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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민주화

[YS 영결식] '군부독재에 빼앗긴 주권을 다시 그 주인에게 찾아주고 첫눈 속에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나다'

잠용(潛蓉) 2015. 11. 26. 21:36

'민주화의 큰 산' 첫눈 속에 고이 잠들다
디지털타임스 | 이호승  | 입력 2015.11.26. 18:35 | 수정 2015.11.26. 20:20  
 
첫 국가장... 유가족 등 7000여명 마지막 길 배웅
상도동 사저·기념도서관 거쳐 서울현충원 안장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엄수된 국가장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영면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영결식은 오후 2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영결식에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 등 유가족,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7000여명이 참석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로와 심한 감기 증세로 영결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영결식 전 서울대병원 빈소를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원했다.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묵념, 고인의 약력 보고에 이어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황 총리는 조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평생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대도무문의 정치 철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국가와 더불어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황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이 염원한, 평화롭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며 "언제까지나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한 전 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대통령님은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다"며 "대통령님을 모시고 정치 역정을 함께한 많은 후배·동지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이 나라 정치를 바로 세우고, 임께서 염원하셨던 상생과 통합, 화해와 통일의 그날을 반드시 실현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고·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거행됐고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 상영, 헌화·분향, 추모공연, 3군 통합조총대의 조총 발사와 조약 연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영결식 직후 운구 행렬은 김 전 대통령이 46년간 살았던 상도동 사저와 내년 완공을 앞둔 기념도서관을 들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다시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배웅했다. 청와대 참모진은 박 대통령이 막판까지 영결식 참석을 고심했지만 건강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야외활동 자제를 권유한 주치의의 권유를 받아들여 영결식에 불참했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표하기 위해 운구가 출발하기 직전에 빈소인 서울대병원을 다시 가서 김 전 대통령과 영결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다시 한번 위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호승기자 yos547@]

 

"맨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한 번 더하고 가"
영결식 거쳐 현충원에 안장

매일경제 | 김강래,노승환  | 입력 2015.11.26. 17:56
 
2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의 모든 차량이 멈춰섰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장남 은철 씨의 아들 성민 군이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양손에 꼭 쥐고 앞장섰다. 그 뒤로 관을 든 의장대 11명이 천천히 발걸음을 이어갔다. 관은 운구차로 들어갔고 차량은 영결식이 열릴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해 섰다. 건강상의 문제로 국회에서 열리는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서울대병원에 들러 운구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의 손을 꼬옥 잡고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인사했다. 현철 씨도 "몸도 불편한데 와주셔서 고맙다"고 답했다.

 

영하를 오르내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시민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단단히 쳐진 폴리스라인으로 좀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시민들의 불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은철·현철 씨 등 유가족을 태운 차량에 뒤이어 김 전 대통령을 태운 영구차가 출발했다.

 

5일장의 마지막 날인 26일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엔 이른 시간부터 유족과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오전 일찍 빈소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의 넷째 여동생 덕선 씨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맨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한 번만 더하고 가"라며 "오빠, 보고 싶고 사랑해"라고 오열했다. 그의 통곡 소리는 장례식장 밖까지 울려 퍼졌다. 오전 10시 장례식장 1층 강당에선 김장환 목사의 집례로 발인예배가 진행됐다. 100석 규모의 예배실은 가득 차 10여 명은 서서 참석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가 예배실을 가득 채웠다.

 


↑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26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엄수됐다. 차남인 김현철 씨(왼쪽 두번째)가 고 김 전 대통령의 생전영상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녀 김혜영, 김현철, 장남 김은철, 부인 손명순 여사. [사진 = 연합뉴스]

 

현철 씨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채 맨 앞줄에 자리했다. 그는 "왜 이렇게 추운 날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데려가시나"라며 "아버님께서 소임을 다하신 만큼 천국에서 영면하리라 믿는다"고 추도했다. 함석헌 목사의 조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가 이어졌고 현철 씨는 이를 담담한 표정으로 들었다. 예배를 마친 현철 씨는 다시 빈소로 올라와 조문객을 맞았다. 공식 조문은 정오까지였지만 그 이후에도 병원을 찾는 이가 끊이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빈소를 찾지 않고 곧바로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는 이날 오후 1시 50분께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2시부터 거행된 영결식에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주한 외국 대사를 비롯한 해외 조문 사절까지 7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 전직 대통령 가족들도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날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종교 의식 △영상 상영 △헌화·분양 △추모곡 △조총 발사 △운구 행렬 출발 △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종섭 행장자치부 장관이 9선 국회의원과 14대 대통령을 지낸 고인의 약력을 보고한 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총리가 조사를 낭독했다. 황 총리는 조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오신 대통령님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면서 "언제까지나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기 바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고인과 함께했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을 떠나보낸 황망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 전 의장은 "초산 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 혹독한 탄압이 중단 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면서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의 가슴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원이 아로새겨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됐다"고 회고했다.

 

김 전 의장은 또 "지난 닷새의 장례 기간 빈소를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조문객 사이에 끼어 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부질없이 상상해 보기도 했다"면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저 건너편에서 '나, 김영삼인데요' 하는 대통령님의 음성이 바로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 의식이 거행됐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나눈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를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화암 스님, 한국천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신부, 원불교 황도국 교무 등이 종교 의식을 집전했다.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5분간의 영상물도 상영됐다. 미래 대통령을 꿈꾸던 고인의 중학생 시절부터 반독재 민주화 투쟁, 대통령 재임 시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물에 식장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아들 은철·현철 씨를 비롯한 직계 가족을 시작으로 영결식에 참석한 각계 인사 대표단이 헌화와 분양에 나섰다. 추모곡으로는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청산에 살리라'를 바리톤 고성현 한양대 교수가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불렀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 차량은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 채 국회의사당을 떠나 자택이었던 서울 상도동을 거쳐 오후 4시 50분께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도착해 안장식을 거행했다. [김강래 기자 / 노승환 기자]

 

'전국이 다 내고향'... 고향흙 대신 화강암 마사토를 '이불'로
한겨레 | 입력 2015.11.26. 19:36 


‘공작새 왼쪽 날개’자리에 안치
DJ 묘소와 300m 거리

26일 오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될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을 때 잔뜩 찌뿌린 하늘에선 옅은 눈발이 흩날렸다. 김 전 대통령의 주검을 실은 운구차 행렬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46년간 거주해왔던 상도동 사저 등을 거쳐 오후 4시45분께 안장식이 열린 서울 동작구 현충원 충혼당 앞에 도착하자 장내에는 일순간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250명 남짓의 조문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맞이했다.

 

 

 


안장식이 치러진 충혼당 앞 제3장군묘역 객석에는 김 전 대통령과 65년을 함께해온 ‘평생의 반려자’ 손명순씨와 차남 김현철씨 등 가족들이 앉았고, 뒤이어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해 장례기간 동안 상주를 자처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자리를 채웠다. 의장병이 도열한 뒤, 무궁화가 그려진 김 전 대통령의 관이 묘소로 운구됐고, 차남 현철씨 등이 고인의 영단에 국화꽃을 올리고 향을 피워 올렸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엔 평소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고명진 수원침례교회 목사가 마지막 부활대망 예배를 집전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의 ‘이불’이 되어줄 성분(묘 만들기) 작업이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은 거제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삼천리 금수강산이 모두 나의 고향’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전국 팔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 마사토를 모아 관 위에 흩뿌렸다. 고인을 기리는 조총이 발사되고, 진혼곡에 맞춰 유족들이 묵념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보내는 국가장 행사가 모두 끝났다.

 

김 전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대통령 중 4번째로 현충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됐다. 그가 눕게 될 제3장군묘역 오른쪽 능선은 공작새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으로, 전체적으로는 ‘공작새가 날개 안에 각각의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지관들의 얘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전날 이곳에서 알 모양 바위 7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정치적 동지’이자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누운 자리와는 300m 떨어져 있고, 정치인생을 걸고 맞서 싸웠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묏자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46년을 살아온 상도동 자택으로 넘어가는 통문이 나온다.

 

김 전 대통령의 묘소 봉분 앞에는 목재로 만든 임시 묘비가 이날 세워졌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에 따라 내년 1월께 3.49m 크기의 석재 묘비가 세워지는데,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무늬가 윗부분에 화강석으로 조각되고,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는 글씨가 가로·세로 각각 20㎝ 내외 크기로 새겨질 예정이다. 묘두름돌과 상석, 향로대, 추모비도 추후 설치한다.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엔 수백명의 일반 조문객들이 안장식을 지켜봤다. 안장식장엔 일반 조문객의 출입이 통제됐는데 시민들은 안장식을 직접 지켜보기 위해 충혼당 계단 쪽에서 안장식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국립 서울현충원서 80여분간 안장식
울음 삼키던 현철씨 하관 시작되자 "아버지, 아버지.."

한국일보 | 정지용  | 입력 2015.11.26. 20:10 | 수정 2015.11.26. 20:32 
 

헌화ㆍ하관 예배ㆍ허토ㆍ조총 순 진행
정의화 의장과 정종섭 장관이 조문객과 정부를 대표해 헌화
시민 등 800여명 눈보라 속 함께 손명순 여사도 부축 받으며 배웅
현철씨 “국민 여러분께 감사”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엄수된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안장식에서 차남 김현철 씨가 성분을 하고 있다. 26일 안장식을 끝으로 역동의 삶을 살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의 안장식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서 1시간 20분동안 거행됐다. 안장식장과 제단은 장군 제3묘역 오른쪽 능선 앞에 250석 규모로 마련됐다. 안장식은 헌화와 분향, 하관 예배, 허토(봉분을 만들기에 앞서 유족들이 한 줌씩 흙을 뿌리는 의식), 조총 순서로 진행됐다.

 


오후 4시40분쯤 현충원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현충탑과 애국지사 묘역을 거쳐 안장식장 앞에 멈춰 섰다. 김현철씨를 선두로 유족들이 검은색 운구차에서 내리자 국방부 군악대가 진혼곡을 연주했다. 국방부 의장대 운구요원 11명은 천천히 관을 옮기며 안장식장으로 들어섰다. 오후 5시쯤 안장식장에서 분향이 시작됐다. 정의화 국회의장,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조문객과 정부를 대표해 헌화했다. 안장식장의 맨 앞줄에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의원, 김덕룡 전 의원 등이 자리했다. 유족과 조문객 250여명도 고인이 가는 길을 애도했다. 추운 날씨에도 별도로 설치된 시민 추모식장에는 55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고인과 함께 했다. 헌화와 분향 후 의장대가 안장식장에서 150m 떨어진 묘소로 관을 옮기자 현철씨의 표정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휠체어를 탄 어머니 손명순 여사를 보며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유족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운구행렬을 바라봤다.

 

오후 5시 19분 드디어 하관식이 시작됐다. 운구 요원과 현충원 직원들이 흰 천을 꼬아 만든 밧줄로 관을 내리자 유족들이 눈물을 훔쳤다. 관이 완전히 내려가자 현철씨가 끝내 흐느끼며 “아버지”를 반복해 불렀다. 손명순 여사도 휠체어에서 일어나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어진 하관 예배는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고명진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가 주관했다. 오후 5시 50분 현철씨가 무궁화가 새겨진 관의 상판 위에 하얀 국화 꽃잎을 흩뿌리고 허토를 시작했다. 허토에는 “대한민국 전체가 고향”이라는 고인의 유지를 기려 평범한 흙이 사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안장식에서는 고인이 나고 자란 전남 신안군 하의도의 흙이 한 줌 뿌려졌었다.

 

관의 상판이 흙으로 차곡차곡 메워지면서 민주화와 개혁의 상징인 김 전 대통령은 영면에 들었다. 손 여사의 빨갛게 충혈된 눈에는 눈물이 고여 흘러 내렸다. 이어 국군 의장대가 발사한 21발의 조총 사격과 참석자 전원의 묵념으로 안장식은 끝났다. 현철씨는 안장식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아버님을 이렇게 사랑해주시고 애정을 가져주신 우리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 드린다”며 “아버님께서 이 사회에 통합과 화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유언이 우리 국민들에게 큰 울림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YS 영결식] "잘 가십시오" 시민들 눈물 속 애도

연합뉴스 | 입력 2015.11.26. 19:29 | 수정 2015.11.26. 20:21  

 

궂은 날씨에 운구행렬 거친 국회·상도동 자택·기념도서관에 시민들 눈시울

고인 영면한 현충원 앞에도 애도 인파…"국민 된 도리로 마지막 인사는 해야"

차남 현철씨 "아버님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산'(巨山)인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자신이 그토록 섬기던 시민들의 깊은 애도를 받으며 영면에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길을 떠나는 동안 하늘도 고인을 추모하는 듯 눈발이 온종일 흩날렸다.

 


↑ <YS 영결식> 묘역 향하는 운구행렬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엄수된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안장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YS 영결식> 운구행렬 바라보는 박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유가족이 26일 서울대병원을 떠나는 운구행렬을 바라보고 있다.

 

 

↑ <YS 영결식> 운구행렬 지켜보는 시민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운구행렬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를 지나 국가장 영결식이 열리는 국회로 향하고 있다.

 

 

↑ <YS 영결식> 운구행렬 바라보는 YS 유족 (서울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손명순 여사와 차남 김현철 등 유족과 조문객들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바라보고 있다.

 

 

↑ <YS 영결식> 상도동 떠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운구 (서울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국회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이 26일 오후 서울 상도동 김 전 대통령의 사저를 들른 뒤 출발하고 있다.

 


↑ <YS 영결식> 정든 상도동 사저 도는 김 전 대통령 영정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고 김영삼 전대통령 국가장이 열린 26일 고인의 영정이 손자품에 안겨 상도동 자택 거실을 둘러 보고 있다.

 

 

↑ <YS 영결식> 김영삼 전 대통령 안장식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엄수된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다.

 

고인은 대형 태극기로 덮인 관 속에 누운 채 오후 늦게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기까지 영결식장인 국회의사당과 상도동 자택, 기념도서관 등 자신의 평생 자취와 숨결이 밴 곳을 일일이 둘러봤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여정은 이날 낮 1시30분께 빈소가 차려진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행렬이 빠져나오면서 시작됐다. 운구행렬이 출발하기 직전 박근혜 대통령이 장례식장을 찾아 애도를 표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캐딜락 리무진 영구차는 광화문을 지나 세종로사거리, 공덕동사거리, 마포대교를 거치는 길 11㎞를 20여분간 이동해 영결식장인 국회에 도착했다. 경찰 사이드카 10여대와 선도차, 대형 영정을 실은 무개차가 영구차 앞에 섰고, 유족 등을 태운 대형버스가 뒤따랐다. 도로에 다른 차량은 모두 통제된 가운데 인도에 나온 시민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했다.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최다선(9선) 의원인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등원'이 된 국회 영결식이 오후 2시께 시작되자 눈발은 강해졌고, 운구행렬이 국회를 떠날 때 다시 약해졌다. 국민의례와 고인의 약력소개, 조사, 추도사, 고인의 생전 영상 방영, 종교의식, 추모공연, 조총 발사 등 1시간20여분간 진행된 영결식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등 유족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원로 정치인들은 속절없이 오열했다. 뚝 떨어진 수은주에 칼바람까지 불어 국회 잔디광장에 준비된 의자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고인과 영결하려는 사람들은 담요와 손난로에 의지한 채 대한민국 첫 문민 대통령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이 마무리되자 고인은 상도동 자택으로 이동했다.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게 19일이었으니 정확히 일주일만의 '귀가'였다. 운구행렬 도착 1시간 전부터 자택 앞 좁은 골목에는 인근 주민과 시민 등 1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슬픔 속에 고인을 기다렸다. 김 전 대통령의 오랜 이웃이자 '꼬마동지'로 알려진 이규희(45·여)씨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아저씨와 손잡고 동네를 산책하거나 운동을 따라다닌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마음이 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영구차가 도착하고서 고인의 장손인 성민군이 영정을 양손에 꼭 쥐고서 마당과 안방, 식당, 거실 등을 5분가량 돌았다. 고인에게 민주화운동의 산실이자 46년간 살아온 곳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어 운구행렬은 자택에서 600m 떨어진 상도터널 남단의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으로 향했다. 자택부터 도서관까지 이르는 길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1천200여명의 주민이 겹겹이 줄을 서 고인을 배웅했다.

 

일부 주민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잘 가십시오. 잘 가십시오"라는 말만 되뇌었고,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운구 장면을 찍거나 연방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를 건넸다. 도서관 앞에 잠시 머무른 운구행렬은 장지인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했다. 현충원 앞에도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보려는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고, 슬픔 속에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중랑구에 산다는 이상두(75)씨는 "별다른 인연은 없지만 대통령이라 함은 과거 임금 같은 분이니 공이 있든 과가 있든 국민 된 도리로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왔다"고 말했다. 안장식은 애초 예정시간인 오후 4시를 1시간 넘긴 오후 5시부터 유족과 각계인사, 시민 등 5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추위는 여전했고 눈발도 뿌렸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했지만 안장식은 침통하고 진중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차남 현철씨는 하관과 허토, 헌화가 진행되자 통곡에 가까운 흐느낌을 내뱉었고, 거동이 불편해 헌화를 못한 부인 손명순 여사 역시 이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현철씨는 "아버님을 이렇게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며 "아버님께서 비록 이렇게 떠나셨지만 국민 여러분을 하늘에서라도 지켜보시고,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걱정을 하시리라 생각한다"고 국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서 영구차가 현충원 안으로 들어서 묘역으로 향하는 도중 최모(54)씨가 "너희들이 김영삼이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고 외치며 영구차로 뛰어들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추모곡] 고인이 평소에 즐겨 듣던 '청산에 살리라' - 바리톤 고성현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