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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문가] 한국 숭례문 등 문화재 복원은 '정치적 쇼'

잠용(潛蓉) 2014. 11. 29. 07:47

[문화재 관리가 국력]
"수백년전 톱질 방식을 그대로? 숭례문 복원은 쇼"

국민일보 | 로마·피렌체  | 입력 2014.11.29 03:12 


이탈리아 전문가 스티베르크 교수 ‘과거와 똑같이’는 복원 아닌 복제
"수백년 전에나 하던 톱질 방식을 왜 하나요? 돌과 나무, 쇠를 다듬는 최신 기술이 얼마든지 있는데. 결국은 보여주기식 '쇼' 아니었나요?" 지난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피렌체의 국립복원연구소(OPD)에서 만난 페테르 스티베르크(60·사진) 교수의 입에서 '숭례문' 복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숭례문 복원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보존 현장에서 찾은 국내 문화재 복원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27년간 목재 복원을 하고 있는 스티베르크 교수는 숭례문 복원이 근현대 이탈리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정치적 복원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이탈리아도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이나 피렌체, 베네치아 등의 유력자들은 정권을 잡은 뒤 업적 홍보용으로 문화재 복원 사업을 벌였다. 그는 "문화재 복원을 할 때는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정부의 업적 홍보를 위해 섣불리 했다"면서 "숭례문 복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빨리 빨리'와 '원형 복원'을 강요하는 우리 국민들의 인식도 복원에 애를 먹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숭례문은 2년이란 짧은 준비 기간에 복원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반면 1966년 피렌체 대홍수로 피해를 입었던 조르조 바사리의 회화는 최근 OPD에서 복원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복원 기술이 없어 이 작품은 피해를 입은 상태로 보관됐다. 반세기 가까이 흘러 기술력이 발전하자 복원에 들어간 것이다.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로마의 고등보존복원연구소(ISCR) 국립복원학교(SCUOLA)의 마리솔 발렌주엘라 목재·조각 부문 교수는 "회화의 경우 자연 채광을 기반으로 복원해야 하기 때문에 해가 지면 복원 작업도 중단돼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문화재 복원은 속도전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광화문 복원 과정은 외국 전문가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보수 기술자가 지난 4월 현판의 송진을 제거하고 실금이 간 부위에 안료를 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숭례문. /국민일보DB

 

'과거와 똑같이 복원하는 것은 복제에 불과하다'는 문화재 보존·복원 철학도 눈길을 끈다. 스티베르크 교수는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목재 조각상에 색을 덧입히면서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 100% 제거 가능한 안료를 사용 중"이라고 말했다. 복원을 알아볼 수 있도록 색상이나 붓 터치 등에서 차이를 주기도 했다. 발렌주엘라 교수는 "멀리서 보면 그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지만 전문가들이 가까이서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속도전은 불필요하다는 기류에도 불구하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2년 만에 97%가 복구됐다. 숭례문처럼 빠르게 복구가 진행됐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진 이전의 성당 내부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다는 점이다.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한 SCUOLA는 연구 사례, 역사적 사료, 복원한 사람과 기간, 도구, 재료, 용액까지 모두 기록한다. OPD도 마찬가지다. 기록한 내용은 일반에도 공개한다. OPD의 홍보담당자 크리스티나 임프로타씨는 "기술은 기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상세히 분석해 출판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우리 국내 문화재는 역사적 사료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존·복원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탁경백 학예연구관은 28일 "일제시대 일본이 유일하게 잘한 것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기록을 남겨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립문화재복원연구소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피렌체·로마=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