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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총각 진정서' (1938) - 김정구 노래

잠용(潛蓉) 2016. 10. 4. 13:45


 

'총각 진정서' (總角陳情書 1938) 
趙鳴岩 작사/  朴是春 작곡/ 노래 金貞九

 

< 1 >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까마귀 까치 울고 호박꽃 피는 내 고향의
어여쁘고 順直한 아가씨가 나는 좋아
오이김치 열무김치 맛있게 담고
알뜰살뜰 아들 딸 놓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음 으으 음 으으~ 장가 갈테야.

 

< 2 >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귀뚜라미 울고 들국화 피는 내 고향의
앵두같이 귀여운 아가씨가 나는 좋아
뽕잎 따서 누에 치며 길쌈 잘하고
요밀조밀 창의성 있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음 으으 음 으으~ 장가 갈테야.

 

< 3 >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쓰르라미 울고 모란꽃 피는 내 고향의
복스럽고 똑똑한 아가씨가 나는 좋아
바느질에 빨래질에 상냥스럽고
둥굴등굴 믿음성 있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음 으으 음 으으~ 장가 갈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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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직(順直)한 : 마음씨가 온순하고 정직한.

 

▶ '총각 진정서' (원래 가사)

 

   

< 1 >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까치떼 노래하고 호박꽃 피는 내 고향의
반달같이 어여쁜 아가씨가 나는 좋아
열무김치 총각김치 맛있게 담고
알뜰살뜰 아들 딸 낳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음 으으 음 으으~ 장가 갈테야.

 

< 2 >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얼룩소 풀을 뜯고 松花 꽃 피는 내 고향의
앵두같이 귀여운 아가씨가 나는 좋아
보리방아 잘도 찧고 길쌈 잘하고
요밀조밀 참을성 있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음 으으 음 으으~ 장가 갈테야.

 

< 3 >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꾀꼬리참외 열고 옥수수 피는 내 고향의
딸기같이 싱싱한 아가씨가 나는 좋아
누에 치고 달기 치고 콩밭 잘 매고
서글서글 마음씨 고은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음 으으 음 으으~  장가 갈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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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기 : ‘닭’의 방언 (평남과 황해도 방언). 달기 치기는 닭 기르기.

 

 


 <총각 진정서>는 가수 金貞九님이 1938년 7월에 오케 레코드에서 발표한 漫謠입니다. <꽃피는 포구; OK-12147/ 이난영 노래>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당대의 일류 작사가 趙鳴岩님이 아주 재미있는 노랫말을 쓰고,빅 히트곡 <애수의 소야곡> 발매 이후 중견작곡가로 자리하기 시작한 朴是春님이 이에 어울린 곡을 달아, <항구의 선술집>, <천리 춘색>, <왕서방 연서> 등의 漫謠를 불러 상당한 인기를 모았던 金貞九님이 불러 사랑을 받았읍니다. 1998년 노환으로 미국에서 타계한 김정구님의 특징이 잘 드러난 <총각진정서> <雲水衲子> 


김정구 (金貞九 1916~1998)

함경남도 원산부 출신으로 작곡가겸 가수인 맏형 김용환과 성악가인 누나 김안라가 모두 음악인으로 활동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1936년에 뉴코리아레코드에서 형 김용환의 작품인 "삼번통 아가씨"를 취입하여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오케레코드로 옮겨 "항구의 선술집"을 불렀고 이듬해 "눈물 젖은 두만강"이 크게 유행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 대표곡이긴 하나 만요 가수로서의 재능이 두드러져 익살스러운 노래를 여러 곡 히트시켰다. "왕서방 연서" "총각진정서" 등이 모두 만요이며 장세정과 함께 부른 듀엣곡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가정전선" 등이 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김용환과 함께 태평양가극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60년대에 한국방송 라디오 반공드라마인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주제곡으로 "눈물 젖은 두만강"이 쓰이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 노래는 오랫동안 애창되어 한국의 대표적인 트로트곡이 되었다.1980년에 대중가요 가수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수여받았다. 말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생활하다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