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대박론’은 말장난… 개성공단과 통일방안 강연
[플러스코리아 타임즈] 2014.12.05 플러스코리아타임즈 이형주 기자
정동영 개성공단과 한국형 통일방안 (2014.12.5)
정동영, ‘통일대박론’은 말장난- 개성공단과 통일방안 강연
개성공단은 제2의 창원, 우리의 미래 비전이자 한국형 통일 모델
김대중 정권 시절 개성공단 조성관련 미국이 ‘속도조절론’으로 실질적으로 반대하자 미국을 설득해 개성공단 단추를 꿴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서울에서 포문을 열었다. 정동영 前 통일부장관·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상임위원장은 5일 오후 새날희망연대 초청으로 국가인권위원회 8층 강당에서 개성공단이 재개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개성공단과 한국형 통일방안”이란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정동영 전 장관은 이날 “(북한관계에서) 이명박 정부 5년은 '비핵개방 3000'은 핵을 포기하면 우리가 3000불을 만들어주겠다는 그런 비현실적 목표를 내걸고, 5년 내내 남북 무관계, 남북관계가 연평도에서 포격을 주고받을 정도로 최악으로 치달았었다”고 비판하고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는 실용적으로, 이명박 정부와는 다르게 접근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일대박론'부터 해서 DMZ '평화공원'이라든지 많이 있는데, 알맹이, 실제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다”고 진단하고 “그 모든 것이 어디에 걸려있냐면 이명박 대통령이 선언했던, 이른바 5. 24조치에 묶여 있다”며 이명박 정권의 조치에 대해 박근혜 정권이 '통일대박론'으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며 朴정권을 비난했다.
또 정 전 장관은『10년 후 통일』이라는 책을 발간한데 대해 “나는 10년이면 통일상태를 이루지 못하란 법이 없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뗀 뒤 “대만-중국 관계를 봐도 그렇고, 우리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적대와 증오를 걷어내고 철도·도로를 잇고, 금강산 관광을 가고, 서로 총 쏘고 전쟁하던 곳에 공단을 세워 물건을 만들어내는 등 눈부시게 변화했던 경험이 우리에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눈 앞에 길이 나 있다. 개성공단이 10년 후 통일로 안내하는 길잡이다. 그걸 쭉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현대그룹 2000년 정주영 현대그룹회장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 미국 강경매파와 정 장관과의 대화를 공개했다.
정 회장은 북의 김 위원장에게 “2000만평의 개성공단이 완공되면 경남 창원처럼 50만 공업도시가 되고 노동자만 35만명에 달한데 노동자 조달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우리가 6.15남북공동선언도 했으니 인민군 30만명을 공장에 넣겠다”고 답변한 것과, 정 장관이 2004년 7월 1일 통일부장관으로 부임했을 때 “미국의 ‘속도조절론‘으로 개성공단이 벽에 부딪혀 그해 8월 31일 미국 럼스펠드와 담판을 지어 개성공단을 조성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 스토리를 공개했다. 다음은 정동영 전 장관의 “개성공단과 한국형 통일방안”의 강연 주요 내용과 마로니에 방송의 동영상이다.
▲ “개성공단과 한국형 통일방안” / 정동영 前 통일부장관·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상임위원장
개성공단과 한국형 통일방안
얼마 전 『10년 후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눈부시게 발전한 대만과 중국 관계를 보면서 우리라고 10년 안에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이루지 못하란 법이 없다는 뜻에서였다. 나는 10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본다. 대만-중국 관계를 봐도 그렇고, 우리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적대와 증오를 걷어내고 철도·도로를 잇고, 금강산 관광을 가고, 서로 총 쏘고 전쟁하던 곳에 공단을 세워 물건을 만들어내는 등 눈부시게 변화했던 경험이 우리에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눈앞에 길이 나 있다. 개성공단이 10년 후 통일로 안내하는 길잡이다. 그걸 쭉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왜 ‘사실상의 통일’을 말하는가. 단순히 통일이라는 당위론적 개념이나 안보 차원에서의 개념을 넘어선다. 그것만이 머지않아 엔진이 꺼질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호의 경제적 성장 동력을 힘차게 재가동시킬 유일한 돌파구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그 성장동력의 생명줄이자 숨구멍이다. 이것은 우리만의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이미 나와 있다.
OECD 사무국이 작년(2013년) 6월에 발표한 <한국 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2031년이 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다른 말로 성장 엔진이 꺼진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이 급속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몇 해 전 세계 최대의 투자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에서는 정반대의 예측을 내놨다. 한국이 30년 뒤에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40년 뒤에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했다. 골드만삭스의 <글로벌 경제, 상품 및 전략 연구소>는 2009년 9월 ‘글로벌 경제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점진적 통일 한국'으로 가면, 본 연구 결과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통일 한국의 잠재적 규모이다. 북한의 성장 잠재력이 실현된다면, 미 달러화 기준으로 통일 한국의 GDP가 30년에서 40년 후 프랑스, 독일을 추월하고 일본까지도 앞지를 수도 있을 것으로 우리는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예측에서 보면 2050년 통일 한국의 규모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G-7 국가와 동등하거나 넘어설 것이다.(*2050년 통일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86,000달러 전망) 북한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으며 일단 의미 있는 경제 개혁이 단행되기만 하면 투자가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요인에 집중하고 있다. ① 풍부하고 경쟁력 있는 노동력, ② 남한 자본과 기술, 북한의 천연자원과 노동력 간의 막대한 시너지 효과의 가능성, ③ 체제전환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생산성 향상과 통화절상으로 인한 커다란 잠재적 이익. 한국이 독일식 통일 방식(흡수통일)을 선택하면, 한국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비용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비용이 가장 적은 선택은 한 국가에 두 개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이 공존하는 것을 허용하는 중국과 홍콩의 통합방식이 될 것이다. 적절한 정책만 뒷받침된다면 남북한의 통합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북한 경제 붕괴를 대비해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 보고서에서 언급한 ‘평화적·점진적 통일 한국’은 내가 주장하는 ‘사실상의 통일 상태’와 내용상 거의 일치한다. 왜 이렇게 국제적 신인도가 높은 두 기관이 상반된 전망을 하는 걸까? 골드만삭스는 개성공단이 쭉 확장된다는 것을 전제로 삼은 것이고, OECD 보고서는 남북이 분단된 현 상태에서 남한 단독 경제를 전망한 것이다. 사실 따져 보면 상식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려면 인구가 늘든지, 기술 혁신이 일어나든지, 자본 투자가 활발하든지 해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어느 것 하나도 녹록치 않다. GDP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분기별 성장률이 0%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 상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국내에서는 용빼는 재주가 없을 듯하다.
골드만삭스 보고서도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국내의 여러 학자들과 전문기관들도 그렇게 예측한 곳이 많지만 이걸 확인시켜준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 경제가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다 북한의 노동력과 풍부한 광물자원을 결합하면 다시 한번 고성장 시대로 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북한은 북한대로 발전해서 20년 후에는 북한의 국민소득이 한국의 절반까지 따라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 북이 베트남·중국 모델을 착실하게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 경제가 자체 발전을 하게 되면 통일 비용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북한이 한국 경제에 두통거리가 아니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다. 따라서 개성공단은 현재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한국형 통일 모델’이기도 하다.
내가 몇 년 전에 독일에 갔을 때 에곤 바르(Egon Bahr) 박사가 나에게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분은 빌리 브란트 수상의 특별보좌역이자 정무장관으로서 동방정책을 설계한 분이다. 그런데 내가 개성공단 사진을 보여주고 몇 가지 설명을 했더니 그 분이 무릎을 탁 치면서 “이건 놀라운 상상력이다. 내가 동방정책을 설계할 때 동독 지역에 서독의 공단을 만든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대단한 상상력이다”고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통일 모델이 필요한데, 한국은 베트남 모델도 될 수가 없고, 독일 모델도 될 수가 없다. 한국형 통일 모델이어야 하는데, 한국형 통일 모델이 바로 개성공단 모델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개성공단을 확장해서 계속 따라가면 그 중간에 경제 통일이 올 것이고, 종점에 가서는 마침내 한반도 통일이 올 것”이라 단언했다.
"30만 인민군대 군복을 벗겨 개성공단에 넣겠다
2000년 정주영 회장이 개성공단을 시작할 때 김정일 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 회장은 김 위원장한테 “2000만 평이 완공되면 적어도 창원처럼 50만 공업도시가 되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35만 명에 달하는데, 개성주변의 인구가 30만 명밖에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 노동력 조달은 어떻게 하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이거 다 하는데 몇 년 걸립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에 정주영 회장은 “착공해서 8년이면 됩니다”고 답변했다. 김 위원장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8년이라…. 우리가 6.15도 했고, 8년이면 남북관계도 발전했을 것이고, 그런데 남과 북에는 군대 숫자가 너무 많아요. 자, 그 단계가 되면 내가 인민군대 군복을 벗겨서 한 30만 명을 공장에 넣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결과적으로 실현은 안 됐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의 머릿속에 그런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는 개성공단의 노동력도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축이 되는 것, 그런 단계적 발전 모델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햇볕정책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미래구상인가?
미국까지 날아가 '강경 매파'를 설득하다
나는 참여정부 때인 2004년 7월 1일 통일부장관으로 부임했다. 내가 통일부장관에 취임했을 때 개성공단은 벽에 부딪혀 있었다. 나는 통일부 직원들을 모아놓고 “내가 통일부 장관으로 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개성공단에서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 사명이다. 내가 그걸 하려고 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막상 앉아서 들여다보니까 속도조절론이 있었다. 그게 어디서 나왔느냐고 하니까 미국이었다. 미국이 ‘핵 문제나 해결하고 이걸(개성공단) 해야지. 2차 핵문제가 불거졌는데 북쪽에다 무슨 공단을 짓느냐? 그건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관으로서 내 생각은 달랐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했다. 왜냐하면 미국이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공단을 지을 수가 없다.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가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직접 워싱턴으로 날아가서 미국을 설득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04년 8월 말 나는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네오콘 수장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럼스펠드와의 회담 '개성공단 세일즈'
2004년 8월 31일 오전 10시. 펜타곤 회의실에서 한 시간쯤 럼스펠드와 회담을 했다. 내가 럼스펠드를 설득한 논리는 이랬다. “종심이 짧습니다. 그런데 개성이라는 곳이 6.25 때 제2 축선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개성)를 북이 가로 8킬로미터, 세로 8킬로미터 열어준다고 합니다. 군사전략적으로 이를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철조망 즉 DMZ 군사 분계선 너머의 북한 영토를 준다는 것인데, 그걸 왜 하지 마라, 속도 조절하라고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위성으로 사진 찍는 곳을 내준다는데 안 할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하니까 럼스펠드가 대답을 못 한다.
위성사진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건설하고 있는 부지 자체가 북한 6사단, 64사단, 2군단 포병여단 이렇게 6만 명의 병력과 화력이 밀집한 부대 주둔 지역이었다. 포 진지와 탱크 부대가 있고, 중화기와 대포와 2개 사단 병력과 1개 포병 여단이 쫙 깔려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 곳을 비워준다는데 멈출 이유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럼스펠드는 경청했다. 설명을 잘 들었다면서 달리 반문도 없었다. 사실 럼스펠드를 잘 설득했다기보다는 럼스펠드와 담판을 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이나 서구 사회는 합리적으로 얘기를 해서 납득이 되면 선선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개성공단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설명한 것이 앞뒤가 맞으니까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당시 한국 담당 보좌관은 리처드 로리스(Rechard Lawless)였다. Lawless는 무법자라는 뜻인데 우리한테는 악명이 높은 국방부 차관보로 한국 담당이다. 미국 CIA 직원도 했는데 그 친구가 나한테는 잘 대했다. 그가 나중에 특파원들한테 브리핑을 했는데, 내가 나온 뒤에 럼스펠드가 로리스한테 “로리스, 아까 미스터 정이 얘기한 것 있지, 그거 대통령 보고자료에 넣어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부시한테 보고를 했다. 당시 부시도 정신은 이라크에 가 있었는데 럼스펠드가 얘기를 하니까 승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속도조절론 대신 적극적인 협력으로 돌아섰다. 개성공단 사업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15개 공장의 설비에 대해서 한 건도 거부하지 않았다. 100% 승인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도 박차를 가해 그 해 연말, 내가 통일부 장관이 되고나서 6개월 뒤인 2004년 12월 15일 마침내 개성공단 제1호 공장인 냄비 공장이 가동됐고 그 첫 번째 물건이 생산되었다. 그게 개성공단의 출발점이었다.
중소기업과 청년세대의 유일한 돌파구이자 블루오션
개성공단의 가치는 1번이 군사전략적 가치, 2번이 경제적 가치, 3번이 미래적 가치다. 그런데 1년 전 개성공단 철수사태에서 보듯이, 아직도 정부여당이나 보수진영의 인식은 한참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개성공단에는 신변 위협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개성공단에 식량난은 없었다. 왜냐하면 5만 3000명의 점심과 야간 간식을 주기 위한 식량이 부식 창고에 가득 쌓여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123개 공장 전체가 흑자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사실 여기서 흑자가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건비가 양질의 노동력 한 명을 쓰고도 한 달에 13만원인데, 남쪽에서 한 명을 고용할 수 있는 비용으로 거기서 거의 15~20명을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토지 비용이 평당 14만 9000원이라서 대부분의 공장이 천 평, 이천 평, 사천 평씩을 매우 넓게 사용하고 있다. 토지 비용에 대한 부담이 남쪽에 비하면 거의 제로에 가깝게 수렴하는 것이다. 50년 사용권이 14만 9000원이기 때문에 흑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마 규제조치나 제한이 없었다면 이익이 많기 때문에 서로 들어가려고 줄을 섰을 것이다. 개성공단의 장애물은 딱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정치적 불안이다. 정부가 제 역할을 해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고 해소해 주면 즉 군사적 충돌 가능성만 없애주면 대한민국 중소기업들은 다 들어가고 싶어한다. 현재 가동 중인 개성공단 크기는 원래 설계도의 64분의 1이다. 예정부지 2000만 평은 64평방킬로미터인데, 현재 가동 중인 123개 공장이 입주해 있는 면적은 30만 평, 1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개성공단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2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가운데 800만 평은 공단 부지로 2000개의 공장이 들어서고, 나머지 1200만 평에는 아파트, 상가, 공원, 골프장 등 근린 시설을 만들어 총 50만 명의 인구가 생활하는 첨단 공업도시로 완성이 됐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해주, 남포, 원산, 신의주, 나진, 선봉, 함흥, 청진 등 해안선을 따라 경제 특구를 설치했었더라면, 북한은 지금쯤 중국과 베트남을 뒤쫓아 가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개성공단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유일한 활로이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중국도 가 보고, 동남아도 가 보았는데 활로가 안 생겼다. 현재 중소기업들은 수직 계열화, 재벌들의 하청 구조화되어 있다. 현재 중소기업에는 4가지가 없다. 돈이 없고, 사람이 없고, 판로도 없고, 기술이 없다. 신용이 약하니까 금융 쓰기도 어렵다. 자기 돈도 없지만, 신용을 쓰기도 어렵고, 땅값도 비싸고, 중소기업에 인재가 안 온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인 해법을 찾기가 힘들고, 중소기업 정책을 어떻게 해도 즉효가 나기 어려운데, 개성공단에 123개 공장을 두었더니 팔팔하게 살아난다. 123개 공장이 모두 흑자인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123개가 아니라 1200개, 아니 12,000개를 갖다 놔도 다 흑자가 날 수 있는 구조다.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 졸업하고 취직한다고 할 때쯤이면 우리의 경제성장이 멈춰선다는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데,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 결국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개성공단을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 그게 밥이고 일자리고 꿈이 될 것이다.
남북 소통의 차단벽 ‘5·24 조치’ 해제해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8년 5.24조치를 통해 남북교류를 중단시켰다. 2004년 12월에 첫 가동을 하고, 2006년도에 만 명을 넘어서고, 2007년까지 커지다가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개성공단 계획이 갑자기 얼어붙은 것이다. 사실 모든 관계를 끊어버린 5·24 조치는 강도는 셌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한미가 공동으로 압박한 군사적 압력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해 중국의 대북 접근을 높이는 역효과를 냈다.
북한과 중국은 두 차례 정상 회담을 가졌고, 창지투(장춘-길림-도문) 개발 계획에 따른 북-중간 경제협력이 긴밀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북한과 중국은 1330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국경선을 마주 대고 있어서 중국이 협력하지 않는 한 대북 압박과 봉쇄는 실효성을 가질 수가 없는데, 이것이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개성공단의 장래는 박근혜-김정은 정상 회담이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전반기인 2015년 말 이전에 성사되면, 개성공단은 이 정부 하에서 상당히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정상 회담이 박근혜 정권 후반기로 넘어가면 개성공단은 1단계를 못 벗어난다.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가다
노무현 정권 전반부 2년 반 동안 남북 관계가 경색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2005년 6·15 5주년을 기해 내가 평양에 특사로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남북 관계가 풀리게 된다. 2005년 6월 14일 6·15 5주년에 6·15 남측위원회, 북측위원회, 해외위원회 3자가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정부 대표로 참석하게 됐다. 참여정부 5년에서 가장 중요한 남북의 소통은 2005년 6월 17일 대통령 특사로서 나와 김정일 위원장이 다섯 시간 만난 것이다. 두 시간 반은 배석자가 한 명씩 있었지만 사실상 일대일로 대화한 것이고, 오찬 회동을 하면서 두 시간 반까지 합하면 전부 다섯 시간을 얘기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현안을 다 얘기했다.
충분히 소통을 한 것이다. 북한의 모든 의사 결정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그 한 사람과 남북한 간에 맺혀 있는 거의 모든 사안들을 솔직하게 얘기했고, 되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이른바 제2의 6.15 시대다.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공동성명이었고, 그걸 통해 ‘핵을 포기하겠다, 북미 수교하자, 한반도 평화 체제를 논의하자’는 보따리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을 다섯 시간 동안 만나고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모든 얘기를 다 했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현안에 정통했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좌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말이 통한다는 느낌이었다. 상대방의 말이 듣기에 이치에 맞다, 사리에 합당하다고 하면 즉석에서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하고 의사 결정을 내린다. 북한에는 단 한 사람의 정책 결정자가 있고, 바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답변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었다. 예를 들면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을 내가 제안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좋은 제안입니다. 흥분되는 제안입니다. 이번 8·15부터 합시다”라고 해서 실제 시행이 되었다.
사상 최초 김정일 위원장과 '핵 문제 토론'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에서 또 하나의 핵심 주제는 바로 핵 문제였다. 2003년 2차 핵 위기가 발생한 이래 열 몇 차례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렸지만, 그때마다 실랑이를 벌인 게 핵 문제다. 우리는 장관급 회담 발표문에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북은 고집스럽게 핵 문제는 남북이 논의하고 합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북한 주장에는 문제가 많지만, 예컨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당사자로서 이를 깬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북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북 간에 핵 문제를 놓고 실질적인 토론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더욱 크다. 처음으로 남쪽의 고위 당국자가 북쪽의 최고위 지도자와 핵 문제를 놓고 직접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핵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고 반론도 하고 설득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는 핵 문제가 현안이 아니었다.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미 합의된 2007년 2·13 합의가 있었다. 그건 미국 강경파가 찢어버렸던 9·19 합의 문서를 다시 살려내자는 합의였는데, 이걸 충실히 이행해가자는 원칙적인 대화가 있었다.
대통령 특사로서 첫 번째 목표가 북한의 6자 회담 복귀였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나는 김 위원장에게 첫째 “6자 회담 틀은 북에 불리하지 않다”는 걸 역설했다. 본래 부시 정부가 6자 틀을 짤 때는 5:1, 즉 북한 빼고 한-미-중-러-일 다섯이 공조해서 북핵 폐기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도였지만 실제 진행 과정에서는 1:4:1, 북한과 미국이 대척점에 있고 나머지 넷은 중간 지점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는 “북이 그토록 원하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우리가 도울 테니 우리를 활용하라”고 말했다. 미국과는 우리가 가깝다. 우리는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를 명확히 한다면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용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하이라이트는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답변을 받아낸 것이다. 이는 그때 그 자리에서 처음 나왔고 그 뒤 북핵 협상에서도 하나의 기준선이 되었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오.” 이렇게 답변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내 기억에 북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십수 년 동안 북한 당국이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언이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핵에 매달리는 이유가 자신들의 생존과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최상급 어법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김 주석은 북에서는 신과 동급 아닌가? 그리고 다음 달인 7월 말 6자 회담이 재개되고, 마침내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 과정까지의 얘기는 소설 한 권 분량은 될 정도다.
6자회담 재개까지 '긴박했던 외교전'
평양에서 돌아온 뒤 내가 집중한 것은 미국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하고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나는 키신저 박사와 만나고 난 뒤 뉴욕을 떠나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북한 문제를 포함해 부시 정부 내의 대외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네오콘 수장 체니 부통령을 만났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7월이 됐는데 북이 안 나왔다. 속이 탔다. 나는 북에 편지를 보냈다. “김정일 위원장이 다음 달에라도 나온다고 했는데, 7월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마지막에는 “7월 31일과 8월 1일의 차이를 아느냐”고 팩스를 보냈다. 국제 사회는 7월 31일에 나오면 김 위원장이 말을 지킨 게 되고, 하루 지나면 안 지킨 것이 된다.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북한은 그런 관념이 약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기왕 나올 바에는 7월에 나와야 합니다. 당신들 위원장 말을 내가 미국에도 전했고, 다했는데….” 그런데 북한이 진짜 7월 말에 나온다고 발표를 했다. 남북 관계가 이렇게 피를 말린다.
마침내 중단된 지 1년 1개월 만에 2005년 7월 26일 베이징에서 6자 회담이 열렸다. 8월 7일까지 1단계 회담을 하고 9월 13일부터 2단계 회담이 열렸다. 이 기간 중에 나는 남북 장관급 회담 참석차 평양에 가서 북측에 핵 포기에 관한 최종 결심을 촉구했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가서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협상 타결을 위해 미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줄 것을 주문했다.그렇게 해서 마침내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 위한 ‘9.19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내 강경파의 방해 공작에 뒤집히긴 했어도 6자 회담의 9·19 합의문은 앞으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표준 문서가 될 것이 확실하다. 9·19 합의문에 ‘북핵 포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북미 간 적대 관계 청산과 관계 정상화, 정전 체제를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바꾸자는 원칙까지 담았으니 이건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한국 외교사의 금자탑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운명을 다룬 국제 협상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낸 적이 있었던가? 현대사의 비극이지만 주변 강대국들은 고비고비마다 한국인의 목소리는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모여 마음대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고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눠 가졌다.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9.19의 핵심은 세 가지다. 하나, 북은 핵을 포기하고, 둘, 미국은 북과의 적대를 청산하고 수교하며, 셋,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바꾼다.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3대과제가 다 들어 있는 셈이다. 9.19는 한국 외교사에서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스스로 주도한 드문 예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9.19로 돌아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다.
같은 꿈을 꾸면(가지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
훗날 정말 한반도가 경제 공동체를 거쳐서 통일로 가고 있을 때 개성공단이 결정적인 역할은 한다면, 그래서 개성공단을 설계도 상태에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 장본인이 ‘통일부 장관 정동영’이었다고 기록이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보람과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정동영 개인의 보람과 영광이 결코 아니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8천만 민족 전체의 보람이자 후손들에게 남겨줄 빛나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성공단은 정치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이다”고 말하곤 한다.
부산역과 광주역에서 파리행 열차표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비단 나만의 소원은 아닐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공동 번영,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건설은 우리 시대 최고의 과제이다. 또한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미래상이다. 그 원대한 꿈이 있기에 우리는 대륙으로 가는 길을 멈출 수 없다. 더 많은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가지면) 그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통일대박론, 아쉬운 세 가지는...”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입력 : 2014.10.24 07:30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연설 후 정부 부처와 각 산하기관에 통일 자문기구가 연달아 세워졌다. 그리고 올 들어 세워진 통일연구 자문단 명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다.
◇ 아직 미약한 통일연구... 인력 풀 강화돼야
22일 만난 김병연 교수는 명실상부 '준비된' 통일 경제 연구자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자체평가위원이고 올해 발족한 통일준비위원회의 전문위원이다. 금융위원회 통일금융 테스크포스, 전경련 통일경제위원회, 중소기업중앙회 통일경제준비위원회 등 올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질 예정인 각종 통일 관련 위원회의 섭외 0순위기도 하다. 통일 준비를 위한 조언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를만큼 김병연 교수는 북한 경제 연구에서 독보적인 학자다.
그가 북한과 경제체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면서다. 80년대에 학부생이었던 그는 당시의 캠퍼스 분위기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체제'에 관심을 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떤 체제가 존속 가능할지에 학문적인 관심을 품었고, 이 연구는 평생으로 이어졌다. 마침 김 교수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1991년은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고 옐친이 집권하기 직전인 소련의 체제이행기였다. 그의 박사 논문은 1965년부터 1989년까지 자료를 토대로 소련 경제가 어떻게, 왜 붕괴했는지를 다뤘다.
2003년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하고싶어 영국에서 귀국한 그는 국내 북한경제에 대한 연구 실정에 대해 놀라기도 했다. 중요도에 비해 북한에 대한 연구가 미미했기 때문이다. 간간이 있는 연구들은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접근에 불과했다.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학자가 1000명이라면 이 중 북한경제를 연구하는 건 10명이 채 안된다.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을만큼의 연구역량을 갖춘 이들은 2~3명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앞으로 북한 경제 쇼크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전체 학자 풀에서 북한경제 전문가 비중이 10%는 돼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북한연구는 북한정책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좋은 연구는 기초연구가 밑을 받쳐주고 꼭지점에 정책연구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연구의 경우 기초연구는 아주 빈약하고 정책연구 수요는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 정책이 달라지는 일관성의 결여도 학문적 토대가 얕은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짧게는 5년, 통일문제 곧 닥칠수도... 北에 가장 위협적인 리스크는 中
늦은 감이 있지만 '통일대박론'이란 대중적인 수사를 통해 통일에 관심이 모아진 건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김 교수는 통일이 가시화되는, 더 정확히는 북한 체제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점이 빠르면 5년 길어지면 20년 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에선 엄격한 정치적 통제 속에 불만이 잠재화되고 있고, 이 불만이 어떤 정치적 계기로 폭발 할 수 있다. 정치적 사건은 랜덤하게 일어나니 시점을 전망하긴 어렵다. 다만 빠르면 5년안에 이런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소련의 경우를 본다면, 국민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을 느끼고 시장이 들어온 후 실제 체제 이행이 발생하기까지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점에서 이 시기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북한경제는 외부에서 돈을 벌어 내부를 먹여 살리는 구조다. 지하자원을 팔아서 식량을 사온다. 그래서 개방도가 높다. 북한의 교역의존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이다. 지금 시장은 북한 주민의 생명줄이고 무역은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다. 북한은 정책으론 극단적인 사회주의인데, 경제적으론 무역과 시장이 핵심이다. 양립할 수 없는 구조다.
김 교수는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로 장성택 사건을 꼽았다. 장성택 사건의 본질은 무역권을 독점한 장성택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라는 것. 예전 북한의 권력다툼은 돈과 관련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엘리트들의 권력 투쟁에 이권투쟁이 개입돼 예전보다 변동성이 심한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적 사고가 확산되고 엘리트들의 다툼이 격렬해지면 체제 변동성이 커진다. 무역, 시장이 들어와서 북한 경제가 안정화된 측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 체제의 변동성을 증가시킨 측면이 있다. 북한이 이대로 계속 가기 어려운 배경이다. 김 교수는 이 과정에서 북한에 가장 큰 리스크가 중국 리스크라고 지목했다. 북이 중국에 수출하는 대부분이 지하자원인데, 중국 경기가 하강하면서 북한 지하자원 수요가 줄고 있다. 최근 북 실세 3명의 남한 방문도 이런 리스크가 가시화된 사건이다. 중국 수요 위축으로 경제적 상황이 절박해진 북한이 한국을 통해 난관을 타개하려고 했다는 것.
◇ 통일 대박론, 아쉬운 세 가지는...
다만 김 교수는 통일대박론에서 남한의 경제적 편익만이 중점적으로 부각된 데는 아쉬움을 표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세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우선 통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1) 경제문제보다도 국민적 공감이라는 점이다. 그는 "통일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돈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이 어떤 식의 사회를 원하는지 북한 주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라고 말했다. 아직 북한 문제를 두고서 남남 갈등이 심한 건 그만큼 국민적 공감이 덜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 통일에 따른 (2) 남한의 편익 뿐 아니라 북한쪽의 편익도 강조돼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통일이 남한에게 대박이라면 북한엔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이득이 된다. 이 점을 부각해 북한 스스로가 체제변화를 원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통일대박이 가능하려면 (3) '점진적 통합 후 통일'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 더 충분히 강조돼야 한다고 밝혔다. 만약 북한 체제가 급작스럽게 붕괴하고, 통일 후 통합과정을 겪어야 하는 흡수통일이 발생한다면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우리란 주장이다. 김 교수는 "우리 입장에서 급진적 통일은 대비는 해야 하지만 추구할 순 없다"고 말했다.
통일 대박론이 점진적 통합 후 통일을 전제로 하고, 이 점진적 통합은 북한이 스스로 체제 이행을 택하는 시나리오 하에서 가능하지만 이런 상황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은 딜레마다. 따라서 우리쪽에서 할 수 있는 건 북한이 스스로 체제를 변화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노력의 첫 단추는 경제적 교류다. 상품 교역, 북한 지하자원 공동 관리, 특구 투자 등 자본 이동 단계를 거쳐 그 다음으로 정책 공조가 돼야 한다. 그리고 이 경제적 교류의 활로를 민간부문 협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민간이 훨씬 창의적으로 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개성공단이 보이는 큰 구멍이라면 민간이 뚫는 더 효율적으로 작은 구멍으로 북한 사회가 변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도적 지원은 상시적으로 하고 민간경협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풀어줘야 한다는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민간에서부터 쌓아 올라가면서 점진적으로 한국 자본이 들어가고 특구 개발, 인프라 건설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인프라 개발까지 가는 과정에 북한의 체제 이행이 병렬적으로 따라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개인적으로 그는 올해 들어 시간 관리가 고민이다. 올해 들어 통일이 화두로 부상하면서 교수로서 연구, 교육, 사회 기여 중 사회 기여에 들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연구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전공분야 특성상 사회기여를 무시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기초적 연구를 해서 다른 분들이 이를 기초로 정책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하는게 제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론] '박근혜 통일 방안'에 대한 기대
세계일보 | 입력 2014.03.18 22:20 | 수정 2014.03.18 22:26
신뢰·협력 관행 쌓으며 진전시켜야
민주적 원칙 바탕 담론 형성이 중요
2014년 동북아 안보환경은 '퍼펙트 스톰'(거대한 폭풍)이 다가오는 형국에 비유될 정도다. 미국의 지역 안정자 역할은 약화되고 있고, 북한의 핵무장화는 공고화되고 있으며, 일본의 보통국가화 추진에 따른 역내 불안정성이 가속화되고,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안보재앙의 악몽이 우리의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안보재앙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평화통일의 축복일 것이다.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던졌고 2014년을 통일준비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화두를 내걸었다. 우리는 현재 이 두 극단적인 안보환경 사이 그 어딘가에 서 있다.
박 대통령은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를 마치고 25일 독일을 방문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헬무트 콜 총리가 독일 통일이라는 목표를 선포한 구 동독의 대표적인 경제중심 도시인 드레스덴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존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방안에 이어 보다 구체화된 '박근혜식 통일방안'의 발표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사진] 김흥규 아주대 교수·국제정치학
역대정권의 경험을 보자면, 통일을 강조한 정부일수록 오히려 통일에 역행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정세분석의 미숙과 통일철학의 일천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표'는 이러한 우려를 넘어 실천적인 의미의 통일방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낳게 한다. 그 단초는 박 대통령이 2002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동아시아연구소에서 밝힌 '남북 경제공동체 통일방안'에서 읽혀진다. 이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을 지속적인 과정의 산물로 인식하면서 기존의 '통일조급증'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기존의 '민족공동체론'이나 많은 통일 담론이 정치적 통일 위주였던 데 반해 '경제공동체' 수준의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기초로 신뢰와 협력의 관행을 쌓고 더 고도의 단계로 진전시킬 것을 기대한다. 동시에 통일의 최종 단계(end-state)마저 배타성을 띠기보다는 유연하게 열어놓고 있어 남북한 간의 타협,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평화구축을 통일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로 두면서, 동시에 평화적 방식으로 한민족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설을 읽고 있자면, 현재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방안조차도 제대로 그 철학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독일 통일의 경험을 보자면, 통일을 위한 기회의 창은 갑작스레, 찰나간에 찾아왔다. 독일 통일은 필연이 아니었다. 통일은 준비된 정부와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서독은 안보를 확고히 하면서도, 일관된 정책을 지니고 꾸준히 동독과 교류를 추진하고 접촉의 면을 넓혀왔다. 주변의 주요 이해 강대국과의 외교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지역통합의 흐름을 잘 활용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지지와 소련의 용인을 동시에 얻어내야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동독 주민의 마음이 서독과의 통합을 갈망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관건의 시기에 전략적인 비전과 담대함을 지닌 지도자의 결단력이 중요했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민주적 원칙을 충분히 활용해 통일담론을 형성하면서 통일을 위한 국내적 내구력을 육성해왔다는 점이다.
북한은 정권의 공고화 및 유지를 위해 우리의 정책방향 여부와는 관계없이 한국과 일정 정도의 긴장과 갈등을 필요로 한다. 향후에도 갈등과 협력이 복합적으로 공존할 것이다. 전근대 국가체제와 근대 국가체제 사이의 신뢰 형성은 지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북한을 견인해 통일의 길로 이끄는 역량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
결국 안보재앙의 악몽과 평화통일의 축복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어떠한 길을 걸을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얘기다. 독일 통일의 교훈과 12년 전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설에서 드러난 비전을 구체화시킨 박 대통령의 통일 방안이 이번 '드레스덴 선언'에서 나오기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유연해 북한을 끌어안으면서도 전략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통일로 가는 길을 닦는 그런 비전을 기대한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국제정치학]
통일대박론의 진정한 의미
[한겨레] 2014.02.18 18:28 수정 : 2014.02.28 17:07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정치인들의 말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정치학에선 금물이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가 하도 많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행동을 봐야 그 정치인의 노선을 알 수 있다. 오바마는 ‘변화’를 들먹여서 두 번이나 당선에 성공했지만, 기존의 민영 의료보험의 틀을 깨지도 못하는 연방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이외에 과연 변화된 것이 있는가? 한국의 경우는 더 심각해 대부분의 대통령 공약들은 현실화될 수도 없고 현실화될 일도 없는 동화책에 불과하다. 이명박의 747개 공약 중 실천에 옮겨진 것은 하나라도 있는가? 참, ‘7% 성장’을 공약한 것은 실은 이명박도 아니고 노무현이 처음이었다. 유권자들을 바보로 취급해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득표해보려는 전략의 차원에서는 여야도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나 고급 공직자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야 한다. 그들의 말 속에서 그들의 세계인식의 프레임이 여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의 최근 ‘통일대박론’은 의미심장하다. 일면으로 보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의 발언들이 그렇듯이 그저 허황한 낭설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금의 시점에서 도대체 무슨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점진적 평화통일을 이야기한다면, 햇볕정책을 계속 폈을 경우에도 갈 길은 한참 멀었을 것이다. 신뢰구축, 경협, 군축, 남북한을 아우를 수 있는 과도기적 공동체의 기초 쌓기 등은 빨라도 수십년의 시일을 요할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이명박이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박근혜는 이명박의 재앙적인 대북정책 후과를 시정하는 데 거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같으면 통일 그 자체보다는 신뢰구축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평화통일 아니라면, 북한 붕괴와 미국의 도움을 받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시나리오를 이야기한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당분간 매우 적으며, 혹시나 현실화될 경우에는 ‘대박’이 아닌 초대형 비극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박근혜 주위의 극우들 특유의 소망적 사고가 작용돼 장성택 숙청 등 북한에서의 일련의 사태들을 ‘지배층 분열, 지배구조 약화’로 오독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장성택 숙청이 보여준 것은 북한의 지도부가 고위관료에 의한 자원의 사유화, 곧 현대판 ‘호족’들에 의한 관료적 ‘소왕국’의 출현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곧, 이는 북한 붕괴 임박의 조짐이라기보다는 수령주의적 1인통치 구도가 제3대에 가서도 다시 공고화 될 수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면 만에 하나 북한이 정말 심각하게 흔들린다면? 그다음 가장 현실적 시나리오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보다는 북한의 관민들이 차라리 더 반길 중국의 개입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개입이 한반도를 무대로 하는 중·미 무장 갈등으로 번진다면… 세계의 무기업자들에게야 대박이겠지만, 한반도 역사로서는 아마도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이상의 재앙이 될 것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통일대박론에는 근거도 논리성도 전무하다. 그러나 남한의 경제·정치 영토가 북한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들이 국내 고위관계자들의 입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것 자체는 중요하다. ‘통일대박’이라면, 국정원장 남재준의 “조국을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에 비해 조금 얌전한 편에 속하기도 한다. 남한 정부의 일부 언행은 북한의 국가적 입장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계속 준다.
예를 들어 지난 한-러 정상회담에서 박근혜가 러시아와 북한의 나진·하산 물류협력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양해각서에 사인한 뒤로는 “부산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서유럽으로 열차로 갈 수 있는 유라시아 시대” 등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상식적으로 북한의 동의 없이 이 ‘유라시아 시대’는 그저 허황된 꿈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유라시아 시대’를 거론하는 박근혜는 북한을 국제정치의 독립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양 그 입장에 대한 관심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듯하다. ‘우리 경제 영토로 삼키고 말겠다’는 이와 같은 야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여기에서 한 가지 일반론적 이야기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범적 신자유주의 사회에 가까운데,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사회 질서는 자전거와 같다. 자전거가 계속 굴러가지 않으면 바로 넘어지듯이, 신자유주의는 계속해서 그 경제·정치 영토를 넓히지 못하면 바로 이윤율 저하, 과잉 축적의 위기에 빠진다. 원래 신자유주의의 시발점은 고임금 노동과 제조업 기반의 자본을 축으로 했던 전통적 포디즘 모델에서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였다. 1960~70년대에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의 아시아 신흥 산업국가들이 제조업 시장에 뛰어든데다가, 최근에는 중국 등 후발주자들까지 가세해 과잉생산의 현상이 뚜렷해지고, 오일 등 에너지 자원이 비싸지는 것은, 과거와 같은 자국 고임금 노동자들을 주로 고용하는 제조업 위주의 모델이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본이 찾아낸 돌파구는 바로 국내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고용질서로의 전환과 국외로의 확장, 그리고 금융부문으로의 전환 등의 삼두마차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중국 등 저임금 국가로 쳐들어오는 핵심부와 준핵심부 자본들이 거기에서 값싼 소비재를 만들고, 국내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당해 사실상 실제 소득이 떨어진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그 값싼 소비재를 구매하면서 실질적 소득 저하를 덜 실감하게끔 하는 전략이다. 또 동시에 금융업으로 전환하는 핵심부 자본들은 끊임없이 주변부 투자를 통해서 초과이윤을 모색하고, 그 이윤의 일부가 세금으로 떼여 실질적으로 가난해지는 대다수 자국민들의 기초복지비용으로 쓰임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국가와 자본의 생존방식이다. 한마디로 ‘확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라서 지난 25년 동안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핵심부·준핵심부 주요국가들은 그들이 정치력까지 행사해서 현지 정권을 통해서 해당 국가의 자본에 필요한 정책들을 손쉽게 집행케 할 수 있는 일종의 신자유주의판 신식민지들을 확보해 놓았다. 예컨대 미국에는 그 정부가 미국의 말을 대체로 잘 듣고, 그 수출의 80%가 미국으로 가고, 그 해외투자 유입의 약 50%를 미국이 담당하는 멕시코가 있다. 또 1억1000만명 정도의 멕시코 총인구의 약 10%에 해당되는 수의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 안에서 이민자로서 제일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맡아 그 송금으로 멕시코 서민인구의 상당 부분을 먹여 살리기에, 미국에 대한 종속은 풀뿌리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유럽연합에 가입된 옛 동유럽권의 주요 국가(체코·폴란드·헝가리 등)의 경우에는 정치적으로 독일이 압도적으로 주도하는 유럽연합의 행정기관에 복속하게 됐으며, 경제적으로 외자의존경제의 전형이 되고 말았다. 가장 제조업 발달수준이 높았던 체코 같으면, 전체 경제에서의 외자기업 비중은 1995~2009년 사이 7%에서 42%까지 오른 것이다. 유럽치고 비교적 약한 스웨덴의 금융자본에마저도 그들이 은행주식의 약 90% 정도를 보유하면서 금융계를 좌우하고 정부를 마음대로 압박·조정할 수 있는 모범적 신식민지인 에스토니아가 있다. 스웨덴의 국민총생산은 대한민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말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고 외치는 “개방, 개혁”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멕시코나 체코, 에스토니아가 되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민중으로서도 한국 피지배자로서도 이와 같은 ‘새끼 제국주의’를 배격해서 평등하고 민중 본위, 북한 주민 등 약자 본위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그러니까 한국 지배자들로서는, 단순한 자본의 침윤을 넘어 현지 정부까지 마음대로 움직여 한국 자본을 위한 특권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형 신식민지가 없어서 안달이고, 계속해서 북한에 대한 식민화 망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고 외치는 “개방, 개혁”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멕시코나 체코, 에스토니아가 되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민중으로서도 한국 피지배자로서도 이와 같은 ‘새끼 제국주의’를 배격해서 평등하고 민중 본위, 북한 주민 등 약자 본위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다. 한국 자본에 의한 북한의 신식민화는 그 모든 피해자들에게 대박이 아닌 고통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통일대박론'이 통일쪽박론, 통일피박론이 되지 않으려면... 자비와 사랑을
[참여연대] 2014.07.16 22:06:50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윈회'라는 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50명의 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진보적 인사가 많이 포함되지 않아서 아쉽고 개념이나 목적이 모호하고 통일부와 민족평화통일위원회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불분명하며 정책결정기관이 아니라 정책자문기관이라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나 저 보다 뛰어난 블로거를 통해 접하시기 바랍니다.
"시작도 안했는데 초 치지마라"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1년간 준비한게 이 모양이면 다시 더 시간을 두고 꼼꼼히 준비를 해서 시작하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대박론- 누군가 대박이면 누군가는 피박을 써야 하는거 아닌가요!! 생각없이 고만 부르면 고박을 쓸 거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통일을 자꾸 경제적으로만 다가가려는 기득권을 경멸하며 거기에 기대는 일부 세력도 경멸합니다.
통일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하에 이루어지고 남의 자유민주주의와 북의 인민민주주의 절충된 모습으로 나타나야합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쏠림현상는 통일이라는 대동단결의 판을 엎을 수도 있습니다. 수치로 말하는 통일론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알 수 있으시니 저는 간단하게 몇 말씀만 드리지요.
"통일비용이 3000조이상 들어간다고 하는데 꼭 통일해야 하나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세계경제에서 북한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말이 통하고 같은 문화권에서 4950년을 살았으며 교육수준이 높은 북한과의 동반자적 경제협력은 이명박이가 말한 747로 가는 유일한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말하자면 북한은 북한대로 벌고 남한은 남한대로 벌어서 쓸건 쓰고 팔건 팔고 발전시킬 건 발전시키고 도와줄 건 서로 도와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며 무시하지 않고요. "통일비용 재원 마련을 하려면 남한 측이 세금 폭탄을 맞는거 아닌가요" 3000조을 30년으로 나누면 100조가 나옵니다. 두 나라가 연방제로 30년동안 서로를 인정하고 합의해서 통일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전제하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볼 때 비용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는데 100조 정도면 적당하다 싶네요.
첫번째로 지금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면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로 군사 경쟁이 깨지니 국방비의 삭감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당연히 민간기업이 진출해서 투자하는 비용은 통일비용에 들어가겠죠.
넷째로 대북원조로 나가고 있는 돈이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이 네 가지를 합한데다 국채 발행하고 이명박근혜가 실시한 부자감세를 원위치시키고 민간기업이 북한에 진출해서 돈을 벌면 남한에 세금을 내야하니 이정도면 100조 나옵니다. 안나오면 1인당 5만원씩만 세금 더 내면 2조 5천억입니다. 이런식으로 도와주고 나중에 북한이 남한이랑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면 다시 받으면 안되나 싶어요. 차관 빌려주듯이요.
내 민족이니 못 갚으면 금강산 중 하나 달라고 하면 안되나? (북한 미안)
"남한의 기업들이 모두 노동력이 싼 북한으로 다 가면 남한의 노동자는 어떡하나요"
이게 맞는 말 같은데 잘 생각하면 함정이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되면 남한의 몇몇 재벌들과 북한만 잘 사는거 아닌가해서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상호체제의 긍정적 측면을 살리고 부정적 측면을 배제하는 게 필요합니다.
남한의 장점과 북한의 장점은 다릅니다. 북한은 노동집약적인 사업과 관광사업에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은 기술 집약적인 사업과 서비스업에 강점을 기지고 있숍니다.
북한은 인민민주주의로 100% 취업이 보장된 나라이고 시간노동제가 정착된 나라입니다. 남한처럼 설치사업을 만들어 놓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정규직은 초과수당을 받는 구조는 아니지요 북한에 어울리는 경제와 남한에 어울리는 경제가 다르다는 말씀이며 이는 남.북한의 경제 규모를 더 키울 거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혜택을 볼 것입니다. 또한 북한에서 돈 벌어서 남한에 쓰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통일대박론 즉, 흡수통일은 통일 쪽박론, 통일 피박론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7.4 남북공동선언, 6.15선언, 10.4공동선언에서 천명한 자주, 평화,민족대단결에 기초한 합의통일론,연방제 통일론만이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더불어 노동자들의 살 길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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