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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명작단편]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1839) - E. A. Poe

잠용(潛蓉) 2014. 10. 5. 18:38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1839)
by Edgar Allan Poe

(어셔 가의 침몰)

  

“Son coeur est un luth suspendu;
Sitot qu'on le touche il resonne”.
-De Beranger.

"그의 마음은 멈춘 루우트와 같아서
건드리면 즉시 반응한다"
- 드 베랑제(Pierre-Jean de Béranger 1780~1857 프랑스 시인)

 


DURING the whole of a dull, dark, and soundless day in the autumn of the year, when the clouds hung oppressively low in the heavens, I had been passing alone, on horseback, through a singularly dreary tract of country; and at length found myself, as the shades of the evening drew on, within view of the melancholy House of Usher.

그해 가을, 어느 흐리고 어둡고 조용한 날, 구름이 하늘에 우울하고 낮게 걸려 있을 때, 나는 하루종일 이상하도록 쓸쓸한 시골길을 혼자 말을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 노을이 아래로 내려올 무렵 음침한 배경 속에서 "어셔 가"를 발견했다.

 

I know not how it was — but, with the first glimpse of the building, a sense of insufferable gloom pervaded my spirit. I say insufferable; for the feeling was unrelieved by any of that half-pleasurable, because poetic, sentiment, with which the mind usually receives even the sternest natural images of the desolate or terrible.

나는 왜 그런지 몰랐다 -- 그 건물의 첫 인상으로 나는 내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참을 수 없는 침울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느낌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시적으로나, 감상적인 마음으로는 황량하거나 무서운 자연의 이미지도 언제나 반쯤은 유쾌한 감정을 받게되기 때문이다.

 

I looked upon the scene before me — upon the mere house, and the simple landscape features of the domain — upon the bleak walls — upon the vacant eye-like windows — upon a few rank sedges — and upon a few white trunks of decayed trees — with an utter depression of soul which I can compare to no earthly sensation more properly than to the after-dream of the reveller upon opium — the bitter lapse into common life — the ­hideous dropping off of the veil.

나는 내 앞에 있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 단순한 건물, 그리고 사유지의 단조로운 풍경 -- 적막한 담 -- 텅빈 눈알 같은 창문-- 몇 줄의 사초(莎草) -- 그리고 썩은 몇 그루 흰 나무 등걸들 -- 아편으로 인한 향연의 꿈에서 깨어난 뒤나 -- 일상 생활에서의 쓰디쓴 실수 -- 끔찍한 일의 베일이 벗겨질 때보다 더 적절히 이 세상의 감정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는 영혼의 완전한 침울 상태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There was an iciness, a sinking, a sickening of the heart — an unredeemed dreariness of thought which no goading of the imagination could torture into aught of the sublime. What was it — I paused to think — what was it that so unnerved me in the contemplation of the House of Usher? It was a mystery all insoluble; nor could I grapple with the shadowy fancies that crowded upon me as I pondered. I was forced to fall back upon the unsatisfactory conclusion, that while, beyond doubt, there are combinations of very simple natural objects which have the power of thus affecting us, still the reason, and the analysis, of this power, lie among considerations beyond our depth.

그리고 거기엔 싸늘함이 있었다, 침몰, 심장의 역겨움 - 만회할 수 없는 생각의 쓸쓸함, 장엄의 어떤 것으로 고문할 수 있는 상상력의 격려 없이, 무슨 일인가 - 나는 생각을 중지했다 -- "어셔 가"의 명상에서 나를 그토록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미스터리로 모두가 풀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숙고할 때 나에게 몰려드는 희미한 공상으로도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불만족스런 결론으로 뒤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의심할 필요없이 매우 간단한 자연물의 조합들이 있었다. 우리에게 그런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진, 아직도 그 이유는, 그 분석은, 그 힘의, 우리의 깊이를 초월한 고려 가운데 놓여있었다.


It was possible, I reflected, that a mere different arrangement of the particulars of the scene, of the details of the picture, would be sufficient to modify, or perhaps to annihilate its capacity for sorrowful impression; and, acting upon this idea, I reined my horse to the precipitous brink of a black and lurid tarn that lay in unruffled lustre by the dwelling, and gazed down — but with a shudder even more thrilling than before — upon the re-modelled and inverted images of the gray sedge, and the ghastly tree-stems, and the vacant and eye-like windows.

그것은 가능했다. 그림의 세부나 독특한 장면을 단순히 다른 배열로 반영하는 것은. 수정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림의 세부 장면의 특별한 분위기를, 슬픈 인상을 위해 그 용량을 줄이는 것,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나는 내 말의 고삐를 매었다. 거주지 곁에 있는 조용한 재계소(齋戒所) 안의 검고 파란 호수 가장자리에. 그리고 아래를 응시했다 -- 그러나 나는 이전보다 더 큰 전율로 벌벌떨었다. -- 그것은 개조된 건물과 물 속에 거꾸로 비친 회색빛 사초의 이미지, 그리고 무서운 나무 등걸과 텅 비어있는 눈알 같은 창문 때문이었다.

 

 

Nevertheless, in this mansion of gloom I now proposed to myself a sojourn of some weeks. Its proprietor, Roderick Usher, had been one of my boon companions in boyhood; but many years had elapsed since our last meeting. A letter, however, had lately reached me in a distant part of the country — a letter from him — which, in its wildly importunate nature, had admitted of no other than a personal reply. The MS. gave evidence of nervous agitat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의 그 저택에서, 나는 지금 자신에게 몇 주 동안의 체류를 제안했다. 소유자 로데릭 어셔는 어린시절 나의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러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여러 해가 경과했다. 그러나 최근에 한 통의 편지가 먼 시골에 있는 나에게 도착했다. - 그에게서 온 편자가 -- 그건, 거칠고 귀찮게 하는 성격으로 다른 것은 안되고 개인적 대답만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The MS)은 신경 교란의 증거를 주었다.

 

The writer spoke of acute bodily illness — of a pitiable mental idiosyncrasy which oppressed him — and of an earnest desire to see me, as his best, and indeed, his only personal friend, with a view of attempting, by the cheerfulness of my society, some alleviation of his malady. It was the manner in which all this, and much more, was said — it was the apparent heart that went with his request — which allowed me no room for hesitation — and I accordingly obeyed, what I still considered a very singular summons, forthwith.

발신자는 편지에서 예민한 육체적 질병에 대해 말했다. -- 그를 억압하고 있는 비참한 정신적 특이체질에 대해서 -- 그리고 나를 만나고싶다는, 간절히. 참으로, 그의 유일한 개인 친구로서, 시도한다는 관점으로, 우리 멤버의 기쁨으로, 그의 병에 대한 약간의 완화 차원에서. 이 모든 것은 그의 매너였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이 말했다 -- 그것은 분명한 내 마음이었다. 그의 요청대로 내가 간다는 것은 - 나에게 주저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대로 복종했다. 나도 지금까지 매우 특이한 호출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즉시.

 

Although, as boys, we had been even intimate associates, yet I really knew little of my friend. His reserve had been always excessive and habitual. I was aware, however, that his very ancient family had been noted, time out of mind, for a peculiar sensibility of temperament, displaying itself, through long ages, in many works of exalted art, and manifested, of late, in repeated deeds of munificent yet unobtrusive charity, as well as in a passionate devotion to the intricacies, perhaps even more than to the orthodox and easily recognisable beauties, of musical science.

비록 소년들로서, 우리는 친밀하게 사귀었지만 나는 사실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의 준비는 항상 과도했고 습관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가족이 매우 유서깊은 가족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고귀한 예술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기질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익히기 위해,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축하로 증명되었다. 아낌 없이 주는 자선(慈善)의 반복된 업적, 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자선, 동시에 복잡한 일에서 정렬적인 헌신, 아마 정통과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미와 음악에 대한 교양보다 더 많은 것을 쌓아왔을 것이다.

 

I had learned, too, the very remarkable fact, that the stem of the Usher race, all time-honored as it was, had put forth, at no period, any enduring branch; in other words, that the entire family lay in the direct line of descent, and had always, with very trifling and very temporary variation, so lain. It was this deficiency, I considered, while running over in thought the perfect keeping of the character of the premises with the accredited character of the people, and while speculating upon the possible influence which the one, in the long lapse of centuries, might have exercised upon the other —

나는 또 매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셔 종족의 가계는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영원한 명예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시대에 불구하고, 영구적으로 모든 지손(枝孫)들에게까지, 다시 말하면 모든 가족이 직계 후손으로 되었다. 그리고 항상 아주 사소한 것도 아주 임시적인 변화도 그랬다. 사람들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전제의 성격을 완전히 유지하려는 생각에서 계승되는 동안, 이런 일이 이토록 부족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의 긴 시간의 경과 속에서, 한 가지가 다른 것에 작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영향을 고려하는 동안 --

 

It was this deficiency, perhaps, of collateral issue, and the consequent undeviating transmission, from sire to son, of the patrimony with the name, which had, at length, so identified the two as to merge the original title of the estate in the quaint and equivocal appellation of the “House of Usher” — an appellation which seemed to include, in the minds of the peasantry who used it, both the family and the family mansion.

그것은 이토록 어렵고 아마, 서로 연관된 난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병행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위의 원래 명칭을 병합하여 두 가지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또 그것은 결과적으로 정통의 계승, 즉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이름 그대로 부계사회의, 마침내, 어셔 가와 같은 이중적인 명칭의 기이하고 모호한 매력, 즉 "어셔"라는 한 개의 명칭이 가족과 그 가족의 저택 모두에게 사용하는 소작인(小作人)들의 마음에 포함되는 것처럼 보였다. [2부에 계속]



Chamber of sou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