‘가’자와 ‘애’자는 그동안의 비바람에 떨어져 나가고 ‘수 안정’ 자만 흔적처럼 남아 있다. ⓒ 임윤수

 

가끔은 그 원초적 본능이 왜곡되거나 부풀려져 씁쓸한 뒷말을 남기기도 하지만 엄연하게 존재하는 사실이지만 묵시적으로 이름 석자를 남기기 위한 백태 쯤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연말연시나 특정한 일이 있을 때,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사회시설 등에서 연출하는 백태의 이름 남기기 자선이 이젠 낯설지 않다. 벼룩만한 선심을 쓰면서 이름 석자 내지는 반반하지도 않은 얼굴 한번 기록에 남기겠다고 사진 찍기에 충실한 모습이 숨김없이 보도되는 걸 봐왔던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가수에게는 가장 영예일 수도 있는 노래비

언젠가부터 대중가요가 영향력 아닌 영향력을 가지며 여기저기에 노래비가 건립되고 있다. 좋은 일이다. 고장을 알릴 수 있고 고장을 대표하는 노랫말이 무시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했으니 응당 기념할 만한 노래비 하나 세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있어 자신이 불렀던 노래와 자신의 이름 석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세세손손 이어질 노래비로 제막된다는 것은 가장 영예일 수도 있다. 노래비라는 것이 자비나 자신의 욕심만으로는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는 한없이 커지며 뜻을 더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제막되는 어떤 노래비는 노래비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가수의 이름이 너무 크게 각인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대전으로 들어오는 관문 중 하나인 대전역 광장에도 큼지막하고 잘생긴 검정색 자연석에 노랫말이 각인된 노래비 하나가 세워져 있다.

 

대전역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릴 거라고 생각되는 노래, 떠나가는 사람의 심정을 콕콕 판박이로 찍어낸 듯 이별의 아픔과 헤어짐의 애틋함이 뚝뚝 배어날 것 같은 ‘대전부르스’의 노랫말이 까만 자연석에 또렷하게 암각되어 있는 노래비가 대전역광장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는 눈물에 플렛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대전 부르스!
헤어지고 떠나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애절하게 불렀고, 연탄불을 피우느라 가운데가 뻥 뚫려 있던 선술집 식탁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인가? 애간장이 끊어질 듯한 가수의 가창력이 아니더라도 헤어지는 사람들의 가슴에 이별의 가랑비가 되어 아픔을 더해 주기에 충분한 곡이며 노랫말이다.


'대전부르스' 노래비는 아직껏 미완성

그런데 이 노래비는 아직껏 가수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미완성 노래비로 남아있다. 노랫말을 만든 작사가 최치수와 곡을 만든 작곡가 김부해의 이름은 또렷한데 정작 사람들을 목메게 하였던 노래의 주인공, 가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야 할 부분은 아직 그대로다. 가수의 이름을 새겨 넣으려 붙였던 흰색 글씨 ‘가수 안정애’ 중에서 ‘가’자와 ‘애’자는 그동안 풍상에 떨어져 나갔고 ‘수 안정’ 자만 흔적처럼 바람에 펄럭이며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전부르스’는 가수 조용필이 부른 노래로 생각하고 있을 게다. 그러나 1980년대에 가수 조용필이 불러 크게 히트를 시켰던 대전부르스는 먼저 이미 안정애라는 여가수가 1959년에 불렀던 노래를 리바이벌, 다시 불러 히트시킨 것이다. 그러니 80년대 이후에 뒤늦게 '대전부르스'를 들었던 사람들이 이곡을 조용필의 노래로 기억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  대전부르스를 처음 부른 가수 안정애씨. 노래비에 이름 석자가 새겨짐으로 얻을 수 있는 가시적 명성을 거부함으로서 그의 양심과 의리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또렷해지며 흐르는 시간과 함께 그 무게와 가치를 더해 가리라 기대한다.  ⓒ 인터넷자료


1999년 대전역광장에 대전부르스 노래비가 건립되면서 추진위에서는 응당 대전부르스를 처음으로 부른 안정애의 이름만을 새겨 넣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에겐 가수로서의 영예며 세세손손에 이어 자신의 이름을 빛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안정애씨의 거부로 지금껏 대전부르스 노래비에는 가수의 이름이 공백상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노래비를 건립하면서 추진위 측에서 안정애씨의 이름만을 새겨 넣는다고 하였을 때 안정애씨는 후배가수 조용필과 함께 새겨 넣을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바이벌과 리메이크가 있을 수 있는 가요계에서 그때마다 가수의 이름을 새겨 넣게 되면 노래비의 의미가 퇴색될 뿐 아니라 원칙 또한 모호해지니 노래비를 건립하면서 최초의 가수 이름을 넣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후배가수인 조용필과 함께 넣을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도 넣지 말라는 안정애의 단호한 뜻이 있어 지금껏 이름을 새겨 넣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남긴 가수 안정애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 크게 히트시킨 후배가수 조용필의 공을 고스란히 지켜주고 싶은 숭고한 마음, 남의 공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떳떳한 기개가 돋보인다. 가수 안정애가 남의 공도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고 하는 말법의 시대에 던지는 묵언의 항변이며 무서운 채찍이라 생각된다. 이것이야말로 노래비 자체보다 얼마나 인간적이고 가슴 뭉클하게 하는 숨은 이야기인가? 없는 공적도 조작해 만들고, 있는 과오도 변조하거나 왜곡해 없애버리면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기거나 오명을 벗으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을 향한 일침의 호령처럼 들리지 않는가? 자신이 불렀을 때보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대전불루스를 알게 한 후배가수의 공덕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명성조차도 기꺼이 포기한 떳떳한 자기 주장이기에 이 얼마나 숭고한 양심의 외침인가?



▲ 추석명절을 이틀 앞둔 9월 23일 대전역 광장, 대전부르스 노래비 앞에서는 가수 박승란이 귀성객들을 위해 애잔하게 대전부르스를 부르고 있었다. ⓒ 임윤수

 
추석명절에 고향집을 찾느라 많은 사람들이 대전역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9월 23일 오전, 아직 안정애라는 이름 석자를 새기지 못해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대전역광장 대전부르스 노래비 앞에서는 대전의 가수 박승란이 귀성객들을 위해 청승맞도록 애잔하게 대전부르스를 부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거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수 안정애’는 노래비에 이름 석자가 새겨짐으로 얻을 수 있는 가시적 명성을 거부함으로써 그의 양심과 의리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또렷해지며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무게와 그 가치를 더해 가리라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