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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고전산책] "인생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잠용(潛蓉) 2017. 9. 29. 18:12

"인생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생이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 긍선(亘璇, 1767∼1852) 작, 『작법귀감(作法龜鑑)』 권하(卷下) 


[해설]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그리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생사에 대한 성찰은 삶의 태도, 지향과 직결된다. 그러니 이는 이른바 인문학의 핵심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불교 의례의 절차를 정리한 『작법귀감』에서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후술하였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불교적 답변, 그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원문] 삶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 스러짐이니 /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뜬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 /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삶과 죽음도 실체 없기는 마찬가지라 /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다만 한 무엇이 항상 홀로 나타나 / 獨有一物常獨露 독유일물상독로
 담담히 삶에도 죽음에도 매이지 않네 / 澹然不隨於生死 담연부수어생사 

 

[해설] 항간에서는 위 시의 작자를 나옹 혜근(懶翁 惠勤, 1320∼1376)이라고도 하고,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문헌을 찾아보면 이 시는 혜근의 손제자이자 무학 자초(無學 自超, 1327~1405)의 제자인 함허 기화(涵虛 己和, 1376~1433)의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 「위비돈영가하어(爲匪豚靈駕下語)」의 내용 중에서 처음 확인된다. 기화가 법어를 하면서 혜근이 지은 시를 인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 시의 최초 작자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선 초기의 기화 이래 지금까지도 불가에서 많이 회자되는 시임에는 틀림없다. 

 

위 시에 따르면, 삶은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뜬구름과도 같다. 뜬구름처럼 생과 사는 실체가 없다.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 이것이 존재의 현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살아있는 나’가 고정된 실체인 것처럼 착각하고 집착한다. 그래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에 집착하고 남을 차별하니,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 두 구절은 이러한 존재의 현실을 받아들인 불교적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과 사, 나와 남의 차별과 집착이 없는 경지를 표현한 것인데, 다시 말해 내 머릿속 관념일 뿐인 이분법적 차별이 없는 불이(不二)의 경지, 생과 사, 나와 남의 차별이 없는 일물(一物)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경지에 오르면, 내 삶에는 초연해지고, 남의 삶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고 했듯이 말이다. 
 

위 질문에 대한 불교적 답변은 이러하지만, 답변이 어떠하든 삶을 질문하고, 질문하며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름 아닌 인문적 삶이다. 유교적 답변이든, 도교적 답변이든, 기독교적 답변이든, 또 다른 답변이든 모두 좋다.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우리 각각의 삶이 더 깊고 다채로워진다면, 우리 사회도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가 인문학을 갈망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글쓴이/ 손성필(孫成必)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나는 구름이고 싶다"


[번역문] 대개 구름이라는 것은 뭉게뭉게 피어나 한가롭게 떠다니지.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매이지 않으며 동서(東西)로 떠다니며 그 자취가 구애받는 곳이 없네. 잠깐 사이에 변화하니 처음과 끝을 헤아릴 수 없지. 뭉게뭉게 성대하게 퍼져나가는 모양은 군자가 세상에 나가는 것 같고 슬며시 걷히는 모습은 고결한 선비가 은둔하는 것 같네. 비를 내려 가뭄을 소생시키니 어짊이요, 왔다가는 머물지 않고 떠날 때는 연연해 않으니 통달한 것이네. 색이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검은 것은 구름의 본래 색이 아니네. 오직 아무런 색깔 없이 흰 것이 구름의 정상적인 색이지. 덕이 이미 저와 같고 색이 또한 이와 같으니, 만약 구름을 사모하여 배운다면 세상에 나가서는 만물에 은택을 주고 집에 머무를 때는 마음을 비워, 그 하얀 깨끗함을 지키고 그 정상에 거하겠지. 그리하여 아무 소리도 없고 색도 없는 절대 자유의 세계[無何有之鄕]로 들어가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네. 이와 같다면 옛사람이 얻고자 했던 실제와 가깝지 않겠는가?

 

[원문] 夫雲之爲物也, 溶溶焉洩洩焉. 不滯於山, 不繫於天, 飄飄乎東西, 形迹無所拘也. 變化於頃刻, 端倪莫可涯也. 油然而舒, 君子之出也, 斂然而卷, 高人之隱也. 作雨而蘇旱仁也, 來無所着, 去無所戀通也. 色之靑黃赤黑, 非雲之正也. 惟白無華雲之常也. 德旣如彼, 色又如此, 若慕而學之, 岀則澤物, 入則虛心, 守其白處其常, 希希夷夷, 入於無何有之鄕, 不知雲爲我耶, 我爲雲耶. 若是則其不幾於古人所得之實耶.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거사어록(白雲居士語錄)」 

 

[해설] 인생은 내 마음과 같지 않아서 작은 일조차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잘하고 싶지만 실수가 따르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갈등이 생긴다. 좋은 사람도 부딪히면 실망을 주고 가까운 사람이 오히려 큰 상처를 준다. 쉬고 싶지만 쉴 수가 없고,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어찌할까?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이고 싶다. 백운거사 이규보는 구름이고 싶었던 사람이다. 자는 춘경(春卿), 어릴 적 이름은 인저(仁底)이다. 태어난 지 2년 뒤에 무신의 난이 일어났다. 집안은 한미했으나 그 또한 유학자였기에 무신들이 권력을 잡은 상황은 훗날 그에게 스산한 삶을 안겨주었다. 그는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났기에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책임감을 안고 열심히 과거를 준비했다. 아홉 살 때 시를 지을 정도로 신동으로 알려졌건만 연거푸 과거 시험에 떨어졌다.

 

스물두 살이던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검은 베옷을 입은 촌로(村老)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가만히 살피니 별자리의 정령들인 28수(宿)였다. 올해 과거에 합격할 수 있는지를 묻자 문예를 담당하는 규성(奎星)이 말했다. “자네는 꼭 장원급제할 것이네. 이는 천기(天機)니 누설하지 말게.” 그리하여 그는 규성을 맡은 노인이 알려주었다 하여 이름을 규보(奎報)로 바꾸고 과거에 응시, 일등으로 급제했다. 실로 3전 4기 끝의 결실이었다. 그는 앞길이 활짝 열릴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무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상황이라 문인이 참여할 기회가 적었다. 식량이 떨어져 끼니를 잇지 못하는 상황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낙천적인 성격이라서 주눅 들지 않고 즐겁게 살려고 했다. 술을 엄청 좋아해서 누군가 부르면 달려나갔다가 잔뜩 취해서 돌아오곤 했다. 시와 거문고, 술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자처할 정도였다. 그는 기분파였고 즉흥적으로 행동했다. 거침없는 성격은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벼슬길은 열리지 않았고 가난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게다가 스물네 살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답답해진 그는 개성 북쪽에 있는 천마산으로 들어갔다.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삐져나오는 바람, 높은 산 위로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자연은 그에게 바람과 같이, 구름과 같이 살아가라고 권하는 것 같았다. 그는 흘러가는 구름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호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 지었다. 이름이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 주지는 못하는 법, 누군가 물었다. “자네는 속세를 벗어나 푸른 산에 들어가 흰 구름 속에 누우려는 건가? 어째서 그런 호를 지었는가?” 위의 글은 이에 대한 이규보의 대답이다. 
 

구름은 자유롭다. 뭉게뭉게 피어올라 자유자재로 떠다닌다. 높은 나무도 높은 산도 구름이 가는 데 방해되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동서남북 어디든 훨훨 떠다닌다. 비울수록 높이 떠올라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유유자적 떠간다. 또 구름은 순수하다. 구름의 본래 빛깔은 희디희다. 상황에 따라 푸르렀다 검었다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빛깔만을 한결같이 간직한다.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순리를 따라 흘러간다. 거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산들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상황에 몸을 맡기고 떠간다. 또 구름은 생명을 살린다. 만물에 차별 없이 비를 내려주고 자신은 온전히 비운다.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빛깔도 없는 텅 빈 세계로 사라진다. 보장할 수 없는 막연한 미래,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 나의 행동을 욕하는 사람들, 이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나 그는 자유롭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생명이 평등한 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했고, 약자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좋은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그는 이 모든 소망을 자신의 호(號)에 담았다.

 

하지만 삶이란 늘 그렇듯이 기대는 현실과 어긋난다. 이후의 삶이 그의 바람대로 나아간 것 같지는 않다. 서른두 살에 비로소 벼슬살이를 시작했고 낮은 관직을 전전하다가 노년에 이르러 그의 능력을 펼치며 높은 벼슬살이를 했다. 그러나 무신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따가운 눈총을 받았고, 삶의 처신에 대한 분분한 논란을 일으켰다. 어지럽고 혼란한 시대에,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곳에 몸을 두는 삶을 살아가야 했던 그였기에 백운(白雲)의 소망은 항상 간절한 꿈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룰 수 없었던 그 꿈은 그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문학으로 실현되어 갔다. 그는 당시의 규범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사상을 두루 포용하여 자유로운 정신으로 나아갔다. ‘만물(萬物)은 모두 똑같다[一類]’는 생각 아래 생명의 연약함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고통받는 백성들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이들의 괴로움을 형상화했다. 심지어 쥐나 이 등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미물들도 소중한 존재로 그려냈다. 그는 만물에 은택을 내리고 연약한 생명을 살리는 좋은 글쟁이로 살아갔다. 그는 문학의 공간에선 구름이었다. 다음은 그가 남긴 시 한 편.


사람은 하늘이 낸 물건을 훔치고, / 人盜天生物 인도천생물
 너는 사람이 훔친 걸 훔친다. / 爾盜人所盜 이도인소도
 똑같이 먹고 살려 하는 일이니, / 均爲口腹謀 균위구복모
 어찌 너만 벌을 주겠니? / 何獨於汝討 하독어여토
 <쥐를 놓아주며(放鼠)>

 

<글쓴이/ 박수밀(朴壽密)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미래인문학교육인증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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