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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영상시]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작

잠용(潛蓉) 2015. 9. 4. 15:27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낭송:문현옥)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작 / 낭송 문현옥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主人)은 “거지는 인격(人格)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生命)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罪惡)이다.”고 말하얐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어 나올 때에, 쏟어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야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者)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 하고 능욕(凌辱)하랴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왼갖 윤리(倫理), 도덕(道德), 법률(法律)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烟氣)인 줄을 알었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역사(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서릴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시집 <님이 침믁 1926>에서 

 


 

◇ 작품

우리나라 현 시국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온갖 윤리, 도덕, 법률이 무력과 재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의미) 이제 H.D. 소로의 경고, "법은 매일 부정의를 집행한다."는 그의 경고는 우리 발등 앞에 떨어진 불이 되었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는 쥐새끼의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물론 민적이 있어도 자신에게 아부하지 않는 자에게 인권이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인권을 보았고, 민주주의를 보았고, 자유를 보았고, 제 식대로 말하면 아나키를 보았습니다. 눈뜬 자의 코를 베어 갈 수는 없는 법. 이제 인권이 없는 것은 쥐새끼가 될 날이 오고야 말리라 굳게 믿습니다.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이 겪는 굴욕적 처지를 상징하는 시어는?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主人)은 “거지는 인격(人格)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生命)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罪惡)이다.”고 말하얐습니다. 이 시에서 '당신'은 이 세상의 허위의식과 세속의 논리를 초월한 절대적 존재 또는 조국 광복을 의미한다. '당신'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 상실과 슬픔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삶에 신념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어려운 시대 상황이 강요하는 억압, 고통과 싸워 이겨나감으로써 올바른 역사전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이 시에 담겨 있다

 

이 시는 부정적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실의 모습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의 '없음'으로 파악된다. '땅이 없고', '추수가 없고', '인격이 없고', '생명이 없고', '민적이 없고', '인권이 없다'라는 구절에는 '당신'이 가신 것에서 연유하는 절망적 현실 인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당신'을 잃고 홀로 선 '나'는 거지와 같이 모멸(侮蔑)당하고 마침내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인권과 정조(貞操)까지도 유린당하는 절망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러한 순간에 보게 되는 '당신', 그는 구원과 희망의 표상인 동시에 불의와 폭력에 항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사회의 온갖 규범이 지배자의 권력과 금력을 유지하기 위한 헛된징표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과 역사의 부정과 자포자기 속에서 갈등할 때 '나'는 또 '당신'을 보는 것이다.

 

'영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저 너머에 존재하리라고 생각되는 초월적인 진리속으로 은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기보다는 몽롱한 상태로 현시로가 영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식민지 현실 속에 메몰되어버린 이런 세 가지 인간 유형이 보여 주는 비역사적인 태도는 만해로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끝내 인간 역사의 발전을 믿고 역사 속에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가슴에 부활하고 있다. 

 

◇ 만해 한용운(萬海 1879. 8. 29.~ 1944. 6. 29)

일제 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에 대한 대안점으로 불교사회개혁론을 주장했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며 1944년 6월 29일에 중풍과 영양실조 등의 합병증으로 병사하였다.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보완하였다.[1]또한 옥중에서 '조선 독립의 서'(朝鮮獨立之書)를 지어 독립과 자유를 주장하였다.

 

1910년에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불교동맹을 반대철폐하고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의 독립지사(志士)들을 만나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918년 11월부터는 불교 최초의 잡지인《유심》을 발행하였고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하여 체포당한 뒤 3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났다. 1920년대에는 대처승 운동을 주도하여 중에게도 결혼할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1926년 시집《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 언론활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2월부터는 신간회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과 이듬해 신간회 경성지부장을 지냈다.

 

1918년에《유심》에 시를 발표하였고, 1926년〈님의 침묵〉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님의 침묵에서는 기존의 시와, 시조의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로 시를 썼다. 소설가로도 활동하여 1930년대부터는 장편소설《흑풍》(黑風),《후회》,《박명》(薄命), 단편소설《죽음》등을 비롯한 몇편의 장편,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1931년 김법린 등과 청년승려비밀결사체인 만당(卍黨)을 조직하고 당수가 되었으나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를 적발하는 과정에서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저서로는 시집《님의 침묵》을 비롯하여《조선불교유신론》,《불교대전》,《십현담주해》,《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또한,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탑골공원에서 인사를 하자, 만해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차갑게 대했다고 한다.

 

◇ 만해한용운 심우장 (萬海韓龍雲 尋牛莊)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한용운(韓龍雲)이 만년(晩年)을 보낸 한옥이다. 시도기념물 제7호(성북구). 1933년, 김벽산(金碧山)이 초당을 지으려고 사둔 땅을 기증받아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사장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이 곳에서 1934년 첫 장편소설인 『흑풍(黑風)』을 집필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위치하던 남쪽을 등진 곳을 택하여 북향의 집을 짓고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하였다. 총 112.99평의 대지 위에 17.8평의 건평규모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다. 집의 구조는 정면 4간 측면 2간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우측 서재로 쓰던 우측 방에는 尋牛莊(심우장)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한용운은 만해(萬海)라는 호(號) 외에 필명으로 오세인(五歲人), 성북학인(城北學人), 목부(牧夫), 실우(失牛) 등의 이름을 가끔 썼는데 목부란 ‘소를 키운다’는 뜻으로, 곧 내 마음 속의 소를 키움은 왕생의 길을 멈출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즉, 심우장이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 공부하는 인생을 의미한 것이다. 1984년 지정되었고,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