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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국민혁명

[박근혜의 영적 지배자] '최태민'은 누구인가?

잠용(潛蓉) 2016. 10. 30. 14:23

[쓸로몬]'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지배한 자' 최태민은 누구?
노컷뉴스ㅣ2016-10-30 06:00 CBS 노컷뉴스 SNS팀 김효은 기자

 

"내 몸에 흰 피가 흐른다"… "나는 조물주가 보낸 칙사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박근혜 영애, 구국선교단 총재 최태민과 담화를 나누는 모습

(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이미 사망한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2007년 7월 20일 본국에 보고했던 외교문서 내용입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함께 당내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던 상황. 이명박 캠프는 당시 박 후보와 고 최태민 씨 간의 긴밀한 관계 및 최씨 자녀들의 전횡을 폭로하면서 박 후보의 공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돌이켜보면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가장 먼저 예측했던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집권세력이었네요. MB마저 규탄했던 '박근혜-최태민' 연결고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이들의 '잘못된 만남'을 오늘 집중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 '사이비 교주' 최태민, 그는 누구인가?

 

최태민 씨(자료사진)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태민은 자유당 정권 시절 경찰업무를 하다 1954년 승려가 된 이후 불교에 몸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 사기 혐의로 쫓기는 신분이 되자 성당에서 영세를 받더니만, 1973년에는 본격적으로 사이비 종교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대전일보에 실린 광고를 한번 살펴볼까요? 제목은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  여기서 최태민은 자신을 '조물주가 보낸 칙사'라고 표현합니다. 그러고는 '불교계에서의 깨침과 기독교계에서의 성령 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이 모두를 조화로써 실천시킨다'며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주' 최태민이 창설한 '영세교(永世敎)'입니다.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해주겠다며 사이비 종교 행각을 활발히 벌였습니다.  훗날 목사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가 신학대학을 다녔다거나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태민은 6명의 부인과 3남 6녀를 뒀습니다. 영적 후계자로 낙점 받은 것으로 알려진 '비선 실세' 최순실 씨는 그의 다섯 번째 딸입니다. 

 

◆ 영애와 교주의 '잘못된 만남'

"어젯밤 꿈에 국모님을 뵈었습니다. 국모님 말씀이 내 딸을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박근혜)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최태민)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1975년 최태민은 어머니를 여읜 박근혜 영애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수차례 보내면서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고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후 상심이 컸던 박근혜 영애는 같은 해 3월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여러 가지 조언을 듣습니다. 잘못된 만남의 시작이었지만, 23살의 영애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겠죠. 영애를 등에 업은 최태민은 같은 해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합니다. 자신은 총재를 맡고 박근혜 영애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는데, 이때부터 박근혜 영애는 행사장의 '마스코트'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칩니다.  이후 유사 단체도 여럿 생겼습니다. 구국여성봉사단이 출범했고, 여러 단체를 통합한 새마음봉사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박근혜 영애는 이들 단체의 총재로 추대됐고, 최태민은 1977년 발족한 새마음갖기운동본부의 본부장을 맡았습니다. 

 

1991년 5월 최태민 기사를 다룬 중앙일보 지면 캡처

 

그러는 사이 청와대에는 쉴새 없이 진정서가 날아들었습니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는군요. "우리 기업들이 해마다 정치자금과 방위성금을 많이 내고 있지만 불만은 없다. 하지만 그런 곳(새마음봉사단)에까지 돈을 갖다바쳐야 하나? 해도해도 너무하네"누구 떠오르는 사람 없으신가요? 그분 맞습니다. 최순실 씨.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자금을 기업에게서 뜯어내는 방식이 꼭 닮지 않았나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죠. 최태민은 재벌 총수들이 봉사단에 기탁한 수십억원을 유용하는 등 횡령과 사기는 물론 여성과의 스캔들에도 꾸준히 휩싸였습니다. 결국 최태민의 전횡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을 직접 불러 '친국(親鞫)'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검찰 조사로까지 이어졌지만 영애에 대한 최태민의 영향력은 그대로였습니다. 오죽하면 김재규 부장이 "그자는 백해무익한 놈이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할 놈"이라고까지 표현했을까요?

 

◆ 박정희 서거 이후에도 육영재단 전횡

1979년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최태민을 수사했습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 수사 결과 최태민의 횡령 건수는 모두 14건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군부는 대통령 일가와 관련된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사건을 덮었고 최태민을 강원도 인제로 '유배(流配)' 보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한때 구속수감됐던 최태민을 위해 석방 운동을 벌였다는 얘기도 나돌았습니다.

 

1994년 2월 월간 '세계여성'에 실린 최태민과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의 사진

 

80년대 들어 최태민은 딸 최순실 씨와 함께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 대통령의 배후에서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1994년 월간 '세계여성'에는 최태민의 기이했던 언행이 등장합니다. 어린이회관에 전 직원들을 불러 모아 "내 몸에는 흰 피(白血)가 흐른다", "산에서 8년 동안 도를 닦았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또 어린이 예절교육장소인 근화원 내 근화교회에서 열린 창립예배 당시 최태민이 박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고 하네요. 최태민은 여기서 강론을 펼치기도 했는데 "나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8세였습니다.  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질 않았고,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바람에 결국 1990년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씨가 육영재단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추대됐습니다. 최태민은 1994년 5월 사망했지만, 최순실 씨를 포함한 그의 자녀들은 이미 재단의 각종 이권 사업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였습니다. 사실상 이 모두가 국민의 세금이었는데 말이죠.


[단독] "최태민의 대한구국선교단 창설은 박정희 지시"
노컷뉴스ㅣ2016-10-29 20:12 CBS 노컷뉴스 이승규 기자

 

예장종합총회 총회장 전기영 목사. 전 목사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최태민 씨가 설립한 대한구국선교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민주화 세력에 대응하려고 만들었다"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 씨가 설립한 대한구국선교단. 이 선교단이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며, 민주화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같은 증언은 최태민 씨에게 목사 안수를 줬던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부총회장을 맡고 있던 전기영 목사에게서 나왔다. 전 목사는 최태민 씨와 같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소속으로, 그 시기에 최 씨는 총회장을, 전 목사는 부총회장을 맡았다. 

 

대한구국선교단은 1975년 설립해 최태민 씨가 총재를 맡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은 바 있다. 전 목사는 최태민 씨가 자신에게 대한구국선교단을 창설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줬다고 주장했다. 전 목사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를 불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진보 기독교 세력이 강하다며, 이를 견제할 세력을 만들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에게 보수 기독교 세력의 결집을 주문한 셈이다. 최태민 씨는 이에 1975년 4월 29일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총재가 됐다. 또 같은 해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전 목사는 "최태민 씨가 너무 권력에 붙어 있었고, 목사가 아니라 주술가에 가까웠다"며 "그의 정체를 안 뒤에는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 목사는 최 씨가 "돈이 정말 많았다"며 "목사들에게 10만 원 씩(1970년대 당시) 주는 일은 예사였다"고 말했다. 또 "전 목사 자신에게도 당시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많은 6백만 원을 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 목사는 최태민 씨를 "주술적인 기운이 강했던 전형적인 주술가"라며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최태민 씨에게 달려든 목회자들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교회가 최태민 씨를 목사라고 부르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교회에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전기영 목사는 현재 충남 서산에 예장종합총회 본부 인근 사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前 '박근혜의 입' 전여옥 "늘 결정 못할 땐 어딘가에 전화"
노컷뉴스ㅣ2016-10-29 14:48 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연설문, 모처 다녀오면 걸레 돼… 누군가 일러준 단어 외워 말하는 느낌"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현 새누리당) 대표 시절 대변인으로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박근혜의 입'이라 불렸던 전여옥 전 의원이 "(박 대통령이) 늘 결정 못할 때는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고 폭로했다.  전 전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6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세종시 수도 이전 문제를 국회에서 강행처리하려고 했는데 박 대통령이 결정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길래 '전화라도 해보라'고 권했는데 정말 전화를 했다. 힘이 쫙 빠지더라"며 이같이 밝혔다.

 

전 전 의원은 최순실의 취미가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것이라는 발언이 나왔을 때 모두가 웃었지만 자신은 웃지 않았다면서 과거에도 "원고가 '걸레'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그 때는 정호성 비서관이 고치는 줄 알았다"며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당에서 만든 대표의 '메시지'말고 다른 곳에서 온 메시지를 자꾸 발표하는 거다. 이번에 보니 다 그게 최순실의 작품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아버지인 최태민 씨와의 관계를 언급한 내용도 소개했다. 전 전 의원은 "대표 시절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있다.

 

꿈에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나타났다고. 그리고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며 "'나를 밟고 가라. 그리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최태민 목사와 상의하라'. 귀곡산장(鬼哭山莊)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나?"라고 황당해 했다. 박 대통령을 보좌할 때 이해할 수 없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당과 전면전을 해야할 것 같다"는 박 대통령의 뜬금없는 폭탄 발언을 듣고 기자들이 보고전화를 하러 자리를 뜨자 박 대통령이 해맑은 표정으로 "그런데 왜 기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죠?"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전 전 의원은 "상황 판단을 저렇게 못 할 수 있을까? 그럼 '전면전'이란 단어는 무슨 생각으로 쓴 걸까?"라며 "그때 누군가가 일러준 단어를 외워서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누군가'는 최순실씨 등 최씨 일가를 말한다. 2012년 대선 때 야당의 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돈을 숨겼다. 박근혜 후보도 그 사실을 안다"고 주장한 내용을 전 전 의원이 전화로 전하자 박 대통령은 "에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두세요. 별일 아닌데요 뭘"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사진=자료사진)

 

그런데 10분쯤 뒤 박 대통령이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전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와 "세상에 그런 터무니없는…. 반드시 법적으로 고소하겠어요"라며 펄펄 뛰었다고 했다. 전 전 의원은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전 '그냥 두세요' 했다가 10분 만에 화가 나서 펄펄 뛸 수 있을까?"라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치와 연을 끊은 뒤에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중에는 "박근혜 정부 장관 노릇처럼 쉬운 게 없다"는 말도 있었다고 전했다.  저녁 6시가 되면 대통령은 관저로 들어가고 모든 것은 보고서로 보고받기 때문에 장관은 전화만 잘 받고 만날 일이 없으니 대기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 전 의원은 "왜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질문을 하려면 사안을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며 "특히 대면보고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받기만 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 최순실씨는 박쥐처럼 동굴 속의 권력을 잡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전 의원은 '박근혜의 입'이라고 불렸지만 2007년 이명박 캠프로 옮기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비난 받았다.  당시 전 전 의원은 "박 대표 주변 사람들은 무슨 종교집단 같다"면서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후보라 생각한다"며 박 캠프를 떠났다.

 

靑회담 때 朴만난 이종걸
'교과서 기운' 발언 보며 귀기(鬼氣)를 느껴"
노컷뉴스ㅣ2016-10-29 19:04 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교과서 대목' 묻자… 朴 "그런 기운이 든다"

지난해 10월 대통령·여야대표·원내대표 5자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던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9일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귀기(鬼氣)' 같은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종걸 전 원내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시 회담 상황을 상기시키며 이같이 전했다. 당시 회담의 주요의제 중 하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였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이 전 원내대표의 주장에 대해 박 대통령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자학사관(自虐史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폈었다. 이에 이 전 원내대표는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것이 어떤 부분이냐?"고 되물었고 박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