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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영상시] '고풍의상' (古風衣裳 1939) - 조지훈 작시

잠용(潛蓉) 2015. 9. 4. 12:45


고풍의상 (조지훈) - 낭송 김윤아

 

[영상시] '고풍의상' (古風衣裳 1939)

조지훈 작시/ 낭송 김윤아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샅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雲鞋 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胡蝶


胡蝶인냥 사풋이 춤을 추라

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냥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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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연(附椽): 지붕 끝에 덧얹는 서까래
* 회장(回張) 저고리: 여자의 저고리에서 깃이나 소맷부리 등에 다는 자주색이나 남빛 헝 겊으로 꾸민 저고리
* 운혜(雲鞋): 앞 코에다 구름문양을 놓은 신
* 당혜(唐鞋): 신의 코와 뒷부분에 꼬부라진 눈을 붙인 가죽신
* 호접(胡蝶): 나비
* 아미(蛾眉): 미인의 눈썹


[해설] 조지훈(1920~1968)은 자연 친화적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는 ‘청록파’ 시인답지 않게 부조리한 현실과 역사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했던 시인이다. <고풍의상>(1939)은 <승무> <봉황수>와 함께 《문장》지의 추천작으로 그의 초기 시 세계를 대표하고 있다. 시인은 고풍의상(古風衣裳)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을 정감어린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1, 2행은 전통 한옥에 대한 미적 표현이다. 이어서 3행에서 ‘두견이 소리’의 청각적 묘사와 봄밤의 시각적 묘사가 섞인다.  밤이 깊어간다. 그리고 아름다운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의 춤사위가 우아하게 펼쳐진다. 화자는 그 모습에 도취되고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한복의 저고리와 치마가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두견이 소리로 비유되는 ‘봄밤’은 배경묘사에 그치고 있다.

[출처] 조지훈의 「고풍의상」|작성자 한상훈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약력

시인. 본명은 동탁(東卓). 경북 영양(英陽) 출신이다.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서울 혜화전문(惠化專門)을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우리의 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과 박목월(朴木月) 두 사람과 함께 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19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19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출판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시집 <역사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 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이다. 1962년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 <신라가요연구논고>, <한국민족운동사>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다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