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孝子는 떠납니다" (1961) (최후의 취입곡) <대 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
人心이기에 나 혼자 울었소 氣가 맥힌 온갖 설움 가슴에 안고서 떠나갑니다 < 2 > 罪를 빕니다 가슴을 치시리
盟誓를 안고서 떠나갑니다 ~ --------------------------------- * 괄세 : 괄시(恝視)의 비표준어. 사람을 업신여겨 하찮게 대함
(고 남인수 젊은시절 희귀사진) ◆ 가수 고 남인수(南仁樹 1918~1962)
그리고 작사가 강사랑에 의해 당시 이미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난영이 소속된 오케레코드로 스카웃되어 예명 남인수로서 첫 결과물인 ‘범벅 서울’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눈물의 해협´을 개사한 불후의 명곡 ´애수의 소야곡’이 탄생되고 그는 이난영과 함께 가요계 최고 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두 사람은 나중에 로맨스를 연출하기도 했었다. 이후, ‘감격시대’, ‘가거라 38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무너진 사랑탑’ 등 기요계에 수많은 명곡을 남긴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일제는 그에게 반 강제로 태평양 전쟁을 지원하는 친일가요를 취입케 하였다. 그럼에도 전쟁과 분단이라는 시대사를 천부적인 소질로 노래에 녹여낸 그의 업적과 능력은 그야말로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할 정도로 한국 가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나라 가난한 서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요황제는 안타깝게도 1962년 고작 45세의 젊은 나이에 이난영의 간호도 보람없이 지병인 결핵으로 눈을 감았다. 사망 전 그는 한국연예인협회 부이사장과 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음악평론가/ 김성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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