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사실 은폐, 조사 불응, 압수수색 거부...
국민의 신임 배반했다"
[동아일보] 입력 2017.03.11 03:02 수정 2017.03.11 07:40 댓글 1948개
헌재, 朴대통령 파면한 이유는?
[동아일보] 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이란 역사적 결단을 내리는 데 헌법재판관 8명 중 단 한 명도 이의가 없었던 결정적 사유는 ‘국가 지도자의 거짓된 태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진 뒤 허위로 해명하며 내부 단속에 몰두한 점 때문에 그를 파면하지 않고는 위법한 권한남용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하고도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에 불응하며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을 문제 삼았다. 박 전 대통령의 그 같은 태도는 법치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이 스스로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과 형사처벌을 피해 보려고 거짓으로 잘못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 몰락을 자초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진실성 없어… 국민의 신임 배반”
헌재가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하려면 2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탄핵소추 사유로 제시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명백히 어긋나야 하고, 위반의 정도가 파면이 불가피할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를 크게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참사 대응) 등 4가지로 정리했다. 헌재는 이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의 국정 농단을 방조하고 권한을 남용한 잘못에 대해서만 위법성을 인정했다. 탄핵 사유 4개 중 1개만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헌재는 2차 관문인 중대성을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권한남용이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심각한 수준으로 지속된 게 문제라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 씨가 추천한 인물을 고위직으로 임명하고 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을 요구해 최 씨가 이권을 취하도록 도왔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뒤 박 전 대통령의 행태가 재판부의 판단에 쐐기를 박았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해명이 객관적 사실과 달라 진실성이 없고,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지키지 않는 등 신뢰 회복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질타했다. 헌재가 “박 대통령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손실보다 압도적으로 크다”고 본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잇따른 거짓말로 대통령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법수호 의지 저버렸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의혹이 확산되던 지난해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갖고 “취임 직후 연설문 표현 등에서 잠시 최 씨 도움을 받았고 청와대 보좌진이 완비된 뒤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이른바 ‘말씀 자료’뿐 아니라 인사 자료와 외교 문건 등 각종 기밀을 지난해 중반까지 최 씨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올해 1월 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간담회를 자청해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챙겨준 적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이 최 씨 추천 인사로 채워지고, 최 씨 소유의 광고회사(플레이그라운드)가 대기업 광고를 따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를 동원한 사실이 밝혀지며 이 역시 거짓말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1월 25일 한 인터넷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농단 사건은) 불순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이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에 재단 설립 자금을 내도록 요구했지만, 강제모금 의혹이 불거지자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일’이라고 청와대 내에서 말을 맞췄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통령은 이렇게 ‘일방통행식’ 거짓 해명을 반복하며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에 계속 불응했다. 또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도 완력으로 막아서며 거부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헌법 수호 의지’를 저버린 것으로 판단했다.
“헌법상 성실 의무 위반”… 보충의견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생명권 보호 의무와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는 성실성의 기준이 모호해 파면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으로 파면할 수 없다’는 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적용됐던 법리다. 다만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신광영 · 전주영· 김민 기자]
탄핵심판 92일의 '대장정'... 변론 84시간·서류만 6만쪽
뉴시스ㅣ나운채ㅣ 입력 2017.03.10 16:13 댓글 64개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헌법재판소는 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재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1층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밝혔다. hokma@newsis.com
사건기록 6만5000여쪽… 탄원서 등 박스 40개 분량
【서울=뉴시스】나운채 기자 =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해 92일간의 숙의를 거쳐 표결 끝에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10일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려기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은 84시간50분 진행된 재판, 3954개의 서증, 6만5000여쪽의 사건기록 등 수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헌재는 그동안 3번 준비절차, 17번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 속기록만 3048쪽에 달했다. 신청된 증인은 103명이었다. 국회 소추위원 측이 16명, 박 전 대통령 측이 67명의 증인을 신청했고, 양쪽이 공통으로 신청한 증인은 20명이었다.
이 중 38명의 증인이 채택됐고, 26명이 헌재 대심판정 증인석에 섰다. 그중 안종범(58·구속 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유일하게 2차례나 신문을 받았다. 채택된 38명의 증인 중 12명의 증인이 취소된 바 있다. 헌재가 직권으로 취소한 증인은 10명, 철회된 증인은 2명이었다. 이 중 안봉근(50)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50) 전 총무비서관, 고영태(41) 전 더블루K 이사 등이 주요 인물로 꼽힌다. 헌법재판관들이 탄핵심판 과정서 살펴본 기록 수치는 실로 방대했다. 헌재는 총 3954개의 서증(총 4만8096쪽)을 살폈다. 또 13건의 문서송부촉탁 중 8건의 회신을 받아 4만797쪽의 기록을 받아보기도 했다.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재는 1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1층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밝혔다. hokma@newsis.com
이른바 '고영태 녹음파일' 등 2391개의 녹취 파일을 확보하기도 했다. 헌재가 검토한 사건기록은 증거자료 및 속기록을 포함해 총 6만5000여 쪽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에 접수된 탄원서 등 서면만 하더라도 A4 용지 상자 40개 분량에 달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와 비교해보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30일 가까이 더 심리가 이뤄졌다. 당시 변론기일은 총 7차례 열렸는데, 박 전 대통령은 그보다 10차례 더 많은 셈이다. 노 전 대통령 당시 3명의 증인신문이 이뤄진 것과 달리 박 전 대통령 때는 총 26명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naun@newsis.com]
휴일 반납하고 구내식당 이용... 3개월간 수도승 같은 삶
한국일보ㅣ박지연ㅣ입력 2017.03.11 04:43 댓글 2151개
↑ 역사적 판결의 주인공 헌법재판관 8인. /헌법재판소 제공
선고까지 재판관들 뒷이야기
재판관 집무실 비상계단 봉쇄.. 불필요한 일반인 접촉 피해
육체 피로ㆍ시위대 구호에 시달려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기까지 헌법재판관들은 심리 내용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 수도승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외부 접촉을 극도로 줄이는 한편 국정 공백 사태를 단기화하기 위한 시간 압박 탓에 휴일과 주말도 반납한 채 매일 사건 서류에 파묻혀 보냈다는 후문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국회 소추위원단과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의 변론을 대부분 허용했고 재판부를 향한 막말과 법정 소동에도 인내하며 재판을 이끌었다.
재판부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한 것은 단연 보안문제다. 법률에 따라 서면심리와 평의(評議)가 비공개(헌재법 제34조)되는 것은 물론, 자칫 일부 재판관의 견해라도 외부에 알려지면 국가적 운명이 달린 중대 사건에서 재판부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월 31일 임기 만료로 퇴임한 박한철 전 소장이 주변 지인들에게 “나를 찾지 말라”고 당부한 뒤 모처에서 스님처럼 동안거(冬安居)를 택한 것도 자신의 재임기간 중 논의된 평의 내용과 재판관들의 심증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헌재에 남은 8인의 재판관 역시 개인 접촉을 최소화하는 등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유의했다. 헌재 인근에서 기자들과 마주치더라도 인사말조차 아낀 채 미소로 대신했다. 식사조차 편치 않았다. 단골 식당에 가도 여러 차례 질문이 쏟아지자 결국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후문이다.
헌재는 재판관과 연구관들에 대한 접촉을 차단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헌법재판관들의 집무실과 연결된 모든 비상계단이 봉쇄됐고, 헌재 도서관도 집무실로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3개월 간 일반인 출입을 제한했다. 정문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청사에 들어서도 헌재 관계자들이 소지한 출입 카드 없이는 청사 1층 대강당과 2층 브리핑실 방문만 허용됐다.
↑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가운데)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다. /왕태석 기자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따른 심리적 압박도 적지 않았다. 헌재는 사건을 접수한 지 일주일 만에 ‘탄핵심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60여명의 연구관을 투입해 연구를 계속했다. 헌재 청사는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헌재 관계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온갖 풍문과 국정원 사찰 의혹 등으로 더욱 예민해졌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변론기일을 시작하기 앞서 “국정 중단을 초래하는 매우 위중한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 헌재는 어떤 편견과 예단 없이 밤낮, 주말 없이 매진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심적 압박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결정일이 다가오면서 재판관 성향 분석과 ‘가짜뉴스’까지 쏟아지면서 재판관들은 마음고생도 컸다. 기각 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다고 여러 차례 지목된 한 재판관은 사석에서 “언론 의혹 기사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푸념했다는 전언이다. 헌재 인근은 연일 탄핵 찬반 집회로 몸살을 앓아 출퇴근도 쉽지 않았다. 헌재 정문 방향의 연구실을 사용하는 헌법연구관들은 “이어지는 함성과 구호소리에 연구를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육체적 피로도 이겨내야 했다. 일주일에 2, 3차례씩 변론기일을 열자 양측 대리인단에서 “서면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재판부는 “저희도 모든 기록을 파악하고 있다. 대리인단은 숫자가 좀 되시니 나눠서 파악해달라”며 국정 공백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심리를 재촉했다. 얼마나 긴장과 압박이 연속됐는지는 이정미 권한대행만큼 잘 보여주는 이가 없다. 운명의 날인 10일 미용도구(헤어롤)를 머리에 그대로 달고 출근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헌재 관계자는 “이정미 재판관이 어제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아침에 너무 정신 없이 나오다 보니 머리가 헝클어졌던 모양이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신속심리와 전원일치, 두 마리 토끼 잡은 주심 강일원
중앙일보ㅣ윤정민.문현경ㅣ입력 2017.03.11 02:04 수정 2017.03.11 15:34 댓글 320개
변론 때 '사이다 발언'으로 핵심 찔러
대통령 측에서 기피신청 하기도
재판관들 당분간 경찰 경호 계속
지난해 12월 9일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탄핵심판 사건은 당초 13가지의 탄핵사유를 담고 있었다. 다양한 쟁점을 가진 사건이 92일 만에 전원 일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주심인 강일원(58·사법연수원 14기) 재판관의 재판 진행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될 때 강 재판관은 세계 헌법재판기관 협의체인 베니스위원회에 참석 중이었다. 주심으로 결정된 그는 곧바로 귀국해 사건의 키를 잡았다. 첫 준비기일(지난해 12월 23일)부터 “국정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에 직권으로 증거조사도 하고 있으며 신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신속한 재판을 공론화했다. ‘시간 끌기’ 의심을 받던 박 전 대통령 측도 강 재판관의 합리적인 요구에 변론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강 재판관의 변론 진행은 ‘사이다 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통령 측 증인들을 상대로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청와대는 이를 국기문란 행위라고 했는데 그 이후에도 문서가 유출된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으로 박 전 대통령 측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증거 조사와 증인 채택 기준 등이 논란이 되자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 증거인 태블릿PC를 과감히 증거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지난 1월 28일 8차 변론에서 대통령 측이 39명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을 때는 “좀 더 생각해 보시죠. 앞선 증인들이 일관되게 (재단 설립은) 청와대가 주도했다고 하는데 증인들이 더 나오면 뭐가 달라지느냐”고 꼬집었다.
심리 막바지에는 박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국회 대리인”이라는 비난과 함께 기피 신청을 당했다. 강 재판관은 유감을 표명하고 “(김평우·정기승 변호사) 두 분 어르신께서는 헌법재판을 많이 안 해 보셔서 그런 거 같다” “주심 재판관은 재판부를 대표해 주도적으로 심판을 진행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맞섰다. 한 법조계 원로 인사는 “강 재판관은 재판에서뿐만 아니라 법원행정처 등에서 행정 업무를 다룰 때도 복잡한 사안의 쟁점을 시원하게 정리하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곤 했다”고 말했다. 신속 심리와 전원 일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데는 강 재판관의 이런 스타일이 기여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탄핵 결정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재판관들은 경찰의 경호를 계속 받는다. 탄핵 반대 측의 신변 위협에 대비해 선고 2주 전부터 청와대 경비단 및 경찰특공대 출신 경찰관이 투입됐다. 선고 하루 전인 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강 재판관 등 재판관 한 명당 의경 1개 중대(100여 명)가 투입돼 집 주변을 순찰했다. 10일 아침 출근길엔 기존 3명 외에 경찰관 10여 명이 각각 추가 배치됐다. 재판관이 집을 나서기 전에는 경찰 정보관들이 탄 차가 헌법재판소까지의 동선을 점검하면서 위험 요소를 탐색하고 5분 뒤 재판관이 탄 차량이 출발한다. 경찰관 2명이 탄 순찰차와 실탄과 테이저건 등으로 무장한 경찰관 3명이 승용차로 따라붙고 그 뒤에 다시 강력계 형사 5명이 탄 승합차가 호위한다. 퇴근길도 마찬가지다. 경찰 관계자는 “향후 신변위협의 정도에 따라 경찰력을 추가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정민·문현경 기자 yunjm@joongang.co.kr]
이정미 헌재소장대행 쟁점 꿰뚫은 진행...
'역사적 심판' 권위 지켰다
한국일보ㅣ 손현성ㅣ입력 2017.03.11 04:42 댓글 467개
↑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왕태석 기자
최연소 연수원 기수 막내로 임명,
박한철 前 헌재 소장 퇴임 후 최선임으로 38일 동안 이끌어
“감히 이 자리서 할수 없는 말…” 대리인단 시간 끌기에 단호 대처
신속ㆍ공정 노력… 13일 법복 벗어
법 ‘憲(헌)’자가 새겨진 의자에 앉아 20여분간 차분하게 결정문 요지를 읽어내려 간 법관의 입이 10일 오전 온 국민의 시선을 빼앗았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초유의 주문을 읽은 이정미(55ㆍ사법연수원 16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그는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선고를 끝으로 6년간 몸담은 헌재를 13일 떠난다. 어떤 퇴임사를 남길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릴 정도로 법복을 입은 그의 모습과 목소리는 이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권한대행은 박한철 전 헌재 소장 퇴임 다음날인 올 2월 1일부터 ‘8인 재판관’ 체제의 헌재를 38일 동안 이끌었다. 재판관 중 나이나 연수원 기수로 치면 가장 막내지만 헌재 근무기간을 따지면 최선임이다. 재판 초기 준비절차를 담당하는 ‘수명 재판관’으로도 활동해 이미 쟁점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감안한 듯 ‘신속과 공정’ 두 원칙을 지키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한대행 첫날 “절차의 공정성과 엄격성이 담보돼야 결과의 정당성도 확보된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재판진행 중 불거질 수 있는 오해의 싹을 자르겠다는 다짐이나 마찬가지였다.
↑ 10일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헤대통령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선고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이 권한대행은 자신의 퇴임일 전 결정을 ‘졸속 심판’이라고 문제 삼은 대통령 대리인단과의 신경전도 매끄럽게 잘 정리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재판 지연전략 일환으로 무더기 증인 신청을 일삼았지만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들어볼 만한 증인은 적정선에서 받아줬다. 다만 납득하기 힘든 사유로 증인이 불출석하면 직권으로 증인 채택을 취소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시간 끌기용 질문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신문하라”며 변론 진행을 이어갔고, 심증 형성에 도움이 안 되는 의견 위주의 질문이 반복되면 “사실관계만 물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의 막말과 논점을 이탈한 주장을 2시간 이상 들어줬지만 인신공격성 발언에는 참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김 변호사가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겨냥해 “국회 측 수석대리인”라고 한 발언에는 “감히 이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말이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박한철 전 소장 퇴임 뒤 강단 있는 재판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였던 셈이다. 특히 “재판관 8인 체제는 위헌”이라는 등 대통령 측의 막무가내 공세에도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탄핵 결정이 날 때까지 차분하게 헌재의 권위를 지켰다. 그는 이날 선고에서 “8인 재판관 결정은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 못 박으면서 대통령 측 주장을 일축했다.
이 권한대행은 2011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 지명을 받고 최연소로 헌재에 입성해 취임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다른 후보들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6, 7기나 후배여서 ‘기수 파괴’ 인사라는 얘기를 들었다. ‘여성’과 ‘비서울대(고려대)’ 출신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 발탁되기 전 법관 재직 당시 부드러운 재판 진행으로 소송관계자들의 승복률이 높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재임 동안 사회적 약자의 권리보호를 중시했으며,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소신을 지켰다는 평을 주로 받았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사건 주심 재판관으로 ‘찬성’ 의견을, 2015년 교원노조 가입자를 현직으로 제한한 교원노조법에 ‘합헌’ 의견을 냈다.
[손현성 기자]
'외딴 섬주민'으로 살아온 헌재 직원들... 92일만에 '해방'
뉴스1ㅣ김일창 기자ㅣ입력 2017.03.11 07:00 댓글 187개
↑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직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2017.3.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사적인 약속·청사 밖 점심 쉽지 않았던 시간
'평의' 매일 진행..극도로 말 아낀 재판관들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10일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날부터 이날까지 국민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 헌재 심판정 밖 모습을 살펴봤다.
◇ 서울 한복판에 외딴섬
'종로구 북촌로15' 헌재 직원들에게 청사는 지난 3개월 동안 '외딴섬' 같은 곳이었다. 사적인 약속을 잡는 것도, 점심식사를 하러 청사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선고일에는 청사 주변이 온통 경찰버스벽으로 둘러싸여 실제로 '외딴섬'이 되기도 했다. 재판관들은 92일 동안 휴일을 가리지 않고 매일 출근하며 사건기록을 검토했다. 평일에는 아침 9시쯤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며 소임에 최선을 다했다. 변론절차를 마무리하고 선고일 확정 발표만 남겨둔 상황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재판관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되며 위협받기도 했다. 이에 헌재는 8인 재판관에 대한 근접경호를 경찰에 요청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들이 사적인 약속도 거의 잡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재판관들께서 사적인 약속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그만큼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검토하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재판관들은 점심도 가급적 청사 내에서 도시락이나 구내식당에서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몇몇 재판관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나오며 취재진과 더러 마주치기도 했다. 헌재 직원들도 사건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한 듯 외부활동을 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고일이 가까워지며 헌재 주변 집회가 격양되자 신분 노출에도 특히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 법재판관들은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하는 동안 사적인 약속도 잘 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열리는 날에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2017.2.20/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 무거운 '입' vs '막말 변론'
취재진은 탄핵심판이 진행된 92일 동안 심판정 이외의 곳에서 재판관들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특히 본격적인 변론이 진행된 올해 1월부터는 단 한 차례도 재판관들의 목소리를 듣을 수 없었다. 헌법재판관들이 얼마나 이 사건을 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판정 외에서 발언한 재판관은 강일원·이진성·김이수 재판관이지만 내용은 소감 정도에 불과했다. 강 재판관은 지난해 12월10일 출장차 떠났던 이탈리아에서 조기 귀국해 곧장 헌재로 출근하며 취재진을 만나 소감을 밝힌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강 재판관은 당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옳은 결론을 빨리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의 주심이자 준비절차에서 수명재판관으로 지정돼 재판을 이끌었다. 김 재판관 역시 출장에서 돌아와 헌재로 곧장 출근하며 짧게 소감을 전한 것 외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15일 "지금 헌재가 적절한 속도로 심리를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록을 검토한 뒤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할 것"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단 김평우 변호사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6차 공개변론을 마친 뒤 취재기자들에게 편파적 보도를 항의 있다. /2017.2.22/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이 재판관은 같은날 출근길에서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이름으로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다"고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 소감을 짧게 전했다. 그 역시 강 재판관과 함께 수명재판관으로 활약했다. 재판관들과 달리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일부 변호사의 '입'은 너무 가벼웠다. 2월22일 마지막 변론에서 '막말변호' 논란을 일으킨 김평우 변호사는 재판이 끝나고 취재진에게 삿대질 하며 "쓰레기 언론은 꺼지라"고 맹비난했다. 같은 대리인단의 조원룡 변호사가 김 변호사를 말리기도 했지만 그의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조 변호사는 같은날 강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기습적으로 낸 인물이다. 조 변호사의 중재로 준비된 벤츠 차량에 탑승한 김 변호사는 이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헌재를 빠져나갔다. 조 변호사를 향한 취재진의 질문이 계속되자 그 역시 화를 참지 못하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ickim@news1.kr]
대통령 탄핵심판 당일,
일반 방청객인 줄 알았던 이 사람의 정체는?
중앙일보ㅣ이지상ㅣ입력 2017.03.11 14:32 수정 2017.03.11 15:34 댓글 1810개
↑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YTN캡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정된 10일 헌법재판소 일반인 방청객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한 '노인'의 정체가 화제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기일에는 800대 1의 경쟁율을 뚫고 일반인 방청객들이 참관했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 일부는 대통령 파면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안타까움에 탄식을 보내기도 했다. 이날 한 노인도 방청석에 앉아 헌법재판소의 주문낭독을 지켜봤다. 이 노인은 한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 응해 "시간을 넉넉히 잡고 신중히 검토했으면 좋았겠다. 판결 내용은 불만이었지만"이라고 한 뒤 "법치국가 국민으로서 (헌재의) 결정에는 모든 국민이 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언론사는 이 '노인'을 방청객 중 한 명으로 소개했지만, 그는 대한민국 민사소송법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이시윤 전 감사원장이다. 그는 초대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돼 헌법재판소 초기 정착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도 꼽힌다. 법학도나 사법시험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민사소송법' 교재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소추위원이었던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을 도와 소추위원 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이 전 재판관은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내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을 자주 찾아 방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이 전 재판관은 기자들을 만나 "헌재 결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법치주의로 나가는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의 선진화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며 "모든 결정이 났으니 이번 결정에 대해 앞으로 공개적으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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