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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념

[이념 대립] 흥분하는 한국, 차분해진 미국

잠용(潛蓉) 2015. 3. 9. 09:19

흥분하는 한국, 차분해진 미국
한겨레 | 입력 2015.03.06 20:30 | 수정 2015.03.06 22:20 

 

박 대통령 "배후세력 철저히 밝혀내라" 지시

이병기 "헌법부정세력 근본 대책마련" 
김무성 "한미 동맹의 심장을 겨눈…"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 '종북세력' '배후 엄단'을 언급하며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증폭시키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동 4개국을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피습 사실을 보고받은 직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6일엔 "백주 대낮에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도를 높였다. 또 박 대통령은 "이 사람(피의자 김기종씨)이 과연 어떤 목적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모든 일을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철저한 '배후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에 사실상 수사 지침을 내린 셈이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선 미국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안보 파트너라는 현실 인식과 '불순한 외부세력 존재'에 관한 의심이 중첩된 결과로 여겨진다. 부모가 모두 피살당하고, 자신도 2006년 커터칼로 피습을 당한 트라우마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안에선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중국에 경도돼 있다는 미국 쪽 불만을 의식해 (더) 강경하게 나가는 것 아니겠느냐"는 풀이도 나왔다. 이런 박 대통령의 지침에 맞춰 당·정·청은 6일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종북세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배후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에 공감했다"고 회의 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한미동맹의 심장을 겨눈 끔찍한 사건"이라고 규탄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김씨를 '막가파 종북주의자'라고 규정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반미·종북세력"(장윤석 의원), "종북세력의 집단적 단말마"(하태경 의원) 등의 표현을 쓰고 "평양과 맥을 같이하는 특정 세력 소행이 거의 100%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다 밝혀졌다"(이인제 최고위원), "범인은 종북단체 소속이고, 방북도 수차례 했다 한다. 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김진태 의원) 등 김씨의 행동과 북한을 연관짓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안에서도 "극단주의자의 개인적 일탈인데, 여기서 종북몰이를 하면 역풍이 분다"며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류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새누리당이 보수 정당이라, 북한을 왕래했다는 이력이 나온 마당에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지만 이데올로기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민식 의원도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마녀사냥이나 종북몰이로 활용하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이것은 개인의 극단적인 일탈행위"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이번 사건이 자칫 종북몰이나 공안정국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김성곤 의원은 <와이티엔>(YTN) 라디오에서 "사건을 지나치게 정치이념적으로 보는 건 너무 나간 것"이라며 "이 사건이 한미관계를 흔들 사건은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 해석하는 게 한미관계에 더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계했다.

조혜정 이승준 기자zesty@hani.co.kr

 

위기의 한국사회... '이념 테러' 확산되나?
국민일보 | 조성은 기자  | 입력 2015.03.07 03:00 
 
진보-보수 간 대립 격화되면서 이념 좌절·경제적 빈곤 겹칠땐
‘외로운 늑대’ 극단 행동 가능성

맹국 외교사절을 겨냥한 사상 초유의 테러 사건이 벌어지면서 한국도 더 이상 '테러 청정국'이 아님을 보여줬다. 진보·보수 간 대립이 극단주의적 형태로 표출되면서 '이념 테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55)씨는 1980년대부터 민족주의운동에 투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여년간 활동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등 궁지에 몰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자신의 생각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이 같은 선택을 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씨가 6일 오후 휠체어에 탄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서영희 기자

 

곽대경 동국대 교수는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씨는) 자신이 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아 억울하다는 피해의식이 강하다"며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는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이 극단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서구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도 일정 부분 유사성이 나타난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호주 카페 인질극 사건 등의 경우 대부분 현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이민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사회 분위기와 경제적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차이점은 그 배경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종교가 아닌 이념 대립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유럽에서도 동·서 냉전이 극심하던 시절 독일의 '바더 마인호프 그룹',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 등 테러 집단이 기승을 부렸지만 소련 붕괴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분단이 70년 동안 이어지면서 누적된 갈등이 테러로 분출되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의 유산인 이념 갈등이 비교적 최근 경향인 '외로운 늑대'형 테러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준태 동국대 교수는 "한국에서 종교는 상당히 온건한 경향을 보이지만 이념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며 "북한에 대해 통일이나 인권 등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보수의 구분을 넘어 극좌·극우 대립으로 번질 수 있다. 이 경우 자신의 생각을 치명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극단주의가 자생한다"고 지적했다. 그 단초는 벌써 여러 차례 나타났다. 해방정국을 어지럽힌 백색테러집단을 계승했다는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지난해 9월 등장해 세월호 노란 리본을 철거하는 행동을 시도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고교생 회원이 '종북 세력을 응징하겠다'며 진보 성향 인사가 주최한 행사에 찾아가 폭발물 소동을 일으켰다. 곽 교수는 "어느 사회나 극단주의 성향의 외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조기에 파악해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게 잘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