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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 '유언비어를 두려워하는 나라'… 무언가 취약한 나라

잠용(潛蓉) 2015. 6. 6. 06:14

유언비어를 두려워하는 나라
경향신문 | 박은하 기자 | 2015.06.05. 21:03 | 수정 2015.06.05. 22:08  
 
▲ 불안과 공포 부추기는 정보 통제 대형 이슈 때마다 “엄단” 외치는 정부 메르스 대응보다 ‘괴담 대응’에 열 올려 지인들에게 카톡 전송한 40대 검거
▲ 괴담 유포 혐의로 입건되면 업무방해·명예훼손죄 적용 가능하지만 ‘공공기관은 명예훼손 대상 안돼’ PD수첩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 선례
▲ 사회가 투명하면 자정작용 시스템 작동 표현의 자유·알권리 충족될 때 가능 메르스 초기 ‘바셀린 소동’ 도 전문가들의 지식 공유로 사그라들어

2009년 서울, 인천, 청주 등지에서 현관문 옆에 ‘α’, ‘β’, ‘x’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지가 있다는 증언이 인터넷에 속속 올라왔다. 혼자 사는 여성을 표적 삼아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남긴 표시라는 해석이 힘을 받으면서 괴담은 빠르게 확산됐다. 배달원이나 검침원이 남긴 표시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괴담은 몇 달간 지속되었다. 12월 경찰이 “표지가 발견되면 일단 신고하라. 아직 신고가 들어오거나 범죄사실이 확인된 것은 없지만 강·절도 예방을 위해 방범활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발표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잠해졌다. 이 괴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했지만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으로 정부 당국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당국은 ‘전염병 확산과의 전쟁’ 와중에 ‘유언비어와의 전쟁’을 공언하고 나섰다. 질병과 관련,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메르스 확진자가 2명으로 늘어난 지난달 31일 경찰은 “SNS의 메르스 관련 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범죄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독버섯처럼 자라는 인터넷 괴담을 뿌리부터 찾아내 뽑아내야 한다”고 논평한 날이다.

 

국무총리 대행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는 괴담이나 잘못된 정보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선제적인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경찰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업무방해 및 명예훼손)로 이모씨(49)를 입건했다. 이씨는 “메르스 발생 병원. 현재 격리조치 중. 널리 전파해달라”며 광주 ㄱ병원 등 병원 4곳의 명단을 카카오톡으로 지인들에게 전송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민들은 정보통제와 유언비어 탄압이 불안과 공포를 더 부추긴다고 말한다. 7일 열릴 예정이었던 ‘하이 서울 자전거 대행진’ 사무국은 “게시판에 올라오는 메르스 관련 논쟁 글은 양해 없이 삭제한다”고 밝혔다가 빈축을 샀다. 이모씨(30)는 “메르스 관련 문의에 사무국이 응답하지 않으니 사람들끼리 (행사를 취소해야 하는지) 댓글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것인데, 황당한 조치”라고 말했다. 사무국은 5일 행사를 취소했다. 3살 된 아들을 둔 서모씨(30)는 “3차 감염자는 없다더니 결국 유언비어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유언비어보다 유언비어 통제가 더 짜증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천안함 침몰 사건, 한·미 FTA 타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등 대형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유언비어 엄단’을 외쳤다. 하지만 유언비어 처벌은 법적으로 무리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옭아맨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 통신을 한 자’를 처벌토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공익을 해할 목적’ 규정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검사 입맛에 따라 기소권이 남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괴담 유포 혐의로 입건되면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다. 2008년 광우병 위험성을 경고한 MBC <PD수첩> 제작진이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8년 한 50대 남성이 자신을 ‘전투경찰’이라고 속이고 “전경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는 내용을 라디오 방송에 투고했다. 전경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 남성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부는 라디오 사연 한 번으로 경찰에 대한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명예훼손이 인정된 경우도 있긴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당국이 시신을 일부러 수습하지 않은 것처럼 꾸민 허위대화록을 작성해 퍼뜨린 30대 남성은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단순 허위사실 유포 때문이 아니었다. 휴대폰 2대를 이용해 1인 2역을 하며 대화록을 만들었다는 특수성이 유죄 인정에 영향을 줬다. 이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 논란이 일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유무죄를 떠나 경찰·검찰에 불려다니며 조사받고 재판받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유언비어는 못 잡고 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증오만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경찰 관계자는 “윗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경찰력을 낭비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유언비어 단속’을 내세운 ‘사이버 공안’ 분위기는 원칙과 시스템에 의한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정보가 통제되면 사람들은 공식적인 기준을 믿지 않고, 자연스럽게 ‘절차를 벗어난 실력 행사’에 의존한다. 경기 수원시의 ㄴ초등학교는 메르스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학부모들의 요구로 4일부터 휴교에 들어갔다. 경기교육청은 이미 학예회·수영교습 등 단체 활동을 취소·연기시키고, 메르스 의심환자가 1명 발생하면 해당 학급 등교정지, 확진 환자가 1명 발생하면 학교 전체가 휴업하도록 했다. 교사 ㄷ씨는 “학부모 대표 3~4명이 3일 학교를 찾아와 휴교하라고 요구했다”며 “교육청 방침대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에게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5일 기준 휴교에 들어간 학교는 전국 총 1163곳이다.

 

‘빽’과 ‘인맥’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최모씨(39)는 “정부 발표나 언론 보도를 믿을 수 없으니까 기자나 공직에 있는 친구들에게 따로 물어보게 된다”며 “보건복지부에 친한 사람이 있다면 메르스 발병 병원을 알아내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생 자녀를 둔 ㄹ씨는 “지인이 의사라서 언론보도가 나기 전에 어느 병원 의사가 감염됐는지 알고 있었다. 아는 엄마들끼리만 공유했다”고 말했다.

 

사회가 투명하면 유언비어는 자정작용을 통해 진정된다. 3일 한때 ‘바셀린을 콧구멍 점막에 바르면 메르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문자메시지가 퍼졌지만, ‘바셀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환균 전 의사협회장이 인터넷 언론에 직접 기고하는 등 여러 언론 매체에서 “사실이 아니다”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유언비어가 일시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부를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가 충족되면 자정작용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언비어나 괴담이 반드시 대규모 시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국가에서는 대부분 광우병 논란이 일지만 정부와 시민이 과학적 지식을 공유하면서 합의해간다. 2008년 한국의 경우 정부, 여당, 일부 보수언론이 광우병에 대한 무지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소통을 단절해 갈등이 커졌다”고 말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정보를 통제하면 시민은 ‘사적 유통’에 의존한다. 이는 때때로 위험하지만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에 의한 것”이라며 “정보통제는 위험한 사적정보 유통을 늘리고 관료들의 대응능력만 떨어뜨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 소장은 “2003년 한국이 사스 통제에 성공했던 것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유언비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경향신문 | 박은하 기자 | 2015-06-05 21:03:42ㅣ수정 : 2015-06-05 21:38:10 
     
“사람들은 소문 믿지만 진실 추구” 처벌보다 정보 제공이 ‘답’…
미국은 신속 답변 ‘소문통제 센터’ 운영

▲ 임진왜란 때 ‘선조 도망갔다’ 사례처럼 유언비어엔 당대 분위기·열망도 담겨
中, 500번 넘게 리트윗 때 작성자 처벌 2013년 첫 사례 중학생 입건 비난받아

1592년 8월 임진왜란이 발발해 의주로 피란 가 있던 조정에 긴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백성들 사이에 ‘선조가 요동으로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유언비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문은 금세 ‘선조가 이미 요동으로 도망갔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어 ‘왜군이 우의정 이덕형을 새로운 왕으로 세워 국정을 개혁한다’는 구체적 내용이 추가됐다. 김만호 박사(전남대 사학과)는 논문 <임진왜란기 유언비어와 사회상의 변화>에서 “백성들 사이에 퍼진 선조에 대한 불신, 생존공포, 이덕형에 대한 기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 등을 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언비어는 틀린 사실을 담고 있더라도 공식적 기록이 알려주지 않는 당대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감정을 전해준다. 유언비어는 ‘불안’과 ‘공포’를 먹고 자란다. 정보가 통제·왜곡된 상황에서 더 큰 위력을 떨친다. 미국 정치학자 레이먼드 바우어와 데이비드 글래처가 1950~1951년 미국 또는 서유럽으로 망명한 소련 시민들을 300회 이상 인터뷰했다. 연구 결과 응답자의 66%가 신문, 라디오, 공식 발표, 직접 관찰 등을 제치고 소문을 ‘가장 중요한 정보’로 꼽았다. 1930~1940년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공식 뉴스가 신뢰받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유언비어는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기도 한다. 1923년 40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발생시킨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 수천명이 학살당했다. 일본 경찰이 소문 조장에 가담하고 폭력행위를 방조해 벌어진 일이다. 1931년에는 중국 지린성에서 중국 농민들과 조선 출신 농민들이 충돌한 ‘만보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언론보도를 통해 ‘중국 농민들이 일방적으로 조선 농민을 습격했다’는 내용으로 잘못 전해져, 한반도 내 화교들이 공격받았다. ‘공공기관’ ‘언론’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잘못 개입할 때 소문은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

 

유언비어 통제 수단으로 법적 제재가 자주 동원된다. 인도 정부는 2005년 자연재해 법령 54조에 ‘재해에 대한 거짓 경보나 경고 등을 만들어내는 자 혹은 퍼뜨리는 자는 공황 정도의 경중에 따라 판결을 내릴 것이며, 1년 이상의 구금 혹은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중국 정부는 2013년 ‘유언비어가 500번 넘게 리트윗되면 작성자를 형사 처벌한다’는 규정을 도입했다. 첫 사례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공안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외려 유가족을 구타했다”는 내용을 올린 간쑤성의 중학생(당시 16세)을 입건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처벌이 아닌 답변을 통해 유언비어를 재우는 법도 있다. 미국에서는 지방정부에서 ‘소문 통제 센터(rumor control center)’를 두고 있다. 소문이 돌면 정확한 정보를 알려준다. 플로리다 샤로트 지역 온라인 소문센터에는 ‘지방행정기관이 개인 골프장 잔디에 물 대주느라 세금을 낭비한다’ ‘이구아나를 없애는 데 많은 세금과 시간을 낭비한다’ 등 별별 내용이 다 올라온다. 센터는 사실 여부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응답한다. <루머사회>의 저자 니컬러스 니폰조는 “사람들은 소문을 잘 믿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소문에 대한 명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소문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