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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단편소설] '큰물 진 뒤' (1925) - 최 서해(학송) 작

잠용(潛蓉) 2015. 1. 2. 09:32

 

[단편] “큰물 진 뒤” (1925) / 최 서해 

 

 

 

< 1 >

닭은 두 홰째 울었다. 모진 비바람 속에 울려오는 그 소리는 별다른 세상의 소리 같았다.

비는 그저 몹시 퍼붓는다. 급하여 가는 빗소리와 같이 천장에서 새어 내리는 빗방울은 뚝뚝, 뚝뚝 먼짓구덩이 된 자리 위에 떨어진다. 그을음과 빈대 피에 얼룩덜룩한 벽은 새어 내리는 비에 젖어서 어스름한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발 같다. '우우'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몰리는 빗발은 간간이 '쏴―' 하고 서창을 들이쳤다.

 

“아이구 배야! 익힝 응 아구 나 죽겠소!”

윤호의 아내는 몸부림을 치면서 이를 빡빡 갈았다. 닭 울 때부터 신음하는 그의 고통은 점점 심하여졌다. 두 손으로 아랫배를 누르고 비비다가도 그만 엎드러져 깔아놓은 짚과 삿자리를 박박 긁고 뜯는다. 그의 손가락 끝은 터져서 새빨간 피가 삿자리에 수를 놓았다.

 

“애고고! 내 엄마! 응응, 하이구 여보!”

그는 몸을 벌꺽 일어서 윤호의 허리를 껴안았다. 윤호는 두 무릎으로 아내의 가슴을 받치고 두 팔에 힘을 주어서 아내의 겨드랑이를 추켜 안았다. 윤호에게는 이것이 첫 경험이었다. 어머니며 늙은 부인들께서 말로는 들은 법하나 첨으로 당하는 윤호의 가슴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두근두근하였다. 그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침통과, 우울과, 참담과 공포가 있을 뿐이었다. 미구에 새 생명을 얻으리라는 기쁨은 이 찰나에 싹도 볼 수 없었다.

 

“여보! 내가 가서 귀둥녀 할미를 데려오리다, 응.”

“아니 여보! 아이구!”

아내는 윤호의 허리가 끊어지도록 안았다. 그의 낯은 새파랗게 질렸다. 아내의 괴로움만큼 윤호도 괴로웠다. 아내가 악을 쓸 때면 윤호도 따라 힘을 썼다. 아내가 몸부림을 하고 자기의 허리를 꽉 껴안을 때면 윤호도 꽉 껴안았다.

 

윤호는 누울 때 지나서부터 몹시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고 옛적 산파로 경험이 많은 귀둥녀 할미를 불러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내의 고통은 일각일각 괴로워 가는데 보아 줄 사람은 하나도 없고, 게다가 비바람이 어떻게 뿌리는지 촌보를 나아갈 수 없어서 주저거렸다. 윤호는 아내의 생명이 끊기고야 말 것같이 생각되었다. 어수선한 짚자리 위에서 뻐둑뻐둑하다가 어린 목숨을 낳다 말고 두 어미 새끼가 뒈지는 환상이 보였다. 따라서 해산으로 죽은 여러 사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내를 더욱 꽉 껴안았다. 마음대로 하는 수 있다면 아내의 고통을 나누고 싶었다. 괴로운 신음 소리와 같이 몸부림을 탕탕 하는 것은 자기의 뼈와 고기를 싹싹 에어 내는 듯해서 차마 볼 수 없었다.

 

“끽! 응! 으응! 윽! 아이구! 억억.”

아내는 더 소리를 못 지른다. 모들뜬 두 눈은 무엇을 노려보는 듯이 똥그랗게 되었다. 숨도 못 내쉬고 이를 꼭 깨물고 힘을 썼다.

“으악!”

퀴지근한 비린 냄새가 흐르는 누런 불빛 속에 울리는 새 생명의 소리! 어둔 밤 비바람 소리 속의 그 소리! 윤호는 뵈지 않는 큰 물결에 싸이는 듯하였다.

“무에요!”

신음 소리를 그치고 짚자리 위에 누웠던 아내는 머리를 갸우드름하여 사내를 쳐다보았다. 새빨간 핏방울을 번질번질 쏟친 볏짚 위에 떨어진 어린 생명은 꼼지락꼼지락하면서 빽빽 소리를 질렀다. 윤호는 전에 들어 두었던 기억대로 푸른 헝겊으로 탯줄을 싸서 물어 끊었다.

 

“응! 자지가 있네! 히히히.”

윤호는 때오른 적삼에 어린것을 싸면서 웃었다.

“흥, 호호!”

아내는 웃으면서 허리를 구부정하여 어린것을 보았다. 이 찰나, 침통과 우울과 공포가 흐르던 이 방 안에는 평화와 침묵이 흘렀다. 윤호는 무엇을 끓이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우우 쏴아―' 빗발은 서창을 쳤다. 젖은 벽에서는 흙점이 철썩철썩 떨어진다. 어디서 급한 물소리와 같이 수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봄비 속에 개구리 소리같이 점점 높이 들렸다. 윤호는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귀를 귀울였다.

 

“윤호! 윤호! 방강[提防]이 터지니 어서 나오!”

그 소리는 윤호에게 청천의 벽력이었다. 그는 튀어나갔다. 이 순간 그의 눈앞에는 퍼런 논판이 떠올랐다. 그 밖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마당 앞으로 몰려 지나가는 무리에 뛰어들었다. 어디가 하늘! 어디가 땅! 창살같이 들이는 비! 몰려오는 바람! 발을 잠그는 진창! 그 속에서 고함을 치고 어물거리는 으슥한 그림자는 수천만의 도깨비가 횡행하는 것 같다.

 

< 2 >

모든 사람들은 침침 어둔 빗속을 헤저어서 마을 뒤 방축으로 나아갔다. 더듬더듬 방축으로 기어올랐다. 물은 보이지 않았다. 손과 발로 물 형세를 짐작할 뿐이었다. '꽐꽐 철썩 출렁 꽐꽐' 하는 물소리는 태산을 삼키고 대지를 깨칠 듯하다.

 

“이거 큰일났구나!”

“암만해두 넘겠는데!”

이입 저입으로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위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력의 박약을 탄식하는 듯하였다.

 

“자! 이러구만 있겠소? 그 버들을 찍어라! 찍어서 여기다가 눕히자!”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가만있자! 한짝에는 섬[叺]에다가 돌을 넣어다가 여기다가 막읍시다.”

“떠들지 말구 빨리 합시다.”

'탁- 탁-' 나무 찍는 도끼 소리가 났다. 한편에서는 섬을 메어 올렸다. 윤호는 찍은 나무를 끌어다가 가장 위태로운 곳에 뉘었다. 빗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어둠 속에서 흥분된 모든 사람들은 죽기로써 힘을 썼다. 이 방축에 이 마을 운명이 달렸다. 이 방축 안에 있는 논과 밭으로 이백이 넘는 이 마을 집이 견디어 간다. 그런 까닭에 해마다 가을 봄으로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방축에 품을 들여서 천만년 가도 허물어지지 않게 애를 써왔다. 그뿐만 아니라 이리로 바로 쏠리던 물길을 방축 건너편 산 아래로 돌리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쌓은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작년 봄에 이 마을 밖으로 철도가 되었다. 철도는 이 마을 뒷내를 건너게 되어서 그 내에 철교를 놓았다. 그 때문에 저편 산 아래로 돌려 놓은 물은 철교를 지나서 이 마을 뒤 방축을 향하고 바로 흐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촌민들은 군청, 도청, 철도국에 방축을 더 굳게 쌓아 주든지, 철교를 좀 비스듬히 놓아서 물길이 돌게 하여 달라고 진정서를 여러 번이나 들였으나 조금의 효과도 얻지 못하였다. 작년 여름 물에 이 방축이 좀 터졌으나 호소할 곳이 없었다. 그 뒤로 비만 내리면 촌민들은 잠을 못 자고 방축을 지켰다.

 

“이- 이- 이게, 어찐 일이냐? 응!”

“터지는구나! 이키 여기는 벌써 터졌네!”

“힘을 써라! 힘을 써라! 이게 터지면 우리는 죽는다. 못 산다!”

초초분분 불어가는 물은 콸콸 소리를 치면서 방축을 넘었다. 바람이 우우 몰려왔다. 비는 여러 사람의 낯을 쳤다. 모두 흑흑 느끼면서 낯을 가리고 물을 뿜었다.

 

쏴- 꽐꽐꽐.

“여기도 또 터졌구나!”

모두 그리로 몰렸다. 아래를 막으면 위가 터지고 위를 막으면 아래가 터진다. 터지는 것보다 넘치는 물이 더 무서웠다.

“이키, 여기 발써 물이 길[丈]이나 섰구나.”

거무칙칙하여 보이지 않는 논판에서 누가 부르짖었다.

 

이제는 누구나 물을 막으려는 사람은 없다. 어둠 속에 히슥한 그림자들은 창살 같은 빗발을 받고 가만히 서 있다. 모진 바람이 한바탕 지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굳센 물결이 무릎을 잠그고 궁둥이를 잠글 때 부르르 떨었다.

윤호도 방축을 넘는 물 속에 박은 듯이 서 있었다. 꺼먼 그의 눈앞에는 물 속에 들어가는 논이 보였다. 떠내려가는 집들이 보였다. 아우성치는 사람이 보였다- 이 환상을 볼 때 그는 으응 부르짖으면서 방축에서 내려뛰었다. 방축 아래 내려서니 살같이 흐르는 물이 겨드랑이를 잠근다.

 

그는 돌인지 물인지 길인지 밭인지 빠지고 거꾸러지면서 집 마을을 향하고 뛰었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물을 헤저어 나가는 아우성 소리가 빗소리와 같이 요란하건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물 한 모금 못 먹고 짚자리 위에 쓰러진 두 생령의 환상이 보일 뿐이다. 그는 환상을 보고 떨 뿐이다. 그 환상은 누런 진흙물 속에 쓰러진 집에 치어서 킥킥 버둥질치는 형상으로도 나타났다. 그는 주먹을 부르쥐고 이를 악물었다. 윤호는 자기 집 마당에 다다랐다.

 

불빛이 희미한 창 속에서 어린애 울음이 들렸다. 창에 비친 불빛에 누릿한 물은 흙마루를 지나 문턱을 넘었다.

윤호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방에는 물이 흥건히 들었다. 아내는 물 속에서 애를 안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물은 방 안에 점점 들어온다. 어디서 '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뒷벽이 뚫어져서 물이 디미는 소리였다. 윤호는 아내를 둘러업고 아기를 안았다. 이때 초인간적 굳센 힘이 그를 지배하였다. 그는 문을 차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어느새 물은 허리에 잠겼다. 물살이 어떻게 센지 소 같은 장사라도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는 쓰러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섰다가는 쓰러지면서 물 속을 헤저어 나갔다. 팔에 안은 것이 무엇이며 등에 업은 것이 누구라는 것까지 이 찰나에 의식지 못하였다. 의식적으로 업고 안은 것이 이젠 기계적으로 놓지 않게 되었다.

 

< 3 >

동이 텄다. 사방은 차츰 훤하여졌다.

거무칙칙하던 구름이 풀리면서 퍼붓는 듯하던 비가 실비로 변하더니 이제는 안개비가 되었다. 바람도 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마을 앞 조그마한 산에 몰렸다. 밝아가는 새벽빛 속에 최최해서 어물거리는 사람들은 갈 바를 몰라한다. 누구를 부르는 소리, 울음 소리, 신음하는 소리에 수라장을 이루었다.

 

윤호는 후줄근한 풀 위에 아내를 뉘었다. 어린것도 내려놓았다. 참담한 속에서 고고성을 지른 붉은 생령은 참담한 속에서 소리 없이 목숨이 끊겼다. 찬 비와 억센 물에 쥐어짠 듯이 된 윤호 아내는 싸늘한 어린것을 안고 흑흑 느낀다. 윤호는 아무 소리 없이 붙안고 우는 어미 새끼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의 가슴은 저리다 못하여 무엇이 뭉킷 누르는 듯하고, 머리는 띵한 것이 눈물도 나지 않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날은 다 밝았다. 눈앞에 뵈는 것은 우뚝우뚝한 산을 남겨 놓고는 망망한 물판이다. 어디가 논? 어디가 밭? 어디가 집? 어디가 내? 누런 물이 세력을 자랑하는 듯이 좔- 좔- 흐른다. 널쪽, 궤짝, 짚가리, 나뭇단, 널따란 초가 지붕… 온갖 것이 둥둥 물결을 따라 흘러내린다. 저편 버드나무 속으로 흘러나오는 집 위에는 계집 같기도 하고 사내 같기도 한 사람 서넛이 이편을 보고 고함을 치는지 손을 내두르고 발을 구른다. 갠지 돼지인지 자맥질쳐서 이리로 나온다. 사람 실은 지붕은 슬슬 내리다가 물 위에 머리만 봉긋이 내놓은 버드나무에 닿자마자 그만 물 속에 쑥 들어가더니 다시 떠오를 때에는 여러 조각이 났다. 그 위에 사람의 그림자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저편에서도 두엇이나 탄 지붕인지 짚가리인지 흘러갔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것을 건지려는 사람은 없다.

윤호의 곁에 있는 한 오십 되어 뵈는 늙은 부인은,

 

“에구 끔찍해라! 에구 내 돌쇠야! 흑흑.”

하면서 가슴을 치고 땅을 친다. 어떤 젊은 부인은 어린것을 업고 흑흑 울기만 한다. 사내들도 통곡치는 사람이 있다. 밥 달라고 우는 어린것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멍하니 서서 질펀한 풀판을 얼없이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지르르한 풀판에 앉아서 담배만 풀썩풀썩 피우기도 한다. 풀렸다가는 엉키고 엉켰다가는 풀리는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면서 둔탁한 굵은 볕발이 누른 무지개 모양으로 비치었다. 안개비도 개었다.

 

“여보! 울면 뭘 하우, 그까짓 죽은 것 생각할 게 있소? 자- 울지 마오, 산 사람은 살아야 안 쓰겠소?”

이렇게 아내를 위로하나 그도 슬펐다. 물 한 모금 못 먹인 아내를 생각하든지 제 명에 못 죽은 아들! 현재도 현재려니와 이제 어디를 가랴? 일년내 피와 땀을 짜 바쳐서 지은 밭이 하룻밤 물에 형적조차 남기지 않았으니 이 앞일을 어찌하랴? 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펐다. 슬픔에 슬픔을 쌓은 그 슬픔은 겉으로 눈물을 보내지 않고 속으로 피를 짰다. 그는 어린 주검을 소나무 아래 갖다 놓고 솔잎으로 덮어 놓았다. 그 주검을 뒤 두고 나오니 알 수 없이 발이 무거웠다. 이른 아침 때가 되어서부터 윤호의 아내는,

 

“아이구 배야! 배야!”

하고 구른다. 어물어물하는 사람은 많건만 모두 제 설움에 겨워서 남의 괴로움을 돌볼 새가 없다.

“허허, 이것 안되었군! 산후에 찬 물을 건네구 사람이 살 수 있겠소! 별수 없으니 어서 업구서 너멋마을로 가보.” 웬 늙은이가 곁에 와서 구르는 아내를 붙잡아 주면서 걱정한다.

 

윤호는 아내를 업었다. 새벽에는 아내를 업고 애를 안고 그 모진 물속을 헤저어 나왔건만, 인제는 일 마장도 갈 것 같지 못하다. 더구나,

“아이구 배야!”

하면서 두 어깨를 꽉 끌어당기면서 몸을 비비 틀면 허리가 휘천휘천하고 다리가 휘우뚱거려서 어쩔 수 없다.

 

그는 땀을 흘리면서 조그마한 고개를 넘어왔다. 거기는 십여 호나 되는 조그마한 동리가 있다. 벌써 물에 쫓긴 사람들은 집집이 몰려들었다. 윤호는 어느 집 방을 겨우 얻어서 아내를 뉘어 놓았다. 누가 미음을 쑤어다 주는 것을 먹였으나 아내는 한 모금 못 먹고 그저 신음한다. 의원을 데려다가 침, 뜸, 약… 힘 자라는 데까지 손을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낮부터 비는 또 쏴-르륵 내렸다.

 

< 4 >

괴로운 사흘은 지나갔다.

집을 잃고 밭을 잃고 부모를 잃고 처자를 잃은 무리들은 거기서 삼십 리나 되는 읍으로 나갔다. 윤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네들은 읍에 나가서 정거장의 노동자, 물지게꾼, 흙질꾼, 구들 고치는 사람… 이렇게 그날그날을 보내었다. 어떤 자는 이집 저집으로 돌아다니면서 밥을 빌어먹었다. 윤호는 집 짓는 데 돌아다니면서 흙을 져 날랐다. 그의 아내의 병은 나날이 심하였다. 바싹 말랐던 사람이 퉁퉁 부어서 멀겋게 되었다. 그런 우중 눅눅한 풀막 속에서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간병하는 손도 없으니 그 병의 회복을 어찌 속히 바라랴!

 

윤호가 하루는 아내의 병구완으로 한잠도 못 자고 밤새껏 애쓰다가 아침을 굶고 일터로 나갔다. 하루 오십 전을 받는 일이건만 해뜨기 전에 나와서 어두워야 돌아간다. 그날 아침에는 흙을 파서 담는데 지겟다리가 부러져서 그 때문에 한 시간 동안이나 흙을 못 날랐다. 그 새에 다른 사람은 세 짐이나 더 지었다.

 

“이놈은 눈깔이 판득판득해서 꾀만 부리는구나!”

양복 입은 감독은 늦게 온 윤호를 보고 눈을 굴렸다. 윤호는 아무 대답 없이 흙을 부어 놓고 돌아서 나왔다. 나오려고 하는데 감독이 쫓아오더니 앞을 딱 막아 서면서,

“왜 늦게 댕겨!”

하고 꺼드럭꺼드럭하는 서울말로 툭 쏘았다.

“네, 지겟다리가 부러져서 그거 고치느라구 늦었습니다.”

그는 괴로운 웃음을 지었다.

“뭘 어쩌구 어째? 남은 세 지게나 졌는데 어디 가 낮잠을 잤어…? 그놈 핑계는 바투!”

“정말이외다. 다른 날 언제 늦게 옵네까? 늘 남 먼저 오잖었소….”

“이놈아, 대답은 웬 말대답이냐? 응 다른 날은 다른 날이고 오늘은 오늘이지! 돈이 흔해서 너 같은 놈을 주는 줄 아니?”

하더니 윤호의 여윈 뺨을 갈겼다. 윤호는 뺨을 붙잡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놈아, 너 같은 놈은 일없다. 가거라!”

하더니 주먹으로 윤호의 미간을 박으면서 발을 들어 배를 찼다.

“아이구! 으응응 흑흑.”

윤호는 울면서 지게 진 채 땅에 거꾸러졌다. 그의 코에서는 시뻘건 선지피가 콸콸 흘렀다. 일꾼들은 모두 이편을 보았다. 같은 지게꾼들은 무슨 승수나 난 듯이 더 분주하게 져 나른다.

“이놈아, 가! 가거라!”

감독은 독살이 잔뜩 엉긴 눈으로 윤호를 보더니 사방을 돌아보면서,

“뭘 봐? 어서 일들 해! 도모 죠센징와 다메다! 쓰루쿠테 다메다! (정말 조선인은 안 돼! 뺀들거려서 안 돼)”

하는 바람에 일꾼들은 조심조심히 일에 손을 대었다.

 

눅눅한 검은 땅을 붉고 뜨거운 코피로 물들인 윤호는 일어섰다. 코에서는 걸디건 피가 그저 뚝뚝 흘렀다. 그의 흙투성이 된 옷섶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서서 무엇을 생각하더니 빈 지게를 지고 어청어청 아내가 누웠는 풀막으로 돌아갔다. 윤호는 지게를 벗어서 팔매를 치고 막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막 안에서 신음하던 아내는 눈을 비죽이 떠서 윤호를 보더니 목구멍을 겨우,

“여보, 어째 그러오? 그게 어쩐 피요?”

묻는다. 윤호는 아무 대답 없이 아내의 곁에 드러누웠다. 모두 귀찮았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았다. 세상 밖에 나와서 비로소 가장 사랑하던 아내까지도 귀찮았다. 죽는다해도 꿈만 하였다.

 

“네? 어째 그러오?”

그러나 재쳐 묻는 부드러운 아내의 소리에 대답 안 할 수가 없었다.

“응, 넘어져서 피가 터졌소!”

 

윤호의 소리가 그치자 아내는 훌쩍훌쩍 운다. 윤호의 가슴은 칼로다 빡빡 찢는 듯하였다. 그는 알 수 없는 커단 것에 눌리는 듯하였다. 무엇이 코와 입을 꽉 막는 듯이 호흡조차 가빴다. 그는 온몸에 급히 힘을 주면서 눈을 번쩍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으스름한 속에 넌들넌들 드리운 풀포기가 있을 뿐이다. 그는 눈을 다시 감았다. 모든 지나온 일이 눈앞과 머릿속에 방울이 져서 떠올라서는 툭 터져 버리고, 터져 버리곤 한다. 자기는 이때까지 남에게 애틋한 일, 포악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싸움이면 남에게 졌고, 일이면 남보다 더 많이 하였다.

 

자기가 어려서 아버지 돌아갈 때에 밭뙈기나 있는 것을 삼촌더러 잘 관리하였다가 자기가 크거든 주라고 한 것을 삼촌은 그대로 빼앗고 말았다. 그러나 자기는 가만히 있었다. 동리 심부름이라는 심부름은 자기와 아내가 도맡아 하여 왔다. 그래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자기와 아내가 홀로 책망과 욕을 들었다.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 부지런하면 부자가 된다, 남이 욕하든지 때리든지 가만히 있어라… 이러한 것을 자기는 조금도 어기지 않고 지켜 왔다. 그러나 이때까지 자기에게 남은 것은 풀막― 그것도 제 손으로 지은 것― 병, 굶주림, 모욕밖에 남은 것이 없다. 집을 바치고 밭을 바치고 힘을 바치고 귀중한 피까지 바치면서도 가만히 순종하였건만 누구 하나 이렇다 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이때까지 자기가 본 경험으로 말하면 욕심 많고, 우락부락하고, 못된 짓 잘하는 무리들은 잘 입고, 잘 먹고, 잘 쓴다. 자기에게 남은 것은 이제 실낱 같은 목숨뿐이다. 아내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렇게 되고서는 몇 달을 보증하랴! 까딱하면 목숨까지 버릴 것이다. 목숨까지 바쳐? 이 목숨― 예까지 생각하고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주먹을 쥐었다.

 

“응! 그는 못 해!”

그는 혼잣소리같이 뇌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이다. 목숨까지 바치기는 너무도 억울하다. 자기가 왜 고생을 했나? 목숨이다! 이 목숨을 아껴서 무슨 고생이든지 하였다. 목숨을 바치면 죽는 것이다. 죽고도 무엇을 구할까? 그러나 그저 이대로 있어서는 살 수 없다. 병으로 살 수 없고 배고파 살 수 없고― 결국 목숨을 바치게 된다. 이때 그의 머리에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환상이 있었다. 그의 해쓱한 낯에는 엄연한 빛이 어리고 다정스럽던 두 눈에는 독기가 돌았다. 그는 다시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 5 >

초승달이 재를 넘은 지 벌써 오래되었다. 훤히 갠 하늘에 별빛은 푸근히 보였다. 사면은 고요하다. 이슬에 눅눅한 대지 위에 우뚝이 솟은 건물들은 잠잠한 물 위에 뜬 듯이 고요하다. 멀리 뭉긋이 보이는 산들이 하늘 아래 굵은 곡선을 그었다.

 

세상이 모두 잠자는 이때, 집 마을에서 좀 떠나 으슥한 수수밭 머리에 풀포기를 모아 얽어 놓은 조그만 막 속에서 나오는 그림자가 있다. 그 그림자는 막 앞에 나서서 한참 주저거리더니 수수밭 머리에 훤히 누워 있는 큰길을 건너서 조와 콩이 우거진 밭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사면은 다시 쥐 하나 어른거리지 않는다. 스르륵스르륵 서로 부닥치는 좃대 소리는 귀담아듣는 이나 들을 것이다. 먼 데서 울려 오는 개 짖는 소리는 딴세상의 소리 같다. 한참 만에 집 마을 가까운 조밭 속으로 아까 숨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 그림자는 으슥한 집집 울타리 그림자 속으로 살근살근― 그러나 민활하게 이집 저집, 이골목 저골목으로 지나간다. 가다가는 한참이나 서서 주저거리다가도 또 간다. 기단 골목의 여러 집을 지나서 나오는 그림자는 현등이 드문드문 걸린 거리에 이르더니 썩 나서지 못하고 어떤 집 옆에 서서 앞뒤를 보고 아래위를 본다. 거리는 고요하다. 집집이 문을 채웠다. 저 아래편에 아득히 보이는 파출소까지 잠잠하였다. 한참 주저거리던 그림자는 얼른얼른 뛰어 건너서 맞은편 어둑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를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거리의 말없는 현등만은 그가 누군 것을 알았다. 그는 윤호였다.

 

윤호는 몇 걸음 걷다가는 헝겊에 뚤뚤 감아서 허리 밑에 지른 것을 만져 보았다. 만질 때마다 반짝 서릿발 같은 그 빛을 생각하고 몸을 떨면서 발을 멈추었다. 뒤따라 새빨간 피, 째각째각 칼소리를 치고 모여드는 붉은 눈! 잔뜩 얽히는 자기 몸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도 칼 밑에 구슬피 부르짖고 쓰러지는 생령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킷하고 온 신경이 째릿째릿하였다.

 

‘아, 못 할 일이다! 참말 못 할 일이다! 내가 살자고 남을 죽여?’

그는 입 안으로 중얼거리면서 발끝을 돌렸다. 그러다가도 자기의 절박한 처지라거나 자기가 목표삼고 나가는 대상들의 하는 것들을 생각할 때면 그 생각이 뒤집혔다.

 

‘아니다. 남을 안 죽이면 나는 죽는다. 아내는 죽는다. 응, 소용 없다. 선한 일! 죽어서 천당보다 악한 짓이라도 해야 살아서 잘 먹지! 그놈들도 다 못된 짓 하고 모은 것이다. 예까지 왔다가 가다니?’

이렇게 생각하면 풀렸던 사지가 다시 긴장되었다. 그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집에서 떠나면서부터 이리하여 주저한 것이 오륙 차나 되었다. 윤호는 커다란 솟을대문 앞에 다다랐다. 그는 급한 숨을 죽여 가면서 대문을 뒤 두고 저편 높다란 싸리 울타리 밑으로 갔다. 그의 가슴은 두근두근하고 사지는 떨렸다. 귀밑 맥이 툭탁툭탁하면서 이가 덜덜 솟긴다.

 

‘에라 그만둬라. 사람으로서 차마!’

그는 가슴을 누르고 한참 앉았다. 한참 만에 그는 우뚝 일어섰다. 두 팔을 쭉 폈다. 몸을 부쩍 솟는 때에 싸리가 부서지는 소리, 우쩍 하자 그의 몸은 울타리 위에 올라갔다. 마루 아래서 으응― 하고 으릉대는 개가 울타리 안에 그림자가 어른하는 것을 보더니 으르렁 엉 웡웡 하면서 내닫는다.

 

“으흥! 이 개!”

방에서 우렁한 사내 소리가 들렸다. 윤호는 얼른 고기를 꿰어 가지고 온 낚시를 집어던졌다. 개는 집어 먹었다. 낚시에 걸린 개는 낚싯줄을 잡아당기는 대로 꼼짝 소리를 못 지르고 느른히 쫓아다닌다. 낚싯줄을 울타리 말뚝에 잡아맨 윤호는 살금살금 마루로 갔다. 그리 몹시 두근거리던 그의 가슴은 끓고 난 뒤의 물같이 잠잠하였다. 두 눈에서 흐르는 이상한 빛은 어둠 속에서 번쩍하였다. 그는 마루 아래 앉더니 허리끈에 지른 것을 빼어서 슬근슬근 풀었다. 널찍한 헝겊이 다 풀리자 환한 별빛 아래 번쩍하는 것이 그의 무릎에 놓였다. 그는 그 헝겊으로 눈만 내놓고는 머리, 이마, 귀, 입, 코 할 것 없이 싸고 무릎에 놓인 것을 잡더니 마루 위에 살짝 올라섰다. 이때 방 안에서,

 

“무어는 무어야? 개가 그러는 게지?”

사내의 소리가 나더니 삭스르럭 성냥 긋는 소리가 들렸다. 윤호는 주춤하다가 다시 빳빳이 섰다. 

 
< 6 >

낮이면 돈을 만지고 밤이면 계집을 어르는 것으로 한없는 쾌락을 삼는 이 주사는 어쩐지 오늘 밤따라 마음이 뒤숭숭하여 졸음이 오지 않았다. 끼고 누웠던 진주집을 깨워서 술을 데워 서너 잔이나 마시었으나 역시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무엇이 와 덮치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을 뜨면 마루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였다. 머리맡에 켜놓은 촛불의 거물거물하는 것까지 무슨 시뻘건 눈깔이 노려보는 듯해서 꺼버렸다.

 

“여보, 잡시다. 왜 잠 못 드우?”

“글쎄, 왜 졸음이 안 오는구려.”

이 주사는 진주집 말에 대답은 하였으나 자기 입으로― 자기 넋으로 나오는 소리 같지 않았다. 그는 눈 감았다 뜰 때에 벽에 해쓱한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여러 번 가슴이 꿈틀꿈틀하였다. 그러다가도 그 그림자가 의복이라고 생각하면 좀 맘이 패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그림자에 여러 번 속았다. 그는 여러 번 베개 너머로 손을 자리 밑에 넣었다. 큼직한 것이 손에 만지우면 그는 큰숨을 화― 쉬었다. 그는 이렇게 애쓰다가 삼경이 지나서 겨우 잠이 소르르 들자마자 무슨 소리에 놀라 깨었다. 진주집도 이 주사가 와뜰 놀라는 바람에 깨었다. 그 소리는 마루 아래 개가 으르릉 웡! 짖는 소리였다. 이 주사는 가슴에서 넉장이 뚝 떨어졌다.

 

“으흥! 이 개!”

그는 겁결에 소리를 쳤으나 뛰노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더욱 왈칵 내닫는 개가 깜짝 소리 없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마루가 우찍 하는 것이 무에 단박 들이미는 것 같았다.

“마루에서 무엔구!”

진주집은 초에다가 불을 켰다.

“무에는 무에야 개가 그리는 게지.”

이 주사의 소리는 떨렸다. 그는 얼른 자리 밑에 넣었던 뭉치를 끄집어내어서 꼭 쥐었다.

“어디 내가 내다보구!”

진주집은 미닫이를 열더니 덧문을 덜컥 벗겨서 열었다.

 

문 열던 진주집! 뒤에서 내다보던 이 주사! 벌거벗은 두 남녀는 ‘으악’ 들이긋는 소리와 같이 그만 푹 주저앉았다. 열린 문으로는 낯을 가린 뻣뻣한 장정이 서리 같은 칼을 들고 나타났다. 장정은 미닫이를 천천히 닫더니,

 

“목숨을 아끼거든 꼼짝 마라!”

명령을 내렸다. 그 소리는 그리 높지 않으나 시멘트판에 쇳덩어리를 굴리는 듯하였다. 벌거벗은 남녀는 거들거리는 촛불 속에 수굿이 앉았다. 두 사람의 낯은 새파랗게 질렸으나 아름다운 살빛! 예쁜 곡선은 여윈 사람에게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근춘이, 네 들어라. 얼마든지 있는 대로 내놔야지 그러잖으면 네 혼백은 이 칼끝에 달아날 것이다.”

장정은 칼끝으로 이 주사를 견주며 노려보았다. 평화와, 안락과, 춘정이 무르녹았던 방에는 긴장한 공포의 침묵이 흘렀다.

 

“왜 말이 없니?”

“녜, 모다 저금하고 집에는 한푼도 어, 없습니다. 일후에 오시면….”

이주사는 꿇어앉아서 부들부들 떤다.

장정은 이주사를 한참 노려보더니 허허허 웃으면서,

“이놈이 무에 어쩌구 어째? 일후에 오라구? 고사를 지내 봐라, 일후에 오나! 어서 내라… 이놈이 칼맛을 보아야 하겠군!”

하더니 유들유들한 이 주사의 목을 잡아끌었다. 이 주사는 끌리면서도 꼭 모은 두 다리는 펴지 않았다.

“이놈아, 그래 못 줄 테냐?”

서리 같은 칼끝은 이주사의 목에 닿았다.

“끽끽! 칙칙!”

여자는 낯을 가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속으로 운다.

 

“아… 아 안 그리… 제발 살려 줍시오.”

이 주사는 두 다리 새에 끼었던 커단 뭉치를 끄집어내면서,

“모두 여기 있습니다… 제발 살려 줍쇼!”

하고 말도 바로 못 한다.

 

장정은 이 주사의 목을 놓고 그 뭉치를 받더니 싼 것을 벗기고 속을 보았다.

“인제는 갈 테니 네 손으로 대문 벗겨라!”

장정은 명령을 내렸다. 이주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대문을 벗겼다. 대문 밖에 나선 장정은 홱 돌아서서 이 주사를 보더니,

 

“흥! 낸들 이 노릇이 좋아서 하는 줄 아니? 나도 양심이 있다. 양심이 아픈 줄 알면서도 이것을 한다. 이래야 주니까 말이다. 잘 있거라!”

 

하고 장정은 어둠 속에 그림자를 감추었다. 대문턱에 벌거벗고 선 이 주사는 오지도 가지도 않고 멀거니 섰다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눅눅한 땅에 거꾸러졌다. 사면은 고요하였다. 높고 넓은 하늘에 총총한 별만이 하계의 모든 것을 때룩때룩 엿보았다. < 끝 >

 

[사진: 일제시대 토목 공사장, 본문출처: 개벽 64호 (1925]

 


 


 

[작품 설] 192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홍수가 나 농사를 망치고 갓 태어난 자식까지 잃고 아내까지 병든 극한의 상황에서 품팔이로 연명하던중 일제 앞잡이로 호의호식하느,공사장 십장 이 주사를찾아가 강도행각을 벌인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제강점기 에서도 가진 자와 유산 계급은 못 가진자를 억압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법 없이도 살아갈 착한 인물 윤호는 큰물로 무너진 방축 때문에 겪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당시 사회가 제공하는 것은 '병'과 '굶주림'과 '모욕'이었다. 윤리나 도덕이 허용되지 않는 부조리 사회 속에서 윤호가 겪는 내적 갈등은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 십장의 돈을 같은 방법으로 얻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다.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윤호는 결국 일제의 가혹함, 즉 지배층의 부조리를 같은 불법적 방법으로 강취하는 윤호의 행동으로 사회를 고발하려는 단편이다.

[출처] 큰 물 진 뒤- 최서해|작성자 채트리오맘


[작가] 최서해(崔曙海) / (1901.1.21∼1932.7.9)

일제시대 프로레타리아((prolétariat 무산계급, 사회주의) 문학가. 소설가. 함경북도 성진 출신. 본명은 최 학송(崔鶴松)이다. 1918년 간도 등지를 유랑하면서 나무 장수, 두부 장수, 부두 노동자, 음식점 배달꾼 등 최하층 생활을 했으며 그런 체험이 창작의 밑바탕이 되었다. 1924년 동아일보에 <토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5년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였고, 여기에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인 <탈출기>를 발표하여 당시 문단에 새로운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작가적 명성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33세에 요절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모두 주인공의 극빈 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그 주인공들이 그들을 배태한 사회제도에 대해 저주하며 부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무산 계급의 문예 창조를 주장하던 무산 계급의 삶을 주로 다룬 프로문학계에서 그 전범(典範)으로 환영받았다. 저서에 <탈출기><십삼 원><금붕어><박돌의 죽음><살려는 사람들><큰물 진 뒤><폭군><홍염><혈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