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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추억의 가요] "불효자는 떠납니다" (1961) - 남인수 노래

잠용(潛蓉) 2019. 5. 13. 11:36





“不孝子는 떠납니다" (1961)
반야월 작사/ 조춘영 작곡/ 노래 남인수

(최후의 취입곡)


<대 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그 몸은 영원히 가버리고
여기 노래만 남았구나.
故 南仁樹 先生의 애끊는
마지막 吹入曲
이 노래를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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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믿을래야 믿지 못할

人心이기에
山을 보고 江을 보고

나 혼자 울었소


氣가 맥힌 온갖 설움

가슴에 안고서
괄세 많든 故鄕 길을

떠나갑니다


< 2 >
늙어 계신 父母님께

罪를 빕니다
不孝 子息 怨望하며

가슴을 치시리


사나이로 태어난 몸

盟誓를 안고서
피 눈물을 뿌리면서

떠나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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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괄세 : 괄시(恝視)의 비표준어.

사람을 업신여겨 하찮게 대함





(고 남인수 젊은시절 희귀사진)


가수 고 남인수(南仁樹 1918~1962)
1930-40년대를 풍미한 가수 남인수는 타고난 미성과 넓은 음역, 게다가 풍부한 감정표현까지 갖추어 약 20여 년간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이른바 한국가요 1세대다. 그를 칭하는 대표적인 표현만 봐도-“가요 황제”를 비롯한 “영원불멸의 청년 가수”, “가요사에 전무후무할 거성” 등-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가난 때문에 가수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그는 1936년, 본명인 강문수라는 이름으로 ‘눈물의 해협’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한다.

 

그리고 작사가 강사랑에 의해 당시 이미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난영이 소속된 오케레코드로 스카웃되어 예명 남인수로서 첫 결과물인 ‘범벅 서울’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눈물의 해협´을 개사한 불후의 명곡 ´애수의 소야곡’이 탄생되고 그는 이난영과 함께 가요계 최고 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두 사람은 나중에 로맨스를 연출하기도 했었다. 이후, ‘감격시대’, ‘가거라 38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무너진 사랑탑’ 등 기요계에 수많은 명곡을 남긴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일제는 그에게 반 강제로 태평양 전쟁을 지원하는 친일가요를 취입케 하였다.


그럼에도 전쟁과 분단이라는 시대사를 천부적인 소질로 노래에 녹여낸 그의 업적과 능력은 그야말로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할 정도로 한국 가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나라 가난한 서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요황제는 안타깝게도 1962년 고작 45세의 젊은 나이에 이난영의 간호도 보람없이 지병인 결핵으로 눈을 감았다. 사망 전 그는 한국연예인협회 부이사장과 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음악평론가/ 김성주)