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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수필] '외할머니와 박하사탕'

잠용(潛蓉) 2016. 7. 21. 14:07

[수필] 외할머니와 박하사탕

나수현 작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난 화요일 오후, 교수님 방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도중 할머니의 부음 전화를 받았다. 서둘러 연구실을 나와 본관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정신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한참을 헤매다가, 효정 선배의 부축을 받아 겨우 운전대를 잡고서도 나는 한동안 출발을 하지 못했다.

 

외할머니 생각을 하면, 나는 언제나 박하사탕이 먼저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 할머니가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할머니는 매일 밤, 엄마가 사다드린 박하사탕을 아껴두었다가 내게 한 줌씩 쥐어 주곤 하셨다. 사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단 것을 거의 좋아하지 않는다.(지금도 나는 그리도 좋아하는 커피에 설탕이 들어가면, 절대 마시지 않는다).

 

처음엔 할머니가 주시는 박하사탕을 며칠 동안 가방 혹은 책상 서랍에 넣고 다녔던 거 같다. 그러다 무심코 한 두 개씩 꺼내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이 알싸한 박하 사탕 맛에 중독(?)이 되어 할머니가 주시지 않아도 할머니의 박하사탕을 몰래 꺼내 먹곤 했었다. 그 당시 엄마는 거의 매일 할머니께 박하사탕을 사 드렸고, 나는 내가 사먹어도 되는 걸 굳이 할머니가 주시는 것을 당연스레 받아먹곤 했었다.

 

이 습관은 오래도록 고쳐지지 않아 고향을 떠나 대학에 들어와서도 나는 항상 가방 속에 박하사탕을 넣고 다녔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대학 1학년 때, 내 가방 안에는 늘 박하사탕이 가득했었고, 공강시간이고, 수업시간이고 종종 입에 박하사탕을 물고 다녔다. 나중에 지금의 신랑이 된 선이가 처음으로 화이트데이라고 사준 사탕도 몽땅 박하사탕이었다.

 

나는 외할머니를 무척 좋아했었다. 언제나 깔끔하셨고, 빈틈이 없으신 모습이 좋았다. 먼지 하나 없는 할머니 댁에 가면, 행여 우리는 옷에서 흙먼지라도 떨어질까 봐 늘 긴장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옷차림도 정갈하셨고, 성격도 꼿꼿하셨으며 목소리도 카랑카랑하셨다. 모든 면에서 완벽주의자 이셨던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의 성격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 우리 엄마고, 또 엄마의 그 성격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 바로 나다.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내셨을 때도 할머니는 항상 정갈하셨다. 혹여 나에게 방해가 될까봐 내가 공부할 때면 늘 거실에 나와 계셨고, 내가 자고 있을 때면 항상 아주 조심스레 거동을 하시곤 하셨다. 물론 당시 워낙 예민하던 성격의 나는 할머니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에도 늘 잠이 깨곤 했었지만.

 

그러던 할머니가 언제부터인가 목소리도 작아지시고, 몸집도 작아지기 시작하셨다. 사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점점 더 좋아졌던 거 같다. 자신의 성격만큼이나 입맛도 까다로우셔서 평생을 고기 한 점 입에 안대시고 고집스레 채식만 하시던 외할머니. 할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내려간 고향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도착한 나는 그분에 영정 사진 앞에서 잠깐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의 입관식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미 하얗게 굳어버린 할머니의 몸은 아무리 아무리 닦아도 혈색이 돌아오지 않았고, 당신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게 큰 수의가 입혀졌다. 이미 영혼이 떠나 있는 육체는 한없이 작고 초라할 뿐. 나에게 박하사탕을 건네던 할머니의 손은 더 이상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다시 부활했음을 믿고 싶다.

 

지난여름, 할머니를 뵈러 간 날도 할머니는 여전히 박하사탕을 드셨다. 침대에 누운 채로 엄마가 쥐어 주는 사탕을 한 알 한 알 꺼내 드셨는데…….
그게 내가 본 할머니의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이제 박하사탕을 쉽게 먹지 못할 거 같다. 그 알싸한 사탕이 입에 들어오는 순간마다 할머니의 꼿꼿하신 걸음걸이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닌, 박하사탕을 건네 주시시던 한없이 작은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질 것만 같다.  (2006.10.23.)

 


Mehdi - for ever in my heart


Daum Tip

[질문] 박하사탕에 중독이 되나요?
박하사탕을 즐겨 먹는데 안 먹으면 뭔가 허전합니다 혹시 박하 성분에 중독이 된 걸까요?
dhkdsnsdl | 2007.03.31 04:33 수정됨

 

[답변1] 네~ 제가 한때 중독이 되었습니다.
HYOJIN_★ | 2006.11.15 

 

[답변2] 박하에 중독 성분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님의 습관이 아닐까 싶네요.
lazybonehoho | 2006.11.30 

 

[답변3] 당분에 중독되는 것이지...
박하사탕에 중독되는 것이 아닙니다.
(hyung74 | 200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