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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민주화

[포스트 YS]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잠용(潛蓉) 2015. 11. 26. 08:54

왜 다시 YS인가?

민주주의 위기 시대에 다시 보는 김영삼
한국일보 | 김지은  | 입력 2015.11.26. 04:48 
 

정치(Politics), 국민(People), 리더십(Leadership) 없는 'PPL' 실종 시대에 귀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가 생전에 지키려 애썼던 민주주의의 의미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은 의회를 불신하며, 여야는 타협을 모르는 반목만 되풀이하는 동안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리는 민주주의의 삼중 위기를 반증하는 현상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Politics)도, 국민(People)도, 리더십(Leadership)도 없는 ‘PPL 실종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의 갈증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사진] 198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대선을 두달 앞둔 10월 17일 부산 수영만에서 열린 '군정 종식 및 후보단일화 촉구 대회'에서 환호하는 1백만 시민에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위선’과 ‘배신’으로 요약된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이것은 위선”이라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때문에 청와대와 여의도 정치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의회주의자로 평가되는 김 전 대통령의 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YS 역시 임기 4년차인 1996년 12월 26일 여당을 동원한 새벽 노동법 날치기로 국회를 무시하는 과오를 남겼지만 소통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야당과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다음달인 97년 1월 21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영수회담’을 했다. 당시 YS는 노동법 재개정을 약속했고, 두 달 뒤인 3월 국회는 여야가 마련한 노동법 합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다시 의회의 ‘타협의 정치’에 맡긴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내용뿐 아니라 시점에서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여의도를 하대하고 절연하다시피 하는 건 대결 구도만 키우는 일”이라며 “막강한 권한을 가질수록 고개를 숙여 비박계도 만나 설득하고 야당에도 호소할 줄 알아야 정치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YS가 재조명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여론 중시 정치다. “이~대한(위대한) 국민 여러분”이라는 YS의 유행어에는 그의 정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상도동계로 YS의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YS는 참모들에게 늘 ‘국민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강조했고 그래서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위대한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통령 임기 중 YS는 여론을 가장 중시했다. 결정했던 일도 민심이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틀었다. 초대 법무부 장관에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을 임명했다가 딸의 이중국적, 대학특례입학 논란이 불거져 열흘 만에 경질했고, 임명직이었던 김상철 서울시장 역시 자녀의 외국국적, 그린벨트 무단 형질변경 문제가 터지자 엿새 만에 경질성 사퇴를 시켰다.

 

때문에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YS는 “대국민 사과를 가장 많이 한 대통령”으로도 거론된다. 임기 첫해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관련해 쌀개방을 않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해 사과한 것으로 시작해 낙동강 수질오염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장학로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부정축재사건, 한보사태, 차남 현철씨 비리사건 등 때문에 줄줄이 대국민사과를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과정 교수는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의 힘은 국민에서 나왔고 그렇기에 YS는 국민을 가장 우선에 뒀다”며 “여론이 아니면 인사도 정책도 되돌리고 필요하다면 지체 없이 대국민사과를 한 게 그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자와 정치인이 많은 시대에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YS가 지닌 통 큰 리더십 역시 리더십 부재의 정치권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광웅 명예교수는 “모래알처럼 분열된 정치권과 사회를 하나로 빚어낼 살신성인의 지도자에 목말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닮아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권위주의 리더십의 현 정부가 젊은 시절 YS가 타파하려 싸웠던 세력과 흡사한 데서 오는 향수 효과, 민주화 투쟁 등 한국 정치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현재 여의도의 주축이 된 후배 정치인 등이 조명되면서 ‘YS 신드롬’이 생기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김지은기자 정승임기자]


[YS서거]'이념통합·소통' 화두 던지고 떠난 YS,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노컷뉴스 | CBS노컷뉴스 이용문 기자  | 입력 2015.11.26. 04:03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겪는 '불통과 분열 극복'은 숙제
우리 사회에 화합과 소통의 화두를 던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사상 첫 국가장과 함께 이별을 고하지만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는 여전히 불통속에 대립하고 있다. 고인은 지난 1983년 광주민주화 운동 3주년을 즈음해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이듬해인 1984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들면서 동서화합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내고도 야권 후보 단일화에는 실패하면서 당시 민주정부 수립에 실패해 통합 이미지에 한점 흠으로 남기는 했지만 대통령 재직당시에는 참모진의 '아니오'라는 대답을 기꺼이 수용하고 아랫사람의 실수를 너그럽게 감싸면서 소통의 이미지 까지 갖췄다는 평을 역시 받는다.

 

 

[사진]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공동취재단

 

특히 2013년 병마에 쓰러진 뒤 '통합'과 '화합'을 마지막 휘호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이 현재 우리 사회에 '통합과 화합,소통'이라는 화두를 던진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고인이 던진 이 화두에 비해 현재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오히려 극심한 불통과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불통의 대표적인 사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의 반대 기류도 무시한 채 최고 권력자의 일방적인 의지에 따라 추진돼 국론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추진하다보니 국정화 찬성 서명자들을 급조해 교육부에 명단을 제출한 사실까지 폭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유신으로의 회귀', '친일 독재정권 미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개각을 극비리에 하기로 유명했던 YS는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결심을 뒤바꾼 사례가 잇따라 소개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장관들과 독대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장관들과 독대하느냐는 질문에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화해와 협력, 소통이 화두로 대두된 YS 조문정국 속에 반대세력을 끝장내겠다는 정국 인식까지 드러냈다. 지난 24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 있었던 민중총궐기에 대해 "이번에야말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며 테러리즘과 연결시켜가면서까지 강경대응을 지시했다. 또 경제활성화 법안 등 처리가 지연되는데 대해선 야권을 향해 "백날 우리 경제를 걱정하면 뭐하느냐",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한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과 물밑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과거 정부와는 사뭇 대비된다. 여야 정치권도 YS의 유훈격인 화해와 협력,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여권내 반발에 부딪쳐 물거품이 되는 등 양당 지도부가 합의한 사안들이 번번이 당내 강경파들에 의해 백지화되고 있다. 심지어는 양당 지도부끼리도 인신공격성 발언들이 오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를 향해 선거구 획정 협상 등을 겨냥해 "초선이다 보니 정치력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김무성 대표를 향해 "YS의 정치적 아들이 아니라 유산만 노리는 아들 아닌가"라고 공격했다. YS가 집권 이후 치러진 1996년 총선에서 패해 곤경에 처한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에게 총수회담을 제의해 구제의 손길을 뻗쳐준 것과 대비된다.

대식가였던 김대중 총재는 당시 청와대에서 국수로 점심을 때워 몹시 허기진 상황에서도 출입기자들에게 YS와의 회동 내용을 전하기 위해 직접 깨알같은 메모로 상기된 채 브리핑을 했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비난하고 공격부터 퍼붓고 보는 맹목적 분열 프레임의 고착화가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커다란 문제"라면서 "YS 국가장 이후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극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맹목적 분열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3김 시대 이후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사라지면서 역시 구심점도 함께 없어져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갈등하고 여당이건 야당이건 할 것 없이 당내에서 계파간에 다툼을 벌이는 형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CBS노컷뉴스 이용문 기자]


'YS'가 남긴 정치의 그늘..패거리 '정치의 아들들'
머니투데이 | 김태은 기자  | 입력 2015.11.27. 06:17

 

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11)
여러가지 개혁과제-배경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주로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삼김(三金)정치'로 상징되는 계파 정치, 이른바 '보스 정치'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가 짧은 정치권 경력에도 단숨에 국민적 지지를 얻고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당선 턱밑까지 득표할 수 있었던 데는 'YS'와 'DJ'로 대표되는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한몫했다. 이회창 전 총재와 함께 정치권에 입문한 진영 새누리당 의원 역시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를 계파정치로 보고 이를 경계해 왔다.

 

 

↑ 22일 오전 0시 22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서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구성한 후 현판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5.11.22/뉴스1 

 

진영 의원이 본 계파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인물에 대한 추종으로 모일 뿐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화합과 발전'의 정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이 같은 계파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고 그 후유증을 남긴 '과'가 분명하다. 김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상도동계'를 보자. 김 전 대통령은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 다양한 인재들을 품었던 것은 사실이다.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물론 서청원·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 김영춘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여야를 망라한 중진들이 정치권의 허리로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삼김정치' 청산을 외친 이회창 전 총재 역시 김 전 대통령이 정계로 끌어들인 정치인이다. 또한 정당은 다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등 두 전직 대통령 역시 김 전 대통령 문하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자 '상도동계'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노선이나 신념, 철학과 상관없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상도동계'의 이념적·정치적 지향을 보여주지 못하고 김 전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그 정치적 의미가 사그라들었다.

 

2007년 대선 경선을 기점으로 '상도동계' 출신 정치인들은 친이(친 이명박)계와 친박(친 박근혜)계로 나위어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상도동계'의 보스인 김 전 대통령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가치가 다수의 '상도동계' 출신 정치인들에겐 어렵지 않게 간과됐다. 김무성·서청원 등은 친박계 핵심으로 변신해 박근혜정부 탄생에 일조하며 현재 집권여당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를 비롯해 김덕룡, 최기선, 문정수, 심완구 등은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에 맞선 우리의 정치 인생을 부정할 수 없다"며 독재자의 딸 박근혜 대통령 대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지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그의 빈소에서는 '정치적 아들'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동조하거나 앞장서며 김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이뤄낸 '역사 바로세우기' 성과를 무너뜨리려 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임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분노에 찬 비난이 제기됐다. 거꾸로 말하자면 김 전 대통령이란 보스를 중심으로 한 계파 정치가 과연 패거리 정치 그 이상의 정치적 가치를 만들어 냈었느냐는 물음표를 남기게 된다. [김태은 기자 taie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