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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읽기] 산수화에 있는 한문(漢文)은 무엇일까?

잠용(潛蓉) 2016. 7. 21. 09:57

<산수화 읽기 1>
산수화에 있는 한문은 무엇일까?

 

옛 그림에는 골치 아픈 게 하나 있다. 바로, 그림에 적혀 있는 한문이다. 어떤 그림에는 한자가 위쪽 여백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이 쓰여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그림에는 몇 글자만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렇게 한자를 그림에 써 넣게 되었느냐면 고려 시대는 남아 있는 그림이 거의 없으니 잘 알 수 없고, 조선 시대 초기부터 살펴보자. 이 무렵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그림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그림은 단지 그림으로만 그려지고 감상되었다. 이런 전통은 오래 지속되었고, 특히 궁중에서 엄격하게 지켜졌다.

 

조선 시대엔 왕이나 왕비에게 바친 그림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간혹 쓰더라도 잘 보이지 않게 그림의 한 귀퉁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쓰는 게 보통이이었다. 그저 '신하인 아무개가 그렸습니다'를 알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글을 짓는 사람들인 문인(文人)들이 그림을 즐겨 그리면서 이런 전통에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주변 선후배나 친구들과 주고받으며 감상하고 즐겼다. 서로 편한 사이니까 그림에 자기가 쓰고 싶은 것들을 적어 넣었다. 누가 그린 그림인지를 밝히기 위한 서명을 넣거나 그림을 그린 시기나 목적을 알리기 위해 글을 넣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그림에 대한 감상과 느낌을 적은 글이었다. 여기에는 시도 포함된다. 이런 글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 직접 쓴 것도 있고, 또 나중에 감상하는 사람이 적어 넣은 것도 있다. 남이 그린 그림 위에 이렇게 글을 적어 넣는다면 서양화에서는 그림을 망치는 큰일이다. 하지만 동양화는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은 주로 문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는데 글이 오히려 그림의 가치를 높여 준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글이 그림 내용을 한층 깊이 있고 풍부하게 설명해 주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림 이해에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실례를 한번 소개해 보면 아래 그림은 최북이라는 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최북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유명하다. 나무 아래

에 작은 정자가 있고, 반대쪽으로 울창한 숲 사이에 떨어지는 폭포 한 줄기가 보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싱거울 수 있는 그림이다.

 

 〈공산무인도〉 최북,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수묵, 33.5x38.5cm, /개인 소장

 

그런데 폭포 위의 빈 공간에 큼직한 글씨 몇 자가 적혀 있다. 이처럼 그림에 적혀 있는 글을 가리켜 어려운 말로 화제(畵題)라고 한다. '그림 속의 글'이라는 뜻이다. 최북이 쓴 화제는 '빈산에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있네(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문장이다. 만약에 이 글귀가 없었다면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도대체 최북이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아하,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 맑은 물이 조용히 흐르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경치를 그렸구나.' 하고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화제는 그림의 내용을 보충해 줄 뿐 아니라 그림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한층 풍성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문인들은 화제를 통해서 자신의 멋진 시적 재능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에는 문인 화가뿐 아니라 직업 화가들도 그림에 화제를 적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