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음악·애청곡

[어머니 노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1880) - 드보르자크 곡

잠용(潛蓉) 2015. 9. 8. 07:01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Songs My Mother Taught Me 1880)

Dvorak 작곡/ 노래 Renee Fleming 

 

Als die alte Mutter mich noch lehrte singen,
tränen in den Wimpern gar so oft ihr hingen.
Jetzt, wo ich die Kleinen selber üb im Sange,
rieselt's in den Bart oft, rieselt's oft von der braunen Wange.


“늙으신 어머니 내게 이 노래 가르쳐 주실 때
두 눈에는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지금 어린 내 딸에게 이 노래 들려주려니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 내리네.”


- Songs My Mother Taught Me written for voice and piano in 1880 by Dvorak is presented in this Spadecaller video, which showcases the amazing voice of soprano Renee Fleming and some exceptional paintings created by Marry Cassatt, Kustav Klimt, Claude Monet, and John Singer Sargent.-


Czech text

Když mne stará matka zpívat, zpívat učívala,
podivno, že často, často slzívala.
A ted' také pláčem snědé líce mučím,
když cigánské děti hrát a zpívat učím!

 

German text by Adolf Heyduk

Als die alte Mutter mich noch lehrte singen,
tränen in den Wimpern gar so oft ihr hingen.
Jetzt, wo ich die Kleinen selber üb im Sange,
rieselt's in den Bart oft, rieselt's oft von der braunen Wange.

 

English Translation

Songs my mother taught me, in the days long vanished;
Seldom from her eyelids were the teardrops banished.

Now I teach my children, each melodious measure.
Oft the tears are flowing, oft they flow from my memory's treasure.

(* oft: often의 고어, 가끔씩 종종)

 

----------------------------------------------------------------------------------------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컬쳐투데이] 2014-05-08  10:18:00    

 

    
▲ 고향을 떠난 직후 젊은시절의 드보르작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은 세 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낸 뒤인 1880년 이 노래를 작곡했다. 이 노래를 들어야 할 아이들은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가르쳐 주며 눈물 흘리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추억 속에 살아 있었다. 어머니는 슬픔에 잠긴 아들을 말없이 안고 함께 울어 주었다. 독일 시인 아돌프 하이두크의 시에 애잔한 선율을 붙이며 드보르작은 울고 또 울었다. <집시의 노래> Op.55 중 네 번째 노래인 이 곡에서 드보르작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어머니의 추억으로 승화시켰다. 가사는 나이 들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지만, 자식을 잃은 드보르작 자신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는 셈이다. 캄캄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댄 드보르작, 그는 어머니를 기억하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리라.

 


▲ 만년의 드보르작과 그의 가족들 

 

32살 때 결혼한 젊은 가장 드보르작은 아직 작곡가로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시민들이 사는 임대주택을 빌렸고,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해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틈틈이 피아노 레슨까지 해야 아기들을 키울 수 있었다. 결혼 3년째인 1875년, 드보르작은 빈 정부가 ‘젊고, 재능 있고, 가난한’ 예술가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됐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당대의 거장 요하네스 브람스가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이제 드보르작에겐 작곡가로 활짝 피어날 길이 열렸고, 세 아이의 앞날도 남부럽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운명은 예기치 못할 때 문 앞에 들이닥치는 법, 세 아이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첫 아기 요제파가 죽었을 때 드보르작 부부는 종교에서 위안을 찾고자 했다. <스타바트 마터>, 십자가에 못 막힌 예수를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노래한 성가곡…. 부부는 힘을 내어 새롭게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1년 반 뒤, 둘째딸 루제나와 첫아들 오타카르가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젊은 부부는 넋을 잃고 쓰러졌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 그 추억이었다. 드보르작은 체코의 시골 넬라호제베스에서 14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육점을 했고, 이 가업을 맏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덕분에 드보르작은 정육점 면허를 가진 유일한 위대한 작곡가가 됐다. 그런데 아버지는 치터 연주를 잘 했고, 직접 춤곡을 작곡해서 연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결국 드보르작은 아버지로부터 가업 대신 음악 재능을 물려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어머니 안나 즈덴코바는? 지방 군주인 로브코비츠 집안 집사의 딸로, 품위 있는 여성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드보르작이 어머니의 어떤 모습, 어떤 성격을 닮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그녀의 모습은 빛바랜 그림 한 장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쿠르트 호놀카 <드보르자크>, 이순희 옮김, 한길사) 두 외삼촌은 각각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 트럼펫 연주자였다고 하니, 어머니 안나도 음악에 친숙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드보르작에게 음악 재능을 물려주었는지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여느 어머니처럼 그녀도 아기 드보르작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자장가를 불러 주었을 것이다. 평범한 어머니, 아니, 평범하기 때문에 위대한 모든 어머니…. 훗날 아들이 큰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부드럽게 일으켜 세워 준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 고향 넬라호제베스에 있는 드보르자크의 생가

 

‘시골아이’ 드보르작은 16살 때 고향을 떠나 프라하, 런던, 뉴욕을 오가며 활동했다. 뉴욕 음악원 교장으로 일할 때 작곡한 교향곡 <신세계에서>, 첼로협주곡 B단조, 현악사중주곡 <아메리카>는 그의 기악곡 중 최고 걸작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는 미국 인디언들과 흑인의 선율을 음악 속에 용해시킬 정도로 진취적인 작곡가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언제나 조국 체코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었다. 베토벤, 쇼팽 등 선배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드보르작에겐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동의어였다. 우리는 어른이지만, 세상이 너무 힘들고 슬플 때 어머니, 아버지 품에서 엉엉 울고 싶어지는 어린이기도 하다. 여느 해처럼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려야 할 아이들의 고운 손, 해맑은 눈빛은 어디로 갔을까. 슬픈 카네이션 같은 음악…. 어머니에 대한 사랑,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미국 원주민들의 선율에 담아 작곡한 드보르작의 현악사중주곡 <아메리카>, 2악장이다.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전]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스메타나와 더불어 체코 국민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1841년 체코(당시에는 보헤미아)의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났다. 정육점과 술도가를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그는 치터와 바이올린 연주를 즐겼으며, 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드보르자크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보헤미아에서는 독일어가 공식 언어였다. 상업과 무역업을 하려면 반드시 독일어를 익혀야 했다.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원했던 드보르자크의 아버지는 1853년 독일어 공부를 위해 그를 츨로니스로 보냈다. 당시 그에게 독일어를 가르친 사람은 안토닌 리만이라는 음악가였는데, 그로부터 독일어 외에 오르간, 피아노, 비올라, 음악이론 등을 배웠다. 드보르자크의 재능을 간파한 리만은 그의 아버지를 설득해 드보르자크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도록 했다.

 

16살 때인 1857년,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2년 동안 공부했으며,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프라하 지역 앙상블에서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를 연주하며 전업 음악가로 일했다. 그러다가 1862년, 작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취직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나중에 국민극장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드보르자크는 20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1865년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는데, 초기 작품은 바그너나 브람스 음악처럼 무겁고 진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1866년 국민극장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부임한 보헤미아 최고의 작곡가로부터 민족 정서에 입각한 음악을 쓰라는 조언을 들은 후 작품 경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보르자크는 1873년, 제자였던 안나 체르나코바와 결혼했다. 그리고 11년 동안 일하던 국민극장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성 아달베르트 교회의 전속 오르가니스트로 부임했다. 이 일로 그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얻게 되었다. 441874년, 드보르자크는 오스트리아 곡 콩쿠르에 응모했다. 당시 심사위원 중에 브람스가 있었는데, 그는 보헤미아의 민속 소재를 서양 클래식 양식에 접목시킨 드보르자크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드보르자크는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때부터 브람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다.

 

1877년, 그의 오페라 〈교활한 농부 The Cunning Peasant〉가 오페라의 중심인 오스트리아의 빈 오페라 극장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때 빈 오페라 극장 측이 드보르자크에게 독일어로 된 오페라를 의뢰했지만, 보헤미아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거절했다.

1878년, 드보르자크는 보헤미아 폴카와 민속춤곡을 바탕으로 한 〈슬라브 무곡 Slavonic Rhapsody〉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고향인 보헤미아에서는 물론, 독일 함부르크와 프랑스 니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도시에서 연주되었다. 그 덕분에 드보르자크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특히 영국에서 인기가 높았다. 1883년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Op.58〉의 영국 공연이 성공을 거둔 후,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영국을 방문했다.

 

1891년,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음악원 작곡과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듬해 미국에 있는 뉴욕 음악원으로부터 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수락했다. 일 년에 만오천 달러를 받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는 뉴욕 17번가에 살았는데, 향수병을 이기지 못해 여름이면 아이오와 주에 있는 보헤미아 집단촌 스필빌을 방문하곤 했다. 1893년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를 구경하고 '체코의 날'에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와 〈현악 4중주 '아메리카인' String Quartet No.12 in F major Op.96 'American'〉를 작곡했다.

 

1895년, 드보르자크는 프라하로 돌아온 뒤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복직했으며, 1901년에는 음악원 원장이 되었다. 말년에는 오페라와 실내악에 전념해 1901년과 1904년에 오페라 〈루살카 Rusalka〉와 〈아르미다 Armida〉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르미다〉의 초연은 실패로 끝났다. 그로부터 몇 주 후 그는 독감에 걸렸으며, 이것이 악화되어 1904년 5월 1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보르자크는 〈슬라브 무곡〉을 비롯해 보헤미아의 고유한 민족성이 드러난 작품을 많이 썼다. 그는 보헤미아 사람으로서 가질 수 없는 긍정적인 천성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는데, 이런 긍정적인 성품이 음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외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민족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음악을 썼다. 이 점이 배타적으로 민족음악 운동을 벌였던 러시아 5인조와 다른 점이다.

 

드보르자크는 1865년에 첫 교향곡을 작곡한 후 일생 모두 9편의 교향곡을 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인데, 여기서 신세계는 미국을 의미한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 작곡해 1893년 5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독일 지휘자 안톤 자이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느린 첼로와 플루트의 서주로 시작한다. 서주가 끝나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짧지만 매우 강렬한 음형을 연주한다. 격렬하고 힘찬 울림과 소박하고 이국적인 멜로디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악장이다. 느리게 연주하는 2악장에서는 잉글리시 혼이 연주하는 〈꿈속의 고향〉 멜로디가 나온다. 3악장은 아주 빠르게 연주하는 악장으로 전곡 중에서 가장 이국정취를 많이 담고 있다. 중간에 현악기들의 피치카토에 맞추어 관악기들이 민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러다가 궁중의 우아한 춤곡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4악장은 위대한 인물이나 사건의 등장을 예고하는 극적인 서주로 시작한다. 서주가 끝나면 혼과 트럼펫이 당당한 행진곡풍의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 후 음악은 이 선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나온 음악의 소재들을 두루 사용한 후, 웅장하고 호방한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끝난다.
 
협주곡으로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각각 한 곡씩 작곡했다. 이 중에서 〈첼로 협주곡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은 드보르자크가 미국에 있던 1895년에 작곡한 것으로 첼로 협주곡의 명곡으로 꼽힌다. 이 곡에는 아메리카 민속음악과 흑인영가, 슬라브 민요의 열정과 애수가 융합되어 있다. 엄청난 힘과 기교를 요구하는 독주 첼로와 이를 받쳐 주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통해 첼로의 남성적인 풍모를 마음껏 보여 준다. 1악장 알레그로는 이국적이고 정열적인 제1주제와 목가풍의 서정성이 담긴 제2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2악장 아다지오는 세 개의 악절을 가지고 있는 단순한 가요의 악장이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아름답게 노래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분위기를 고조시켜 드라마틱하고 웅장한 울림을 들려주는 것이 특이하다. 3악장은 보헤미아 민속춤곡풍의 주제 선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드보르자크는 상당히 많은 수의 실내악을 작곡했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현악 4중주이다. 그 외에 피아노 3중주, 피아노 5중주, 현악 6중주 등이 있다. 드보르자크는 모두 13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제12번 '아메리카인'은 가장 유명하다. 미국에 있던 1893년 여름, 아이오와 주의 보헤미아인 집단 거주지인 스필빌이라는 마을에서 작곡했다. 작품에 흑인영가 선율이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보헤미아적이다.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에 나오는 제1주제는 5음 음계의 민요조로 작곡되었다. 음악의 첫 마디부터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이어지는 2악장 렌토는 가슴에 스며드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악장이다. 3악장 몰토 비바체는 세도막 형식의 스케르초로 아주 밝은 분위기이다. 4악장은 결렬한 열정과 끌어 오르는 야성미를 보여 준다. 그 밖의 작품으로 관현악곡 〈슬라브 무곡집〉, 〈사육제 서곡〉, 종교 합창곡 〈스타바트 마테르〉, 실내악곡 〈피아노 3중주 '둠키'〉, 〈피아노 5중주〉, 피아노 독주곡 〈8개의 유모레스크〉, 오페라 〈루살카〉, 가곡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등이 있다. [Daum 백과]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 소프라노 김순영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 Joan Sutherland

 

>
Anna Netrebko, Piano: Daniel Barenboim

 


Elizabeth Schwarzkopf - Songs my Mother taught Me

 


Paul Robeson(Base)

 


Violin and Orchestra - Joshua Bell


 


Renee Fleming - Dvorak - Songs My Mother Taught me

 


Yo-Yo Ma(Cello) Dvorak Songs My Mother Taught Me

 


Valeriy Sokolov (violin) & Svetlana Kosenko (piano)

 

 


(Dvorak: String Quartet No. 12 "American" - II. 클리블랜드 4중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